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스트리아의 부르겐란트주는 동쪽 끝, 헝가리와 인접한 국경 부근에 자리하고 있다. 원래 헝가리 왕국에 속해 있었으나 제1차 세계대전 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해체되면서, 1921년 트리아농 조약에 따라 오스트리아로 편입됐다. 오스트리아의 대표적 와인 산지이기도 한 부르겐란트의 주도는 아이젠슈타트다. 부르겐란트는 이름이 다소 낯설지만, 아이젠슈타트는 비교적 친숙하다. 하이든이 이곳의 에스테르하지 가문 궁정악장으로 있으면서 아이젠슈타트를 중심으로 오랫동안 활동했기 때문이다. 하이든 하우스가 있는 이곳에서는 지금도 해마다 하이든 페스티벌이 열려 음악 애호가들을 맞고 있다.
그리고 또 한 곳, 아이젠슈타트 인근에 해마다 여름이면 오페라 페스티벌로 관광객들을 부르는 작은 마을이 있다. 인구 3천명도 안 되는 작은 도시 장크트 마르가르텐이다. 중세 시기, 이곳에 있는 <로마 채석장>은 수백 년 동안 중부 유럽의 최고 채석장으로 꼽혔다. 빈의 쉰부른 궁전, 성 슈테판 대성당 등 전통 있는 건축물 대부분이 이곳의 돌로 지어졌다.
산업구조가 바뀌면서 채석장은 쓰임을 잃었지만 1950년대 이후 다시 새로운 쓰임을 얻었다.
이곳을 처음 주목한 것은 조각가들이다. 장크트 마르가르텐의 로마 채석장에서 야외 심포지엄을 주도한 조각가들은 채석장을 둘러싼 거대한 암벽이 인공 음향 장치 없이도 놀라운 울림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뒤, 자연 음향을 갖춘 채석장은 자연스럽게 작은 음악회와 연극 등 다양한 형식의 공연을 품은 무대가 됐다.
부르겐란트주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까지 더해지면서 ‘장크트 마르가레텐 페스티벌’은 날개를 달았다. 1976년 처음으로 무대에 오른 대형 오페라 <나부코>가 큰 성공을 거둔 이후, 축제의 중심은 오페라로 옮겨갔다. 1996년에는 아예 시가 나서 이 공간을 본격적인 오페라 공연장으로 만들었다. ‘장크트 마르가르텐 오페라 페스티벌’의 새로운 시작이었다. 7월 초부터 8월 중 하순까지 열리는 이 축제는 지금, 해마다 20만여 명의 관객이 찾아오는 세계적 오페라 축제로 자리 잡았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채석장의 변신 사례가 적지 않다. 대부분이 문화와 예술을 새롭게 품은 공간들인데, 들여다보면 이들의 변신에는 하나같이 뚜렷한 ‘서사’가 있다.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알려주는 증거다.
익산에도 거대한 채석장이 있다. 지하 80m 깊이의 절벽이 독특한 풍광을 품은 원형 채석장이다. 오래전부터 주목받아온 이 채석장이 변신을 꾀하고 있다. 새롭게 얻은 쓰임은 역시 문화예술공원이다. 채석장의 성공적인 변신은 도시의 새로운 힘을 부른다. 지역의 관심이 더해져야 할 이유다.
김은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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