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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자동차 부품조립 강경아씨 "틈새시장 공략했더니 취업의 문 열렸어요"

강경아(39)씨가 전북여성교육문화센터 문을 두드린 것은 부품 조립에 눈을 돌리면서다. 다양한 사무직도 경험해봤지만, 미래를 보장할 수 없었다. 애당초 부품 조립 관련 제조업에 취업하겠다고 마음 먹었던 강씨는 좀 멀리 내다봤다. 오히려 여성들이 쉽게 눈을 돌리지 못했던 분야에 도전하는 게 전문성을 쌓을 수 있을 것이란 판단이 섰다. 경북 영주가 고향이지만, 이젠 '전라도 사람'이 다 된 그는 5년 전 두 아이들의 과제를 돕기 위해 컴퓨터 교육을 받으러 직업전문학교를 찾았다. 그는 "그렇게 많은 교육과정이 있는 줄 몰랐다"면서 "호기심 나는 대로 이것 저것 수업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남들이 어려워하는 캐드세무 회계 수업은 특히 그의 관심사와 맞아떨어졌다. 강사의 과제를 단숨에 풀어낼 정도로 재능을 보였던 그는 몸에 밴 부지런함으로 세무 회계 자격증까지 땄다. "처음엔 세무 회계 사무실에 취업했다고 안심했더니, 그것도 한 달밖에 못 갔어요. 신참인 제가 고참의 연배와 비슷비슷해져서요." 결국 그가 눈을 돌린 것은 부품 조립업. 지난달 (주)제논전장(대표 조영호)에 취업한 그는 자동차 전기 조절 장치를 손으로 직접 조립하는 일을 맡고 있다. "처음엔 잘 몰라서 힘을 많이 썼는데, 익숙해지니까 조금만 배우면 누구나 다 할 수 있겠구나 싶어요." 자동차 부품 조립은 순간의 집중력과 꼼꼼함이 요구 돼 여성의 강점이 잘 발휘되는 분야. 전북여성교육문화센터에서 교육을 받고 취업한 1기 졸업생 '군기 반장'을 비롯해 14명의 여성 직원들은 가정의 소소한 고민거리까지 나누는 끈끈한 가족이 됐다. 근무 시간은 대략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학원 다니느라 나보다 더 바쁜"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니 신경 쓸 일은 더 줄어들었다. 아이들은 물론 남편까지 그의 일을 존중해주는 덕분에 매일 생활체조로 체력 관리까지 하고 있다. "어떤 직업을 가질까 고민하는 주부들이 있다면, 전북여성교육문화센터로 가서 전문가들의 상담을 받아보라고 권합니다. 무엇보다 여성들이 쉽게 관심을 갖지 않는 틈새시장을 공략했으면 해요.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먼 훗날 대기업에도 취업문이 열리지 않을까요." (끝)

  • 사회
  • 이화정
  • 2012.06.20 23:02

9. 전동지게차 운전사 신순금 씨 "지게차 운전 20년…모든 일 마음먹기에 달렸죠"

