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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쿠팡'과 24시간 도는 선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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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에 개봉된 독일 영화 <인 디 아일(In the Aisles)>은 독일의 한 대형마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다. 동독 출신인 토마스 슈투버 감독은 노동자들의 사랑과 우정을 그리면서도 통일된 독일의 현재와 변화된 환경에서 그들이 겪는 갈등을 섬세하게 들춰냈다. 감독의 의지와 관계없이 정치적 영화란 혐의(?)를 받는 것도 이 때문인데, 영화가 시작되고 끝날 때까지 관객들을 몰입시키는 것은 또 있다. 야간 노동자들이 일하는 공간, 거대한 상품 더미로 채워진 대형마트에서 펼쳐지는 풍경이다.

영업시간이 끝나면 거대한 물류창고가 되는 대형마트. 한 줌 빛도 새어들지 않는 이 공간에서 노동자들은 요한스트라우스의 왈츠곡으로 일상을 시작한다. 넓지 않은 통로를 지게차가 오가며 싣고 옮겨 내려놓는 물건을 고객들이 가져가기 쉽게 다시 진열하는 일. 지극히 반복적인 노동이 이루어지지만, 잘 구획된 질서 정연한 공간과 요한스트라우스나 브람스의 클래식 음악이 쉼 없이 흘러나오는 이 낯설면서도 아름다운 풍경에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몰입하게 된다.

4년 전 여름, 쿠팡의 덕평물류센터 화재로 물류창고 안 열악한 노동환경이 적나라하게 공개되었을 때 이 영화 <인 디 아일>의 대형마트 속 풍경이 떠올랐다.

쿠팡의 물류창고 시설은 놀라웠다. 축구장 15개 크기라는 거대한 공간, 수백 명이 일한다는 이곳은 사방이 막혀 있지만 더위를 식혀줄 시설은 에어컨 대신 24시간 내내 돌아가는 선풍기가 전부였다. 물건을 하나라도 더 쌓으려고 층과 층 사이에 간이층까지 만들어 놓았던 창고까지 거들어 환경은 최악. 이곳 창고 안 선반마다 놓여 있던 멀티탭에서 시작됐다는 덕평물류센터 화재는 불을 끄는 데만 5일 넘게 걸렸다.

쿠팡 물류센터의 환경은 달라졌을까. 예상과는 전혀 다른 모양이다. 쿠팡의 물류센터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섰다. ‘제대로 된 휴게 공간 및 에어컨 마련‘2시간 이내 20분 휴식 보장이 이들의 요구다. 현실을 들여다보니 더 놀랍다. 에어컨이 설치되지 않은 곳은 여전히 많고 그중에는 창문이 없는 곳도 있다. 이런 환경에서 물류센터 노동자들은 아침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한다. 주어지는 휴식 시간은 45분 정도의 점심시간 뿐. 견디기 힘든 염천 속 불볕더위와 싸워야 하는 노동자들의 고통이 얼마나 클지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알고 보니 물류센터는 창고로 분류돼 냉방 시설 설치 의무가 없단다. 쿠팡 말고도 다른 물류창고의 환경도 크게 다르지 않은 이유를 이제 알겠다.

택배기사들의 과로사 소식도 이어지고 있지만, 노동환경은 좀체 달라지지 않고 있다.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김은정 선임기자

 

김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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