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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꺼내놓은 남편의 일기장, 문학계 ‘대상’으로 화답하다

불현듯 그에게 기쁨이 다가왔다. 올해 3월 계간지 한국창작문학인협회 동시 부문 신인상을 수상한 이여산(83) 작가. 그에게 이 상은 평생을 꿈꿔온 아동문학가로 나아갈 수 있도록 자존감과 자신감의 샘을 파주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43년간 초등교사로 재직하면서 치열하게 삶을 일궈내야 했다. 퇴직 후 시인으로 등단했지만 어린이의 순수함을 간직하며 글을 썼던 작가는 아동문학가라는 꿈을 놓을 수 없었다. 그렇게 늦깎이 아동문학가로 첫발을 내딛은 이여산 작가는 감사의 마음을 담아 자신의 저서와 남편 이동우 시인의 유고 시조집을 한국창작문학인협회에 보냈다. 한국창작문학인협회 이사장은 이여산 작가와 이동우 시인의 작품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동우 시인의 유고시집 <황혼의 연가>에 담긴 시들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이여산 작가의 시집 <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 역시 빼어난 작품들로 빼곡했다. 두 사람이 지닌 문학성에 감동한 협회 임원들은 이들 부부에게 ‘제43회 부부동행문학상 작가 대상’을 수여하기로 결정했다. 이 특별한 수상의 바탕에는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평생을 함께하고 이별 후에도 이어지는 부부의 깊은 인연이 있었다. 지난 2023년 세상을 떠난 이동우 시인은 평생일기를 쓰며 삶을 기록해온 이였다. 세상을 떠나기 전, 남편이 남긴 수십 권의 일기장을 발견한 이여산 작가는 글들을 한데 엮어 2020년 시조집 <황혼의 연가>로 출간했다. 쉽고 간결해서 울림이 큰 남편의 글을 세상에 알리고 싶다는 마음에서였다. 그렇게 이동우 시인은 시조집을 출간한 그해 여름 신인상을 받았고, 시조시인으로 등단하며 기쁨을 누렸다. 비록 당선 이후 투병생활로 인해 문단 활동을 마음껏 펼치진 못했으나, 글을 사랑했던 그의 진심은 120여편의 작품에 고스란히 남아 아내의 글과 함께 마침내 빛을 보게 됐다. 28일 만난 이 작가는 “남편이 살아생전 시인이 된 것을 그토록 기뻐하고 자랑스러워했다”며 “남편의 글에 담긴 진심을 알아보고 다시금 조명해준 분들의 배려 덕분에 큰 상도 받게 됐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 부부가 문학 안에서 하나의 이름으로 함께 인정받게 되어 감격스러울 따름이다“고 덧붙였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지 3년이 흘렀지만, 작가는 여전히 집안에 남겨진 남편의 물건을 하나도 정리하지 않았다. 그는 “핑계같이 들릴 수 있는데, 옛날에 쓰던 물건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간직하고 있다”며 “버려야 하는데 차마 버리지 못하겠다”라고 전해 먹먹함을 더했다. 멈췄던 남편의 시간은 아내의 문학 안에서 비로소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이 작가는 남아 있는 남편의 글을 다시 모아 작품집으로 엮어낼 계획도 구상하고 있다. 물리적인 이별을 넘어 세상에 남겨진 부부의 글은 서로의 문학 세계를 비추는 영원한 이정표로 자리 잡을 것이다.