"기자님! 지게차 운전한다고 하니 무서운 아줌마로 생각하고 오셨죠? 어때요, 제가 무섭게 생겼나요? 호호호"전동지게차(2.5t)를 운전하는 아줌마가 있다 하여 찾아간 곳은 김제시 만경읍 몽산리에 소재한 세중산업(주)(대표 이명애).세중산업(주)은 각종 쌀포장지 및 사료포장지, 연포장 등 20여종류의 포장지를 100% 주문 생산 하는 초일류 종합포장 제조업체로, 연매출 90여억원을 올리고 있는 중견 업체다.이곳에서 지난 1992년 부터 20여년째 진동지게차(2.5t)를 운전하며 회사 발전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는 신순금(여 54)씨를 만났다. 신 씨는 회사 내에서 억척스럽고 책임감 강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맨 처음 회사에 일반 직원으로 입사하여 근무하고 있는데 어느날 사장님이 지게차 운전을 한번 배워보라고 권하데요, 그래서 여자도 할 수 있냐 물으니까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 배워보라 재차 권합디다. 그래서 지게차 운전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벌써 20여년이...뭘 할만 하데요."신 씨는 이후 특유의 성실함과 억척스러움, 욕심으로 지게차 운전을 마스터 하고 당당하게 지게차를 운전한게 벌써 20여년째가 됐다. 신 씨의 성실함과 근면함은 회사에서도 인정받아 지금은 어엿한 주임님이다."처음에는 박스를 떨어뜨리는 등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그때마다 오기가 발동하데요, 그래서 이를 악물고 배웠지요. 지금생각하면 웃음도 나오고 그러네요"신 씨의 지게차 운전 솜씨에 대해 회사 동료 A씨는 "아휴말도말아요, 어찌나 욕심도 많고 책임감이 강한지 한번 맡은 일은 죽어도 끝내고 퇴근해야 직성이 풀리는 독한(?)아줌마에요"라면서 "신 주임의 그러한 정신이 오늘날 남자 직원들도 다루지 못하는 지게차를 노련하게 다루는 근간이 됐을 겝니다"라고 귀띔했다.신 씨는 "글쎄요, 이 세상에 여자라고 해서 못할 일은 없다고 봐요, 다만 힘들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마음 먹기에 달렸다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강한 정신력을 갖고 도전하느냐에 따라 승부가 갈린다고 봅니다"라며 강한 정신력으로 무장하고 사회에 덤벼들면 얼마든지 여자들도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자신한다.정말 열심히 살고 있는 것 같다는 기자의 질문에 신 씨는 "글쎄요, 제가 이만큼 열심히 살고 있는 것은 우리 가족들의 정성어린 성원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남편과 자식(2남1녀)들이 적극적인 후원자이지요. 남자나 여자가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살아갈때는 무엇보다도 가족들의 성원과 배려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아마 다들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거 아닌가요?"라며 밝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억척스러우면서도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오늘도 지게차를 운전하며 종이 박스를 나르고 있는 신 씨의 모습에서 직장 동료들은 희망과 자신감을 얻는다고 좋아했다.

  • 사회
  • 최대우
  • 2012.06.13 23:02

8. 토스트 전문점 운영 이수화씨 "취직만 답인가요? 창업하니 새 길 보이네요"

"창업을 하기 전까지는 생각만 많았어요. 여러가지를 배우면 뭣 합니까. 일단 저질러야 쓸 수 있죠. 그리고 기회는 스스로 만들어야 합니다."전주시 송천동 신동초 앞에서 토스트 전문점을 운영하는 이수화 씨(43). 이 씨는 지난해 11월부터 사장님이 됐다. 혼자 3개의 냉장고와 5개의 기계 앞을 오고가며 주문받고, 조리계산하느라 손님이 조금이라도 몰리면 정신이 없다.전업주부였던 그는 두 자녀가 '왜 엄마는 집에 있으면서 잔소리만 하냐'라는 말을 듣고 취업전선에 나서게 됐다. 처음에는 전북여성교육문화센터에서 건설회계를 수강했다. 하지만 창업으로 눈을 돌렸다. "마흔이 넘어 건설회계 하나 배워 취직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죠. 나이도 어리고 더 많이 준비한 친구들에 비하면 면접기회도 적었죠. 집단 상담 중 성격적성 검사를 했는데, 창업이 더 맞겠다 싶었어요." 이 씨는 지난해 9월 전북경제통상진흥원에서 시니어 창업교육을 받던 중 지인의 소개로 한 달만에 가게를 열었다. 그는 "부모님도 구멍가게로 딸 셋을 키웠죠. 장사를 해야 돈을 벌 수 있다는 인식은 갖고 있었다"면서 "프랜차이즈라 특별한 비법 없이도 창업이 가능하고 급하다는 생각에 문을 열었다"고 소개했다. 문제는 개업 직후 찾아온 방학이었다. 개학 때까지 3개월 동안은 적자였다. 1200~4000원의 토스트, 커피, 각종 음료 등 40여개의 메뉴를 취급하며 사람을 상대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개업 뒤 한동안은 발이 부르트도록 전단지를 돌리기도 했다.이제는 학부모의 사랑방으로 자리잡고 단체주문도 왕왕 들어온다. 멀리서도 안부 인사를 건네는 자식같은 단골도 생겼다. 이 씨는 "저도 엄마니까 먹을거리에 좀 더 신경을 씁니다. 맨날 토스트를 사먹는 아이를 보면 '밥을 먹어야 할 텐데'라는 걱정도 든다"고 귀띔했다.주부였던 그가 장사를 할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은 가족의 협조였다. 가장 큰 힘은 바로 남편. 보증금 대출부터 계약서 작성, 본사로의 의견 전달 등을 남편이 도맡았다. 그리고 두 아이는 오전 8시30분 개점, 저녁 9시 폐점하는 엄마를 이해했다.이 씨는 창업 자체가 자신감의 밑천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월평균 150만 원 안팎의 수입으로 아직은 인건비를 건지는 정도지만 앞으로 더 좋은 가게를 하기 위한 경영수업이라 여깁니다. 이걸 잘 해내면 무엇이든 더 잘 할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고 밝혔다.

