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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진문화재단 하유진 큐레이터 “젊은작가 재능 펼칠 기회 많이 주고파”

젊은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나타낼 곳이 적습니다. 그들에게 자신의 재능의 펼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고, 소통의 허브(hub)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도내 대표적인 사설 복합문화시설인 우진문화재단에서 미술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하유진 큐레이터(31). 그는 도내 작가와의 거리감이 적은 큐레이터로 꼽힌다.아무래도 같은 전공자인 만큼 선후배라고 여겨 선호하는 것 같습니다. 또한 재단의 설립 취지에 따라 같은 조건이라면 더 어렵고 젊은 작가에게 공간을 제공해 연간 4차례 진행하는 청년신예작가 초대전 등을 포함해 전체 전시 가운데 60~70%가 젊은 작가입니다.꾸준한 열의로 작업 활동을 하는 젊은 작가에게 보다 많은 기회를 주려 한다는 그는 다음달에도 신진 작가 2명으로 구성한 전시를 기획했다.그는 젊은 작가들에게 관람객과의 소통을 강조한다며 관람객이 뭘 원하는지 파악하고 미술시장에 뛰어들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고 들려주었다.이어 그는 아트상품을 만드는 것처럼 작지만 다양한 시도를 많이 했으면 좋겠다며 미술인이 먹고 살 수 있는 방법을 많이 전달하려고 노력한다고 덧붙였다.그는 전북대 예술대학 미술학과에서 조소를 전공했다. 작가에서 큐레이터로 방향을 전환한 계기는 지난 2008년 10월2009년 2월 서울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서양미술 거장전-렘브란트를 만나다에서 도슨트(docent, 안내자)와 어린이프로그램 기획을 하면서부터다. 전시가 진행되는 과정을 보면서 창작자의 작품을 돋보이게 할 수 있는 일이 매력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그는 지난 2011년부터 우진문화재단에서 근무하면서 전시를 총괄하고 한 달에 1차례 진행하는 미술기행과 각종 기금 지원 사업 등을 담당하고 있다.그는 청년신예작가가 아트페어에 초대되거나 미 대사관에 그림이 걸리거나 상을 받는 등 외부에서 좋은 소식이 들릴 때 짜릿하다며 도외로 떠나는 미술기행도 결국은 도내 미술 작품의 우수성을 인지하고 미술품 수집가를 양성하기 위해 진행한다고 말했다.아울러 그는 도내에서 누가 어떤 전시를 하는지 평소 주시하며 작품으로 자신의 예술세계를 뚜렷이 보여주는 작가들을 외부 전시에 추천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경제적 이유로 작품 활동을 포기하는 젊은 작가들에게 날 이용해라며 그들과 미술시장을 연결하는 교두보가 되고 싶다는 하유진 큐레이터.그는 관람객을 향해서도 젊은 작가를 비롯한 도내 미술인이 발표하는 작품이나 전시에 많은 관심을 부탁한다며 단순한 관람뿐 아니라 문화시설에서 작가와 만나 이야기할 수 있는 프로그램에 참여해 예술인과의 소통에 참여하길 바란다고 제안했다.

  • 문화일반
  • 이세명
  • 2015.04.14 23:02

5년째 전주효자문화의집 맡고 있는 강현정 관장 "작은 문화공동체 키워야 예술 살찐다"