  • 문화일반
  • 박은
  • 2026.05.28 17:40

157억 투입한 전북문학예술인회관 개관 눈앞… ‘외형’이어 ‘내실’ 다지기 과제

전북자치도가 도비 157억원을 투입해 건립 중인 전북문학예술인회관(이하 전북문학관·권삼득로 450)이 오는 6월 준공을 앞두고 막바지 점검에 들어갔다. 개관을 목전에 둔 시점에서 전시콘텐츠의 객관성 검증과 장기적인 위탁운영 구조 개편이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26일 전북도에 따르면 현재 전북문학관의 공정률은 95%로 내부 마감 공사가 진행 중이다. 도는 최근 자재 단가 상승에 대응해 설계변경을 최소화하는 등 예산 관리에 집중하고 있다. 또한 시설 복합 기능에 맞춘 조례 개정과 운영방식 다각화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간 지역 문화계 안팎에서는 내부를 채울 전시 콘텐츠의 검증 절차와 기준 부재를 두고 우려를 제기해왔었다. 실제 지난 4월 열린 전문가 간담회 자리에서 친일 행적 문인들을 다룰 때 단순 미화나 무비판적인 나열을 지양하고, 과오를 명확히 기재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면서 설왕설래가 이어졌다. 이와 관련해 전북도 관계자는 “친일 논란이 있는 작가는 15일 열린 1차 회의에서 확실히 배제했다”며 일각에서 제기된 역사적 검증 가이드라인 부재 논란에 선을 그었다. 도는 전북문인협회와 전북작가회의 등 각 단체의 의견을 수렴해 전시 후보 작가를 신석정, 김창술 등 14명으로 압축한 상태다. 전시 방식에서도 변화를 줄 예정이다. 도 관계자는 “최종 회의를 통해 수록 작가를 확정할 예정”이라며 “작가의 생애나 약력 나열은 줄이고 작품 속에 담긴 문구와 텍스트 위주로 전시 콘텐츠를 구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 같은 작가 정리와 전시 방향성이 준공 직전에서야 구체화되면서 사업 초기부터 정교한 소프트웨어 로드맵이 마련됐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나온다. 도는 6월 초로 예정된 최종 운영위원회 전까지 전시 연출 등 세부 콘텐츠 구축에 속도를 내야 하는 상황이다. 수십년간 이어진 특정단체의 수탁 독점 구조를 깨뜨리는 것도 과제다. 전북문학관은 도 소유 자산임에도 특정 단체만 단독 응모하는 구조적 한계가 반복되면서 폐쇄성 지적이 이어졌다. 도는 3년마다 정기공모를 거쳐 법적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었으나 관행적인 행정을 유지해 왔다는 비판은 피해가기 어려운 대목이다. 이에 도는 현재 위탁운영 중인 전북문인협회와의 계약이 끝나는 올 12월 말 이후를 대비해 문학진흥 조례와 문학과 설치 및 운영 조례 전반을 개정하겠다는 방침이다. 공모의 한계를 극복하고 전문경영시스템 도입 등 운영 주체를 다각화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을 다지겠다는 구상이다. 지역 문화예술계 한 인사는 “대규모 세금이 투입된 공공문화시설의 성패는 외형 구축이 아니라 소프트웨어의 정당성과 운영의 투명성에 달렸다“라며 ”단순히 행정적 절차 수행에 그치지 말고 철저한 검증체계와 도민 중심의 개방적 지침을 확립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 문화일반
  • 박은
  • 2026.05.26 17:20

한국영화인협회 전북도지회 출범…시·군 연대로 외연 확장, 예산 확보는 과제

(사)한국영화인협회 전북도지회가 창립총회를 열고 공식 출범했다. 지역 영화인들의 창작 환경 개선과 도내 영화 문화 발전 등을 목표로 내걸었으나, 예산 확보와 실질적인 정책 거버넌스 구축 등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전북도지회는 최근 전북영화인협회 사무실에서 각 지부장과 대의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창립총회를 열었다고 26일 밝혔다. 이번 전북도지회 설립은 도내 3개 시·군지부가 연대해 유기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도지회 출범에 앞서 군산지부(지부장 임복근)와 정읍지부(지부장 김근섭), 완주지부(지부장 장공선)가 먼저 창립해 기반을 다졌으며 이를 토대로 통합 전북도지회가 구성됐다. 최근 열린 총회 본회의에서는 전북 영화계 운영과 사업 전반을 규정할 핵심 안건을 처리했으며 조직을 이끌어갈 주요 임원진 구성이 완료됐다. 이에 따라 신임 전북도지회장에는 나아리 회장이 선출됐으며 고문에는 나경균·소병문씨가 선임됐다. 감사는 이희찬·이숙희, 수석부회장은 김근섭, 부회장 김미림, 이사 임복근·장공선, 사무국장 이도연, 기획국장 서아연·임지호를 각각 임명했다. 이번 도지회 출범은 그동안 전주시에 편중되어 있던 전북 영화 생태계를 시·군 단위 개별 지부의 연대를 통해 확장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군산과 정읍, 완주 등 기초지자체 기반의 지부들이 선제적으로 구축되면서 지역별 특성에 맞춘 로컬 콘텐츠 발굴과 지역 영화인들의 외연 확장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정적 자립 기반을 갖추지 못한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지역 영화산업 구조상 지자체 보조금과 공모사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단순한 친목 도모나 일회성 행사 개최를 넘어 지역 영화인들의 창작 환경을 실질적으로 바꿀 수 있는 예산 확보 방안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단체의 연속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나아리 지회장은 “전북예총에 (전북도지회) 예산을 요청드린 상태로 예총에서도 ‘노력하겠다’고 했다"며 “(중앙에서) 인준서가 열흘 이내로 나온다면 6월 중에는 전북예총에 편입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사회 의결 등 몇몇 과정이 남아 있어서 조금 더 지켜봐야 하는 입장”이라며 “행정적 절차가 마무리되는 대로 각 지부와 긴밀히 소통하고 65명의 회원들이 뭉칠 수 있도록 다방면으로 활동해 나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 문화일반
  • 박은
  • 2026.05.26 15:54

