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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백제] (203) 10장 백제령 왜국 19

“오, 왔느냐?”

여왕이 아래쪽에서 엎드려 절하는 계백을 내려다보았다. 여왕의 얼굴은 수척하다. 여왕의 남편 죠메이왕이 재위 13년 만에 죽고 나서 아직 왕자가 어렸기 때문에 결국 왕후가 여왕으로 즉위한 것이다. 죠메이왕을 왕으로 옹립한 것도 소가 에미시였으니 소가 가문(家門)의 위세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계백이 여왕을 우러러 보았다. 시선이 마주치자 여왕이 머리를 끄덕였다. 얼굴에 희미한 웃음기까지 떠올라있다.

“네 공이 크다.”

이번 신라소를 격파한 공(功)을 말하는 것이다. 여왕 즉위식 준비를 마치고 돌아가는 백제방(方) 관원들을 몰사시킨 신라측에 대해서 여왕의 진노도 대단했다. 아직 김부성은 잡히지 않았지만 섭정 이루카에게 두 번이나 재촉을 할 정도다.

“황공합니다, 전하.”

계백의 목소리가 청 안을 울렸다. 왕궁의 청도 백제 왕궁을 모방해서 붉은 색 기둥에 사방이 트여졌다. 여왕의 옥좌는 계단이 6개다. 백제왕의 계단이 9개였기 때문에 3개를 줄인 것이다. 청 안에는 백제방 방주 부여풍 왕자가 와있었는데 여왕 옥좌의 한 계단 아래쪽에 앉았다. 섭정 소가 이루카는 청에 늘어앉은 문무(文武) 대신들의 맨 앞에 앉아서 여왕과 풍을 바라보는 위치다. 오늘은 왜국의 문무 대신, 백제방 방주와 여왕까지 모두 모여 있는 것이다. 왜국은 수백년 동안 백제의 속국이었으며 그것을 당연하게 여겨왔다. 백제에서 이동한 유민이 규슈에서부터 정착하여 제각기 영지를 세우고 동진(東進)하여 마침내 이곳 아스카까지 진출하는 동안 왜 왕실은 백제계로 이어져온 것이다. 영주 대부분이 백제계이며 지금도 백제어가 일상으로 사용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왜말과 섞여지기도 했지만 왕실과 영주, 지도층은 모두 백제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지금도 왜왕의 한 계단 아래에서 왜국 대신들을 내려다보는 백제방 방주 풍왕자의 위상이 바로 그것을 나타낸다. 그때 섭정 이루카가 입을 열었다.

“전하, 이번에 반역을 도모했다가 죽은 아리타와 마사시, 이또 영지에 대한 처분을 내려주시옵소서.”

미리 합의가 된 일이어서 이루카가 거침없이 말을 이었다.

“하루라도 주인 없는 영지로 둘 수가 없으니 그 세 곳 영지를 모아 백제방의 은솔 계백이 다스리게 하여 주옵소서.”

그때 여왕이 풍을 보았다.

“방주께선 어떻게 생각하시오?”

“계백은 본국에서 성주(城主)를 지낸 적도 있으니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풍의 말을 들은 여왕이 계백에게 물었다.

“계백, 세 영지를 합하면 16만석이 된다. 맡아서 백성을 돌보겠느냐?”

“명을 받겠습니다, 전하.”

계백이 사양하지 않고 대답했다. 미리 풍한테서 지시를 받은 터라 사양하는 시늉을 낼 필요도 없는 것이다. 여왕이 머리를 끄덕였다.

“잘 되었다. 주인을 잃은 영지에서 도적떼가 모인다던데 오늘이라도 당장 부임하라.”

“예, 전하.”

“네가 백제의 은솔 관등으로 제3급품이니 이곳 왜국에서는 2급품 소덕(小德)이 적당하다. 소덕 직위를 받으라.”

“황공합니다.”

계백이 머리를 청 바닥에 붙이는 것으로 어전회의가 끝났다. 여왕과 풍이 청을 나갔을 때 대신들의 우두머리인 섭정 이루카가 계백에게 다가왔다. 이루카는 대신(大臣)으로 1급품 대덕(大德)이며 섭정이니 최고 실권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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