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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정문학관 개관 2주년…신석정 다시보기

목가적 시풍 외에도 '방' 대표적 항일시 / 월남 파병 다루기도

석정문학관 개관 2주년을 기념하는 석정문학제가 25일부터 26일까지 이틀간 석정문학관 일원에서 열린다. 허소라 석정문학관장이 올 문학제에 맞춰 석정의 문학세계를 들여다보았다.

 

금년은 석정문학관 개관 2주년이 되면서 한편으로는 내년 석정작고 40주기를 준비해야 하는 해이기도 하다.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선생께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던 1930년대는 문자 그대로 일제 식민치하의 암흑기였다. 이러한 시대적 문단적 악조건 속에서 석정은 일반 서정시의 근간이 되는 '나', '너'의 평범한 인칭을 통해 '이웃'이나 '민족'의 염원을 지속적으로 포장 반출 해냈던 것이다.

 

널리 애송되어온 시 〈고운 심장〉(1936)에서도 '…그래도 서러울 리 없는 너는 / 오 너는 아직도 고운 심장을 지녔거니 / 밤이 이대로 / 억만년이야 갈리라구…' 라며 무한대의 밤과 맞서려했던 것이다. 고로 이 시 에서의 '너'는 어느 일 개인이나 사적(私的) 인칭이 아닌 바로 우리 민족 전체의 포괄적 대칭을 '너'로 암장해놓은 것이다.

 

이 밖에도 시인은 역사의 증언자가 되기 위해선 '산도 강도 바다도/소리 없이 묻히는 어둠을 달라'며 역으로 그 자연을 거부하는 데도 인색하지 않았다.

 

그동안 석정시를 고평(高評)한 평자로는 초기엔 김기림이여 중·후기엔 박두진, 조지훈, 신동욱, 김윤식, 오세영 등이라 할 수 있는바 이중 특히 김윤식교수는 그를 전원시인이라 할 경우는 대체로 시집 〈촛불〉(1939)의 세계를 두고 하는 평가일 것이라면서 그의 시세계가 그다운 개성을 지니고 성숙해 간 것은 시집「슬픈 목가(1947)」세계부터라 하였다. 이어 근대 시문학사의 거목으로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그만의 고고한 세계가 무엇인지 규명해나갔다.(〈시문학〉1978.7)또한 오세영(서울대 명예교수)시인은 석정의 '방(房)'(1939.9)이라는 작품을 추거하여 '이는 단순히 현실의식을 반영한 수준이 아니다 일제 강점기를 대표한 저항시의 하나다 일러도 무리 없을 작품'이라고 평하기도 하였다. 한마디로 서정시가 지향하는 바는 일평생 시의 호흡을 자연, 그리고 동 시대의 다중(多衆)과 운명의 부침을 함께 하겠다는 휴머니즘의 구현이라 할 것이다.

 

만일 석정이 노장(老莊)에 묻혀 자연, 목가시나 써왔다면 그가 써온 시 때문에 일제하에서부터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받아왔을까? 한 번쯤 짚어볼 필요가 있다. 아래 몇 사례만 열거해보자

 

-'단식의 노래'(서울일일신문)(1960.10) : 민주당 정권때 국회의사당 앞에서'교원노조' 설립을 주장하며 단식 농성하는 교사들을 격려하 는 시를 발표, 이듬해 5·16군사혁명 후 전주 경찰서에 수감.

 

-〈한양〉(1964.6)지에, 경기도 운천리 미군부대에 통조림 하나를 훔치러 들어간 소년이 경비병에 의해 잔혹히 사살된 사건을 소재로 쓴 시 '슬픈 서정' 및 '지옥'을 발표, 당시 군사정부에 의해 반체제지로 낙인 찍힌 〈한양〉(일본에서 재일교표가 간행)지에 작품을 게재했던, 김우종(문학평론가) 임현영(현 민족문제연구소장), 이호철(소설가)등이 모두 구속되어 재판을 받게 되었으나 석정은 당시고혈압으로 병상에 있어 이를 모면되다.

 

-'서울 1969년 5월 어느날'〈월간문학〉(1969.7) 당시 뚜렷한 명분도 없이 남산에 있는 중앙정보부에 불려가 호된 고문을 받고 며칠 만에 풀려나 남산을 내려오면서 쓴 시로 '눈물이 피잉 돌았다./ 한빛이 너무도 눈부신 5월 어느 날, 남산을 내려오던 내 시야에는 그 숱한 고층건물도 보이지 않았다'로 시작된 이 작품은 시인의 마지막 시집인 〈대바람 소리〉속에 시인과 함께 누워있다.

 

이 밖에도 지난 60년대에 한국군의 월남파병을 소재로 한 시'꿈의 일부'〈동아〉(1967.2)가 있다. 비록 '백마가 울었다'(백마부대를 상징) 등 상징적으로 표현된 작품이긴 하나 한국의 시인중 유일하게 월남파병에 관심을 표명한 시라 할 것이다.

 

이제 석정시에서 '자연과 역사를 아우른 시인'이란 명제에서 어느 한쪽을 지우려 한다면 그것은 더할 나위 없는 실수라 할 것이다. 우리 시문학사상 한 점 티 없는 전원 목가시인 한사람쯤 간직하고 싶은 것은 모두의 꿈이다. 그러나 '문자(文字)'가 그것을 허락지 않는 것을 어찌하랴?

※허소라 석정문학관장은 1959년 〈자유문학(自由文學)으로 등단. 시집〈목종(木鐘)〉 〈풍장〉 〈아침 시작〉 등과, 수필집 〈흐느끼는 목마(木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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