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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문학관 지상강좌 - 한국문학의 메카, 전북] (32) 고향 사두봉에 얹힌 진을주 시인의 그리움
[전북문학관 지상강좌 - 한국문학의 메카, 전북] (32) 고향 사두봉에 얹힌 진을주 시인의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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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9.17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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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을주 시인
진을주 시인

진을주 시인은 1927년 10월 3일 전북 고창군 상하면 송곡리 69번지 송림산 아래 봉감마을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을주(乙澍)이고 호는 자회(紫回)다. 1954년 전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1963년 김현승 시인의 추천으로 「부활절도 지나버린 날」을 『현대문학』에 발표하였으며, 1966년 『문학춘추』에 「교향악」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문학의 길을 걸었다.

시인은 대학 졸업 후, 전라북도 도청 공보실에서 근무한 바 있으며, 상경하여 대한교련의 새한신문사 총무국장과 출판국장을 역임하면서, 문학 활동에 매우 열정적이었다. 시인의 문단 경력은 다양하면서도 화려하다. 한국문인협회 이사, 월간 『문예사조』의 기획실장, 한국자유시인협회 부회장,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이사, 도서출판 을원 편집 및 제작 담당 상임고문, 21민족문학회 부회장, 한국문인협회 감사, 월간 『문학21』 고문 등을 역임하였다. 1997년에는 『세기문학』을 창간하였고, 1998년에는 『지구문학』을 재창간하여 편집 및 상임고문을 맡으면서 많은 문학 지망생들에게 작품 발표의 기회를 제공하는 등, 우리나라 문학의 저변확대에 기여하였다. 시인은 그간의 공로로 한국자유시인상, 청녹두문학상, 한국문학상, 세계시가야금관왕관상, 예총예술문화공로상, 한국민족문학상 대상 등을 수상했다.

시인은 1966년 첫 시집 『가로수』를 비롯해서 『슬픈 눈짓』, 『사두봉 신화』, 『그대의 분홍빛 손톱은』, 『부활절도 지나버린 날』, 『그믐달』, 『호수공원』 등 일곱 권을 상재하였다. 그 중 『사두봉 신화』는 연작시집으로 그의 고향에 전해오는 이야기를 토대로 신화적 숨결을 그려냈다. 그리고 신작 1인집으로 『M1조준』 등 네 권을 발간하여 우리 문단의 화제가 되기도 하였으며, 유고시집으로는 『송림산 휘파람』이 있다.
 

진을주 시비.
진을주 시비.

시인의 문학에 대하여 계간 『해동문학』 발행인 정광수 시인은, 70년대 진을주의 시 세계는 모더니즘적 수법의 수련을 거친 인생에 대해 참신하고 투명한 인식을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았다. 박종은은 「자회(紫回) 진을주 시인의 생애와 문학」에서 그의 문학적 특징을 이렇게 정리한 바 있다. “시인의 시는 모더니즘 수법의 수련을 거쳐 인생과 자연에 대한 투명한 인식을 보여주면서 평생을 고고하게 선비정신으로 일관하였으며, 천성적인 인간미가 돋보이는 삶은 작품 속에서 일관된 시 정신으로 표출되고 있다. 시 정신과 더불어 인생, 자연, 허무 슬픔 등이 투명한 인식 속에 자리 잡혀 그 참신성이 돋보이며 삶의 의미와 리얼리티가 잘 드러난다. 또한, 변화와 갈등이라는 동일성을 교직(交織)해서 시어가 세련되고 감각정 서정성이 풍부하다. 또한, 명상적 정관적 자세가 돋보이며 절제된 언어미학이 잘 드러난다.” 고 했다.

시인은 이렇듯 많은 작품을 쓰면서도 자신의 시적 역량을 키우는데 남달랐다. 그는 훤칠한 키에 신사풍의 용모로 언제나 유행에 어울리는 패션을 즐겨 입은 멋쟁이 시인이었으며, 다정다감하여 동료와 후배 문인들로부터 인기가 매우 높았다. 시인은 누구와도 잘 어울렸고 늘 자애로운 낯빛으로 함께 했다. 특히 『지구문학』을 통해서 많은 제자를 배출하였다. 노년에는 일산 호수공원의 새 소리와 아름다운 꽃에 심취하여 생활하다가 2011년 2월 14일 숙환으로 세상과 하직하였다.

최승범 교수는 그의 부음을 듣고 「벗은 가고」라는 시조를 통해서 그에 대한 그리움과 애틋한 마음을 표현한 바 있다.

 

허물 따로 없었지

윗목도 아랫목도 없었지

 

고스톱 멤버인 양

밤참도 챙기라 했지

 

눈 감자

허탈한 굽이굽이

허허로울 뿐이네

 

그의 후배인 이기반 교수도 「가시다니 그게 웬 말이오」란 글을 통하여 시인에 대한 그림움을 애틋하게 표현한 바 있다.

