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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문학관 지상강좌 - 한국문학의 메카, 전북] (25) 야천 김교선의 삶과 문학세계
[전북문학관 지상강좌 - 한국문학의 메카, 전북] (25) 야천 김교선의 삶과 문학세계
  • 기고
  • 승인 2020.06.18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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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이후 전북 비평문학의 개척자
야천 김교선
야천 김교선

김교선은 1912년 함경남도 함주군에서 태어났다. 1932년 함흥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 가서 도쿄호세이대학(東京法政大學) 문학과를 졸업하였다. 학교를 마치고 서울에서 잠시 구문사라는 출판사에 다녔지만, 낙향하여 이화여전을 나온 최정희 여사와 결혼하였다. 해방 후 어수선한 상황에서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그가 고향에서 태연하게 지낼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서울로 와서 신혼살림을 했고, 슬하에 딸 둘과 아들 하나를 두었다. 6.25 전쟁 때에는 부산까지 피난하였고, 광주와 전주, 고창에서 교사와 교장을 역임하였다. 1954년부터 20여 년간 전북대학교에서 봉직하였고, 정년 이후에도 약 10여 년 동안 전주대학의 객원교수로 재직하였다.

김교선은 대학에서 강의와 연구에 전념하였으며 1960년대 초반부터 ‘현대문학’과 ‘창작과 비평’ 등 국내 유수의 지면에 무게 있는 비평을 발표하기 시작하였다. 1972년에는 선생의 회갑을 기념하려는 제자들의 뜻을 받아들여 그동안에 발표되었던 글을 모아 『소설의 이해와 평가』라는 평론집을 출판하였다. 그리고 또 24년이 흐른 뒤에 『관념과 생리』라는 문학평론집을 냈다.

김교선의 걸출한 제자 천이두 교수는 스승의 평론집 『관념과 생리』의 발문에서 그의 스승을 이렇게 회고했다.

”선생의 강의는 웅변조나 연설조와 같은 화려한 강의 스타일과는 정반대로 조용하고 차근차근하게 더듬거리지 않으면서도 어딘지 더듬거리는 듯한 느낌을 주는 강의 스타일이었지만, 30년대의 이상(李箱)과 1차 대전 이후 서구의 전위문학과 불안(不安)문학에 대한 강의는 막연히 문학 쪽에서 삶의 길을 찾아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한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차츰 선생의 강의에 끌려 들어갔고 그분 특유의 인간적 분위기에 점차 빠져들게 되었다.“

이렇듯 김교선은 전형적인 선비 스타일이었지만, 일체의 교조적인 태도를 배격하고 가정에서는 엄격하면서도 자애로웠고, 학교에서는 제자들을 무척 아끼고 사랑하였다. 또한, 문우들과도 자주 어울리면서 문학과 인생을 이야기하였다.
 

김교선이 6·25 이후 우리 지역에 정착한 것은 전북 문학계로서는 매우 은혜로운 일이었다. 왜냐하면, 전북의 비평문학은 1920년대 이익상, 유엽, 김환태, 윤구상 등의 1세대 비평문학가들이 있었지만, 이들의 활동 시기는 대부분이 1930년대까지였다. 그들 이후 전북의 비평문학은 한동안 침체기에 들었는데, 그 이유는 일제의 노골적인 침략 탓이 크다. 이러한 침체기에 전북 비평문학의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데 그가 맨 선두에서 아주 큰 역할을 했다. 그의 지도로 한국 비평문학계에 우뚝 선 천이두 교수와 그리고 그 뒤를 이은 오하근, 임명진, 전정구 등 많은 평론가가 전북의 비평문학을 더욱 풍성하게 했다. 그런 점에서 김교선은 전북비평문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다. 최명표 문학평론가는 「김교선의 생애와 비평」에서 김교선의 비평이 높이 현양되어야 할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제시한 바 있다(전주예술사,2019).

첫째, 대일 항쟁기에 이익상으로부터 기원한 전북의 근대 문예비평이 해방 후 상당 기간 공백 상태에 처했는데, 이 혼란기에 전라북도 평단을 수복하느라 헌신하였다.

둘째, 뉴크리티시즘이라는 비평적 방법론을 도입하여 전북대 국어국문과에 이식하면서 치밀한 독해를 강조함으로써 천이두의 텍스트에 대한 정치적 독해, 오하근의 원전비평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셋째, 김교선의 비평적 업적을 기술하지 않고서는 전북의 현대문학비평사가 제대로 기술할 수 없을 만큼 이익상의 졸서(卒逝)와 전쟁으로 중단된 전북지역 비평사적 맥락을 채워주는 역할을 충실히 했다.

김교선도 한때 시를 쓰기도 했지만, 시가 ‘관념적 정열의 소산’이라는 생각이 들어 대학 시절에 그만두었다고 한다. 1962년 『현대문학』 2월호에 「불안(不安)문학의 계보와 이상(李箱」을 발표하면서 그는 나이 마흔에 늦깎이 문학평론가가 되었다. 그의 비평문학 활동은 1960년대에서 1970년대까지가 절정인데, 대부분의 평론이 『현대문학』지에 발표되었고, 월평과 서평을 도맡아 할 만큼 왕성한 필력을 과시했다. 그중에서도 「현대적 背理意識의 원형」, 「자기증명의 소설」, 「조화미의 절정」, 「이정화의 작품세계」, 「관념소설론」, 「윤흥길의 작품세계」 등은 높이 평가되는 평론들이다.
 

