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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오은숙 작가 - 김다연 '우연히 잡힌 주파수처럼, 필라멘트처럼'

『우연히 잡힌 주파수처럼, 필라멘트처럼』을 읽고 나는 자주 부끄럽고 지난한 삶에 짓눌려 무기력한 일상을 보내곤 한다. 지병이 되어버린 무기력증은 스무 살 무렵부터 시작되었다. 젊은 날의 나는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드라/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어떤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으련다”고 고백한 서정주 시인의 『자화상』을 외우며 무기력증을 떨쳐내곤 했다. 그러나 어느 때부터인가, 시인의 고백은 내게서 힘을 잃었다. 무기력증이 엄습할 때마다 삶의 동력을 어디서 찾아야 할지 몰라 버둥대다 바닥이다 싶을 때까지 내려간 뒤, 겨우 올라오기를 반복하였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던 무기력이 일상으로 자리를 잡아가던 어느 날, 김다연 시인의 시집 『우연히 잡힌 주파수처럼, 필라멘트처럼』을 만났다. 무얼 해도 기운이 나지 않았기에 시를 통해 어떤 영감을 받고 삶을 치유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는 않았다. 책장에 꽂아져 있던 파스텔블루 표지의 『우연히 잡힌 주파수처럼, 필라멘트처럼』이란 시집이 제목처럼 내 손에 우연히 잡혔을 뿐이었다. 그렇게 펼친 시집에서 “머리와 가슴 사이/우물이 있다//생각은 짜고/감정은 차갑다//두레박에서 떨어지는 물소리가 좋았으리,//그것만 퍼내면/된다”는 「시인의 말」을 접하고 순간, 멈칫했다. “두레박에서 떨어지는 물소리”, “그것만 퍼내면/된다”고 말하는 시인이 나를 꾸짖는 듯했다. 절망하지 않으려고 욕망하지 않고 상처받지 않으려고 차가워진 감정. 해서, 무기력한 삶을 어찌하면 좋을 것이냐고 반문하는 것도 같았다. 어찌 살라는 것인데, 하며 다소 공격적인 마음으로 첫 시 「은행잎지전나비」를 읽었다. “새살이 밀어내는 딱지처럼 몸속의 푸른 독毒 뿜고서” 살아가고 있다 생각하면 더욱 무기력해질 뿐인데 시인은 “이 얼마나 눈부신 날개인가?”라고 말했다. “밤마다 가려운 쪽으로 기우는 나무,”가 나임을 알기에 뒤척임 없이 잠들었다가도 가려워 깨고 마는데 시인은 또 노래했다. “상처 아물리던 그늘이 날개였음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울컥’을 삼키자/코뚜레가 뚫렸다”로 시작하는 「38도9부」에서 시인은 내게 보여주었다. 살아 있어 느끼는 절망과 고통 속 열병 끝에 있는 것은 무기력이 아니라고. “손가락을 내 머리에 겨누는 버릇이 생겼”다 해도 “빈 총에 쓰러져줄 줄 아는 애인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 놓지 않으니 「방아쇠 증후군」은 희망이었다. 시집을 끝까지 읽고 난 후에는 무기력증이 사라졌고 “여그가 그라고 안 좋다 안 흡디요!”「뭐뎌」라며 다시, 삶을 긍정하게 되었다. 만약에 당신이 나와 같다면, 시집을 펼치고 글자를 읽어 나가자. 오독(誤讀)하여 더욱 좋았던 「아카시아」를 비롯해 「한도를 초과한 말」, 「가라앉히다」, 「정지론」 등 많은 시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문신 시인의 해설과 김유석 시인의 추천 글도 당신을 맞을 것이다. 어떤 시는 분명, 당신의 삶에 『우연히 잡힌 주파수처럼, 필라멘트처럼』 생기를 불어넣으리라 믿는다. 오은숙 소설가는 2020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납탄의 무게’가 당선돼 소설가로 등단했다. 공저로는 <1집 스마트 소설>, <지금 가장 소중한 것은>, <2021 신예작가>가 있다.