 

전라북도문학관 진을주 시인 전시관에는 두툼한 친필 노트 한 권이 놓여 있다. 이 노트 첫 장에는 정성을 들인 필체로 “진을주 자필 시 모음”이라고 쓰여 있다. ‘사두봉 얘기’라는 큰 제목 아래에 ‘사두의 아침’이라는 소제목의 시 서른다섯 편이 쓰여 있다. 이는 시인의 시집 『사두봉신화』의 원고인데, 시편 하나하나가 흐트러짐 없이 단아한 필체로 쓰여 있다. 이 외에도 시인이 평소에 쓰고 다녔던 모자와 만년필 등 시인의 손때가 묻은 유품이 전시되어 있는데, 이를 보면 시인이 얼마나 정갈하게 살아왔는가를 느낄 수 있다.

 

내 눈물로는 채울 수 없는 텅 빈 항아리

놔 두소

돌팔매질 보고 빙그레 웃는 속마음

조금만 더 있다가 내가 찾아가 묻힐 항아리

-진을주 「빈 항아리」 중에서

 

이 시는 2007년 『지구문학』 겨을호에 발표된 시다. 그는 일단 빈 항아리를 설정해 놓고 그것을 채우는 방법을 생각했는데, 그것은 물 몇 바가지로 채워질 그런 흔한 항아리가 아니라는 것, 그래서 바로 눈물을 끌어들인다. 그리고는 눈물로도 채울 수 없는 공간을 결국 자신의 몸을 던져 채우려는 모습이 역력하다. 이 짧은 시에서 보듯 비어 있는 것을 억지로 채우려 하지 않고, 온 몸을 던져 그것을 채우려는 모습에서 시인의 삶이 어떠하였는가를 가늠하게 한다.

 

갑사댕기빛

동백기름 지문도 고요로이

 

치마폭무늬

꽃그늘 수줍어 흐르고

 

꼭 여심같은

깊이여!

-진을주 시 「항아리」 전문

 

시인의 『사두봉 신화』는 1987년 10월에 발간한 시집이다. 고향인 고창 무장의 영산(寧山) 사두봉 주변에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귀신 이야기를 시로 형상화했다. 이 시집에 실린 총 61편의 시는 모두가 다른 이야기이지만, 그 이야기들은 우리들의 귀에 익숙한 이야기라는 공통점이 있다. 시인은 『사두봉 신화』의 서문에서 “신화에 담긴 지혜는 고장의 생산적인 지혜가 되었으며, 이를 통하여 고향 사람들이 어떤 가치의식과 삶의 감정으로 수천 년간의 공동생활을 영위해 왔으며 어떻게 문화가 발전해 왔는가”를 지켜보고자 했다.

 

햇살 편 소용돌이 속

불구를 타고 비바람 몰아

사비약 내린 사두(蛇頭)

 

고리포 발치에 두고

반고갯재 스친 길

 

(중략)

 

앞지락 비밀 열리고

고집스런 깊은 정절(貞節)

 

공포로운 침묵으로

발 모둔 육지

 

노령산맥 맥박 타고

쏜살처럼 미래가 열리는

아침이여

-진을주 『사두봉 神話』의 「사두봉의 아침」 중에서

 

2011년 2월 14일 시인은 정둔 세상을 떠났지만, 어쩌면 시인은 우리 곁에서 한 발도 움직이지 못하였을 것 같다. 왜냐하면 그의 동료, 선후배들의 그를 놓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인의 서거 이후 한 달쯤 되었을 때 성춘복(제21대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신세훈(제22, 23대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등이 중심이 되어 전을주 시비건립준비위원회가 결성되었고, 그해 시인의 고향 전북 고창군 상하면 송곡리 송림산 자락에 시비가 세워졌다. 또한, 함흥근 시인 등이 중심이 되어 ‘진을주문학상’을 제정하여 서거 이듬해인 2012년 12월 13일부터 수상자를 선정하여 시상하고 있다. 제1회 진을주문학상은 추영수 시인이 받았다.

시인의 배우자 김시원 씨는 화가이며 서예가이고, 또한 수필가이다. 시인이 세상을 떠난 이후 부군의 위업을 이어받아 현재 『지구문학』 발행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자녀로는 큰아들 동준(사업가), 큰딸 경님(아동문학가), 작은 딸 인욱(프리랜서)이 있다. 시인의 며느리 김여림도 수필을 쓰고 있다고 한다. 또한 시인의 장조카 진동규 시인은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과 전북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하는 등 우리나라 문학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바 있다. 그러고 보면 시인의 일가(一家)는 명망 있는 예술가의 집안을 이루고 있다. 오늘도 그의 고향에는 시인의 휘파람 소리가 들리고 있다.

 

휘파람 소리

 

귀신 같이 알아낸 송림산의 봄

 

능선마다 허리끈이 풀렸네

 

내 동갑 박득배는

휘파람 사이사이

낫자루로 지겟다리 장단 맞추고

나는 지겟가지에 용케도 깨갱발 쳤지

 

하늘은 봄을 낳은 산후의 고통

보릿고개 미역 국물 빛 울음 반 웃음 반이었어

 

휘파람 소리는 황장목 솔바람에

송진을 먹였네.

 

-진을주 「송림산 휘파람」 고향마을 시비에 새긴 시

 

/송일섭 전북문학관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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