[안성덕 시인의 ‘풍경’] 홍콩반점

짜장면 먹으러 갑니다. “할아버지 오늘 점심 메뉴가 뭘까?” 아무 날도 아닌 일요일, 에둘러 특별식을 먹고 싶다는 아홉 살짜리 앞세우고 홍콩반점에 갑니다. 대낮에 헛제삿밥 먹으러 갑니다. 붉은 휘장을 밀치고 두리번, 빈자리를 찾습니다. 허허 이놈, 메뉴판도 볼 것 없이 “짜장 주세요” 주문합니다. 엽차를 마시며 주방을 기웃거립니다. 탕 탕 수타면은 안 뽑아도 춘장 볶는 불내 넘칩니다. 닥 닥 웍 긁는 소리, 기다리던 짜장면이 나오고, 녀석 먼저 맛있게 비벼줍니다. 중국집 의자에 앉아 먹어도 신문지 깔고 빙 둘러앉아 먹던 옛 이삿날 그 맛이 살아납니다. 짜장면, 생일이나 졸업식 날 또 일등 한 날에 먹던 특별식이었지요. 아무 날도 아닌 보통날, 특별히 기억되라고 탕수육 소짜 하나 더 시켜 줍니다. 옛적엔 중국집이 참 멀고도 멀었지요. 가만 생각해 보니 그땐 해외여행 자유화 전이라서 홍콩반점, 양자강, 북경루, 만리장성……, 중국에 데리고 가지 못했겠지요. 내 부모님은 평생 한자리에 눌러사셔 이사할 일 없으셨겠지요. 배갈 없어도 탕수육 몇 점 더 먹습니다. 남은 양파쪼가리 춘장 찍습니다. 손녀 입에 묻은 짜장 말끔히 닦아주고 일어섭니다. 홍콩반점 뒤돌아보며 안동 선비라도 되는 양 흠, 흠 헛기침을 합니다.

  • 문화일반
  • 기고
  • 2026.05.23 08:02

전북지사 후보 ‘문화산업화’ 공약 한목소리…구체성은 ‘빈약’

6‧3지방선거를 앞두고 전북특별자치도지사 후보들이 문화공약을 잇달아 내놓고 있지만 비전과 구체성 면에서는 여전히 빈약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이원택, 국민의힘 양정무, 무소속 김관영 세 후보 모두 ‘문화자원의 산업화’를 내세우지만 이를 실현할 실행전략 없이 정책을 나열하는 데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 후보는 문화예술을 보편적 복지와 산업생태계의 조화로 풀어내겠다는 전략이다. ‘동학역사문화권 조성(가칭)’을 통해 지역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기초예술종합지원센터 조성을 통한 예술인 통합지원으로 예술생태계를 보호하는 사회안전망을 구축하겠다는 방침이다. K-Story 콤플렉스 조성과 복합 돔구장을 통한 체류형 관광플랫폼 구축 역시 문화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복안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동학역사문화권 조성을 위한 특별법 제정이나 기업중심의 프로구단 유치 등은 정부의 예산 협조와 민간 자본 수혈이 필수적인 구조라는 점이다. 정부의 입법 협조와 대외 정치 환경 변화에 의존해야 하는 구조여서 지자체 차원의 공약 실현 가능성에 한계가 따른다는 분석이다. 양 후보는 현장 밀착형 실무 지원을 전면에 내세웠다. 전북예술인 창작기본지원금 도입, 전북예술패스 운영, 청년예술인 월세·작업실 지원 등은 예술 현장의 갈증을 즉각 해소하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특히 지자체 예산에만 의존하지 않고 주요 관광지 수익을 문화예술기금으로 환원하거나 산업단지 입주기업과 예술단체 매칭을 통한 기업 메세나 확대로 재원을 다변화하겠다는 구상은 다른 후보와 차별화된다. 다만, 전북의 관광 수요가 정체되거나 기업 참여가 저조할 경우 기금의 안정성이 흔들릴 수 있어 이를 보완할 정교한 재정적 안정 장치와 예산 운영의 투명성이 담보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 후보는 규모의 경제를 통한 인프라 거점화에 집중한다. 국립 모두예술콤플렉스 건립부터 국립현대미술관 전북관 설립, 국립판소리산업 복합단지 조성, K-컬처‧AI융합 영화영상 실증지원센터 조성까지 전북의 문화 외연을 확장하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도지사 임기 중 노출된 전주세계소리축제 파행과 전북도립국악원 내부 갈등 등 문화행정의 난맥상은 대규모 인프라 공약의 신뢰성을 흐리는 아킬레스건으로 꼽힌다. 특히 대규모 예산이 투입되는 시설일수록 건립보다 사후 운영이 핵심인 만큼, 구체적인 운영 매뉴얼과 재원 확보 방안이 마련되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지자체의 재정적 부채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 같은 후보들의 공약 경쟁에 대해 홍석빈 우석대 교수는 “단순히 큰 시설을 짓거나 단기적으로 지원금을 더 쥐어주는 방식으로는 지속가능한 문화생태계를 만들기가 어렵다”고 직언했다. 전북의 재정자립도가 전국 최하위에 머물고 있는데다, 현장 예술인들 사이에서는 오래전부터 정치적 목적의 대형사업과 일회성 지원이 반복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홍 교수는 “전북에 가장 필요한 것은 선거용 랜드마크나 현금지급이 아니라, 작더라도 내실 있게 작동하는 지속가능한 문화예술 시스템”이라며 “이번 선거의 성패는 예술인을 단순한 시혜대상이 아닌, 지역문화경제의 당당한 부가가치 생산자로 대우하는 구조를 어떻게 만드느냐에 달려 있다"고 제언했다.