  • 사회
  • 이세명
  • 2012.06.06 23:02

7. (주)프로파워 최현순씨 "경력 단절… 겁내지 마세요"

"아침에 일어나 다시 출근해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있다는 것이 너무 즐겁습니다"주부 최현순 씨(38전주시 송천동)는 요즘 매일 아침을 즐겁고 설레이는 마음으로 맞는다.결혼 10년만에 다시 직장생활 시작하며 생활에 새로운 활력소를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다.결혼전 전주지역 병원에서 간호조무사로 5년여를 근무하다 결혼과 함께 전업주부가 된 최 씨는 그동안 임신과출산, 육아와 식사, 청소 등 매일매일 다람쥐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일상의 생활에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두 아이의 엄마와 한 남자의 아내로만 살아왔다.그러나 이제는 두 아이가 초등학교(10살)와 어린이집(5살)에 다닐만큼 성장해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서 돈도 벌고 삶의 활력도 재충전하고 싶은 마음에 취업문을 두드리게 됐다.최 씨는 지인으로 부터 전북여성교육문화센터의 전북여성새로일하기센터를 소개받고 지난 2월 취업상담을 했다.하지만 아직 아이들이 엄마의 보살핌이 필요한 나이다보니 야간근무 등 장시간 근무가 어렵고 결혼전 일했던 간호조무사도 오랜 기간 경력 단절로 원하는 일자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전북여성새로일하기센터는 제논전장 자동차부품 조립검사와 코튼클럽 내의포장 검사, 카이테크 부품조립 검사직 등에 최 씨의 취업을 알선했고 뉴파워프라즈마의 반도체조립생산직의 경우 동행면접까지 했지만 관련업종 경력이 없다는 이유로 취업에 실패했다.최 씨는 이에 실망하지 않고 친언니의 친구로부터 자신이 근무하는 (주)프로파워를 추천받고 전북여성새로일하기센터에게 알선을 의뢰해 면접을 치른 결과 지난 3월 생산직에 채용되는 기쁨을 누렸다.(주)프로파워는 완주군 봉동에 소재한 연료전지평가장치 생산업체로 여성친화기업으로도 선정돼 있다.여성친화기업은 경영자가 여성인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근로자의 일과 가정 양립을 위한 제도적 문화적 환경을 갖춘 기업으로 근무시간(오전 8시30분오후 5시30분) 등이 최 씨가 원하는 직장조건에 최적이다.최 씨는 "관련 경력도 없는 저를 채용해준 회사측에 너무 감사하다"며"처음엔 내가 과연 일을 잘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됐지만 지금은 동료들과 너무 즐겁게 일하고 있다"고 밀했다.맞벌이 전에는 집안 일을 도와주기 않던 남편이 이제는 많이 도와주고 있다며 환하게 웃은 최 씨는 앞으로 소망이 있다면 오랫동안 직장에 다니며 지금보다 조금 큰 집으로 이사해 가족들과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고 밝혔다.

