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솥단지에서 산 성자…"일상에서 깨우쳐라"

소설가 김형수씨 〈소태산 평전〉 발간 / 원불교 창시자 박중빈 대종사 삶 그려

원불교를 창시한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 평전이 출간됐다. 소설가 김형수씨가 지은 <소태산 평전-솥에서 난 성자> (문학동네).

 

원불교는 물질문명의 급격한 발전을 정신문명이 따르지 못할 것을 미리 깨달은 소태산이 1916년 ‘새 시대 새 종교’로 창시했다.

 

구한말, 의지할 곳 없는 민초의 삶은 더욱 비참해져갔다. 전남의 민초들은 증산교에 치성을 올렸지만 강증산이 사망하자 재림을 간절히 기원했다. 마침 박중빈이 큰 깨달음을 얻고 지도자로 우뚝섰다. 소태산은 증산교 신비주의에서 탈피하고 생활속에서 깨닫는 도를 설파했다.

 

자신을 ‘솥단지에서 살았던 사람’이라 해서 ‘솥에 산’ 소릿말인 ‘소태산’을 자신의 호로 삼았다. 솥으로 짓는 밥은 일상이고, 일상생활 속에서 누구나 얻을 수 있는 깨우침을 가장 중요한 단초로 삼았다. 이것이 핵심사상이며, 원불교가 세기를 넘어 세계로 뻗어나가는 ‘산 종교’가 되도록 이끌어준 힘이다.

 

어려서부터 사고의 폭과 깊이가 달랐던 그는 일곱살 무렵부터 구도의 여정을 시작했다. 기도를 드리고 스승을 찾아 헤매다 스스로 깨쳐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정신의 고투가 육신을 파괴해 페인처럼 된 1916년 3월 26일(음력) 그를 둘러싼 모든 것이 새로운 시각으로 보이는 경험을 한다.

 

대각(大覺)후 소태산이 보인 행보는 독특하다. 정신수양보다 굶주림을 먼저 해결했다. 민중의 ‘존재의 건강성’부터 회복시킨 후 마음을 얻었다. 그는 허례허식에 매이지 않고 본질과 진리에 천착한 탐험가이자 사상이며, 성자였다.

▲ 1928년 5월16일 소태산이 봉래정사에서 수양할 당시 시봉진들과 촬영한 사진. 중앙 소태산, 좌우 지게 진 제자는 오재겸, 김남천. 왼쪽부터 이청풍, 장적조, 송도군, 장정수, 이만갑, 송월수, 구남수, 송도성, 최도화, 김해월.

평전은 원불교 100년을 기념한 작업이다. <원불전서> <대종경> <구도역정기> 등 수십여편의 원불교 자료와 현장답사, 인터뷰 등과 원불교단의 감수로 더욱 사실적이고 정확한 평전으로 세상에 나왔다.

 

지은이는 천착하고자 했던 가치인 “혁명은 현실안으로의 도피요, 신비주의는 현실 바깥으로의 도피”를 화두로 작업했다고 밝혔다. 숱한 사람들에게 실체를 확인시킨 성자의 삶을 문학적 글쓰기 한다는 것이 우려가 컸지만 소태산이 구간도실을 지을때 쓴 ‘상량시2’를 대면하고 힘을 냈다고 밝혔다. “소설처럼 읽히기를 바라면서 썼다”며 “잘 모르는 세계였는데, 마치고 나니 갑자기 한눈에 들어온다”고 털어놓았다.

 

백낙청 문학평론가는 “저자는 교도가 아니면서도 맑은 영혼의 소유자답게 대종사를 성자로 알아보고 평전을 집필했다”면서 “이 책은 소설이 아니고 정직한 평전으로 교단 안팎에서 두루 익힐 역작”이라고 평했다.

 

저자는 1980년대 민족문학을 이끌어온 대표적인 시인이자 논객으로, 시집 <빗방울에 대한 추억> 과 장편소설 <나의 트로트 시대> <조드-가난한 성자들> , 평론집 <반응할 것인가 저항할> , <문익환 평전> , 고은 시인과의 대담집 <두 세기의 달빛> 등 다수의 책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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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수정 euns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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