  • 선거
  • 박은
  • 2026.05.21 17:38

[전주영화제] 박해일 "안성기, 존재만으로 영화인들에게 신뢰 주던 배우"

"보통 선배 배우들이 후배한테 배역이나 연기에 관해 한두 마디 하실 법한데 그런 말보다는, 조용히 편안하게 제 앞에서 앉거나 서 계셨어요. 그 모습 자체가 굉장히 든든했습니다." (박해일) "모든 배우와 스태프를 예뻐해 주시고 소외되는 누군가 있으면 안 된다고 걱정하신 것 같아요. 큰 나무처럼 주변을 살피시고 저희는 그 그늘에서 잘 쉬었습니다." (한예리)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 특별전 '조금 낯선 안성기를 만나다'에 참여한 배우 박해일과 한예리는 고(故) 안성기를 태산처럼 든든했던 선배 배우로 기억했다. 박해일은 30일 CGV 전주고사에서 열린 안성기 출연 영화 '필름시대사랑'(2015)의 관객과의 대화(GV)에서 "선배님은 매력적인 미소와 주름을 갖고 계신다. 제가 그 주름을 되게 좋아한다"며 "미소와 단단하고 차분했던 눈빛이 기억난다"고 말했다. '필름시대사랑'은 정신병동에 입원한 할아버지와 손녀, 영화 조명팀 스태프의 여정을 통해 사랑과 필름에 관해 이야기하는 영화다.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2018)와 '춘몽'(2016) 등을 만든 장률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안성기는 정신병동에 있는 할아버지 역을 맡았다. 한예리는 그런 할아버지의 손녀 역으로, 박해일은 조명팀 스태프 역으로 호흡을 맞췄다. 박해일은 2022년 개봉한 '한산: 용의 출현'으로 안성기를 다시 만났을 때도 든든한 존재감을 느꼈다고 돌아봤다. 이 영화에서 그는 이순신 역을, 안성기는 이순신을 보좌한 어영담 역을 연기했다. 박해일은 "조선 수군의 갑옷을 입으시고 딱 모니터 앞에 앉아 계시는데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며 "단지 그분이 계신다는 이유로 모든 영화인이 에너지나 신뢰를 가졌다"고 했다. 한예리는 '필름시대사랑' 속 인물은 보이지 않고 목소리만 나오는 장면에서, 안성기 목소리가 지닌 힘으로 그림이 그려지는 경험을 했다고 떠올렸다. 그는 "사운드만 나오는 마지막 장(章)을 볼 때 대사 때문에 그림이 보이는 게 신기했다"며 "보이스가 주는 힘 때문에 생동감 있게 보이는 게 재밌었다"고 말했다. 당시 안성기와의 호흡에 관해서는 "정말 편하게 대해주시고 분위기를 따뜻하게 만들려고 노력하시던 기억이 난다"며 "불편한 것 없이 정말 다정한 사람과 연기를 했다"고 했다. '필름시대사랑'은 장률 감독이 서울노인영화제로부터 제안받고 만든 작품이다. 장률 감독은 "처음에는 거절했다가 다시 생각해보니 노인영화제를 거절하면 노인을 거절하는 것 같았다. 그 부담에 하게 됐다"며 "안성기 배우에게도 출연을 부탁할 때 '선배님 저를 거절하는 건 괜찮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거절하는 건 한국의 노인을 거절하는 겁니다'라고 협박 비슷하게 했다"며 웃음을 보였다. 작업할 때 배우들과 대화를 많이 하지 않는다는 장률 감독은 안성기에게도 딱 한 가지만 부탁했다. 연기할 때 껍질이 길게 남도록 사과를 깎아달라는 것이었다. 장률 감독은 "연습하시라고 사과 한 박스를 보냈다"며 "그랬더니 안성기 선배님이 '원래 잘 깎는다'며 직접 하셨는데 실제 잘 깎으셨다"고 떠올렸다. 그는 영화에서 안성기가 '들리는가'라고 말하는 부분을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꼽았다. 극 중 안성기가 연기한 할아버지는 그렇게 말하며 허공에 손짓으로 악기를 연주하는 행동을 한다. 장률 감독은 "안성기 선배님이 그런 말씀을 하면 믿음이 간다. 정말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며 "안성기 선배님은 필름 시대와 디지털 시대를 다 겪었고 따뜻한 사람이다. 영화의 정서와 맞는 것 같다"고 했다. 안성기 특별전은 '필름시대사랑'을 비롯해 '기쁜 우리 젊은 날'(1987), '남자는 괴로워'(1994), '이방인'(1998) 등 7편을 상영한다. 다음 달 1일 '페어러브'(2009) 상영에는 신연식 감독, 3일 '잠자는 남자'(1996)는 오구리 고헤이 감독, 6일 '부러진 화살'(2011)에는 정지영 감독이 함께해 관객과 대화를 나눈다. 박해일은 "배우 입장에서 보면 생을 다해도 필름은 남는다"며 "안성기 선배님의 조금 낯선 영화를 영화제 안에서 즐겨보시는 것도 권해드린다"고 했다.