  • 사회
  • 강현규
  • 2012.05.30 23:02

6. (주)화신 김미선씨 "실력이 진짜 스펙…미리 준비하세요"

"아는 것이 없다고 집에만 가만히 있으면 기회는 오지 않습니다. 항상 준비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취직을 하려면 어떤 분야의 직장을 선택할 것인지 계획하고 준비해야 기회가 왔을 때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완주군 봉동읍 산업단지내 (주)화신에서 일하고 있는 김미선씨(46)는 "전북여성일자리센터의 추천으로 2009년 8월에 입사했는데 직장생활이 너무 좋다. 정년퇴직 때까지 별 일 없이 계속 근무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현대자동차전주공장 협력업체인 (주)화신 전주공장(공장장 유찬하)에서 김씨가 하는 일은 브레이크의 커버를 조립하는 작업이다. '생산직'이라서 힘들 수도 있지만 "여자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라면서 "세상에 편하고 쉬운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어떤 일이든 만족하면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 괜찮은 일자리가 많다고 본다"고 강조했다.50여명의 직원 중 여성은 김씨와 같이 입사한 동료, 그리고 올해 초 입사한 직원 등 단 3명뿐이다. 그만큼 제조업 현장은 근력이 센 남직원을 필요로 하고 있지만 김씨가 하는 일은 여직원도 가능해 회사측에서 고용했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직장 분위기가 좋아졌고 김씨가 직원 화합에 톡톡히 역할을 하고 있다.20~30대의 직원들은 누나이모처럼 여직원을 대하고 있고, 상사들도 묵묵히 도와주고 있다.회사측은 임금체계에 남녀 차별을 두지 않고, 비흡연직원을 위한 휴게공간을 마련하는 등 사기진작을 위한 배려를 아끼지 않고 있다."40대 주부는 아이들이 어느 정도 컸기 때문에 육아 걱정이 적잖아요. 야근을 해도 남편과 아이들이 이해해 주니 맘 편하게 일할 수 있어요."30대 주부의 경우 육아 때문에 직장생활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김씨는 직접 체험했다. 오전 8시부터 오후 2시까지 파트타임으로 식당에서 몇년간 일했었는데 1남1녀의 운동회졸업식에도 가지 못했다. 지금도 마음이 아프단다.아침에 5시45분에 일어나 여고생 딸을 학교보내고 8시에 출근하는 김씨는 원칙적으로 주5일 근무지만 생산물량이 밀려 토요일 근무도 해야 하고 평일에는 하루건너 저녁 8시까지 잔업도 한다."일이 많아 회사가 잘되는 것이 좋죠. 그래야 직원들도 힘나죠"라는 김씨는 "일찍부터 생산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남편을 잘 이해하는 것은 물론 우러러보게 됐다"고 설명했다. "회사에서 연월차를 지켜줘 가족과 해외여행도 다녀오고 사는게 재밌다. 시간이 너무 빨리간다"며 "월급을 아끼고 모아 내년 10월에 완공되는 중형아파트에 입주한다"고 자랑했다. 김씨는 "전북여성일자리센터(센터장 김보금)에 교육프로그램이 많이 마련돼있으니 주부들이 자신에게 맞는 프로그램을 찾아 배웠으면 좋겠다. 그렇게 준비하면 기회는 꼭 온다고 믿는다"고 거듭 말했다.

  • 사회일반
  • 백기곤
  • 2012.05.23 23:02

5. 완주 화산 아동센터 조지은씨 "준비한 자에 기회…지금 도전하세요"