  • 문화일반
  • 기고
  • 2022.06.15 17:33

[이승우 화백의 미술 이야기] 또 다른 사람 피카소 - 4

그의 심부름으로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와 같이 이탈리아에 갔던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의 여자 잔느 에뷔테른느가 그를 만나기 전날 밤, 살아있는 신을 만난다는 감격으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으나 면회가 거절되었다는 일화 등에서 더욱 당시의 모습들을 감지할 수 있다. 그것은 친구인 아메데오 모딜리아니도 마찬가지다. 유태계 이탈리아 화가로서 파리에서 그림을 그리던 아메데오 모딜리아니는 이탈리아를 여행 중인 피카소로부터 편지를 받게 된다. 갑자기 이탈리아에서 전시 계획이 생겼으니 어디에 가서 내 그림들을 선별해 그림을 이탈리아로 가져오라는 것이었다. 이탈리아에 가서 잔느 에뷔테른느와 함께 들어가는 것을 거부당했다. 그리고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혼자 피카소를 만났을 때, 그 방에는 힘찬 말의 소묘가 있었다. 말은 에드가 드가라는 화가가 전유물처럼 많이 그린 것 아닌가? 그래서 아메데오 모딜리아니가 물었다. “저것은 드가 선생의 것인가?” “드가같이 계집 같은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힘찬 데생을 할 수 있겠나? 그것은 대 피카소 것일세.” 피카소가 입체주의를 만들고 이상한 취급을 받을 때 기욤 아폴리네르의 입체파 화가들이라는 책으로 활성화되었을 때, 거의 모든 화가들이 사물을 입체적으로 보고 그릴 때의 일이다. 아메데오 모딜리아니도 계속 시도해 봤으나 그게 잘 되지 않아 고민을 할 때다. 피카소에게 “모든 사물을 그렇게 봐야 하나?” 대답은 너무나 피카소다웠다. “누가 그래? 나는 벌써 끝났어.” 사진작가 데이비드 덩컨은 피카소의 허락을 받고 그의 집에서 며칠 묵으며 그의 일상을 사진으로 찍을 수 있었다. 일정이 끝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으면 빼라고 하셔도 됩니다.”라고 이야기했을 때 “아니 무슨 말을 하시오? 당신이 본 대로 나를 찍은 것이고, 그러니 이 사진들은 모두 진실 그대로지요.”라며 펄쩍 뛰는 것이었다. 너무나 자신만만한 사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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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6.13 16:48

제14회 전북청년미술상에 김성수 작가

제14회 전북청년미술상의 주인공은 김성수(입체, 38) 작가다. 전북청년미술상은 유휴열 화백을 중심으로 장르별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전북 최초의 민간주도 미술상이다. 1990년 출범 이후 회화, 조각, 도예, 설치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 중인 14명 작가를 수상자로 배출했다. 운영 상의 어려움으로 2006년 중단 이후 2021년에 다시 부활했다. 김성수 작가는 전북청년미술상이 중단됐던 때 미술에 입문했다. 심사위원들이 김성수 작가를 수상자로 선정한 것은 크게 세 가지 이유로 인해서다. 이유는 코로나19 이후 창작 및 전시 활동이 위축된 상황에서도 왕성한 활동을 보였고, 응모자 중 가장 젊은 나이임에도 대학 졸업과 동시에 창작에 몰두했으며 대중과 소통하려고 하는 작가적 성향 등이다. 그는 "나의 작업 모티브는 어릴 적 유희에서 기인한다. 추억 속의 편린들을 발굴하고 이것을 누구나 지니고 있지만, 잊혀진 일상 경험으로 간주하며 조형적 각색 통해 일반화함과 동시에 대중사회와 공유하는 소통을 꾀한다"고 본인만의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김성수 작가의 작품 특징은 자유롭게 만지고 당기고 올라탈 수 있도록 제작됐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인형극에서 볼 수 있는 알루미늄 관절 모형 모빌에 빛을 투사해 벽면에 생성된 그림자까지로도 표현과 감상 영역을 넓히고 있다. 이에 심사위원 중 김윤진 화가는 “그의 창작열의 끝과 넓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광폭 진화하는 모습은 이 지역의 젊은 동료들의 귀감으로 삼기에 충분하다고 판단됐다”고 전했다. 김성수 작가는 “역사가 있는 미술상을 수상할 수 있게 되어 너무 감사드리고, 동기부여와 함께 앞으로 더 열심히 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겠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작가에게는 창작지원금 500만 원과 유휴열 미술관에서 전시할 수 있는 개인전 특전이 수여된다.

