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립국악원 무용단, 창작무용극 ‘작’ 마이산 설화와 인간 삶 여덟 장면에 담아
이혜경 예술감독 마지막 정기공연, 전북 무용계 의미 있는 성과 남겨
신과 인간이 함께 빚어낸 산, 마이산이 무대 위에서 생명력을 얻었다. 전북도립국악원 무용단은 지난 2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에서 제34회 정기공연 창작무용극 ‘작(作)-신과 사람이 빚은 걸작, 마이산’을 선보였다. 농부, 어부, 강의 이야기에 이어 이번에는 진안 마이산을 소재로 한 네 번째 ‘이 땅을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 시리즈의 대미다.
마이산은 보는 방향에 따라 모양이 달라지고, 벌집 모양의 암벽을 품은 독특한 산세로 잘 알려져 있다. 무대는 이 신비로운 자연을 단순한 풍광이 아니라, 시간과 설화, 인간의 삶을 품은 ‘걸작’으로 그려냈다. 작품은 총 여덟 개 장면으로 나뉘어, 하늘과 땅, 신과 인간을 잇는 매개로서의 마이산을 무용적 언어로 풀어냈다.
서곡 ‘하늘이 빚다’는 영상으로 웅장한 산세를 펼쳐 보이며 시작된다. 이어 은수사의 청실배나무와 산신제를 교차시킨 1장에서는 청실배나무의 고결함과 생명력이 무대에 드리워졌다. 제천 신앙을 표현한 몸짓은 인간의 기원을 떠올리게 했다. 2장에서는 전주대학교 싸울아비 태권도 시범단이 참여해 이성계의 ‘몽금척’ 설화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태권무를 선보였다. 국악 리듬과 전자음향이 교차하며 전통과 현대가 부딪히는 긴장감을 만들어냈다.
공연의 중반부는 마이산의 유래와 전설을 풀어냈다. 이갑용 처사가 돌탑을 쌓아 올린 이야기는 인고의 몸짓으로 표현됐고, 호수에서 솟아올라 산이 되었다는 전설은 빛과 음악으로 형상화됐다. 4장에서는 수마이봉과 암마이봉의 이야기를 두 무용수의 호흡으로 담아 봉우리의 신비를 인간의 서사로 옮겼다.
특히 5장 ‘그렇게 땅을 달리다’는 공연의 백미였다. 마이산이 말의 귀를 닮았다는 데서 착안한 장면으로, 무용수들은 발굽 장단에 맞춰 역동적으로 달렸다. ‘박’이라는 전통 타악기가 더해져 산이 달리는 듯한 울림을 만들었고, 관객은 대지가 흔들리는 듯한 진동을 체험했다.
음악적 구성은 전통과 현대의 절묘한 융합이었다. 국악기와 서양악기를 혼합해 현대적 감각을 불어넣었고, 장구 연주단을 통한 ‘비’의 상징화는 전통적 의미를 살렸다. 성악과 보이스를 통해 설화를 직접적으로 전달한 부분은 다소 서사적 과잉의 위험이 있었으나 몰입도와 극적 효과에서는 성취를 거뒀다.
안무 또한 돋보였다. 태권도의 직선적인 동작과 금척무의 곡선이 교차하며 산세의 흐름과 기운을 표현했고, 움직임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설화와 역사를 전하는 서사적 몸짓으로 확장됐다. 영상·조명·소품은 한국적 상징성을 강화하며 무대를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 공간으로 완성했다.
이번 공연은 무엇보다 이혜경 예술감독의 마지막 정기 무대라는 점에서 뜻깊다. 그는 지난 4년간 무용단을 이끌며 전통의 뿌리를 지키면서도 실험적 시도를 이어왔다. 농부에서 어부, 강을 거쳐 산으로 이어진 서사 구조는 곧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성찰하는 궤적이었다.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무용수들이 산과 인간의 공존을 노래하며 퇴장하자, 객석에서는 긴 박수가 이어졌다.
‘작’은 단순히 지역 설화를 무대화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수억 년의 시간이 빚은 산세와 그 안에 살아온 인간의 이야기를 예술로 전환해냈다는 점에서 성과가 크다. 김제의 호남평야 농부의 이야기를 담은 진경, 부안의 어부와 푸어제를 다룬 고섬섬, 금강과 만경강의 서사를 담아낸 강, 그리고 이번 마이산 설화까지 이어진 시리즈는 이혜경 단장이 4년간 애향의 시선으로 전북 곳곳의 이야기와 역사를 무용극으로 풀어낸 여정이었다. 조주현 연출가, 장석진 작곡가와 함께한 이 시도는 훌륭한 스토리텔링 능력으로 지역의 삶과 신화를 문화콘텐츠로 재탄생시킨 사례로, 전통예술의 미래를 여는 발판이자 전북 무용계가 남긴 중요한 성취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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