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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맞고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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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때가 있었다. 학교에서 학생들의 인권이 깡그리 무시당하고 짓밟히던 때가. 그림자도 밟지 말아야 했던 스승에게 한마디 대꾸조차 할 수 없었다. 딱히 하소연할 데도 없었다. 아니, 그럴 생각도 못했다. 사회규범이 그랬다. 하지만 학생들이 모를 리 없었다. ‘사랑의 회초리’라고 불린 그것을 교사들이 얼마나 남용하고 오용했는지를. 그리고 훗날 잊고 있었던 사춘기 그 치욕의 순간을 소환하는 학부모들이 많아졌다. 교단에 선 후배 교사들도 문제의식을 갖게 되면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다.

학교가 확 달라졌다. 학생인권이 강조되고 교사들은 회초리를 빼앗겼다. 그때는 너무나 당연했다. 교육 현장에서 우선적으로 보호하고 확립해야 할 가치는 학생인권이었다. 무소불위의 교권은 보호 대상이 아니었다. 2010년 경기도를 시작으로 광주·서울·전북·충남·제주 등 6개 시·도에서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해 시행했다. 학생인권 침해 구제 조치가 시행되면서 징계를 받는 교사들이 늘어났다.

당시에도 교권회복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찻잔 속 태풍’에 그쳤다. 몇몇 교사들이 제자들에게 저지른 충격적인 기행(奇行)이 언론을 통해 속속 알려지면서 학창 시절의 교실을 기억하고 있던 학부모들은 크게 분노했고, 기세에 밀린 교직사회는 숨을 죽여야 했다. 그러면서 교권은 점점 무게를 잃어갔다. 터무니없이 부풀려지거나 사실과 거리가 먼 인권침해 사례도 있었지만, 당국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억울하게 매도당한 교사의 하소연을 들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교권이 무너진 교실은 정상이 아니었다. 남용되고 오용되는 학생인권에 교사들의 속앓이는 커졌다. 그리고 마침내 터졌다. 어느 초등학교 여교사의 극단적인 선택이 계기가 됐다. 세상이 다시 바뀌었다. 이번엔 교권을 위협하는 학생, 교사에게 갑질하는 학부모들의 행태가 부각되면서 공분을 샀다. 교육부가 교권보호 종합대책을 마련해 발표하기로 했고, 정치권도 관련 법률 정비에 나섰다. 학생인권조례는 폐지 위기에 놓였다. 학생인권조례가 교권 붕괴를 초래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학생인권조례 열풍이 불던 때가 2010년대 초반이니 불과 10년 만에 생긴 변화다. 교육현장 인권의 무게추가 다시 한쪽으로 기울었다. 지금 시급하게 보호해야 할 가치는 교권이다. 학생인권이 아니다. 사회적 요구가 그 때와는 많이 달라졌다.

하지만 또 세월이 흐르면 ‘지금’이 ‘그때’가 돼 그때의 결정에 따른 부작용이나 문제점이 드러날 수도 있다. 교육의 3주체인 교사와 학생·학부모가 서로의 권리를 침해하는 ‘잠재적 가해자’로 인식되고 있다. 학생인권과 교권은 한쪽에 무게가 실리면 다른 쪽은 공중에 붕 떠야 하는 운동장의 시소 같은 관계가 아니다. 함께 존중받아야 한다. 지금은 그 균형점을 찾아야 할 때다. 훗날 ‘그때도 맞고, 지금도 맞다’고 인정받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 김종표 논설위원

 

 

김종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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