  • 문화일반
  • 박현우
  • 2022.06.12 16:31

제63회 전라북도 민속예술제 대상에 김만경외애밋들노래보존회

제63회 전라북도 민속예술제에서 일반부 대상에 김만경외애밋들노래보존회, 청소년부 최우수상에 고창강호항공고농악부가 선정됐다. 한국예총 전라북도연합회(회장 소재호)가 주최하는 제63회 전라북도 민속예술제가 지난 11일 진안문예체육회관에서 코로나19 이후 2년 만에 개최됐다. 전라북도 민속예술제는 전라북도 민속예술제는 한국민속예술제에 출전할 전북 대표 작품을 선정하는 뜻깊은 자리다. 이어 사라져가는 전통 민속예술을 발굴•재현해 이를 보존하고, 전통문화에 대한 자긍심과 이해의 폭을 넓힘으로써 민속예술 발전에 기여하고자 개최되는 행사다. 이번 제63회 전라북도 민속예술제에는 일반부 5팀(김만경외애밋들노래보존회, 순창읍농악단, 익산기세배보존회, 군산성산농악회, 전라좌도 진안군농악단), 청소년부 1팀(강호항공고등학교 농악부)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중 최우수 작품은 오는 10월 27일에 열리는 제63회 한국민속예술제와 제31회 전국청소년민속예술제에 출전할 수 있는 기회가 수여된다. 조진국 심사위원장은 심사평을 통해 “이번 대회에 출전한 작품은 바쁜 농촌생활 속에서도 주민들이 공동체를 이뤄 한마음으로 연습을 충실히 해 온 팀이 많아 의미가 있었다”며 “대상을 받은 김만경외애밋들노래보존회는 원형이 잘 보존된 작품으로 지역에 맞는 작품성이 뛰어났다”고 평가했다. 소재호 회장은 “민속예술제에 참가한 작품들은 우리 지역의 보물들”이라며 “전라북도에는 소중히 보존하고 반드시 계승 발전시켜야 할 민속예술이 많다. 아쉽게도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거나 겨우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방자치단체가 앞장서서 보존하고 계승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 문화일반
  • 박현우
  • 2022.06.12 16:31

[김용호 정읍시립국악단 단장 전통문화바라보기] 세계문화유산 임실 필봉농악

지난 4일 단옷날을 맞이해 전라북도 임실군 강진면 필봉마을에서는 신명 나는 연희 굿판이 펼쳐졌다. 굿판을 주도한 우리 지역의 임실 필봉농악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이자 국가무형문화재 제11-5호로 지정된 소중한 마을굿으로 전라북도 임실군 강진면 필봉리에서 전승되어온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전통예술이다. 필봉 마을굿의 역사를 살펴보면 약 300여 년 정도로 추정된다. 일찍이 수준 높은 풍물 굿으로 유도했던 상쇠(연희판의 꽹과리를 제일 잘 치며 연희를 주도하는 사람)가 계셨는데 제일 먼저 강진면에 사는 박학삼이라는 유명한 상쇠를 필봉으로 초대하면서 그 계보는 시작된다. 계보를 이어 두 번째 송주회 상쇠가 필봉농악을 지켰으며 1998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받은 상쇠 양순용에 의해 전승의 꽃을 피우게 된다. 허튼가락과 부들 상모의 명인이었던 양순용은 필봉리 출신으로 필봉굿의 정리와 체계를 마련한 분이다. 지난 민족의 수난이 많았던 1980년대, 양순용 명인은 우리의 전통 연희굿에 관심을 갖고 전국에서 찾아오는 학생들에게 필봉농악을 정성으로 전수하여 많은 제자를 배출하고 임실 농악의 진가를 널리 알린 분이기도 하다. 이후 활발한 전승과 진흥에 노력하시다가 1995년 작고하시고 명인의 아들 양진성, 양진환 선생이 그 뒤를 이어 필봉농악을 전승하고 있다. 자. 그럼 우리 임실 필봉농악을 잠시 살펴보자. 필봉의 농악수들은 흰 바지저고리에 남색조끼를 입고 삼색띠를 두룬다. 그리고 쇠잡이(꽹과리나 징을 치는 사람)만 상모(털이나 줄이 달린 농악에서 쓰는 모자)를 쓰고 나머지는 고깔을 쓰며 연희를 행한다. 타 여느 농악처럼 종류에는 섣달그믐의 매굿, 정초의 마당밟기(풍물을 치며 집집마다 도는 것), 당산제굿(당산에서 마을을 위해 제사 지낼 때 농악을 치며 노는 것), 보름굿, 문굿, 농사철의 두레굿, 기굿과 판굿 등이 있지만 이 중 임실 필봉농악 판굿은 가장 연희 예술성이 뛰어나다는 정평을 받고 있다. 지난 단오일, 임실 필봉농악 정기발표회 ‘단오야 필봉가자’에는 당산제, 샘굿, 마당밟이와 같은 마을굿과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놀 수 있는 뒷굿인 노래굿, 돌굿, 수박치기굿, 등지기굿 등 연희자와 관객이 혼연일체가 되는 판이 흥겹게 진행되었다. 또한, 공연에서 뒷굿의 백미라 할 수 있는 도둑잽이굿과 탈머리굿도 선보여 많은 관객에게 환호를 받았는데 이중 도둑잽이굿은 마을공동체의 질서와 결속, 화합을 목적으로 실연하는 연극굿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번 행사에는 연희와 더불어 필봉문화촌 마을 어귀에 창포물 머리감기, 족욕하기, 단오선 부채 만들기, 화채 나눠먹기 등 다양한 전래놀이 체험도 힘께 진행하여 코로나19로 움츠렸던 힘든 어깨를 펴고 함께 만나 소통하는 귀한 시간을 만들었다. 진정한 연희는 대중과 함께하며 마음을 열게 하고 소중히 하나 됨을 추구한다. 현실의 삶은 어렵고 힘들지만, 단옷날의 필봉농악처럼 희망찬 나래를 펴고 즐겁게 이겨낼 수 있는 판을 모두 함께 만들어 보자. 그리고 그러한 살판 위에 우리네 삶을 멋지게 가꾸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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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6.09 17:16