  • 문화일반
  • 연합
  • 2026.05.01 09:58

제26회 강암서예대전 휘호대회 대상에 배병일 씨

제26회 강암서예대전 휘호대회에서 운정(雲亭) 배병일(66·경남 진주) 씨의 ‘매월당 김시습의 시 위천조도'가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재)강암서예학술재단이 주최한 이번 휘호대회는 지난 25일 성황리에 열렸다. 대회는 한국 서예계의 거목 강암 송성용 선생의 뜻을 기리고, 서예문화의 저변 확대와 역량 있는 신진 작가 발굴을 위해 마련됐다. 앞서 진행된 1차 예심에는 전국 각지에서 수준 높은 작품이 출품됐으며, 엄정한 심사를 거쳐 총 193명이 본선에 진출했다. 부문별로는 △한문 80명 △한글 43명 △문인화 70명이다. 시상식은 다음 달 26일 오후 3시 강암서예관에서 열릴 예정이며, 대상 수상자에게는 1000만 원, 최우수상 3명에게는 각 200만 원, 우수상 6명에게는 각 100만 원 등 총 2200만 원의 창작지원금이 수여된다. 또 이번 대회에서 특선 이상을 받은 우수 작품은 다음 달 26일부터 6월 2일까지 강암서예관 1층 전시실에서 일반 시민들에게 공개된다. 송현숙 강암서예학술재단 이사장은 “현장 휘호를 통해 실력이 검증된 작가들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선보이게 돼 뜻깊다”며 “시상식과 전시에도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강암서예대전이 앞으로도 대한민국 서예의 정통성을 지키며 가장 공정한 등용문으로 자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 문화일반
  • 전현아
  • 2026.04.27 17:12

전북대 인문학연구소, 특별 강연 ‘민주인권운동 선구자 한승헌 선생’ 성황

민주인권운동의 선구자 한승헌 선생의 삶과 정신을 기리는 특별 강연이 전북대학교에서 열렸다. 전북대학교 인문학연구소는 21일 전북대 내 ‘한승헌도서관’에서 ‘민주인권운동의 선구자 한승헌 선생’을 주제로 초청 강연을 개최했다고 밝혔다. 이번 행사는 전북대 인문학연구소가 주최하고 천년전주사랑모임, 완주인문학당, 군산인문학당이 공동 주관했다. 강연은 한국 현대사에서 ‘인권 변호사 1세대’로서 민주화와 인권 신장에 헌신한 한승헌 선생의 업적을 기리고, 특히 그가 주도적으로 참여한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을 중심으로 그의 실천적 삶과 철학을 조명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고인이 기증한 방대한 장서와 자료를 기반으로 조성된 공간인 ‘한승헌도서관’에서 진행된 이날 강연을 맡은 이종민 교수는 한승헌 선생이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을 전후해 추진한 다양한 기념사업을 상세히 소개했다. 특히 백산봉기 기념행사와 전주입성 재현, 범국민 걷기대회, ‘새야 새야 파랑새야’ 주제전, 학술대회 개최 등은 동학농민혁명을 단순한 과거 사건이 아닌 민중과 인권, 평화의 가치로 확장시키는 계기였다고 설명했다. 또 농민군 유골 봉환, 국가유공자 지정 청원, 전적지 보존 운동 등 후속 사업까지 이어지며 동학 정신을 오늘날 인권과 평화의 담론으로 연결하려는 노력이 지속됐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 교수는 “한승헌 선생은 법조인의 역할을 넘어 역사 정의를 바로 세우는 실천가였다”며 “동학농민혁명을 통해 민중의 존엄과 인권의 가치를 현재화한 점이 가장 큰 의미”라고 평가했다. 이어 교수는 “우리 시대의 큰 어른이었던 한승헌 선생의 삶을 통해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지역민과 학생들의 지속적인 관심을 당부했다.

  • 문화일반
  • 전현아
  • 2026.04.21 19:29

‘소리’ 잃은 전주대사습청, 한정된 예산에 갇힌 저비용 공연의 딜레마

전주대사습청의 설립 취지가 퇴색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지난 2021년 전주대사습놀이의 정통성을 계승하기 위해 판소리의 본향이라는 상징성을 품고 출발했으나, 정작 소리가 변두리로 밀려나며 기관 본연의 기능을 상실해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열악한 예산구조와 전주시의 행정편의주의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19일 전주대사습청이 공개한 최근 3년간(2021~2023년)의 상설결과 선정결과를 보면 무용(춤)공연이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13건 중 7건이 무용공연이었고, 2022년에는 19건 중 12건, 2023년에는 23건 중 11건이 무용공연으로 채워졌다. 반면 대사습의 핵심인 판소리와 민요 등 목소리 기반의 공연은 매년 2~3건 수준인 한 자릿수에 머물렀다. 올해 연간 공연계획 역시 전체 36건 공연 중 13건이 무용공연으로 집계돼 소리의 위상은 여전히 위태로운 상황이다. 이러한 춤 편향 현상의 원인은 빈약한 재정 지원과 손쉬운 장르 배치로 해결하려는 행정의 안일한 태도에 있다. 대사습청의 연간 운영비 2억6000만원 가운데 인건비(1억3000만원)를 제외하면 실제 공연 제작에 투입되는 비용은 7000~8000만원 남짓에 불과하다. 무용 공연은 녹음 음원 활용이 용이해 비용이 적게 들지만, 판소리나 기악은 고수와 악사 등 실연 인력이 필수적이어서 무용 대비 2배 이상의 비용이 발생한다. 결국 운영진은 한정된 예산으로 상설무대 횟수를 맞추기 위해 저비용의 무용 공연을 선택해 온 셈이다. 유영수 대사습청 관장은 “무용공연 다섯 번 할 비용으로 판소리 공연은 한 번밖에 치르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부족한 예산을 보완하기 위해 국비 공모사업에 뛰어드는 등 소리의 맥을 잇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대사습청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판소리 다섯바탕 완판전 등을 기획하며 외부 재원으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운영 주체의 노력만으로는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어렵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연간 1000만명이 찾는 전주한옥마을 초입에 자리한 지리적 이점에도 불구하고 상설공연 관람객 수가 연간 5000여명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은 대중의 시선을 붙잡는 데 실패했음을 보여준다. 단순히 공연 횟수를 채우는 양적 성장에 치중하면서, 관광객이 스스로 찾아올 만큼 매력적인 대표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지역의 한 문화계 인사는 “대사습이라는 이름만 보고 판소리의 깊은 울림을 기대하며 대사청을 찾는 이들도 있을 것”이라며 “공연 횟수를 늘려 무대를 채우기보다는 대사습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진짜 소리를 들려주는 무대를 기획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에 대해 유 관장은 “‘소리’ 비중을 높여야 한다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지금은 대사습청이라는 공간 자체를 대중에게 각인시키는 것이 선결과제”라며 “특정 장르에만 국한되기보다 다양한 공연을 올릴 수 있는 전문 공연장으로서의 인지도를 확보하는 것이 운영의 우선순위라고 판단한다”라고 밝혔다.

