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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다움」과 「나는 반딧불」 단상斷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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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익 홍익대 교수·세계신화연구소 소장

우리나라 대중가요 가사에는 인생의 온갖 애환이 녹아 있다. 송대관의 트로트 「유행가」에도 “유행가 노래 가사는 우리가 사는 세상 이야기”라는 구절이 있지 않은가. 간혹 어떤 사람이 우연히 어떤 가수의 노래를 듣고 큰 감동과 위로를 받아 그의 광팬이 되었다고 고백하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가령 진성의 트로트 「보릿고개」의 “아야 뛰지 마라 배 꺼질라”라는 가사에는 50~60년대 자식들을 제대로 먹이지 못해 애간장을 녹이던 부모들의 깊은 슬픔이 오롯이 담겨있다. 

내가 요즘 꽂혀 있는 노래가 두 곡 있다. 페이스북 프로필에 번갈아 공유할 정도로 즐겨 듣는다. 하나는 「홀로 아리랑」과 「개똥벌레」를 작사·작곡한 한돌의 「제다움」. ‘제다움’은 표준어는 아니지만 ‘자기다움’의 준말. 노래 내용은 마치 꽃은 꽃으로 살고, 나무는 나무로 사는 것처럼 나는 나였으면 좋겠고 너도 너였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한돌은 진영논리의 블랙홀에 빠져 서로를 헐뜯기에 바쁜 세태를 점잖게 꼬집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내가 감히 손에 꼽는 음유시인답다.

또 하나는 황가람의 「나는 반딧불」. 내용은 ‘나는’ 개똥벌레라는 사실은 새까맣게 모른 채 한때 하늘에서 떨어진 빛나는 별로만 생각했다는 것. 개그우먼 안영미는 자신이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에 황가람을 초청해 대담을 나누면서 이 노래를 처음 듣는 순간 자신의 노래라고 생각해서 복받치는 감정을 추스르는 게 힘들었다고 술회했다. 한때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살아오다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뒤 어느 순간 문득 자신이 너무 기고만장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 

그리스 신화에도 「나는 반딧불」의 ‘나’를 빼닮은 벨레로폰이라는 코린토스의 왕자가 있었다. 그는 실수로 동생을 죽인 뒤 조국에서 추방당해 티린스의 왕 프로이토스에게 몸을 의탁했다. 얼마 후 왕비 안테이아가 궁전에서 우연히 벨레로폰을 보고 첫눈에 반해 구애했다가 단박에 거절당하자 남편에게 오히려 벨레로폰이 자신을 유혹하려 했다고 그를 모함했다. 프로이토스는 아내의 말만 믿고 복수심에 불타올랐다. 하지만 손님을 죽였다는 세간의 비난을 받고 싶지 않았다. 

궁리 끝에 그는 벨레로폰을 죽여달라는 내용의 밀봉한 편지와 함께 그를 장인이자 리키아 왕 이오바테스에게 보냈다. 편지를 읽은 이오바테스도 손님을 죽였다는 비난을 받는 게 두려워 위험한 과업을 주어 벨레로폰을 자연스레 해치우려 했다. 하지만 그는 지혜의 여신 아테나가 보내준 천마 페가소스를 타고 힘든 과업을 3개나 완수하고, 길목에 매복해서 자신을 급습한 왕궁수비대마저도 몰살했다. 이오바테스는 그제야 벨레로폰에게 편지를 보여 주며 용서를 구했다.

진실이 밝혀지자 이오바테스는 벨레로폰에게 작은딸을 주고 그를 후계자로 삼았다. 이때까진 벨레로폰에겐 전혀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얼마 후 그는 마치 신이나 된 것처럼 사람들에게 으스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어느 날 신들의 왕 제우스와 식사하고 오겠다며 페가소스를 타고 올림포스 궁전을 향해 날아갔다. 분노한 제우스가 재빨리 쇠파리를 날려 페가소스의 궁둥이를 물게 했다. 놀란 페가소스가 갑자기 치솟아 오르자 벨레로폰은 그 충격으로 지상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인간은 잘나갈 때일수록 더 조심해야 한다. 인간이 정상에 올랐을 때, 신은 오만이라는 깊은 함정을 파놓고 시험한다. 거칠 것 없는 인간에게 오만은 꿀처럼 달콤한 법이다. 그래서 인간은 신나게 오만을 만끽하다가 결국 나락으로 추락한다.

김원익 홍익대 교수·세계신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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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다움 #나는 반딧불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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