<금요수필>빨간 머리 병아리

해마다 3월이면 마당에는 햇병아리가 그득했다. 내 어린 시절만 해도 시골에서는 가용비 마련이나 식구들 보양식 감으로는 닭만 한 게 없었다. 그러다 보니 누구네집 할 것 없이 병아리를 길렀지만 사료를 사서 기른다는 것은 엄두도 못 내고 주로 방목이었다. 아버지는 덕가리에서 병아리를 한 마리씩 꺼내 머리에 빨간색 물감을 발라 마당에다 훅 던지며 "잘 주워 먹고, 잘 찾아오너라." 하시던 생각을 하니 눈물이 난다. 한 배에서 태어난 병아리가 스무 마리 정도였는데 아버지는 허실 없이 키워야 한다며 암컷을 더 챙기셨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씀이 '요놈들을 여섯 달만 잘 키우면 알을 낳을 것이고, 그러면 딸내미가 사달라는 별표 운동화랑 크레용도 사줄 수가 있지.'하셨다. 검정 고무신만 신었던 나는 운동화를 사준다는 말씀에 병아리를 정성껏 돌보았다. 그래서 학교에서 돌아오면 꼬리를 치며 반기는 강아지는 뒷전이고 병아리부터 찾았다. 만약 병아리가 보이지 않으면 입술을 쭉 빼고 '구- 구-구'를 외치며 집 안팎을 샅샅이 뒤졌다. 입술이 얼얼해져 헛바람이 나오도록 한참 찾다보면 엉뚱하게도 뒷집 대밭 속에서 어미 닭과 함께 삐약거리며 따라오는 병아리를 보면 반갑기가 그지없었다. 대숲은 족제비나 들고양이들이 득실대는 곳이라 행여 잡아먹힌 병아리는 없는지 세어보고 또 세어보곤 했었다. 이렇게 돌보아도 병아리 수는 차츰 줄어 열서너 마리밖에 남지 않았다. 알에서 깬 지 3~4개월쯤 자라면 중병아리라 했고 대략 6개월이 지나면 암탉은 알을 낳았으며 어미 닭도 이 무렵이면 젖떼기라도 하듯이 새끼들을 아프지 않을 만큼 쪼아댔다. 3~4개월이 지나면 암수 자웅을 구별할 수 있었는데 수컷은 암탉과 달리 다리가 길고 꺼벙했지만, 벼슬이 돋고 혈기가 넘쳐 눈도 불그스레 번쩍거리며 가끔 하늘로 목을 쳐들고 '나는 왕이다'고 외치듯 '꼬끼오' 소리도 제법 질렀다. 수컷들은 암컷과 부하들을 거느리고 싶은 자리다툼 싸움이 갈수록 치열했다. 피가 나도록 상대방을 마구 쪼아대며 싸우다가 한 쪽이 날개를 서서히 접으며 눈꺼풀을 내리깔면 한바탕 싸움은 끝났다. 그뿐만 아니라 닥치는대로 먹어치우고 파헤쳤다. 사춘기 시절의 반항아들이라더니, 우리집도 남동생 넷이 모이면 수탉처럼 형과 아우가 따로 없이 서로 욕지거리며 힘겨루기를 하며 자랐다. 사실 나도 병아리가 아니던가. 고추잠자리가 하늘을 날 때쯤이면 대추 볼때기가 발그스름했다. 아침 일찍부터 대추나무 밑을 서성였던 일이며, 벌집이 달린 줄도 모르고 나뭇가지를 흔들다가 주인집 할아버지의 헛기침 소리에 놀라 신발짝이 벗겨진 줄도 모르고 도망치지 않았던가? 그날 밤, 벗겨진 신발짝 때문에 잠 못 이루고 뒤척이다가 날이 밝았다. 날이 밝자, ‘최 생원 계신가?’하는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그때는 무서워 떨었건만, 지금은 토방에 놓인 신발짝 하나마저 왜 이리도 그리움으로 밀려오는지! 여섯 달만 잘 키우면 알을 낳을 것이고, 그러면 운동화와 크레용도 사줄 수가 있다고 하시던 아버지의 말씀은 내 어린 시절 병아리와 함께 자라면서 머릿속에 도장 찍힌 희망이었다. 병아리는 자라서 어김없이 알을 낳았는데 딸 결혼식도 보지 못할 아버지의 구두를 닦아 선반에 올려놓고 저고리 동정을 달아 벽에 걸어 놓았건만, 입어보지도 못하신 아버지였다. 지금도 달걀만 보면 아버지가 생각나고 별표 운동화가 머릿속에 떠 오른다. 최정순 수필가는 전북문인협회· 행촌수필문학회· 대한문학회· 영호남수필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수필집 ’속 빈 여자‘외 4권의 수필집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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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6.09 17:14

