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6-04-03 20:06 (금)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지역 chevron_right 지역일반
일반기사

[나의 이력서] 탤런트 김성환 - ⑧

⑧ 방송 통폐합후 생계 막막

영웅시대를 끝내고 탤런트 정욱씨(오른쪽)와 기념촬영. (desk@jjan.kr)

드라마에만 매달려서는 먹고 살기가 빠듯했다. 80년대 초, 일일연속극에 고정 출연하면 월 45∼50만원 정도 벌었다. 주말연속극, 일일연속극 등에서 주연으로 출연하면 1백만원 정도 됐다. 그러나 방송국 통폐합 후 드라마 출연이 줄어들면서 나는 생계가 막막할 지경이었다. 뭔가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나는 81년 초 드라마 ‘약속의 땅’에 얼마전 사망한 탤런트 이미경 씨와 부부로 출연한 적이 있다. 상당한 인기를 끈 이 작품은 내가 어려운 생활을 탈피하는 돌파구 역할을 했다. 인기 작가 나연숙 씨가 글을 쓰고, 곽영범 정병식 씨가 공동연출한 이 작품에서 나는 전라도 사투리를 정말 멋있게 구사, 시청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시청자 반응이 얼마나 좋았던지, 당시 서울 중심가에 위치한 나이트클럽 박순용 사장이 나를 찾아와 출연을 제의할 정도였다. 나이트클럽 ‘엠파이어’는 무교동에서 ‘월드컵’과 쌍벽을 이룬 유명 나이트 클럽이었다.

 

박 회장은 “무대에 올라가서 손님들에게 인사만 하면 ‘월 2백만원’의 출연료를 주겠다”고 제의했다. 당시 겨우 50만원 벌던 나에게 2백만원은 엄청난 거금이었다. 깜짝 놀란 나는 제의를 받아들이기가 부담스러웠다. 엄청난 제의에 나는 지레 겁이 났다. 그래서 거절하려고 “3백만원을 주면 나가겠다”고 대답했다. 박 회장은 “정신나간 놈. 최고 A급도 3백만원짜리가 없는데 무슨 헛소리냐”며 가버렸다.

 

그리고 1년 후. 생활이 어려워진 나는 고심끝에 엠파이어 박 사장을 찾아가 2백만원을 주면 출연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 사장은 “지금은 1백만원에도 안써”하고 매정하게 거절했다.

 

사실 1년 전에는 ‘약속의 땅’이 큰 인기를 얻었기 때문에 내 주가 또한 높았지만, 1년이 지나면서 방송 출연도 뜸해진 나의 주가는 바닥을 기고 있었다. 날이 갈수록 KBS에서 별다른 배역을 받지 못해 빚을 내야 할 형편이었던 나는 물러설 수 없었다. 염치불구하고 사정했다. 그러나 박 사장은 열흘, 아니 사흘만 지켜보고 판단해 달라는 제의마저도 거절했다. 손님이 원하는지 알 수 없는 사람을 무작정 무대에 세울 수 없다는 것이었다. 자신이 1년전 당한 수모를 갚겠다는 태도였다.

 

박 사장에게 퇴짜맞은 나는 클럽 실무자인 홍상기 부장(현 가수 박주희 매니저)을 찾아가 딱 3일간만 무대에 올라가 공연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설득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마침내 홍 부장의 허락이 떨어졌다. 나는 3일 조건으로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그날 밤부터 엠파이어 클럽이 발칵 뒤집혔다.

 

최진희씨가 노래를 부르고 무대를 내려오자, 대기하고 있던 나는 마이크 들고 올라가면서 “하따, 샥시 노래 참 잘 허네”하면서 손님들의 시선을 끌어모았다. 하얀 바지 저고리에 흰 고무신을 신은 나는 사전 각본에 따라 사회자와 재담을 나눴다.

 

“어이, 사회자. 내가 시방 전라도에서 올라왔는디 나도 노래 한자리 허세”

 

“아니, 이 양반이···. 여기는 손님들이 노래하는 자리가 아니니까 어서 내려가세요”

 

“어, 이 사람아. 내가 이래봬도 노래라면 괜찮게 허는 사람이여”

 

“아, 그래도 그렇지. 손님으로 오셨으면 술 한 잔 하면서 구경이나 하세요”

 

“아니, 이 사람이. 내가 이래봬도 우리 동네에서 남진이보다 노래를 더 잘한다고 소문난 놈이여. 아 글씨, 전국노래자랑 나가가꼬 내가 분명히 일등했는디, 워떤 놈이 빽썼는지 장려상으로 밀려버린 놈이랑께. 암튼 내가 노래 한 자리 불러볼랑께 한 번 들어보라고”

 

나는 호주머니에서 1만원짜리 지폐 한장을 꺼내 사회자 호주머니에 찔러 주고, 노래를 불렀다.

 

내가 부르는 전라도 노래는 일품이었다. 모든 노래를 전라도 사투리로 바꿔 부르는 것인데, '마음이 약해서'의 경우 “맴이 약해서, 잡들 못했네, 돌아서는 이 가심···”하고 구수한 사투리로 불렀다. (계속)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전북일보 desk@jjan.kr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지역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