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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 백제기 마한문화 전통 가진 분구"

고창 봉덕리 고분 출토 금동신발 등 유물의 의미…정치세력유지 역사적 가치 증명

27일 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 최완규 소장이 고창 봉덕리 백제시대 마한 분구묘에서 출토된 유물을 이강수 군수 등 관계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desk@jjan.kr)

고창 봉덕리 백제시대 마한 분구묘(墳丘墓, 봉분을 갖춘 무덤)에서 보존상태가 양호한 금동신발을 비롯해 칠기로 만든 화살통, 중국제 청자 등 다량의 유물이 출토됐다. 금동신발에서는 발뒤꿈치뼈가 나오는 등 인골도 함께 발굴됐으며 소호장식유공광구호(小壺裝飾有孔廣口壺)는 국내 최초로 발견돼 주목을 모으고 있다.

 

고창군의 예산지원을 받아 지난 6월부터 고창군 봉덕리 고분군을 발굴조사하고 있는 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소장 최완규)는 28일 유적발굴 현장에서 현장설명회를 열고 "한성 백제기의 마한문화 전통을 가진 분구묘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금동신발을 비롯해 각종 유물이 쏟아진 석실분은 4호분으로 다른 석실분이 횡혈식인 것과는 달리 수혈식으로 분구의 동남편에 치우쳐 자리하고 있다. 4호분 내부 유물의 배치상태를 보면 시신이 안치됐을 중앙에는 머리부문에서 청동제 대나무잎 모양의 장식이, 머리와 가슴부분에서는 귀걸이 2쌍과 곡옥 2점을 비롯한 다량의 옥이 발견됐다. 팔 부분에서는 칠기로 만든 화살통, 대도 2점, 손칼이 놓여져 있었으며, 발치쪽에서는 금동제 신발이 약간 비스듬이 뉘여진 상태로 발견됐다.

 

아가리가 바깥을 향해 벌어진 소호장식유공광구호는 일본 고분시대 토기인 스에끼에서는 장식호라 불리는 것으로, 고창 출토는 이들 토기의 원류로서 한일 고대 문화교류의 한 단면을 살필 수 있는 자료로 평가된다. 또한 이 토기를 받치고 있었던 그릇받침은 하부에 토제 구슬을 넣고 막은 형식으로 제작돼 방울과 같은 효과를 내고 있어 제의 의식에 사용된 토기로 추정되고 있다.

 

최완규 소장은 "이 고분의 조성연대는 고분의 구조나 4호에서 출토된 남조대의 청자연대를 참고, 5세기 초엽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며 "봉덕리 1호분 주변에는 마한 분구묘 계통의 분묘가 밀집돼 있는 곳으로 마한의 '모로비리국(牟盧卑離國)'의 중심지로 지목할 수 있는데, 이번에 출토된 유물을 통해 볼 때 백제 영역화 이후에도 이 지역을 중심으로 상당한 정치세력이 유지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금동신발을 비롯한 유물은 수습과정에서 훼손될 것을 우려, 국립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실의 지원을 받아 수습 및 응급조치를 시행했으며 일부 유물은 현재 보존처리가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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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휘정 desk@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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