[김용호 정읍시립국악단 단장 전통문화바라보기] 성금연류 가야금산조와 순창 고추장

지난 29일 전주 우진문화공간 예술극장에서는 성금연가락보존회(대표 지성자)가 주최·주관하는 ‘성금연류 가야금산조 한바탕 이수자 발표회’가 있었다. 연주된 가야금산조는 춘사 성금연이 구성한 산조로 창작자의 오랜 시간 끊임없이 발견과 이해를 통한 반복으로 다듬고 다듬어진 가락의 창조물이다. 성금연 명인은 일찍이 1960년대 파리민속예술제와 1972년 최초로 카네기 홀 무대에 섰었으며, 음악가로만 아니라 국악예술학교와 서라벌예술대학에 봉직하며 교육자로서도 익히 알려진 가야금의 명인이다. 전라북도에서는 2010년 3월 지성자 명인을 무형문화재로 인정하였는데 그녀는 1945년에 태어나 모친인 성금연에게 가야금산조를 이어받고 일찍이 8세 때 발표회를 시작하여 다수공연과 연주회를 통해 두각을 나타낸 가야금의 명인이었다. 오랜 세월 굳건히 성금연류 가야금산조를 지키고 있으며 특히 고제古制의 예스러움과 투철한 예술 감각으로 그 맥을 잇고 있다. 또한, 지성자 명인은 국내 최초 15현 가야금 개량 및 연주곡들을 작곡하여 가야금산조의 신기원을 만들어 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본디 산조는 기악 독주곡으로 오랜 세월 삶의 이치를 가락으로 구성하고 가녀린 손끝으로 만들어 내는 희로애락의 원초적 소리이다. 그리고 같은 산조라 해도 각 개인 환경과 생각의 차이에 따라 개성이 뚜렷하고 나타내는 마음 표현이 각기 다르다는 것이 특징이다. 우리 전통 악기 중 가야금은 그러한 산조를 가장 먼저 만들어 냈다. 가야금산조는 산조 중 가장 많이 연주되고 있으며 장단 또한 다채롭다. 성금연류 가야금산조에는 진양, 중모리, 중중모리, 굿거리, 자진모리, 휘모리로 구성되어 있다. 장단 구분에서 굿거리가 삽입된 점이 특징이며 다른 유파流派에 비하여 간결하고 경쾌하며 감칠맛이 있다. 감칠맛을 논할 때 우리는 전통음식 중 고추장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고추장하면 영조英祖와 전라북도 순창이 떠오르는데 영조는 조선 역대 왕 중 가장 오래 재위하였고, 가장 오래 장수한 왕이다. 장수의 비결이 있음 직하나 사실 들여다보면 그렇지는 않다. 어의는 매번 설사와 어지럼증으로 입맛이 없는 영조를 걱정했지만, 가을 보리밥에 고추장, 즙저만 있으면 족하다며 늘 검소한 수라를 드셨다 한다. 이러한 고추장의 감칠맛은 왕의 건강을 지켰고 그 맛의 비결은 지금도 순창 지역 전통으로 이어지고 있다. 성금연류 가야금산조와 전라북도 순창 고추장의 감칠맛. 그 둘은 누구나 흉내를 낼 수 없는 특별하고 색다른 멋과 맛에 있다. 가야금의 요동치는 선율은 맛깔스러운 별미와도 같고 고추장의 감칠맛은 가야금 선율의 휘몰아치는 감동과 같다. 우리 선조는 그렇게 구성진 가락과 감칠맛에 동요되고 고락苦樂을 함께하며 삶을 지켜왔다. 자. 이제 우리 가야금산조를 듣고 즐기며 순창의 고추장을 영조처럼 탐식하며 감칠맛을 즐겨보자. 그리 녹록지 않은 세상의 삶이지만 우리네 마음에는 감칠맛이 아직 존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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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6.02 16:34