그는 오늘도 동분서주 바쁘다.가정에서는 무엇이든지 억척스럽게 해내고야 마는 든든한 엄마이자 일터에서는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선생님으로 인정받는 것도 그 부지런함 덕분.완주 화산지역아동센터에서 돌봄이 필요한 조손가정과 저소득층 자녀의 학습지도를 하고 있는 조지은 씨(42)가 그 주인공.화산지역아동센터에는 3명의 선생님과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모두 30여명의 학생이 있다. 일주일에 두 번(화·목요일) 오후 5시부터 7시까지 아이들을 지도한다."가정형편 때문에 할머니·할아버지 슬하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에요. 여러모로 상처가 많은 이 아이들 마음의 문을 여는 게 가장 힘들었죠. 이제는 스스럼 없이 안기며 오늘(15일)이 스승의 날이라고 색종이로 접어 만든 카네이션을 달아 준 아이들을 보며 보람을 느껴요"그는 지난 2010년부터 한일장신대 사회서비스지원센터 소속으로 완주 소양과 화산 지역에서 아동과 청소년 등을 대상으로 진로·학습 지도와 상담 업무를 맡고 있다. 결혼 전 입시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경험도 살리고 소외계층에 대한 봉사도 할 수 있는 일을 찾던 중. 평소'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온다'라는 신념으로 4년전부터 관련 자격증(사회복지사·방과후 지도사) 취득을 위한 공부에 매진했다.자격증 취득과 더불어 틈틈이 독서지도사 자격 취득을 위한 공부도 하며 자신이 쓰임 받을 곳을 기다렸다.그때 전북여성일자리센터의 도움을 받아 꼭 맞는 일을 찾게 되었단다."처음엔 내가 과연 이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컸어요. 남편과 아이들이 '당신은 할 수 있어, 엄마는 잘할 거야 '라며 적극적으로 지지해준 덕에 용기를 냈죠"그는 나이와 학벌, 육아문제로 고민하며 취업을 주저하는 여성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도전하세요. 해보지도 않고 집안에만 있다면 아무도 손 내밀어 주지 않아요. 용감하게 한 발자국만 나와 주위를 둘러보면 사회에서 인정받고, 선택도 받을 수 있는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일하면서 달라진 자신의 모습이 그 증거라고 말한다. 인터뷰가 있던 이날(15일)도 그는 아이들을 만나러 간다. 아직 수업 시간은 아니지만 쉬는 학교가 많아 '제때 식사를 못하는 아이들이 있지나 않을까'하는 노파심 때문이다. 그는 베푸는 사랑은 낮은 곳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 사랑을 실천하는 일을 찾게 되어 누구보다 행복하다고 말한다."아이들 학습 지도뿐만 아니라 상담 업무도 보면서 제 자신의 한계점을 알게 됐어요. 한창 자라나는 아이들을 대하는 것은 성인과 달라요. 그에 맞는 적절한 상담 기법이 필요한데 그에 관한 공부를 하고 있어요. 아이들 관점에서 바라보며 이해하기 위해서죠"천직이라는 건 그를 두고 하는 말 같다. 스스로 만족할 줄 모르고 쉼없이 성장하는 그의 앞날이 궁금하다.

  • 사회일반
  • 최명국
  • 2012.05.16 23:02

4. 진안자활센터 사무보조원 백영애씨 "정착 13년 만에 취업…당당한 자신감 얻었죠"