  • 문화일반
  • 박은
  • 2026.04.19 16:23

세계 디자인의 심장부에서 피어난 ‘전주한지’, 밀라노가 주목한 스튜디오 WAK

밀라노 가구 박람회 ‘Salone del Mobile. Milano(살로네 델 모빌레. 밀라노)’는 전 세계 디자이너들에게 꿈의 무대로 통한다. 그 중에서도 신진 디자이너의 등용문이라 불리는 ‘Salone Satellite(사로네 사텔리테)’는 칸 영화제의 주목할만한 시선처럼 미래의 거장을 예견하는 자리다. 이 뜨거운 무대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이들이 있다. 독일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유럽 가구시장을 개척 중인 '스튜디오 WAK(Studio WAK)’의 원세현·김남주 디자이너다. 전주에서 나고 자란 원세현(34) 디자이너와 그의 파트너 김남주(30) 디자이너는 고려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를 졸업한 뒤 2018년 디자인의 정수를 경험하기 위해 독일로 건너갔다. 이후 삼성과 보쉬(BOSCH), 잉고 마우러(Ingo Maurer) 등 글로벌 기업에서 실무를 경험하며 정교한 제품 설계 문법을 몸에 익혔다. 산업디자이너로서 단단한 기술력을 쌓은 두 사람은 독일 현지에서 자신들의 이름을 내건 스튜디오를 열고 본격적인 유럽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들의 작업 방식은 마치 정교한 톱니바퀴 같다. 한 사람은 숲을 보듯 전체적인 구조와 흐름을 잡고, 다른 한 사람은 나무를 보듯 디테일에 집중한다. 이들에게 디자인이란 단순한 형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게 정말 최선일까?’를 끊임없이 의심하며 가장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답을 찾아가는 치열한 과정이다. 원세현 디자이너는 16일 전북일보와의 서면인터뷰를 통해 “독일 유학 전에는 시각적인 화려함에 집중했다면 지금은 재료의 맥락과 생산방식의 책임감, 그리고 그것이 담고 있는 문화적 태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좋은 디자인의 본질을 쫓는데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치열한 질문 끝에서 그는 자신의 뿌리인 ‘전주 한지’와 재회했다. 전주가 고향인 그에게 한지는 어린 시절 익숙하게 접했던 재료였다. 무심코 지나쳤던 익숙함이 특별한 가능성으로 다가온 건 독일의 전설적인 디자이너 잉고 마우러의 스튜디오에서 일하던 때였다. 그는 “당시에 일본 화지를 활용한 조명 작업들이 높은 평가를 받고, 많은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모습을 보게 됐다"며 “저에게는 당연했던 재료가 다른 문화권에서는 특별하고 새롭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스튜디오 WAK은 전주한지를 현대적인 가구의 구조와 빛을 완성하는 소재로 재해석했다. 대표작 ‘실루엣 캐비닛(Silhouette Cabinet)’은 전통 창호에서 착안해 한지를 가구 외장재로 과감하게 사용한 작품이다. ‘가려짐과 드러남’의 미학을 현대적으로 풀어내며 호평을 받았다. 또한 모닥불에서 영감을 얻은 조명 ‘모닥(Modak)’은 아두이노 기술을 접목해 사용자가 장작을 넣듯 빛의 세기를 조절하게 함으로써 기술에 한지의 온기를 입힌 감각적인 경험을 선사한다. 이미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인 iF와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를 석권하며 독보적인 실력을 입증한 이들이지만, 이번 밀라노 무대는 또 다른 도전이다. 자신의 뿌리인 ‘전주’의 미학이 세계 시장에서 얼마나 보편적인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원 디자이너는 “한지를 전통 재료로 가두는 것이 아니라, 유럽 디자인 안에서도 충분히 새롭게 해석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다"며 "앞으로도 지속가능성을 축으로 삼아 한지뿐만 아니라 자개 등 한국의 다양한 재료와 문화를 유럽 시장에 적극적으로 소개할 것”이라는 포부를 전했다.