<금요수필>우리 동네 작은 공원의 오후

우리집 곁에는 둘레 500여m 쯤 되는 작은 공원이 있다. 제법 오래된 공원으로 여러 종류의 나무숲이 울창하고 주민을 위한 운동기구도 있다. 비가 와도 운동할 수 있는 배드민턴 구장도 있으며 여기저기 오솔길도 있다. 겨울을 재촉하는 찬 바람이 거칠게 불었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아름다웠던 단풍이 볼품없는 낙엽으로 변하여 나뒹굴고 있었다. 공원을 청소하는 할아버지 두 분이 오솔길에 굴러다니는 낙엽을 쓸어 모아 큰 포대에 담고 있었다. 아파트나 공원의 청소부, 길거리의 청소부들은 흔히 초겨울을 낙엽과의 전쟁이라고 부른다. 엊그제 단풍으로 유명하다는 강천산엘 갔었다. 초겨울의 문턱에 들어선지라 대부분의 단풍은 낙엽으로 변했고 어쩌다 한 그루씩이 아직도 사람들의 사랑을 더 받으려는 듯, 떠나가려는 붉은 단풍잎을 붙잡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단풍이 아름답다며 그 앞에서 사진을 찍지만 단풍으로서 일생을 마치고 나무 아래 수북히 쌓인 낙엽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듯싶었다. 만물이 소생하고 생기가 돋는 봄철이면 연두색 싹이 돋아나고, 여름이면 녹음으로 변하며, 가을엔 단풍으로 변하고 초겨울이면 낙엽으로 나뒹구는 것이 나뭇잎의 일생이다. 이것이 곧 만물은 생로병사한다는 진리가 아니겠는가? 나도 연두색 같은 어린 시절이 있었고, 녹음같은 청년기도 있었으며, 지금은 단풍같은 노년기에 서 있다. 또 언제일지 모르지만 낙엽같이 인생을 마무리하는 날도 올 것이다. 은행나무나 단풍나무를 보면 여느 나무같이 처음에는 연두색 잎이 피고 녹음이 우거지지만 단풍이 들기 시작하면 뭇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그러나 벚나무는 잎도 나오기 전에 화려한 꽃을 피워 많은 사람들로부터 경탄을 자아낸다. 하지만 벚나무의 단풍을 보고 아름답다고 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성싶다. 단풍으로 변하기도 전에 벌레에 갉아 먹히고 검게 변하여 볼품없이 생을 마감하는 것이 벚나무의 단풍이기 때문이다. 사람이나 초근목피나 일생의 삶이 마찬가지인데도 그걸 모르는 친구나 선배도 있다. 가을이면 최고라며 으스대고 뽐내던 단풍이나, 봄날의 화려함을 잊지 못하는 벚나무의 단풍도 생을 다하면 똑같이 하찮은 낙엽으로 변한다. 낙엽으로 변해서까지 옛날의 찬란했던 과거를 못 잊어하며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로지 일거리로서 전쟁을 하는 사람, 가는 인생을 논하는 사람, 맛깔난 시나 수필을 쓰는 사람들의 대상일 뿐이다. 아름다운 단풍은 예쁜 소녀들의 책갈피 한 쪽을 차지한다고 하지 않던가? 그런 바람까지야 갖지 않지만 아름다운 노년의 빨갛고 샛노란 단풍일까? 아니면 한때는 화려했지만 검고 볼품없는 벚나무의 단풍일까? 바람결에 이리저리 나뒹굴고 있는 단풍들이 나의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게 했다. 비바람이 휙 불었다. 단풍들이 우수수 떨어져 바람 부는 대로 나뒹굴었다. “요놈의 바람 때문에 낙엽도 못 쓸겠구먼.” 바람과 낙엽을 원망하며 담배를 꺼내 피워댔다. 그리고 또 싸리비를 잡고 낙엽을 쓸어 모은다. 어제까지도 아름다움을 뽐내던 단풍나무 잎이나 은행나무 잎이나 볼품없던 벚나무 잎이나 청소부의 비질에 같이 한타령으로 포대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엔젠가는 거름으로 변하여 다시 나무들의 자양분이 될 것이다. 박제철 수필가는 경찰생활 후 정년퇴직하고 대한문학에서 등단하여 수필가로서 제2의 삶을 살고 있으며 첫 번째 수필집‘지금 여기 그대로의 기쁨을 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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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6.02 16:34

