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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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군 흥덕면] 독립운동 투신한 고씨 집안…명창 김소희 등 배출고창 진입 관문…해발고도 50m 미만 구릉지 / 임진왜란 땐 92명 선비 흥덕서 모여 의병 활약
이성원 기자  |  leesw@jjan.kr / 등록일 : 2017.04.18  / 최종수정 : 2017.04.18  00:44:22
   
 
 

흥덕면은 고창의 북동부에 위치해 있으며, 고창으로 들어가는 관문이자 교통도시이다. 동쪽으로는 성내면, 남쪽으로는 신림면, 남서쪽으로는 부안면, 북쪽으로는 부안군 줄포면이 있고, 서쪽 일부는 황해의 곰소만과 접해 있다.

비산비야라고 할 만큼 해발고도 50m 미만의 구릉지가 많으며, 대보화강암이 풍화되어 형성된 적황색토가 널리 분포한다. 고부천 주변에 넓은 충적평야가 발달해 있으며, 성내면과 경계에 있는 동림저수지가 관개용수를 공급한다.

백제시대에는 흥성현, 고려시대에는 흥성현/장덕현, 조선 태조 때 흥덕현에 속했다. 조선 말기에 현내면이 되었다가, 1914년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북면과 일동면, 부안군 건선면, 고부군 일부를 병합하여 흥덕면이 되고 고창군에 편입되었다.

△의병과 파리장서

1592년 임진왜란이 시작되자 9월 18일 채홍국을 비롯한 92명의 선비들이 흥덕고을에서 삽혈동맹으로 의병소를 설치하고 활동에 나섰다. 이후 정읍과 장성, 담양, 곡성, 순천, 남원, 순창 등에서 전과를 올렸다.

1919년에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만국 평화회의를 통해 일제의 악랄한 무단통치를 전 세계에 알리고 조선의 독립의지를 호소하는 사건이 있었다. ‘파리장서’로 불리는 이 청원서에는 전국의 유림대표 137명이 서명했는데, 흥덕지역 한 집안 출신인 고석진, 고예진, 고순진, 고제마 등 네 분도 여기에 포함돼 있다.

△정계

1901년 사천리에서 태어난 신용욱씨(고인)는 일본 오꾸리 비행학교와 미국 실라 헬리콥터학교 조종과를 졸업하고 45년에 대한국민항공사(KNA)를 설립한 민항의 선구자이다. 2~3대 국회의원을 지내며 고수 조산저수지, 성내 중앙저수지, 신림 계내저수지 등을 준공했으나, 비행기를 일본에 자진 헌납한 행위로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올라 있다.

같은 마을에서 1917년에 때어난 신용남씨(고인)는 일본 동경중앙대학교를 졸업하고 군정청 사법부 형사과장과 법무부 용도과장을 거쳐 제7대 국회의원이 됐다. 57년 골프에 입문해 1, 2, 7, 8, 12회 한국 아마추어 골프 챔피언을 지내기도 했다.

지방정치인으로는 전북대 수의학과 출신으로 4대와 5대 전북도의회 의원을 지낸 흥덕리 출신의 김용원씨(고인)가 있다.

△법조계

이홍훈 전 대법관(71)은 신송리에서 태어나 서울 고등법원 부장판사와 제주지방법원 법원장, 대법원 대법관 등을 지냈다. 4대 법조윤리협의회 위원장을 지냈으며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장과 서울대학교 법인이사장을 맡고 있다.

남준희 변호사(52)는 석교리에서 태어나 부산과 전주지방법원 판사, 전북대학교 고문변호사,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법무법인 온고을 대표변호사를 맡고 있다.

박태기 변호사(53)는 흥동에서 태어나 서울중앙지검과 동부지검 특수부, 전주지검, 대구지검 등을 두루 거친 형사전문 변호사로 현재 법무법인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원성윤 변호사(41)는 신송리 출신으로 신아법무법인에서 활동하고 있고, 흥덕리 출신의 성춘일 변호사(39)는 기자를 하다가 법조인이 되어 ‘남양유업 사태’를 시작으로 공익사건에 적극 나서고 있다.

제하리 출신의 고광노 변호사(53)는 검사 출신으로 현재 법무법인 양헌 변호사로 일하고 있으며, 흥덕리 출신의 박영기씨(49)는 세무사이자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신송리 출신 이창현씨와 흥덕리 출신의 최정용씨는 군 법무관 판사이다.

