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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유적의 '탁월한'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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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는 고대 동아시아권에서 가장 빛나는 문화적 역량을 발휘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역사는 길지 않았다. 기원전 18년에 건국해 660년에 패망했으니 700년이 채 안 되는 짧은 역사다. 이후에는 존재조차 미미해져 고대 삼국에 대한 역사적 평가에서도 주목받지 못했다.

백제에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한 것은 1971년 무령왕릉이 발굴되면서다. 그 뒤 서서히 역사의 전면에서 부활(?)하기 시작했다. 백제는 두 번이나 수도를 옮기는 천도를 했지만, 강과 바다를 안고 있는 지리적 여건으로 수운 해운 교통이 발달해 개방성이 강했다. 덕분에 선진문화를 받아들여 자기화하고 그것을 더 발전시켜 주변국에 다시 전달하는 교류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고대 동아시아 공유문화권 형성에도 핵심 역할을 할 수 있었던 바탕이다. 

20157, 공주 부여 익산을 잇는 8개의 백제역사유적지구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충남과 공주가 무령왕릉으로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에 나섰던 것이 1990년대 중반이니 20년 만에 얻게 된 결실이다. 주목하게 되는 것이 있다. 등재된 세계문화유산이 공주 부여 익산의 백제역사유적을 함께 묶은 지구 단위라는 점이다. 당초 백제유적을 안고 있는 공주와 부여, 익산은 각각 따로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했다. 그러니 모든 인류가 공동으로 보존하고 관리해야 할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OUV)’와 진정성, 완전성을 동시에 갖춰야 하는 등재 조건을 충족시키기 쉬웠을 리 없다. 20113개 기초단체와 광역단체 전북과 충남이 <공주부여익산 백제역사유적지구 세계유산 등재 추진단>을 발족해 협업으로 등재 추진에 나선 배경이다. 당시 추진단은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류문화전통 또는 문명의 독보적이거나 특출한 증거를 내세웠다. 이 과정에서 33금당이라는 특별한 구조를 가진 익산 미륵사와 진정성을 증명할 수 있는 왕궁리 유적의 역할은 컸다.

들여다보면 백제역사유적은 복원과 상상으로 지켜질 수 있는 가치,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를 알려준다. 익산의 유적들이 특히 그렇다. 구체적 유적이 부족하다고 해서 실체가 규명되지 않은 섣부른 복원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세계문화유산이 된 백제역사유적은 다양한 통로로 부상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어떻게 살려 나갈 것인지, 지역마다 특성을 살리면서도 세계문화유산 도시를 어떻게 조성해나갈지 과제는 여전히 무겁다.

익산시와 익산문화재단이 만든 역사유적 관광상품이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는 소식이다. 백제유적의 탁월한 가치가 확산될 수 있는 모처럼의 기회가 반갑다./김은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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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kime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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