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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기고

지리산 청소년 자유공간 청온(ON)과 사회적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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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혜 남원시공동체지원센터 사회적경제팀장

막내아들이 중학교 시절, 학교에서 수목원으로 소풍 가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농촌에서 태어나 자랐으니 늘 자연 속에서 살고 있지만 그래도 수목원은 좀 특별한 공간이지 않냐고 물으니, 본인에게는 전라북도 자체가 거대한 수목원처럼 느껴진단다. 그때 아이 마음속에 우리 지역이 답답한 이미지라는 것을 깨닫고 마음이 꽤 무거웠었다. PC방도 독서실도 마트도 완행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가야 해결이 되는 시골이란, 사춘기 청소년에게 별 매력 없는 자연만 가득한 황무지 같은 곳이었을까.

귀농해서 두 아이를 낳아 성인이 되도록 키워보니, 공교육의 물적 자원은 농촌이 도시보다 훨씬 풍요롭다고 느낀 적이 많았다. 대부분의 교육비가 지원되고, 초등학교 때는 혁신학교로 지정되어 다양한 현장 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지역아동센터와 마을학교를 통해서 돌봄도 가능했다. 

하지만 농촌의 청소년들에게는 그들이 숨 쉴 공간이 없다. 중심지 활성화 사업을 통해 면 소재지에 도서관과 코인노래방이 생기고 카페도 생겼지만, 누구네 자녀라는 보이지 않는 명찰을 찬 아이들에게는 숨은 끼를 발산하고 새로운 무언가를 도모해볼 수 있는 안전하고 섬세한 아지트가 필요하다. 

지난 8월초 남원시 인월면 지리산 SOC에 청소년 자유공간‘청온(ON)’이 개관했다. 남원에서 지리산권으로 불리는 운봉읍과 인월면, 아영면, 산내면에 사는 9세부터 24세까지 청소년들의 전용공간으로 4억원의 사업비를 투입하여 조성한 공간이다. 댄스와 밴드 연습실, 커뮤니티룸, 스터디카페 등의 다목적 공간으로 9월부터 이용될 예정이라고 한다. 

무엇보다도 청온(ON)은 운영 특성을 ‘청소년의 자치와 참여에 중점을 둔 특화 공간’이라고 선언했다. 이는 청소년을 일방적인 이용자가 아니라 공간을 함께 만들어 나가는 주체이자 파트너라고 표현한 것이다. 또한 4개 읍면의 거점으로서 지리산권이라는 공감대를 가진 청소년들이 서로를 알아가고 다양하게 교류하여 동네에서 확장된 경험을 갖게 할 수 있다.

농산촌지역에 청온(ON)을 싹 틔우기까지 오랜 시간에 걸친 주민 활동이 있었다. 학부모 단체로 시작하여 2019년에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창립한 지리산마을교육공동체는 이동거리가 멀어 고질적으로 방과 후 교사 구인이 어렵던 지역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만든 주민 조직이었다. 지리산권 읍면 8개 초·중등학교의 방과 후 교육을 위탁받아 귀촌인 중에 전문성을 가진 이들을 강사로 발탁하여 학교와 마을을 연결하고, 권역 안에서 학교와 학교를 연결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또한 권역 내 4개 중학교 자유학년제 교육을 통해 지역의 아이들이 읍면 단위를 넘어 서로 협력하고, 서울 수도권 학생들과 교류하는 특별한 경험을 만들기도 했다.

교육을 통한 지역의 변화를 도모하기 위해, 지리산마을교육공동체는 학부모 및 교육활동가들의 네트워크를 만들어 함께 배우고 소통하며 성장할 수 있는 큰 그늘 역할을 하였다. 공교육 위탁 및 자체 활동만으로는 재정 안정이 어려워 2023년에 사회적협동조합은 해산하였지만, 지리산 SOC에 청소년 공간이 안착할 지지대 역할을 하였고 함께했던 이들은 여전히 마을 교육을 이어가고 있다.

이렇듯 주민들이 만들어낸 사회적경제 조직은 그 소임을 다하더라도 지역에 의미있는 변화와 사람들을 남긴다. 사회적경제의 지속가능성을 단순하게 설립과 해산으로 재단하지 말고 지역에서 창출한 협력의 자산으로 가늠해야 할 것이다.

/최규혜 남원시공동체지원센터 사회적경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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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혜 #지리산 청소년 자유공간 청온 #사회적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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