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대 동아시아학술원 '정조어찰첩' 간행
조선후기 정조시대의 '판도라 상자'가 뚜껑을 열었다.
국왕 정조가 노론 벽파의 핵심 인물 중 한 명인 심환지(沈煥之.1730-1802)에게 보낸 비밀어찰 297통이 전부 원본 그대로 공개됐기 때문이다.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은 18일 오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이 대학 출판부를 통해 '정조어찰첩'(正祖御札帖) 두 종류를 발간했다고 말했다.
하나는 주된 독자층으로 학계를 겨냥한 2권 1세트 본(本)이며, 다른 하나는 1권짜리 보급판이다.
이 중 2권 1세트 본에는 지난 2월9일 언론을 통해 일부가 공개된 정조어찰 297통 전부를 원색 사진으로 촬영ㆍ축소해 수록하는 한편, 이에다 탈초(脫草.인쇄체 정자로 새로 쓰기), 번역, 윤문 및 해제를 덧붙였다. 그런 까닭에 이 1세트 가격은 25만원으로 책정됐다.
반면 보급판(568쪽)은 실물 영인을 제외한 원전의 탈초와 번역, 윤문과 해제를 수록했다. 가격은 3만원.
동아시아학술원은 "지난번 언론 공개 당시 정조어찰을 모두 299건으로 파악했으나 날짜별로 다시 정리한 결과 2건이 줄어 모두 297건으로 확인됐다"면서 "이번 자료 및 해제집은 19세기 전후 정조시대 정치사와 문화사를 해명하는 크게 참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 편지는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 같은 국가공식 기록에는 없는 내용이 대부분이며, 그 내용이 겹친다 해도 그와는 전혀 색다른 정보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판도라 상자'에 비유된다.
무엇보다 국왕이 특정신하에게 보낸 어찰이 이처럼 대규모로 발굴된 적이 없고, 나아가 정조가 특정 계파를 대표하는 인물을 통해 시시각각으로 각종 정보를 수집하는 한편, 정국을 자기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가고자 때로는 '공작정치'를 시도한 흔적들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비상한 주목을 끌고 있다.
학술원은 1796년 8월20일 이후 1800년 6월15일까지 심환지에게 보낸 이 어찰들을 사안별로 분류한 결과 민감한 정치 현안의 처리와 자문에 관한 내용(67건)과 인사 문제에 관한 사항(54건)이 가장 많고, 상소ㆍ차자ㆍ장계의 처리와 지시를 담은 내용(41건)과 중앙 정계와 산림의 여론과 동향을 탐색한 사안(31건) 등이 뒤를 잇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덧붙였다.
정조의 사망 원인은 이번 정조어찰첩을 근거로 보면 그의 기질과 지병에 따른 병사(病死)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면서 "비록 4년간의 편지지만, 정조의 건강은 이미 지속적으로 나빠졌고 사망할 무렵에는 급속도로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학술원은 말했다.
학술원은 이 어찰첩이 "여론 파악을 위해 정조가 심환지만이 아니라 노론과 남인, 시파와 벽파 등의 각 정파 핵심 인물과 사적으로 정보망을 구축해 여론 향배와 정국 현안에 관한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근거로 정국운영을 하려 했음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나아가 어찰첩은 그 자체로 정조의 친필 묶음집이라는 점에서도 보물급 이상 가는 문화재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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