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철이 기숙사로 들어간 지 어느덧 3년여가 흘렀다. 승철은 5년제 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교사가 됐고 전주여고보를 졸업한 찬옥은 집에서 쉬고 있었다. 찬옥은 교사가 되어 어린이들을 가르치거나 농촌계몽운동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부모님은 시집가야 한다며 반대했다. 특히 어머니는 완강했다.
찬옥은 세 가지 조건을 내세워 그래도 융통성이 있는 아버지를 졸랐다. 첫째, 딱 1년만 교편을 잡고 그 다음엔 부모님이 정해주는 사람과 결혼한다, 둘째, 직장은 전주시내와 그 인근 지역으로 한정하고, 셋째, 날마다 집에서 출퇴근하고 절대 집밖에서 잠을 자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딸의 간청을 못 이긴 아버지는 어쩔 수 없이 어머니를 설득한 다음 딸에게보통학교 촉탁교사 자리를 주선해 주었다.
발령지는 전주에서 서남쪽으로 40리 떨어진 김제 금구보통학교. 금구는 전주~김제~부안, 전주~정읍으로 가는 국도가 갈라지는 교통의 요지로 전주에서 출퇴근이 가능했다.
목탄차 버스지만 하루 왕복 20여 편 버스가 운행됐다. 찬옥도 부안 해수욕장이나 정읍 내장사를 갈 때 여러 차례 지나친 적이 있어 잘 아는 면사무소 소재지였다. 찬옥도, 아버지도 마음에 들어 했다.
첫 출근 날 찬옥은 설레는 마음으로 첫 버스를 타고 금구에 도착했다. 50분 정도 걸렸다. 학교 뒤편 은행나무와 홰나무에는 황새와 왜가리들이 하얗게 앉아 있었다. 어떤 것들은 이른 아침부터 창공을 훨훨 날아다녀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장관을 이루었다. 교정에 들어서자마자 수령이 몇 백 년 되어 보이는 느티나무가 큰 그늘을 만들어 사람을 시원하고 안온하게 맞이했다. 합방 직후 설립된 학교라 도내에서는 역사가 가장 오래된 보통학교 중 하나였다.
찬옥은 먼저 교장실로 갔다. 이른 시간이라 아직 아무도 나와 있지 않았다. 10여 분 지나 교장이 출근했다. 50 전후의 콧수염을 기른 일본인이었다. 교장은 웃는 얼굴로, 긴장이 풀리지 않은 찬옥에게 자기소개를 했다. 찬옥은 깜짝 놀랐다. 교장이 조선어로 말하지 않는가! 그것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전주 사투리로. 찬옥은 단박에 교장에게 친근감을 느꼈다.
교장은 교사들이 모두 출근하자 교장실에서 신임교사 상견례 자리를 만들었다. 아니,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정승철이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벌써 여러 해 전에 헤어졌다고 하지만 찬옥은 한눈에 정승철을 알아보았다.
키는 중키로 건장한 체격에 굵고 반듯한 이목구비와 밝은 낯빛. 동생 가정교사로 있을 때보다 훨씬 더 어른스러워지고 의젓해 보였다. 찬옥은 뜻밖에도 승철을 만난 기쁨이 말할 수 없이 컸지만 그것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천연스럽게 인사를 나누었다.
승철도 태연하게 인사말을 했다.
“어제 교장선생님이 우리 학교에 전주여고보를 나온 선생님이 오신다고 했지만 최 선생이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반갑습니다.” 정말로 이 학교에서 찬옥이를 다시 만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교장이 “서로 잘 아는 사이냐?”고 물었을 때 찬옥이 “친인척 되는 사이”라고 얼버무렸다.
이 학교에는 교장을 비롯해 교사가 모두 14명이었다. 일본인은, 교장과 2년 전에 왔다는 미혼 교사 오노다(小野田)가 있었고 나머지 12명은 조선인. 6명이 전주사범, 3명이 전주고등보통학교, 2명이 기타 학교 출신이었고 그리고 최찬옥이 이 학교 최초의 여교사로 부임한 것이다. 교장 테라다(寺田)는 14년 전 서른 세 살의 나이에 이 학교 교장으로 취임, 마흔 일곱이 되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 학교에서 기록적으로 장기근속하고 있었다. 자기 말대로 전주 사람이 다 돼버렸다.
물론 공식적으로는 일본어를 썼지만 사석에서는 조선어를 곧잘 썼다. 일본사람이 없는 자리에서 좌중을 웃길 때면 전라도 사투리를 구성지게 늘어놓았다. 판소리를 좋아했고 손색없이 한 가락 뽑아내기도 했다. 여류 명창 이화중선의 ‘춘향가’중 ‘사랑가’를 흉내 내 부를 때는 많은 박수를 받았다.
양식이 있고 트인 사람이었다. 어느 자리에선가 자기는 큐슈 출신으로 본래 조선에서 건너간 조상의 후예라고 집안 내력을 털어놓기도 했다고 한다.
이런 교장의 학교운영 때문인지 학교 분위기는 비교적 자유로웠다. 그러나 오노다 앞에서는 조선어를 써서는 안 되고 반드시 일본말을 해야 한다고 선배조선인 교사들이 주의를 주었다.
평소 입을 다물고 지내던 조선인 교사들이 어쩌다 오노다가 학교에 나오지 않을 때는 쾌활하게 조선말로 담소를 나누었다. 찬옥은 이런 때가 어찌나 좋은지, 중압감에서 잠시 벗어나 시원한 바람을 쐬는 듯 기분이 상쾌해졌다.