"이렇다할 경력도, 전문자격증도 없는 조선족으로서 취직을 하기란 참 힘들더라구요. 그야말로 맨 땅에 헤딩했죠. 그래서인지, 어렵사리 구한 지금의 첫 직장이 더 소중한가 봐요."진안 제2농공단지 내 전북진안지역 자활센터에서 사무보조로 일하고 있는 백영애씨(이주여성41진안읍 군상리 거주)는 "역사적으로 얽히고 얽힌 나라(중국)의 소수민족 출신이라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인식에 힘들었다"면서 이같이 소회를 밝혔다.중국 요녕성 심양시 출신인 백씨가 한국 땅을 밟게 된 것은 13년전인 지난 1999년. 한국 수원에 있는 친척의 소개로 농삿꾼인 현재의 부군 진규상씨(55)와 화촉을 밝히면서다.결혼 전, 한국에 가면 같은 말을 하는 같은 민족이라 '귀속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과 같은 민족의 공평한 대우를 내심 바랐다.하지만 현실은 생각과 달랐다. 조선족 출신이라는 민족편견 속에 경력은 물론, 변변한 자격증 하나없는 백씨를 덜컥 고용할 직장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백씨는 첫 직장을 가진 지난 3월 이전까지 시댁에 대물림되던 한봉벌 농사에만 전념해야 했다. 간간이 식당일도 나갔다. 시골 아낙으로 살아오기를 10여년. 멈춰있던 그녀를 움직이게 한 것은 커가는 1남2녀의 자녀들. "왜 엄마는 매일 농사만 지어. 다른 엄마들처럼 사무실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데."라는 큰 딸의 말이 가슴에 비수로 꽂히면서다.그 때부터 백씨는 알량한 자격증이라도 딸 요량에 '펠트만들기(바느질)'를 배우는 한편, 지역 자활센터에서의 교육 등 안정적인 직장을 갖기 위한 담금질에 들어갔다. 그러한 열정은 지난해 말 그녀의 손에 워드와 엑셀 자격증 2개를 쥐게 했고, 한국 정착 13년만에 진안자활센터에서 청소업무파트인 '마이크린사업단'의 사무보조로 몸담게 했다.백씨는 "한국에 오기까지의 결심도 힘이 들었고 힘들게 내린 결심이 무색하게도 적응조차 힘들어 비틀대던 내게 하나의 큰 울타리가 되어준 것은 가족이었다"고 했다.1년 계약직이지만 어엿한 직장인이 된 그녀는 "취직과 함께 마련한 자동차로 여느 일반 가정처럼 주말에 애들과 함께 가족 나들이도 갈 수 있게 됐다"고 소박한 너스레를 떨었다.소탈한 여유만 생긴 게 아니다. 취업 후, 당당한 자심감까지 생겼기 때문이다. "이제 커가는 자녀들에게도 떳떳한 엄마가 될 수 있어 기쁘다"는 백씨는 "작은 분식점 하나 갖는 게 꿈"이라며 바람을 내비쳤다.취직을 준비하는 이주여성들에게 그녀는 "산골에 산다는 강박감에 농사만 지을 게 아니라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간다면 모두에게 기회는 주어질 것"이라며 선배로서 조언을 남겼다.

  • 사회
  • 이재문
  • 2012.05.10 23:02

3. 가나다푸드 정순덕 조리장 "보글보글…행복을 요리해요"

"농사만으로는 가계를 꾸리기 힘들어 취업한 지 1년이 돼가네요. (경제적) 목표가 달성될 때까지 열심히 일해야죠"완주군 과학산업단지 (주)동양정공 구내식당 위탁급식업체인 가나다푸드의 정순덕 조리장(58)은 "집이 완주 운주면이어서 자가용으로 통근해야 하는데 시간이 맞지않아 취업에 어려움을 겪었다"면서 "작년 4월말 입사하면서 업체의 배려로 유류비를 보조해줘 살림에 크게 보탬이 된다"고 말했다.충주 출신인 정씨는 94년 상경해 서울 화곡동양평동 등지에서 갈비집백반집 등을 운영했고 2008년에는 전주에서도 분식집을 했었다. 남편 송춘오씨(58)의 고향인 운주면으로 2009년말 귀농했으나 농사는 노력한 만큼 수익이 나오지 않았다."식당을 하면서 적금보험 등을 들었는데 농사는 경험이 없어 전혀 소득이 없는 거에요. 오디는 신통치 않고 고사리는 내년부터나 수확하죠. 식당 경력을 살려 주방에서 일하게 됐는데 적성에 맞아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고 있습니다"정씨는 장정순씨(52), 이수경씨(50), 이선영씨(40) 등 직원들에게 "내 일처럼 일하자"고 말한다. "점심과 저녁을 만드는 우리가 주인이므로 주인의식이 있어야죠. 시간만 채우려 하면 엉망이 되지 않겠어요"라고 반문한다.정씨의 인화력 덕분에 직원들은 1년간 같이 일하며 단단한 팀워크를 자랑하고 있다. 이전에는 직원들이 몇개월만에 그만두는 등 이직이 잦았다는 것이 회사측의 설명이다.점심 때 230명, 저녁에 200명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그는 9시에 출근해 식자재를 손질하고 조리하고 배식에서 설거지까지 마치려면 하루종일 바쁘다. 오후에 잠깐 쉬고 저녁을 4시50분~6시에 배식한 후 7시에 퇴근한다. 제조업의 특성 때문에 '사람을 구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토일요일에도 일하고 있다. "제가 직접 식당을 해봐서 회사의 어려움을 잘 이해하는 편이에요. 힘들어도 제가 나와서 일해야죠"그의 말에서 책임감이 절로 베어 나온다.'음식 맛이 좋다'는 직원들의 평가에 "손맛이야 비슷하죠. 정성껏 양념을 잘 쓰면 맛이 나오는거죠"라고 겸손해 했다."할 도리를 다하면 할 말도 할 수 있고, 요구할 수도 있고, 그렇잖아요. 저는 당당하게 살고 싶어요" 그의 음식이 인기를 끄는 비결일 것이다."너무 바쁘고 시간이 없는데 마을 어르신들이 오디도 따주고 고사리 밭도 봐주고 있어요. 이 기회에 너무나 고맙다는 말씀을 드립니다"그는 "힘 닿는데 까지 계속 일할 것"이라며 "5년 정도 일찍 귀농했으면 부담없고 더 좋았을 거에요. 마을 인심도 좋고 자연과 함께하는 전원생활에 아주 만족하고 있습니다. 주위에 귀농을 홍보하고 있죠"라며 활짝 웃었다.

