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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 기념비 글씨 쓴 서예 대가 여태명 교수 "전통에 트랜드 접목해 예술 발전 시켜야"
남북정상회담 기념비 글씨 쓴 서예 대가 여태명 교수 "전통에 트랜드 접목해 예술 발전 시켜야"
  • 최정규
  • 승인 2020.03.08 19: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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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명 원광대학교 교수가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민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조현욱 기자
여태명 원광대학교 교수가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민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조현욱 기자

효봉 여태명 원광대 교수(64)는 평생 한글 민체(조선 후기 민중의 삶을 자유롭게 표현한 서체)를 연구해 역사적인 배경과 흐름을 최초로 정리한 독보적인 예술가다. 먹과 붓으로 글씨와 그림의 경계를 넘나들며 조화롭게 세상을 그린다.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국무위원장이 화해와 평화의 약속으로 기념 식수를 할 때 쓰인 표지석에 휘호를 쓴 서예가로 더 유명해졌다. ‘평화와 번영을 심다’라고 쓴 그의 글은 외신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 세계로 알려졌다. 전주에서는 한옥으로 만든 전주IC의 상·하행선 ‘전주’라는 글과 만성동 시대를 연 ‘전주지방법원’의 현판을 쓴 이도 효봉이다.

 

△올 새로 이전한 전주지방법원 현판을 쓰셨습니다. 어떻게해서 현판 글씨를 쓰게 됐는지.

“법조3성을 배출시킨 전주지방법원의 만성동 시대를 함께 할 수 있어 자랑스럽습니다. 현판 글씨는 전주지법으로부터 제의가 들어왔습니다. 사실 현판을 쓰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는데요. 처음에는 3가지의 서체를 준비했습니다. 한글의 기본인 ‘훈민정음’, 전주를 상징하는 ‘전주체’, 평생연구해온 ‘민체’ 등 3가지의 서체로 ‘전주지방법원’이란 글씨를 준비했습니다. 3가의 서체를 전주지법에 전달하니 법원 직원 및 판사들이 투표를 한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3가지 중 ‘민체’와 ‘전주체’ 2개가 높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법원이 ‘전주시민과 함께해 돌려주는 사법기관’이란 모토를 가지고 있어 전주체로 작성한 글씨가 최종 선택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 전주체로 작성한 전주지방법원의 글씨는 강직하고 올곧은 재판을 하는 곳이라는 마음을 담아 표현한 글씨입니다.”

 

△전주체라는 서체가 생소한데요. 전주체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까.

“전주체(완판본)는 조선 후기에 가장 유행했던 서체입니다. 칼로 나무에 새겨서 찍어낸 서체이며, 딱딱하고 강직하며 날카로움이 돋보이는 것이 특징입니다. 조선 후기 당시 전주는 주변에 많은 산이 있어 나무를 조달하기 편했고, 종이도 한지를 주로 생산하는 곳이다보니 글씨가 발달할 수밖에 없는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전주지방법원의 현판 외에도 전주IC의 현판과 남북정상회담 표지석도 교수님 글씨로 알고 있습니다.

“네. 먼저 전주IC, 즉 톨게이트의 현판은 지금도 기억에 남습니다. 전주시에서 요청이 들어와 쓰기시작했는데요. 다양한 글씨로 30여장의 전주 글씨를 작성했습니다. 하지만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의 마음이랄까요. 내가 직접 쓴 글씨이고 무엇 하나를 선택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을 모아 놓고 가장 좋은 글씨 2장씩을 선택하게 했습니다. 최종 선택된 2장 중 첫 번째 글씨는 서울에서 전주를 들어가는 방향으로 걸리게 됐는데, 어머니를 표현한 모음을 크게 적었습니다. 이는 엄마의 큰 가슴. 즉 따뜻한 가슴에 안기는 마음을 담고자 했습니다. 두 번째 선택된 글씨는 전주에서 서울방향으로 나가는 곳에 설치되어 있는데 모음을 작게하고 자음을 크게 적었습니다. 아들이 서울에 올라가 크게되고 어머니는 아들이 성공해 돌아올 것이라는 소망을 표현했습니다.

