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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순아! 더 이상은 도망가지마" 마니아층에 잔잔한 감동

KBS '인순이는 예쁘다'

인순이는 묻는다. "나는 도대체 누군가요 할머니". 그러나 무덤 속에 계시는 할머니는 대답을 할 수 없다. 인순이는 고민한다. 살인 전과가 있는 죄인이고 그로 인해 우리 사회의 쓰레기 취급을 받았다. 뒤늦게 재회한 엄마한테도 괄시받고 자살을 결심하지만 선로에 떨어진 취객을 구해내면서 '지하철녀'라는 별명과 함께 국민의 영웅이 된다.

 

엄마에게 등 떼밀려 연예계에도 발을 들여놓는다. 하지만 전과가 드러나자 그는 '거짓말쟁이'로 손가락질 받으며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인순이가 된다. 한순간의 실수로 꼬여버린 그의 인생은 계속해서 방향을 잡지 못하고 틀어진다.

 

인순이가 할머니에게 말한다. "모든 게 또 이렇게 엉망진창이 돼버렸어요." 정유경 작가, 표민수 PD의 합작품인 KBS 2TV '인순이는 예쁘다'가 인간의 숨겨진 속마음을 후벼파며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다각도로 투영하고 있다. 극단적인 설정에서 출발했지만 드라마는 과거에 머물지 않고 앞을 향해 나가면서 그속에서 오늘의 우리를 만나게 한다.

 

◇"달리기 중 가장 어려운 달리기는 과거로부터 도망쳐 달리는 것" '인순이는 예쁘다'는 편견에 관한 드라마다. 편견의 벽은 두텁다. 더구나 살인자에 대해서는. 드라마가 해결해줄 수 있는 것은 없다. 인순이가 아무리 예뻐도, 예쁜 짓을 해도 사회는 살인 전과의 낙인이 찍힌 그에게 곁을 내주지 않는다. 인순이는 감옥에서 나오기만 하면 모든 일이 해결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출소 후 세상은 상상 이상으로 가혹했다. 인순이를 대하는 사회의 모습은 정직하다. 거대한 조직 속에서 인순이는 나약하고 무기력하다. 하지만 드라마는 씩씩하고 용감한 인순이를 그리며 판타지를 준다. 절망 속에서도 누군가는 희망을 노래해야 하듯. 인순이는 매순간 무릎이 꺾이게 좌절하게 되지만 그럼에도 다시 한번 입술을 깨물고 일어선다. 시청자들은 그런 인순이를 보며 응원을 보내게 된다.

 

◇"넌 몰라 사람들에게 잊혀진다는 것이 어떤 건지, 얼마나 뼈아픈 건지 넌 몰라" '인순이는 예쁘다'는 욕망에 관한 드라마다. 인순이를 어린 시절 버린 엄마 선영(나영희 분)은 배우다. 한때는 인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알아주는 이 없는 퇴물이다. 선영은 인순이가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르자 인순이에게 자신을 대입하며 재기를노린다. 오랜 세월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살아온 선영은 뭐든지 자기 식대로 생각한다. 하늘을 찌를 듯하던 자존심은 남편의 외도로 이미 깊은 상처를 입었다. 그런 그에게인순이의 고통이나 고민, 바람은 안중에도 없다.

 

스타의 허위의식을 버리지 못하고 스타였기에 외로운 선영에게는 자신의 전성기가 가버렸다는 현실을 감내할 힘이 없다. 모성애는 위대하지만 모든 엄마에게서 그것을 찾으려는 것 역시 환상이다. 인순이는 "아무것도 없는 나보다 엄마가 더 거지 같아"라며 절규하기도 하지만 결국엔 그런 엄마 앞에서 참고 또 참는다. 사람들은 자신이 무슨 짓을 해도 끝까지 지켜줄 누군가를 꿈꾼다. 누구보다 그런 사람이 필요한 인순이가 역설적이게도 엄마에게 그런 존재가 돼준다.

 

◇"넌 나에 대한 편견을 극복할 수 없고 나 역시 너에 대한 자격지심을 극복할 자신이 없어" '인순이는 예쁘다'는 사랑에 관한 드라마다. 상우(김민준)는 중학교 시절부터 인순이를 마음에 품었다. 물론 인순이가 살인을 저지르기 전이었다. 어른이 돼 인순이와 재회한 상우는 인순이의 전과를 알게 되면서 수없이 갈등을 한다. 이성과 감성의 충돌 속에서 갈팡질팡하며 위선적인 행동을 계속 보여줬다. 인순이를 알기 전에는 누구보다 전과자에 대한 편견이 강했을 상우는 그러나 인순이 앞에서 "전과자도 알고 보면 착한 사람이 많다"는 식의 논리를 펼쳤다. 그러다 사과한다. 인순이 없이는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한 상우는 인순이에게 "그동안 비겁하게 굴어 미안하다"며 진심으로 사과하고 한 단계 성숙해진다.

 

진실한 사랑의 힘이다. 중년의 사랑도 있다. 그러나 이 사랑은 열병이다. 평생을 일벌레처럼 살아온 상우의 아버지 유 사장(최일화)은 오래 전부터 동경해오던 배우 선영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는다.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는 선영에게 "절 살려주셨다"며 온 마음을 바친다. 선영이 무슨 짓을 해도 "무조건 다 잘하신 겁니다"라며 사춘기 소년처럼 설레한다. 그런 유 사장에게 평생을 뒷바라지해온 아내의 존재도 눈에 안 들어온다. 그의 사랑은 아내를 아프게 한다.

 

◇"제발 이제 더 이상 도망가지 마. 네 인생에서도 도망가지 말고, 나한테서도 도망가지마" '인순이는 예쁘다'는 희망에 대한 드라마다. 인순이를 비롯해 등장인물들은 모두 어떤 식으로든 상처를 안고 있다. 번듯한 방송사 기자로 성장한

 

상우조차 어린 시절 아버지의 사업 부도로 울면서 고향에서 야반도주한 기억이 있다. 모두 잊고 싶은 기억과 상처가 있다. 드라마는 그들이 상처를 털고 세상과 마주하라고 격려한다. 더 이상 비겁하게 굴지 말고, 더 이상 마음을 숨기지 말고, 더 이상 남의 눈에 얽매이지 말고 자신의 인생을 찾아나서라고 용기를 준다. 물론 그 메시지를 실천하기는, 그것이 현실에서 이뤄지기란 힘들다. 삶은 생각보다 희망적이지 않을 수 있다. 용서는 멀고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은 뼈아프다.

 

그러나 인순이는, 인순이의 주변 사람들은 서서히 깨달아간다. 그렇다고 삶이 생각만큼 절망적이지도 않다는 것을. 조금씩 마음을 열고, 곁을 내주면 그 안에 행복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어쩌면 백마 탄 왕자님이 등장하는 트렌디 드라마보다 '인순이는 예쁘다'의 판타지가 더 지독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판타지라면 언제든 환영이다. 판타지에도 격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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