△관계

흥덕리 출신의 진동수씨(68)는 조달청 청장과 재정경제부 제2차관, 한국수출입은행 행장을 거쳐 2009년부터 2010년까지 장관급인 금융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신송리 출신의 김영근씨(63)는 국세청 근로소득지원국장과 대전국세청장을 거쳐 2010년 대한주정판매(주) 대표이사에 취임했다.

흥덕리 진정수씨(65)는 국토연구원 감사실장, 선임연구위원, 한진해운 상무 등을 지냈고, 진갑종씨(74)는 강원지방병무청 징집관과 창원지방병무사무소장, 경남지방병무청장을 지냈다.

신송리 출신의 원영희씨(고인)는 66년 농림부 기획관리실장을 지낸 뒤 70년 농협대학 학장을 맡았다.

흥덕리 박주홍씨(82)는 전주 덕진구청장을 지냈고, 오호리 국종철씨는 95년에 고창부군수였다.

신송리 김희철씨와 원종찬씨는 외무고시에 합격해 외교관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흥덕리 고재춘씨는 태권도 진흥재단 마케팅부장을 맡고 있다.

흥덕리 출신의 박용기씨(66)는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과 부원장 등을 지냈다.

△문화예술체육

1917년 사포리에서 출생한 만정 김소희(고인)는 광주에서 이화중선의 공연을 보고 소리의 세계에 푹 빠졌다. 48년 여성국악 동호회를 설립해 최초의 여성국극 〈햇님 달님〉을 무대에 올렸고 64년 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기/예능 보유자가 되었다. 93년 한국국악협회 이사장을 지냈으며, 안향련, 한농선, 박초선, 박송희, 김동애, 오정숙, 안숙선, 성창순, 남해성, 이일주, 신영희, 박양덕, 오정해 등을 가르쳤다.

오태마을 출신 국악인 김완수씨(72)는 무형문화재 제22호인 마들농요보존회 회장이자 예능 보유자다. 마들농요는 서울 노원구가 아파트촌으로 변하기 전 노원지역의 옛 모습인 마들평야 지대에서 농사지을 때 농부들의 흥을 돋우기 위해 부르던 노래다.

사포리 출신의 소설가 김장천씨(83)는 고창예총 이사를 지내고 제6회 고창문학상을 수상했다. 또 신송리 출신의 시인 원용수씨(고인)는 서라벌예대 국문과를 졸업했으며 시집 ‘갈대골’과 자서전 ‘가지 많은 나무’ 등을 남겼다.

체조선수 서연희씨(48)는 치룡리에서 태어나 86년 아시안게임 이단평행봉에서 금메달을 따냈으며, 오호리 출신의 신승찬씨(23)는 2015년 세계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여자복식과 혼합복식, 혼합단체전 등 배드민턴 3관왕에 올랐다.

△교육계

흥덕리 박주황씨는 84년 전주대 초대 총장을 지냈고, 박만기씨(79)는 서울대 약학대학장을 지낸 명예교수이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출신의 박용기씨는 박만기 명예교수의 동생이며, 또 다른 동생 박흥기씨는 김천대 교수로 있다. 박복기씨(71)는 호원대 교수를 지냈다.

신송리 원윤희씨(60)는 서울시립대 교수와 서울시립대 총장, 조세연구원 원장 등을 지냈고, 원찬희씨(60)는 전북대 교수, 원재강씨는 경기대 교수, 원택희씨는 강원대 교수, 이상범씨는 아주대 교수, 조숙희씨(58)는 중앙대 교수로 있다.

이선동씨(57)는 상지대 한의학과 교수, 이창훈씨는 조선대 교수이며, 사천리 신재철씨는 아주대 교수, 용반리 채규현씨(47)는 세종대 교수로 있으며, 오호리 출신 김덕수씨(69)는 군산대 교수를 지냈다.

사천리 출신의 신국중씨(73)는 전주교육장과 전북도교육위원회 의장, 전북체육회 고문 등을 지냈다.

△재계

변재용씨(61)는 한솔교육 대표이사 회장으로 2007년 한국의 경영대상 고객가치혁신부문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고삼상씨는 1998년에 민간주택을 건설하는 양우건설을 설립한 창업주로 현재 양우건설 회장을 맡고 있다.

신송리 이영훈씨(72)는 대우그룹 이사와 광양제철 및 옥포조선소 건설 현장소장을 지냈으며, 94년에 산업포장을 받았다.

-다음 회에는 진안군 안천면 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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