남북정상회담에 쓴 표지석은 내 서예인생 최고의 글씨입니다. 내 60년 글씨 인생에 이 ’평화와 번영을 심다‘는 가장 비밀스러웠고 가장 영광스러운 글씨입니다. 평생 연구해온 민체로 작성됐고, 사전 연습 없이 단 한번 한 숨에 써내려간 글씨입니다.”

 

△민체는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평생 민체를 연구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십시오.

“먼저, 한글서체의 기본은 훈민정음입니다. 훈민정음은 반듯함이 특징인데 사림이 똑바로 서있는 모습, 즉 부동자세의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궁체는 궁궐에서 많이 사용된 특징인데 궁인들이 왕을 향해 고개를 숙이듯 궁체는 고개를 숙인 모양이 특징입니다. 민체는 궁궐 밖의 백성들이 사용한 글씨인데 술 한잔을 걸친 뒤 저잣거리에서 허리를 약간 뒤쪽으로 펼친 백성의 모습을 표현합니다. 특히 민체에는 많은 백성들의 표정과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글씨의 두께도 다르고 감정 하나하나가 이 민체에 담겨있는 것입니다.”

 

△서예 그림 전각 등 여러 분야를 함께 섭렵하신 계기는 있었는지요.

“초등학교 4학년때 처음 붓을 잡고 서예를 처음 접했습니다. 학교 특별활동시간에 서예부에 들어가 활동을 했는데 당시 담당선생님이 ‘넌 글씨를 잘쓴다’라는 칭찬에 지금까지 하게 됐습니다. 이후 6학년때 진안군에서 실시한 미술 실기대회에서 1등을 차지했고 중학교에 서양화인 수채화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대학교 진학시에는 동양화를 전공했는데 이때 서예는 취미생활을 통해 붓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동서양을 막론한 미술분야를 섭렵하기 시작했는데 학원 등도 운영하면서 서예뿐 아니라 동양화, 전각, 그림 등도 공부를 하게 됐습니다.”

 

△서예는 물론 서양화, 동양화 등 전통미술분야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전통은 이 시대에 전승되고 발전된 것을 말합니다. 서예로 치면 처음 훈민정음체가 나왔고 궁체, 민체 등 다양하게 변화되고 발전되어와 지금의 전통이란 호칭을 받았습니다. 즉 전통은 그대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변하면서 발전된 것을 말합니다. 예술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새 유행하는 트랜드를 익히고 전통에 접목해 발전시켜야 합니다. 그렇다면 향후 100년, 200년 후에 후세에게는 발전된 것이 전통이 될 것입니다.”

 

△원광대에서 후진 양성에 힘써오셨는데요. 이제 정년을 앞두고 계십니다.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80년대부터 연구를 목적으로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여러 책들을 수집했습니다. 논어, 맹자, 백성들이 옮겨적은 흥부놀부전 등 많은 자료를 모았습니다. 현재까지 연구를 마친 것도 있고 아직 연구를 하지 못한 부분도 많습니다. 정년퇴임 후에는 그동안 모아온 자료를 이용해 내 연구를 후세에 알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후에는 모아논 자료를 시나 지자체에 기부하거나 개인 박물관을 만들어 자료를 다시 국민들에게 돌려주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여태명 교수는

효봉 여태명 원광대 교수는 1956년 진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이야기는 전주에 들어서는 입구에서부터 빠뜨릴 수 없다. 외지인들이 전주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 중 하나로 꼽는 전주 인터체인지 현판 글씨가 그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몇년전에는 KBS ‘1박 2일’의 글씨체가 그가 개발한 ‘효봉 개똥이체’라는 것으로 젊은이들 사이에서 또한번 화제가 되기도 했다. 특히 그의 이름을 전세계에 알린 것은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국무 위원장이 화해와 평화의 약속으로 기념 식수를 할 때 쓰인 표지석에 휘호를 쓴 서예가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중국 노신미술대학 객좌교수, 효봉문화예술마당 대표, 문자아트센터 대표, 디자인필소통 대표 등을 역임했다. 현재 원광대 미술대학 서예학과 대학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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