"풍년 기원" 3일 단오 맞아 축제, 전시 등 개최

음력 5월 5일(6월 3일)은 단오떡을 해 먹고, 여자는 창포물에 머리를 감고 그네를 뛰며 남자는 씨름을 하는 날이다. 바로 대한민국 명절 중 하나인 ‘단오’. 모내기를 끝내고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라고도 부른다. 전주 곳곳에서도 전주단오 축제, 단오에 놀오방, 2022 전주단오부채전 등을 열고 함께 모여 ‘단오’를 즐기고, 풍년을 기원한다. △전주의 대표적 절기 행사 ‘2022 전주단오’ 전주시가 주최하고 사단법인 전통문화콘텐츠 연이 주관하는 2022 전주단오 축제가 3, 4일 양일간 전주 덕진공원 일원에서 펼쳐진다. 2022 전주단오 축제는 단오길놀이 공연과 전주시민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제례식인 단오 풍년 기원제를 시작으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한바탕 벌어진다. 단오 풍년 기원제, 전북무형문화재 공연, 온고을 문화예술제, 단오 청소년 예술제 등도 예정돼 있다. 전통놀이마당에서는 3일 전주시 20여 개의 동 주민이 참여한 가운데 동별 대항전으로 윷놀이 실력을 뽐내는 자리가 마련된다. 어린이 투호 대회도 열릴 예정이다. 4일에는 일반 시민도 참여할 수 있는 외그네, 쌍그네 대회가 진행된다. 또 2022 전주단오 축제를 기념해 코로나19 시대의 끝을 알리고 희망과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연화정 인근에서 ‘초여름밤의 제야, 빛의 향연’ 조명 쇼도 선보이고 있다. 이는 4일까지 이어지며 연화정 도서관, 연화교 일대에서 오후 8시 30분부터 관람할 수 있다. △현대화된 우리놀이 체험할 수 있는 ‘단오에 놀오방’ 한국전통문화전당(원장 김선태)이 4, 5일 양일간 전국 최초 전통놀이문화 거점 공간인 우리놀이터 마루달에서 ‘단오에 놀오방’ 행사를 연다. 원활한 놀이 환경을 위해 현장 예약제로 진행할 계획이다. 단오의 전통 세시풍속과 놀이문화를 한자리에서 즐길 수 있다. 30분 간격으로 2개 팀이 입장해 1시간 동안 다양한 놀이체험(창포물 손 씻기, 단오선 만들기, 통통씨름, 돼지씨름, 격구놀이)을 즐기는 시스템이다. 이날 놀이체험 통해 모은 조각으로 추첨 행사에 참여하면 실뜨기, 뿅망치, 바람개비, 한지공기 등 다양한 우리놀이 꾸러미도 받을 수 있다. 김선태 원장은 “이번 행사를 통해 우리의 세시풍속과 놀이문화를 더욱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앞으로도 방문객들이 현대화된 우리놀이를 즐기며 일상생활에 활력을 더할 수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주부채의 맥 이어오는 선자상, 이수자 작품 ‘한자리’ 전주부채문화관(관장 이향미)이 7일까지 전주부채문화관에서 2022 전주단오부채전을 개최한다. 전주부채의 맥을 이어오는 선자상과 이수자 12인의 작품 3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단오는 모내기 끝내고 풍년을 기원하는 대한민국의 큰 명절 중 하나다. 단옷날 우리 선조들이 부채를 선물하는 풍속은 더위를 슬기롭게 이겨내라는 뜻도 담고 있다. 조선시대 당시 전라감영에는 선자청이 있어 부채를 제작해 임금님께 진상했다. 진상 받은 부채는 단오선이라 부르고 여름 더위를 대비해 신하들에게 하사했다. 전주부채는 조선시대부터 전주의 대표적인 특산품으로 사랑받았다. 현재도 전국에서 부채를 가장 많이 만드는 명산지다. 전주에서 부채를 만드는 장인 5명이 경제적인 문제와 고령화, 별세 등을 이유로 부채 작업에서 손을 놓았다. 이에 전주부채문화관은 전주부채의 맥을 이어오는 선자상과 이수자들의 작품에 주목했다. 이들을 위해 단오의 의미를 되새기고 현대인들에게 전주부채 문화를 돌아보는 계기로 전시를 마련했다. 문의는 전주부채문화관 전화(063-231-1774~5)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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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현우
  • 2022.06.02 16:33

[이승우 화백의 미술 이야기] 또 다른 사람 피카소 - 3

‘내 귀는 소라껍데기 바닷소리를 그리워한다’는 시로 유명한 시인 장 콕토가 방문했을 때, 그는 아프리카 악기인 미림바를 두드리고 있었다. 그가 두드리고 있던 미림바를 장 콕토에게 넘기자 장 콕토는 전문가답게 몇 번 두드렸다. 그러자 그는 “아하! 예상했던 대로군. 당신에게도 전혀 음악이 없어.”라며 낄낄대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장 콕토가 음악적인 지식같은 것은 모두 버리고 아무렇게나 두드리기 시작하자 “그건 좋아. 참 좋아.”라며 다시 낄낄대는 것이었다. 이 일화는 그가 규격을 위한 규격을 싫어하고 개성을 존중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음악가 모리스 라벨과 친구이고 젊은 시절에는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와도 같이 일한 적이 음악을 사랑하는 스페인 사람이어서 전통 음악에 대해서 아주 무식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라는 영화의 주인공인 명배우 게리 쿠퍼와 우정을 나누고, 게리 쿠퍼가 그 우정의 징표로 보내 준 하얀 카우보이 모자와 자동 권총 콜트 45를 꺼내 깡통을 박살내고는 "영화에서 보는 것보다는 훨씬 쉽군"이라며 으스대다가 멕시코의 상스러운 노래를 흥얼거리는가 하면, 살아있는 신이라 여겨 외경심에 가득한 기자의 “취미는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나의 부인 재클린과 벌거벗고 탁구를 치는 것”이라며 가볍게 응수해 버린다. 정기적인 검진을 위해 의사가 오는 날이면 의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온 집안을 우당탕탕 뛰는 소동을 부리기도 했다. 또 간접적으로 의사의 검진이 필요치 않다는 것을 알리는가 하면 이렇게 장난기를 보이던 그가 어느 때는 미동도 하지 않고 사색에 잠겨 다른 사람의 근접을 막기도 하였다. 그는 물론 복잡한 성격의 소유자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숭배하기도 하고 질투를 느끼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처럼 아직 살아서 신격화된 사람도 드물다. 1년에 한 번쯤 가는 투우장에서는 그가 들어온다는 장내 아나운서의 말이 있으면서부터 그가 자리를 찾아 앉을 때까지 관중들의 기립박수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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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5.30 17:02

