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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향에서] 한국의 수니온곶 변산반도 적벽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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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익 홍익대 교수·세계신화연구소 소장

내 고향 김제에서 가까운 전라북도 변산에는 ‘채석강’과 ‘적벽강’이라는 관광 명소가 있다. 아마 많은 사람이 적벽강은 몰라도 채석강은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두 곳은 ‘강’이라는 이름만 붙어 있을 뿐 사실 흐르는 강은 아니다. ‘채석강彩石江’은 주변 경관이 중국 당나라 시인 이태백이 술을 마시다가 강물에 비친 달을 잡으려다 빠져 죽은 강을 닮아 그 이름을 딴 지명이고, ‘적벽강赤壁江’은 주변 경관이 송나라 시인 소동파가 노닐었다는 강을 닮아 그 이름을 딴 지명이다. 

채석강과 적벽강은 ‘죽막마을’을 사이에 두고 서로 인접해 있다. 채석강에서 싸드락싸드락 걸어서 출발하면 격포해수욕장 해변을 거쳐 죽막마을을 지나 20여 분 만에 적벽강에 도착할 수 있다. 나는 두 곳 중 적벽강을 더 좋아한다. 그곳이 그리스의 수니온곶을 빼닮았기 때문이다. 그곳에 가면 수니온곶이, 그리고 수니온곶에 가면 적벽강이 생각날 정도다. 우선 수니온곶이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가 있는 아티카반도 끝자락에 놓여있는 것처럼 적벽강도 변산반도 서쪽 끝자락에 놓여있다. 

또한 수니온곶에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신전이 있다면 적벽강에도 수성당이라는 당집이 있다. 수니온곶은 앞쪽으로 에게해의 망망대해가 펼쳐져 있어 바다의 신의 성소가 자리 잡기에는 최적의 장소였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곳에 포세이돈의 강한 기운이 서려 있다고 생각하고 일찍부터 제단을 쌓고 그에게 제물을 바치며 선원들의 무사 귀환을 빌었다. BC 8세기경의 호메로스가 쓴 『오디세이아』에 따르면 헬레네의 남편 메넬라오스는 트로이 전쟁 후 스파르타로 돌아가다가 수니온곶에 상륙하여 포세이돈 신에게 제물을 바치고 무사 귀환을 빌었다.

적벽강도 칠산 앞바다, 위도, 상왕등도, 하왕등도, 고군산 군도 등이 아주 잘 보이는, 낮아도 그곳에서는 가장 높은 용두산 정상이라서 그 지역을 항해하는 배들과 어선들을 돌보는 당집이 들어서기에는 최적의 장소였다. 수성당은 상량 기록에 따르면 조선 시대 순조 때 지어졌다. 하지만 발굴된 유물에 따르면 사람들은 그보다 훨씬 앞선 삼국시대부터 고기잡이를 떠나기 전 그곳에서 바다의 신에게 제물을 바치며 무사 귀환을 빌었다. 

수성당에 모신 신은 거인巨人 ‘개양할미(혹은 계양할미)’와 그녀의 여덟 명의 딸이다. 구전에 따르면 개양할미는 수성당 근처 여울굴에서 나와 여덟 명의 딸을 낳아 일곱 명은 각각 전국의 도로 보내고 남은 한 명과 함께 서해 바다를 다스렸다. 개양할미는 특히 조기가 많이 나던 칠산 앞바다를 성큼성큼 걸어 다니면서 어부들을 위해 위험한 곳은 알려주고 거센 파도는 잠재워 주었다. 언젠가 개양할미는 곰소 앞바다의 깊은 곳 ‘계란여’를 지나다가 치마가 조금 물에 젖자 화가 나서 얼른 육지로 건너가서는 치마에 흙과 돌을 가득 담아 와 단숨에 그곳을 메우기도 했다.

끝으로 수니온곶과 적벽강은 똑같이 석양으로 유명하다. 수니온곶이 석양에 비친 포세이돈 신전으로 수많은 관광객의 발길을 사로잡는다면, 적벽강은 석양에 비친 진홍색 바위와 바닷물이 서로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적벽강처럼 전라북도에는 전 세계에 내놓아도 전혀 손색이 없는 또 다른 명소가 있다. 바로 9개 코스 총 240km에 달하는 ‘아름다운 순례길’이다. 그중 ‘수류성당’에서 ‘금산사’까지 이어지는 제7코스는 천주교, 불교, 기독교, 원불교 등 우리나라 4대 종교의 화합을 염원하면서 조성한 길이라 뜻깊어 더욱더 ‘아름다운’ 길이다.

김원익 홍익대 교수·세계신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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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수니온곶 #변산반도 적벽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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