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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역지사지(易地思之)

지난 11월 여수 출입국관리소에 불이 나 외국인 10여 명이 죽고 20여 명이 다치는 참변이 일어났다. 이들 희생자는 대부분 불을 피하려는 노력을 했지만 외국인 수용시설이라는 특수한 환경이어서 화재규모에 비해서 희생자가 많았다. 이들 불법체류자들을 감금했던 쇠창살은 화재라는 긴박한 상황에서도 여전히 열릴 줄 몰랐던 것이다.

 

데자뷰. 이런 불법체류자들의 죽을 보면서 낯선 느낌 대신 동일하지는 않지만 비슷한 일들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느낌이 든다. 이번 사건은 우리나라에 불법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들을 수용하는 시설이라는 특정한 장소가 배경일 뿐 결국은 우리나라 불법 체류자들이 겪는 일로 귀속된다. 이들 외국인들이 한국에 대해 갖는 희망을 ‘코리안드림’이라고 하지만 그 단어도 이제 장밋빛만은 아니다. 많은 동남아인들이 잘사는 나라 한국에 왔다가 생각지도 않았던 어려움들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 우리 역시 ‘아메리칸드림’을 좇아 무모하리만큼 미국행 비행기를 오르기를 고대했던 때가 있었다. 미국이민의 역사에서 우리나라 사람들 역시 불법체류자의 신분으로 기술될 수밖에 없었떤 때 겪어야 했던 부당한 처우에 우리는 공분하곤 했다. 이런 배경의 최인호 소설 ‘깊고 푸른 밤’은 이후 영화감독 배창호씨가 같은 이름의 영화로 만들어 화제가 되었떤 기억이 생생하다.

 

하루 빨리 영주권을 취득해서 한국에 남아 있는 아내와 아이들을 불러들이는 것이 꿈인 백호빈(안성기)은 영주권을 얻기 위해 교포 여인 제인(장미희)과 결혼을 한다. 처음에는 당연히 위장결혼이었지만 같은 집에 살다보니 정이 든 제인 때문에 호빈은 갈등한다. 화장실에서 연습했던 미국의 국가(國歌) ‘성조기여 영원하라’를 불러 이민국 직원을 감동시킨 호빈은 영주권을 얻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이혼에 앞서 제인이 제안한 마지막 여행 중 그랜드 캐년 절벽 위에서 총성이 울리는 것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한 시대를 상징했던 영화 ‘깊고 푸른 밤’은 이제 우리 기억에서 아슴푸레하다. 대신 우리땅에 와 있는 불법체류자들이 눈앞에 생생하다. 개구리가 올챙잇적 생각 못한다는 말이 떠오른다. 입장이 바뀌면 생각도 따라 바뀌어야 하는 일들도 있겠지만 멀리서 온 손님을 귀하게 대접했던 우리네 풍습을 기억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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