[김용호 정읍시립국악단 단장 전통문화바라보기] 다시 부른 민중의 노래

지난 18일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서는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을 거행하며 보수 정권으로는 처음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시도하였고 서로 손을 맞잡고 노래를 불렀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정부가 5·18 유족들의 뜻을 받아 기념식을 주관하며 2003년부터 2008년까지 '제창' 형식으로 불린 민중가요이다. 이후 '제창'은 2009년부터 종북 논란의 이유로 '합창' 형식으로 전환된 과거가 있다. 특히 2010년에는 '임을 위한 행진곡' 대신 경기민요인 '방아타령'을 식순에 넣어 거센 비난을 받고 철회하기도 했다. '제창'은 참석한 모든 이가 함께 부르는 음악의 형식이다. 그리고 '합창'은 여러 화성을 만들어 함께 부르는 노래 형식이긴 하지만 이 또한 누구나 다 같이 부를 수도 있는 형식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제창'과 '합창'은 각각의 논리와 변으로 서로의 정치적 의미를 내포했고 화합을 추구하는 민주적 추모 행사에 전대미문의 음악적 궤변으로 만들어졌다. 그 결과 국가가 인정한 민주화 추모 행사에 애매한 음악의 갈래로 의미 부여를 교란했으며, 때아닌 경기민요의 등장으로 성급한 정책의 혼돈으로 남았다. 지난주 다시 돌아온 5월 18일. 국립 5·18 민주묘지에 다시금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졌다. 새로운 대통령은 '합창'으로 일축했던 보수의 고정관념을 깨고 '제창'의 형식으로 그 의의를 다시 찾고자 했다. 그리고 모든 참석자는 마음속 깊이 응어리졌던 노래를 세상 밖으로 용출시켰다. 우리나라에 전해 오는 음악은 대부분 마음에서 나온다. 우리 선조들은 소중한 분을 잃었을 때 돌아가신 분과 그 가족 앞에서 곡을 했고 힘든 일을 할 땐 노동요로 그 고됨을 이겨 냈다. 이렇듯 우리 민족은 공동체 삶 속에 희로애락의 노래를 자생적으로 만들어 불렀고, 그 멜로디와 가사를 통해 삶의 토대를 그리며 더 행복한 세상,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노력했다. 그런 이유로 우리의 역사는 한 시대를 대변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만들었고 그 노래는 국민 가슴속에 자리 잡아 한 시대의 위안이자 민중의 노래로 남았다. 이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진보의 정치적 성과라 생각지 말고 보수의 논리로 그 뜻을 논쟁치도 말자. '임을 위한 행진곡'은 지나간 아픈 역사적인 산물로 만들어진 선율이요, 가사이다. 아픈 곳을 치유하기 위해 우리네 맘을 곱씹어 만들어 냈던 노래인 것이다. 비장한 단조의 멜로디는 역사의 뒤안길이다. 흐르는 곡의 4/4박자는 우리들의 맥박이요, 외치는 간결한 가사는 우리 역사의 심장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통해 처절하게 돌아가신 유공자들의 영혼을 달래 줄 수 있다면, 또한 우리의 후대들로 하여금 다시 이러한 역사의 불행이 오지 않게 동기 부여를 한다면 제창이 중요하리요, 합창이 뭐 그리 중요하리요. 역사의 중요한 멜로디가 되고 소중히 함께 부르고 싶어 했던 '임을 위한 행진곡'. 이제 '제창'과 '합창'이란 음악적 논쟁 앞에 멈추지 않고 아픔 없는 나라를 위한 민중의 노래로 남아 그 의를 돌아보며 영원히 함께하는 역사적 산물이 되기를 소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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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5.26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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