  • 문화일반
  • 박은
  • 2026.04.16 17:23

[안성덕 시인의 ‘풍경’] 오래된 사진

마음 따라 몸 못 가니 노곤합니다. 늦은 점심상을 물린 일 없는 해동냥에 까무룩 낮잠입니다. 무릉(武陵) 고을 어부 아니어도 그만 길을 잃습니다. 눈 없는 발이 낯선 듯 낯익은 복사골에 찾아듭니다. 왁자한 차부 지나 개울, 폴짝 건너려니 반짝 피라미가 뒤채네요. 가만 담아보려 두 손을 담그는데 아직 물이 차고요. 무질러 보리밭 길을 갑니다. 발목에 흠씬 초록 물이 들 것 같습니다. 종다리 높이 떠 뉘 집 몇째냐, 묻는 듯 종달거리고요. 삼태기에 안긴 마을, 인기척 없는 사촌네 마당 가 뽕나무는 잎 틔우지 않았고, 당숙 어른네 뒤꼍 대밭은 푸릅니다. 반쯤 열린 양철 대문을 들어섭니다. 저녁거리를 챙기는지 어머니 정짓간에 달각거리고, 할머니 방에선 또록또록 양글었다는, 네 살에 홍진으로 죽었다는 성천이 성이 까르르거립니다. 어머니 뱃속에도 없을 나는 가만 토방에 앉습니다. 생울타리 산당화 붉고 대문간에 아버지 들어섭니다. 한 손에 소고삐 또 한 손에 작대기를 든 아버지의 지게가 참 가뿐하네요. 둥그렇게 둘러앉을 저녁상은 못 보았습니다. 아니 웬 잠꼬대, 아내가 끌끌댑니다. 사진 한 장 참 희미하네요. 어미 닭 꽁무니에 졸졸대던 병아리 다 어디 가고 쓰러진 집에 개나리만 노랗습니다.

  • 문화일반
  • 기고
  • 2026.04.11 07:25

전주시향 지휘자 공백 4개월...손놓은 전주시 피해는 시민이

전주시민의 혈세로 운영되는 전주시립교향악단(이하 전주시향)의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 자리가 4개월째 공석으로 방치되면서 조직 운영 마비와 내부 갈등 심화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전주시가 후임 선발 절차를 미루는 사이,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의 문화 향유권 침해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9일 전북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2022년부터 전주시향을 이끌어온 성기선 예술감독(상임지휘자)이 지난해 12월31일 임기 만료로 사임했다. 성 전 감독은 임기 만료 2달 전부터 연임 의사가 없음을 밝혔으나 시는 후임 선발을 위한 모집 공고조차 내지 않았다. 전주시향은 올해 6월까지 객원지휘자 체제로 운영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심각한 행정공백을 야기하고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통상 교향악단 공연은 대관 및 협연자 섭외를 위해 최소 6개월 전 공연계획을 세우지만 전주시향은 하반기 프로그램 일정도 확정하지 못했다. 올해 상반기 공연 횟수(5회)도 지난해 상반기 공연 횟수(16회)에 비해 3분의 1로 줄면서 거의 방치된 상태다. 선임 지연 배경에는 지난해 발생한 인사권 관련 내홍이 원인으로 꼽힌다. 예술감독의 자질을 문제 삼는 익명의 탄원서가 시의회에 접수되면서 인사 잡음이 일었다. 이 과정에서 시의회와 외부의 비판이 쏟아졌고 시에서는 신규 임용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또한 교향악단 내부에서 발생한 갈등이 전주시인권위원회 판단과 지방노동위원회 및 중앙노동위원회의 부당해고 판정으로 이어졌고, 현재 민사소송으로까지 진행 중인 사안이다. 전주시립예술단사업소는 예술감독(지휘자) 선임에 앞서 조직 운영에 대한 종합 점검이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권정혜 팀장은 “지난해 의회 지적사항이나 인권 문제 등 조직 내부의 갈등이 있었던 만큼 바로 예술감독(지휘자)을 뽑기보다는 조직을 안정화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며 “단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와 인권교육 등을 진행한 후에 선임 절차를 밟을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시의 이 같은 설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예술감독(지휘자) 선임과 조직 정비는 별개로 병행돼야 할 사안임에도 시가 4개월째 모집 공고 조차 내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에 가깝다는 비판이다. 권 팀장은 “하반기 공연계획 수립이 촉박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운영의 차질을 인정하면서도 선임 시기나 방법에 대해서는 “내부 검토 중"이라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전주시향 소속 한 예술단원은 “오케스트라는 강력한 리더십 아래 움직이는 생물과 같다. 지휘자가 없으니 권리 권한을 쥔 행정 인력들이 본질을 외면한 채 조직을 흔들고 있다”며 “전임 예술감독(지휘자)가 올해 상반기 일정까지 확정해 놓은 채 떠났다는 사실은 시가 후임자를 조속히 뽑을 의지가 없었음을 입증하는 명백한 증거”라고 성토했다.

