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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기고

[금요수필]요양원 블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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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화경

요양원에서 20년을 누워계시던 동생의 시어머니가 향년 97세로 세상을 떴다. 향년이란 말에 울컥했다. 향년이란 살아서 누린 나이를 말하는데 과연 살아서 누린 세월이었을까? 77세에 입원해 20년을 요양원에서 살았으니 살아있되 살아있었다고 할 수 있었을까?

막내아들과 막내딸이 2~3년 사이 암으로 세상을 떴는데 가족들은 한동안 말을 못했다. 그런데 노모는 속도 모르고 막내들은 왜 안 오느냐고 섭섭해 했다. 후에 막내들이 세상 뜬 사실을 알고 빨리 아들, 딸 곁으로 데려가 달라고 죽는 날까지 기도만 했다니 마음이 아팠다.

동생과 통화하는데 수화기 너머로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그치질 않았다. 호상이란 말이 부모에겐 당치않은 말일 것 같은데도 잔치마당 같은 웃음소리를 들으니 오래 산다는 일에 피로감이 몰려오며 씁쓸했다.

동생 시어머니의 20년 요양원 생활은 과연 어땠을까? 묻히지만 않았지 이미 요양원에 들어온 77세에 죽은 건 아니었을까? 가물거리는 기억력과 싸우던 일, 가족들을 몰라봐 애태우던 시간들, 산소호흡기로 연명하던 생명줄, 어눌해진 목소리와 둔한 몸짓, 무의미한 연명치료로 호흡만 겨우 유지하는 억지 장수까지 평균 수명에 포함 시킨 100세시대를 재앙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오죽하면 재수 없으면 120살까지 산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까?

호주의 104살 학자 데이비드 구달은 안락사가 허용되는 스위스로 가서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를 들으며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생을 마감했다. 죽지 못해 아니, 죽을 수 없어 사는 삶은 너무 비참하며 구달 박사의 죽음을 이긴 용기가 위대해 보였다. 죽음은 신의 영역이라 감히 거역할 엄두도 못 낼 일이 아니었던가.

음악을 들으면서 죽음을 맞는 것은 죽음의 공포와 엄숙함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오만한 죽음을 휘두르는 여유처럼 멋있어 보였다. 27세에 헤로인 과다복용으로 요절한 미국의 가수 제니스 조플린이 자기 장례식에 와서 울지도 말고 밤새 춤추고 노래하라고 했을 때, 좀 충격적이었지만 특별해서 따라 하고 싶었던 기억이 난다.

영화 <천년학>에, 죽어가는 노인 앞에서 흥타령 '꿈이로다'를 부르던 오정해와 나비처럼 흩날리던 벚꽃 잎을 잊을 수가 없다. 죽음과 노래는 아주 별개의 것 같지만 참 친밀하게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혼자 가는 길, 흥겨운 노래든 슬픈 노래든 누군가 노래를 불러준다면 무서움도 아득함도 없을 것 같다. 두려운 영혼이 위로받기에는 음악만 한 것도 없는 듯하다. 우리나라의 상여 소리가 그렇고 서양 장례식에서 부르는 찬송가도 그 맥락이다.

요즘 난 독특하고 흥미 있는 노래에 빠져있다. '슬프지만 안 슬프다. 비극적이지만 흥겹다.' 인디뮤지션 '씨 없는 수박 김대중'이 부르는 '요양원 블루스'라는 노래다. 요양원의 한 할머니가 노상 흥얼거리는 노래를 편곡한 것이라고 한다. 가사는 가슴이 찡하고 짠한데 듣고 있으면 어깨가 들썩이며 흥이 난다. 마치 슬픔이 정화되는 듯 위안이 된다.

다 살았네 다 살았어/나이는 많고 다 살았네/죽을 날만 기다리니 일쑤/어서어서 죽어 저승으로 가서/우리 아들 훨훨 날게 해주시여/주여 어서어서 죽어 저승으로 가서/얼쑤 우리 아들딸 훨훨 날게 해주시여/주여주여... 할머니는 손뼉을 치며 한숨을 쉬듯 노래를 부른다.

 "이런 사람은 쓸디가 없응개 저승에서 데려 가덜 안혀."라며 투덜댄다. 세상 뜨는 일이 저렇게 기쁠 수가 있구나. 꼭 시의 제목이 아니라도 참으로 눈물겨운 세상이다.

 

△최화경 수필가는 <좋은문학>으로 등단했다. 행촌수필문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한국문협, 전북문협, 전북수필, 영호남수필 회원이며 수필집 '음악없이 춤추기', '달을 마시다', '낮술환영'등 수필집이 있다. 한국수필가상, 원종린수필문학상, 대한민국문학예술상대상, 전북수필문학상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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