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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삼국시대의 전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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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1363년 전인 660년 백제가 멸망했다. 그리고 뒤이어 668년 고구려가 멸망했다. 신라가 당나라와 손잡고 삼국을 통일한 것이다. 통일의 위업은 대단한 것이었으나 한편으로 외세를 등에 업은 대가는 혹독했다. 광활한 고구려 영토는 대부분 실지가 됐고 이후 고려, 조선을 거치면서 영토는 한반도에 국한됐다. 삼국통일 이후 편찬된 각종 기록을 보면 고구려나 백제는 집권층의 분열과 부패가 지나치게 강조됐고,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고귀한 희생정신과 용맹이 부각됐다. 역사는 승자가 기록하는 것이기에 거의 대부분 약자 보다는 강자의 입장에서 기록되는 경우가 많다. 무려 1000년이 훨씬 더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다. 강자의 잘못은 대충 넘어가지만, 약자의 잘못은 회초리 10대쯤 맞으면 될 일도 몽둥이로 100대는 맞는게 세상이치다. 

1990년 1월 22일, TV를 시청하던 국민들은 경천동지할만한 뉴스에 스스로 눈과 귀를 의심했다. 노태우 당시 대통령과 통일민주당 김영삼, 신민주공화당 김종필 총재가 한자리에 모여 전격적인 합당을 선언했다. 소위 민주자유당의 탄생인데 총 299석중 217석을 점유한 초거대 여당의 인위적인 출범이었다. 일본의 자민당처럼 보수정당의 합당을 통해 장기 집권을 노렸는데 이후 민의를 왜곡시킨 이질적인 정치세력의 야합은 오래가지 못했다. 217석의 민자당은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149석을 얻어 과반수 확보에 실패한다. 민심은 인위적 정계개편에 강한 메스를 가한 것이다. 앞서 1988년 4월 26일 치러진 13대 총선에서 민주정의당 125석, 평화민주당 70석, 통일민주당 59석, 신민주공화당 35석 등의 철저한 지역기반 구도가 형성되면서 헌정 사상 첫 여소야대 국회가 탄생했다. DJ가 이끄는 평화민주당은 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과 손을 잡고 집권당인 민주정의당의 독선을 저지했는데 이는 결국 인위적 정계개편을 불러왔다. 평민당이나 DJ는 민자당 탄생때가 가장 힘든 시기였다. 호남은 민자당이란 울타리로 완전 포위됐고 왕따를 당한 때문이다. 하지만 동토의 겨울을 견디고 나면 꽃피는 봄이 오기 마련이다. 1997년 제15대 대선때 결국 DJ는 집권에 성공하게 된다. 작금의 전북상황은 민자당 탄생때의 상황보다도 훨씬 어려운 지경이라고 한다. 그때만 해도 평민당이 두터운 보호막이 됐으나 지금은 여당이나 야당 모두로부터 손가락질을 받는 상황이다. 새만금잼버리의 파행 여파가 만만치 않다. 집권여당은 모든 책임을 전북에 떠넘기는 형국이고, 야당인 민주당 조차 항변을 꺼리면서 전북은 동네북 신세가 돼버렸다. 새만금에서 치러진 대회가 파행이었기에 전북은 일정 부분 응분의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하지만 도민들은 “권한과 책임이 더 막중한 조직위, 여가부, 스카우트연맹 등은 가만두면서 왜 전북에만 메스를 가하느냐”고 묻고 있다. 만일 새만금잼버리가 성황리에 마무리됐더라면 중앙정치권이나 관가에서 전북 예산만 대폭 늘려야 한다고 했을까.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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