찬옥은 1학년을 담임했다. 1주에 국어 10시간, 조선어 5시간, 산수 5시간, 그리고 수신, 도화, 창가, 체조 각각 1시간씩을 가르쳤다. 국어는 일본어·조선어를 가르치는 것은 조선어를 계속 사용하기 위한 시책이 아니라 일본어를 국어로 가르치는데 보조어로 사용하기 위해서 가르치는 것이었다. 나라를 빼앗기고, 민족의 말과 글을 후세들에게 당당하게 가르치지 못하는 비통함을 찬옥은 교육현장에서 뼈아프게 실감했다.
승철은 4학년을 맡았다. 저학년과 비교, 1주에 국어가 12시간으로 늘어난 반면 조선어는 3시간으로 축소됐다. 그리고 국사가 2시간 배정됐다. 국사는 물론 일본역사다.
일본역사를 국사로 가르치는 것은 고통이요, 치욕이라고 승철이 찬옥에게 울분을 토로한 적이 있다. 그 때 찬옥이 “현실을 현실로 인정하자”고 위로하기도 했다. 승철의 국사교육이 성의가 없고 불량하다고 시학으로부터 주의를 받은 적도 있다.
한번은 정승철이 맡고 있는 반의 순덕이라는 여자 아이가 10일 넘게 장기 결석을 했다. 순덕이와 같은 마을에 살고 있는 남자 아이에게 이유를 물어봐도 자기도 잘 모르겠다고만 대꾸했다. 순덕이는 열한 살에 취학, 다른 아이들보다 서너 살이 위였다. 승철은 토요일 오후, 여자 아이니까 찬옥이 함께 가줄 수 없느냐고 요청해 찬옥과 함께 남자 아이를 앞세워 순덕의 집을 찾아 갔다.
마을에 이르러 낡은 초가집 앞에 한 남자가 지팡이를 든 채 우두커니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길을 안내하던 남자 아이가 저 사람이 순덕이 아버지라고 했다. 순덕이 아버지는 사람들이 다가서는 인기척에 눈을 껌벅껌벅할 뿐 계속 장승처럼 서 있었다. 알고 보니 청맹과니였다. 남자 아이는 순덕이 아버지에게는 아는 체도 않고 순덕이 집으로 쑥 들어가 큰 소리로 “순덕아, 선생님 오셨다! 선생님 오셨어!”하고 외쳐댔다.
그러나 순덕이는 나타나지 않고 순덕이 어머니가 머리에 무명수건을 동여맨 채 방문을 열고 얼굴을 내밀었다.
“아니, 선생님 어쩐 일이시라우! 어서 올라 오시기라우.”
승철과 찬옥은 마루에 걸터앉아 사정을 들었다. 순덕이는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남동생 하나와 함께 살고 있었다. 아버지가 장님인지라 어머니가 손바닥만한 밭뙈기를 일구어 입에 풀칠을 하는 극빈 가정이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병환으로 몸져누워 순덕이가 어머니 대신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딱한 사정에 승철과 찬옥은 용돈을 털어 약값에 보태 쓰라며 순덕이 어머니 손에 쥐어 주고 발길을 돌렸다. 학교로 돌아오는 길에 승철과 찬옥은 마음이 아파 한동안 말이 없었다. 한참을 걷다가 찬옥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저렇게 어려운 가운데서도 딸을 학교에 보낸 순덕이 엄마가 참 장하네요.”
“그러네요. 순덕이도 기특합니다. 그렇게 가난하고 고생하는 데도 항상 표정이 밝았거든요. 그런 아이인 줄 몰랐어요.”
“정 선생님, 우리가 학교에서 정신적으로 고생하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네요.”
“그렇습니다. 오늘 순덕이 집 방문에서 제가 느끼고 배운 게 큽니다.”
이렇게 대화를 나누면서 학교 앞까지 10리 길을 되돌아 왔다. 아팠던 마음도 조금 풀렸다. 승철이 “오늘 저 때문에 고생하셨으니 저 자취하는 데 들려 물이라도 한 잔 드시고 가십시오.”라고 제의했다. 승철은 학교 앞에 방을 얻어 자취하고 있었다.
처녀교사가 총각선생 자취하는 데 간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찬옥은 선뜻 동의했다. 몇 해 전 자기에게 동인시집을 주려했던 승철이 어떻게 살아가는 사람인지 그 안을 들여다보고 싶은 호기심이 있었다. 사실 찬옥은 내색하진 않았으나 승철에게 애틋한 심정과 여운을 가지고 있었다.
승철이 밖에서 미수를 준비하는 사이 찬옥은 방안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옷가지며 모든 것들이 정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앉은뱅이책상 위 책꽂이에 책들이 빽빽하게 꽂혀 있었다. 그 가운데 몇 권의 중고서적이 눈에 띄었다.
박은식 저 ‘한국통사’와 신 채호 저 ‘조선상고사’ 등이었다. 찬옥은 처음 보는 책들이었다. 승철이 민족의식이 투철해 자취방에서는 몰래 조선역사를 열심히 공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미수를 마신 다음 찬옥은 곧바로 전주로 왔다. 승철이 어떤 사람인가를 좀 더 깊이 있게 알게 된 것 같았다. 〈계속…〉
장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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