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년 전 동학 혁명기에 설치됐던 민관협력조직인 집강소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이 기획한 '우리나라 최초의 농민자치기구, 집강소를 가다'라는 전시회가 그 시작이다. 국사편찬위원회와 전주대학교 등에서 일부 유물을 대여 받아 열리는 이번 전시회에는 당시의 상황을 알 수 있는 자료들이 소개된다고 한다. 집강소는 전주성을 점령한 농민군과 전라관찰사 김학진이 관민화합과 지역의 치안유지를 위하여 전주화약을 맺은 뒤, 전라도 각지에 설치한 자치 기구로 전주에 총본부를 두었다. 집강소는 혼란기에 민의를 수렴하는 제도적인 장치인 동시에 지역의 의사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래서 여러 전문가들이 "집강소는 한반도 지방자치의 시작이자 근대 민주제도의 효시"라고 평가한다.
우리는 전북을 '가장 한국적인 지역'이라고 이야기할 때 흔히 유물유적이나 전통과 정서를 근간으로 삼는다. 맞다. 전북은 예술과 문화 전반에 걸쳐 전통이 많이 남아있는 곳이다. 그래서 가장 한국적이라는 자긍심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전북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바로 민주주의제도에 관한 전통의 뿌리를 깊이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탄압이 아닌 타협과 협력의 길을 선택한 집강소는 지방자치제도의 씨앗이었다. 그 밭이 전북이었다는 것은 어떤 유물보다도 소중한 정신적, 제도적 자산임을 되새겨야 한다. 감영의 복원도 건축물뿐만 아니라 그 공간에 의미와 가치를 함께 복원시켜야 한다. 문제를 전환하면 창조적 결과물이 나온다. 이번 전시회의 바통을 이어받아 해야 할 일들이 있다. 도는 전북이 한국 민주주의의 요람이라는 것을 각인시킬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를 만들어 지원해야 한다. 120년 전 선조들은 집강소를 세워 관민상화책을 실시했고, 지금 우리는 그 가치를 복원하여 정신을 기념하고 이어 받으려 한다. 다시 120년 후 후세들은 복원된 감영터에서 우리를 기억할 것이다.
집강소는 선출된 지방자치단체장들이 가장 먼저 방문해 관민 화합의 의지를 다지는 곳, 지역민들이 산책하며 지역의 발전과 질서를 고민하는 곳, 수학여행 온 학생들에게 농민운동과 지방자치의 역사를 가르치는 교육의 장이 될 수 있다. 전라감영터는 이런 의미를 염두에 두고 복원계획이 진행되어야 한다. 전시회를 시발점으로 하여 집강소를'민주문화자산'이라는 특별한 자산으로 지정하고 관리한다면 더욱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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