  • 문화일반
  • 박은
  • 2026.04.09 17:20

전북 연극계, 장기 공연 실종⋯산업화 기반 마련 시급

전북특별자치도 연극계가 꾸준한 창작 활동에도 불구하고 지역을 대표할 만한 장기 공연 레퍼토리를 확보하지 못하며 산업적 경쟁력 강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지적이다. 행정의 지원 구조 한계와 더불어 연극계 내부의 기획 전략 부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7일 전북연극협회와 도내 연극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현재 지역에서 3년 이상 장기 공연되는 작품은 사실상 전무한 것으로 파악됐다. 전북자치도에는 창작극회, 무대지기, 작은소리와동작 등 오랜 역사를 지닌 23개 정극단이 활동 중이며 ‘천사는 바이러스’, ‘할머니의 레시피’ 등 자체 레퍼토리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지역 대표 브랜드 공연으로 안착시킨 사례는 드문 실정이다. 상당수 극단이 매년 신작 제작에 집중하면서 작품이 축적되지 못하고 단발성 공연으로 소진되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장에서는 일차적인 원인으로 관객 규모의 한계를 꼽는다. 도내 공연 관람층이 일정 수준에 머물러 있어 동일 작품을 반복 상연할 경우 수요가 빠르게 소진된다는 것이다. 한 연극 관계자는 “지역 관객만을 대상으로 할 경우 2~3년 내에 관람 수요가 바닥을 드러낸다”며 “현 구조에서는 같은 작품을 장기간 유지하며 수익을 창출하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지원 제도 역시 레퍼토리 형성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대부분의 공모사업이 신작 초연 중심으로 설계되면서 기존 작품을 재정비하고 완성도를 높여 재공연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제한된다는 지적이다. 반복 공연을 통한 작품성 제고보다 매년 새로운 제작 실적을 요구하는 구조가 형성되면서 창작 역량이 축적되기 어려운 환경이 이어지고 있다는 의견이다. 다만 연극계 내부에서도 전략 부재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상업적 유통을 염두에 둔 제작 시도가 많지 않았고, 장기적으로 반복 공연이 가능한 대표작을 만들겠다는 목표 설정이 부족했다는 평가다. 상업극 제작이 현실적으로 어려워서라기보다 이를 시도하려는 관심과 투자 의지가 충분히 형성되지 못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작품성과 예술적 가치에 집중해 온 창작 환경 속에서 관객 확대 전략이나 유통 구조에 대한 고민이 상대적으로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이에 도내 연극인들은 브랜드 공연의 형성을 위해 외부 관객 유입과 함께 행정 지원 방식의 구조 개선, 창작 주체의 전략 변화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지역 연극계에서 활동 중인 기획자 A씨는 “현재는 제작비 대부분이 초연에 집중돼 재공연이나 타 지역 진출로 이어지기 어려운 구조”라며 “단년도 제작 지원에서 벗어나 작품 축적과 유통, 타 지역 진출까지 고려하는 중장기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지역 관객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관광 콘텐츠와 연계한 공연 유통 구조를 구축하고, 외부 관람객을 유입할 수 있는 경쟁력 있는 콘텐츠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제언했다.

  • 문화일반
  • 전현아
  • 2026.04.07 17:47

전주문화재단, 2026 생활밀착형 문화예술교육 ‘가가호호’ 본격 추진

전주문화재단이 2026 생활밀착형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 ‘가가호호(家加好好)’의 추진 계획을 7일 밝혔다. 재단은 지난해 프로그램 ‘유형 다각화’를 통해 예술교육 기반을 확장한 데 이어, 올해는 ‘가족 유형의 다각화’를 핵심 키워드로 설정하고 보다 폭넓은 가족 구성원을 예술 교육 현장으로 끌어들일 계획이다. 특히 혈연 중심의 기존 가족 개념에서 벗어나 비친족·비혈연 관계까지 포괄하는 ‘새로운 가족’ 발굴에 주력한다. 함께 거주하거나 정서적 유대를 공유하는 관계라면 예술교육의 주체로 인정한다는 취지다. 이에 따라 위탁가정 아동, 비혼 1인 가구, 동거 가구 등을 대상으로 하는 ‘가족 발굴형’ 프로그램을 신설했다. 동거 가구의 경우 ‘예비부부’ 등 유연한 명칭을 활용해 사회적 인식을 고려한 접근도 병행한다. 이번 사업은 단순 체험을 넘어 연구 기반의 예술교육 모델을 도입한 점에서도 주목된다. 재단은 지난 5년간 협력 관계를 이어온 전북대 아동학과와 함께 ‘돌봄연구형’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교수진 자문과 전공생 참여를 통해 프로그램 기획부터 운영, 경과 분석까지 체계적인 관리가 이뤄질 예정이다. 교육 공간 역시 시민의 일상으로 확장된다. ‘공동체라디오 전주 FM’과 ‘여성생활문화공간 비비’, 남부시장 내 복합문화공간 ‘모이장’ 등 지역 거점 공간을 활용해 작곡, 창작, 관계 형성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재단은 공간별 특성과 지역 이슈, 보유 장비를 적극 반영해 생활 밀착형 예술교육을 구현할 계획이다.

  • 문화일반
  • 전현아
  • 2026.04.07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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