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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과 빨래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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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후반, 전국적으로 관심을 모으는 프로젝트가 무주에서 시작됐다. 10년여 동안 진행된 이 프로젝트는 건축가 고 정기용(1945~2011)이 무주 일원에 30여 개의 공공건축물을 들여놓는 대장정 프로젝트였다. 새롭게 변신한 군청사를 비롯해 무주공설운동장의 등나무 관중석, 세상에서 가장 밝은 납골당이 자리한 추모의집, 천 원짜리 목욕탕으로 이름을 널리 알린 안성면사무소 등 각자의 역할이 빛나는 건축물이 무주 곳곳에 들어섰다. 공공건축물의 가치와 쓰임을 새롭게 보여주는 이 프로젝트 덕분에 무주는 한동안 전국 각 도시에서 벤치마킹을 위해 찾아오는 도시가 되었다. 그중 가장 화제를 모았던 공간은 면사무소에 들어선 천 원짜리 목욕탕이었다. 면사무소에 공중목욕탕이 만들어진 뒷이야기가 있다.

무주군 읍면 사무소를 개선(?)하는 프로젝트의 첫 사업이었던 안성면사무소를 설계하면서 건축가 정기용은 주민들에게 의견을 구했다. 심드렁한 답이 돌아왔다.

면사무소는 뭐하러 새로 지어? 우리 필요한 것 해주려면 목욕탕이나 하나 지어줘

당시 안성면에는 대중목욕탕이 없어 주민들은 대전까지 나가야 했다. 주민들을 위한 공간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했던 정기용은 면사무소에 대중목욕탕 시설을 함께 설계했다. 천 원짜리 목욕탕, 하나의 공간으로 짝숫날에는 여탕, 홀숫날에는 남탕이 되는 단 하나밖에 없는 목욕탕은 그렇게 탄생했다. 2004년 문을 열었으니 올해로 20, 지금도 주민들이 애용하는 이 목욕탕의 고객 대부분은 어김없이 노인들이다.

전국 기초자치단체의 절반 이상이 초고령사회로 진입했다는 통계가 있다. 놀랍게도 202310월 기준 자료에 따르면 광역시·도 중에서도 8곳이나 초고령사회로 진입해있다. 노인복지 대책이 더 절박해진 이유다. 그 때문인지 전국 곳곳에서 다양한 시도가 이어진다. 눈에 띄는 소식이 있다. 농어촌 마을의 유휴공간을 활용해 들어서는 편의점과 빨래방의 행렬이다. 빨래방 사업은 2020년 강원도가 공공 이불 빨래방이란 이름으로 시작한 뒤 확산된 사업이다.

최근에는 면장 관사에 빨래방과 편의점을 들여 화제가 된 곳이 있다. 충북 괴산군 감물면사무소다. <감물커뮤니티 편의점, 빨래방>이란 이름으로 문을 연 이 공간은 대형 코인 세탁기 1대와 건조기 1, 운동화 세탁·건조기가 설치된 빨래방과 생필품을 파는 구멍가게가 주민들을 맞는다.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45%를 넘는 감물면 주민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선물일터다.

전북의 자치단체도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아직 우리 지역에서는 목욕탕과 빨래방 같은 실질적인 복지 대책이 들려오지 않는다. 과문한(?) 탓이면 좋겠다. /김은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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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kime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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