  • 사회일반
  • 백기곤
  • 2012.04.25 23:02

2. 초보 재봉사 모브석행씨 "드르륵…미래의 꿈 수놓아요"

전주시 팔복동 티에이치상사(전무이사 권영웅)에서 재봉 일을 하고 있는 결혼이주여성 모브석행씨(23·캄보디아). 쉴 틈 없이 돌아가는 재봉틀 사이로 구슬땀을 흘리는 모씨는 비록 1년 차지만 베테랑들만이 할 수 있는 업무를 맡고 있다. "캄보디아에서는 친구들이 많았고 성격도 유쾌한 편이었어요. 하지만 한국에 와서 말도 잘 통하지 않고 하루 종일 아이와 눈만 맞추고 있는 게 너무 힘들었습니다." '친구 따라 강남간다'는 말이 있지만 모브석행씨는 '언니 따라 한국'에 왔다. 그는 먼저 한국에 시집 온 친언니 마우래앵씨(25·캄보디아)의 소개로 지난 2009년 남편 양희주씨(39)를 만나 한국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활동 공간은 넓지 않았다. 집안에서 아이를 보다 가끔 남편이 운영하는 카센터에 나가 잔 심부름을 하고 언니와 전화통화를 하는 게 하루생활의 전부였다. 무료한 시간을 보내던 그는 우연히 전북여성교육문화센터에서 운영 중인 '신소재섬유디자인 맞춤형 인력양성과정'에 대한 정보를 접했다."'말도 잘 통하지 않는데 일을 할 수 있을까?', '가족들은 반대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먼저 앞섰지만 지금 아니면 세상에 나갈 기회가 없다고 생각했어요."우려와는 다르게 가족들은 그의 취업을 적극적으로 지지해줬다. 시어머니는 아들의 보육을 맡아줬고 남편은 집안일을 거들어줬다. 가족의 든든한 지원사격에 힘입어 취업전선에 뛰어든 그는 활발한 성격을 바탕으로 교육 1달 만에 취업에 성공했다. "문법책으로 한국어를 공부했지만 어려웠어요. 한국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 하는 게 말을 쉽게 배울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현장실습에서 일을 배우는 것도 중요했지만 그에게 첫 번째 목표는 '한국 사람과 친해지기'였다. 한국인과 많은 이야기를 시도 한 끝에 한 달 만에 소통 문제를 해결한 그는 업무능력도 자연스럽게 향상돼 회사 측에서 취업 제의를 받았다. 티에이치상사 권영웅 전무이사는 "실습생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업무 습득 능력이 뛰어났다"며 "성격도 활발하고 주위사람들과 잘 어울려 실습기간이 끝나지 않았지만 채용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집안에서 '보배'로 불린다. 떡두꺼비 같은 아들도 낳았고 취업에 성공해 가정살림에 도움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또 다른 '보배'가 되기를 소망한다. 월급의 70%를 저축한다는 모브석행씨는 "돈을 모아 미용실을 차리고 캄보디아 있는 부모님을 한국으로 모셔와 같이 살고 싶다"며 눈빛을 반짝였다.