그의 첫 평론집은 『소설의 평가와 이해』(형설출판사, 1972)이다. 이 책은 작가론과 작품론을 일관되게 논의한 평론집이지만, 그의 말대로 작가론은 전기적인 성격의 작가론이기보다는 작가의 작품세계를 논한 비평이었다. 작품론은 월평 중에서 중점적으로 취급했던 작품을 추려 넣은 것이라고 밝혔다. 작가론에서는 「김동인론」의 동인 문학의 근대성의 저변을, 「나도향론」은 자기증명의 소설을, 「현진건론」은 리얼리티에 관한 세계를, 「이상론」은 불안문학의 심리적 계보를 논의하였다. 또한, 성층적 구조의 소설인 황순원의 「原色 오뚜기」의 현대적 가치, 자의식 과잉의 표현인 최병익의 「張三李四」의 분석, 심리적 지적 사색과 소설적 형성을 보인 장용학의 「圓形의 傳說」의 현재적 의의와 표현상의 맹점, 현대적 배리(背理)의식의 원형으로서의 체호프의 「六號室」의 현대적 의의 등이 논의되었다.

그 외에 『현대문학』 월평으로 윤흥길의 「황혼의 집」, 이청준의 「침몰선」, 「별을 보여드립니다」, 「소문의 벽」, 「문단속 좀 해주세요」와 이세기의 「두 시간 십 분」, 이주홍의 「유기품」, 이범선의 「청대문 집 개」, 오영수의 「새」, 「갯마을」, 이병구의 「세금」, 임옥인의 「술꾼」, 김용성의 「불상」, 손창섭의 「흑야」와 박상륭의 「남도」, 이광숙의 「가변성」, 「광한 산신」, 최상규의 「적」, 오영석의 「구두와 훈장」, 송병수의 「정광호 군」, 「한여름의 권태」, 오유권의 「가랑잎새」 등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비평했다.

두 번째 평론집인 『관념과 생리』도 작가론과 작품론, 월평과 서평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소설의 이해와 평가』에 이은 24년 만의 결실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작가론은 이효석, 이정환, 윤흥길, 박완서, 이세기, 나도향, 이상의 문학세계를 분석하였다. 작품론은 김소월의 「산유화」, 이범선의 「오발탄」, 오상원의 「모반」,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 김주영의 「천둥소리 3」, 최명희의 「혼불」, 오영수의 「갯마을」, 황석영의 「객지」, 임철우의 「사평역」, 김정한의 「사하촌」, 나도향의 「벙어리 삼룡이」, 신석상의 「프레스 카드」 등이 주로 논의되었다.
 

김교선의 비평 태도는 문학에 대한 철저한 인식을 바탕으로 작품 자체에 집중하여 작품의 실상을 따뜻하게 심정적으로 수용하는 자세를 견지하였다. 김교선은 ‘나’가 배제된, ‘나’의 주체적 심정적 참여가 배제된 어떠한 ‘고담준론’도 믿지 않았고, 그러면서도 지나치게 ‘나’ 속으로 탐닉함으로써 대상을 ‘내’ 안에 흡수시켜 버리는 나르시스즘도 배제했다. 즉, 그의 비평세계는 어떤 선입견에도 사로잡히지 않고 작품 자체에 밀착하려는 태도를 일관되게 보여주었다. 천이두 교수는 ‘김교선의 비평은 항상 대상을 일정한 거리에 두고 바라보는 자세를 견지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어야 하고(『관념과 생리』의 발문), 최명표 박사는 김교선의 비평 태도를 ”중용의 비평가‘로 정리했다.(전북작가열전,2018)

중등학교 재직시절부터 김교선의 동료였던 송준호 교수는 <야천 김교선 선생과 나>라는 글에서 그를 이렇게 서술한 바 있다.

“야천 선생은 범사에 사리가 분명하고 비리 앞에 의연하며 속된 타협을 모르고 사는 분이다. 그러나 선생은 또 언제나 분위기가 좋고 가족적이며 그러면서도 매사에 원칙과 질서가 존중되는 학자로서 알려져 있으며, 그러한 점에서 많은 사람의 선망이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김교선은 2006년 94세의 나이로 별세하였으며, 전북 완주군 봉동읍 완주공설공원묘지에 안장되었다. 그에게는 1남 2녀의 자녀가 있는데 모두 훌륭하게 성장하여 우리 사회의 중추로서 역할을 잘하고 있다. 장녀 김춘이는 서울대학교 산업미술과를 나와 다자이너로 활동하면서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고 있으며, 차녀 김진이는 전주대학교에서 영어교육과 교수로 정년 퇴임하고 사회복지의 법인 대표로 봉사하고 있다. 아들 김정민은 감리사로 건축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송일섭 전라북도문학관 학예사

 

**이번 편부터 송일섭 학예사가 전북문학관 지상강좌를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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