  • 사회일반
  • 김정엽
  • 2012.04.18 23:02

1. 우신산업 용접공 김옥순씨 "금녀의 벽? 꼼꼼한 여성이 유리해요"

아이들 키우랴, 남편 뒤치닥거리하랴 바빴던 '아줌마'들이 가계 살림이 빠듯해지자 현장으로 나오고 있다. 전문직이 아닌 터라 생산직 현장에서 일 배우느라 삶이 버겁지만, 그래도 어쩌랴. 가족들에게는 '슬픈 장미' 보다는 '명랑한 콩나물'이 나은 것을. 전북여성교육문화센터(센터장 김보금)의 협조로 연재하는 '힘내라! 아줌마'는 매주 수요일 도내 산업 현장에서 뛰고 있는 아줌마들의 열정과 패기를 들여다보는 기획이다.첫 주인공은 완주군 봉동읍에 위치한 자동차 부품 전문업체 (주)우신산업(대표 국중하)에서 여성 용접공으로 일하고 있는 김옥순(62)씨. 불꽃 튀는 현장 속에서 기름이 안 새도록 기계로 두 철판을 잇는 11년 차 베테랑 용접공이다."처음엔 기계가 손에 안 익어서 고생도 많이 했지요. 그런데 내가 살림은 '꽝'이라. (웃음) 일하는 게 좋아요." 남편 따라 제주도로 시집을 간 뒤 사업 실패를 겪은 그는 1987년 도망치듯 친정이 있는 전주로 왔다. 당시 그의 손에 쥔 게 고작 20만원. 지난 12년 간 한솔제지에서 그는 허리띠 졸라가며 4남매를 키워냈다. 하지만 2001년 기업의 구조 조정으로 하루 아침에 직장에서 떨려났다. 당시 아이들은 대학생 둘, 고등학생 둘이었다. 눈앞이 아득해진 그를 구원해준 것은 우신산업에 입사한 동료다. 당시 국중하 대표는 '나이 많은 아줌마'라는 꼬리표에도 불구하고 그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우신산업의 핵심 업무엔 아줌마들이 많다. 초반에 2~3명에 불과하던 여직원들은 현재 24명까지 불어났다. 특별한 기술이 있는 것도, 나이가 적은 것도 아니었다. 여성들은 남성에 비해 일을 한 번 맡기면 끝까지 해내고야 마는 책임감과 성실함이 담보됐기 때문이다. 다만 시시때때로 물량을 맞추기 위한 연장 근무를 소화하는 게 관건. 이미 자식들이 장성해 비교적 시간 여유가 있는 그와 같은 40~50대 아줌마 사원들은 그나마 낫다. 매일 오후 9시 퇴근으로 웬만한 대기업 사원들 보다 더 바쁘지만, 월급은 그보다 못하다. 경력이 쌓여 잔업과 특근까지 포함해 월 230여 만 원. 그는 "젊은 친구들이 들어와서 일을 배워가면 좋은데, 오래 버텨내질 못하는 게 정말 안타깝다"면서 "나를 받아준 회사가 고마워서 건강이 허락하는 한 끝까지 다니고 싶다"고 환하게 웃으며 이야기했다. 오히려 "나처럼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는 아줌마 때문에 젊은 사람들 일자리가 빼앗기는 거 아니냐"고 미안해했다. 본래가 긍정적인 에너지로 꽉 찬 사람이라 그는 자신의 운명을 탓해본 적도 없다. 남편 잘 만나서 일 안하고 호강하는 아줌마들의 부러워해볼 법도 하지만, 이 같은 지청구는 애당초 그의 것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이름 대신 '믿음','소망','사랑'이라고 휴대폰에 저장해둔 4남매들과 안부를 주고받을 수 있어 행복한 그는 오늘도 열심히 달린다. 그에겐 매일 매일이, 지금 이 순간이 인생의 황금기다.

  • 사회
  • 이화정
  • 2012.04.11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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