작은 문화공동체들이 공유한 정보가 시민 한 명 한 명에게 도달해 사람 중심의 정책이 펼쳐져야 합니다. 마을, 동네 단위에서 시작해 지역사회까지 확대한다면 문화 향유라는 말이 보편화될 것입니다.5년째 전주효자문화의집 관장을 맡고 있는 강현정 관장(40)은 생활 권역의 문화시설간 연계가 필요하다며 작은도서관, 복지관, 문화의집 등이 같은 지역에 있지만 서로 뭘 하는지 모를 때가 많고 시민이 종합적인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다고 진단했다.강 관장은 동아리에서 시작해 동호회로 발전하며 작은 문화공동체가 많아지고 네트워크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이런 신념은 문화강좌 대신 동아리 중심의 운영 원칙에 반영했다. 현재 일주일 단위로 효자문화의집을 이용하는 동호회는 28개다.그는 10년이 넘은 대금 연주 동아리의 경우 좀더 자치적인 조직으로 활동하면서 동호회로 커졌다며 1차로 배운 활동을 지속적으로 하고 싶은 사람이 자생적 구조를 만드는 방식이다고 설명했다.아울러 그는 동호회 대표자 모임체를 지난 2005년도부터 추진해 다른 동호회에 대한 이해도를 높혀 함께 축제를 만들기도 한다고 말했다.5개 문화의집이 모인 전주문화의집협회는 지난 2013년부터 전주시민문화축제를 진행하고 있다. 올 가을에도 이용자의 이야기를 주제로 열릴 예정이다. 효자문화의집 소속 자스민예술단의 공연도 마찬가지다. 5~10월 삼천에서 동호회가 모여 매달 2차례 무대에 서며 올해 4년차가 된다.강 관장은 이런 과정에서 기획, 인적 자원, 지원 체계 등을 안내보완하며, 지속적으로 동기부여를 하고 있다.그는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즐겁게 해 주자를 기치로 수 년간 세뇌에 가까운 설득을 한다며 작은 문화공동체가 커가는 모습이 가장 보람되다고 들려주었다.강 관장은 지난 2005년부터 문화의집에서 근무했다. 대학에서는 생활체육을 전공해 에어로빅, 레크리에이션 강사 등으로 활동하다 청소년지도사로 들어섰다. 이후 문화의집 프로그램 기획자에서 관장까지 맡게 됐다. 10년간 문화시설에서 매개자의 역할을 한 그가 절실하게 느낀 점은 고용 안정성이었다.그는 문화시설의 사람이 자꾸 바뀌면 이용자의 만족도나 향유의 질이 낮아진다며 생활체육이나 청소년 분야의 인력은 정부가 육성하는 제도가 있지만 문화 분야는 미약해 아쉽다고 말했다.아울러 그는 아마추어 문화예술인의 증가와 조직화로 인한 전문 문화예술인과의 영역 갈등에 대해서는 수평적 구조의 틀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짚었다.강 관장은 전문예술인과 생활문화동호회는 분명히 다른 만큼 문화와 예술 영역을 구분해야 하며, 예산 배분은 좀더 고민해야 한다면서 생활문화에는 관계를 우선시하는 사람이 참여하고 매개자는 가교 역할을 하며 향유층을 두텁게 해, 결국 이들이 예술을 살찌워야 한다고 제시했다.그의 꿈은 동네 문화전도사 양성이다.그는 동네 모든 문화시설의 정보를 입소문 내는 주민 그룹이 자체적으로 형성되도록 지난 2006년도부터 문화자원봉사단을 시작했다며 이들에게 꾸준한 교육을 실시해 문화공동체의 핵심으로 키우고 싶다고 밝혔다.

  • 문화일반
  • 이세명
  • 2015.04.07 23:02

전북 미술 팸플릿 전문 김철곤씨 "기회 없는 미대 졸업생 전시 후원 보람"

순수 예술을 전공한 신진 작가의 입지가 점점 줄어드는 상황에서 지원이 아니면 기회가 없는 졸업생을 대상으로 후원 전시를 시작했습니다.지난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모두 7차례 도내 미대 졸업생을 대상으로 초대전을 연 모던칼라기획 김철곤 대표(55)는 경제적 이유로 자신의 꿈을 펼치지 못하거나 장삿속에 이용되는 후배를 보면 안타깝다며 미술인을 상대로 매출을 올리는 만큼 일부는 돌려 줘야겠다는 생각으로 자비를 들여 진행했다고 말했다.김 대표는 도내에서 미술 전시의 홍보물 제작을 전문으로 하는 업자다. 업자이기 이전에 미술학도였다. 이런 출신이 그가 후배를 응원하는 바탕이 됐다. 후배 사랑에 교동아트미술관은 전시장을 무료로 대관했고 미술품 운송 업체인 그림창고도 뜻을 같이 했다.김 대표는 용케도 후원전시의 참여자가 지금도 계속 작품 활동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며 각 대학 교수의 추천이나 졸업작품전의 홍보물을 만들면서 눈여겨봤던 학생에게 전시 초대뿐 아니라 작업실을 탐방해 직접 인터뷰하며 그들 스스로가 작품을 남에게 설명하는 기회도 부여한다고 들려주었다. 그는 이어 물론 사업과 연계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젊은 친구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경제적 어려움으로 꿈을 접어야만 했던 경험은 그에게 각인된 회한이다. 그는 미술 특기생으로 전주 해성고에 입학했지만 선친의 별세로 다니던 학교를 나와 전주상고에 진학했다. 낮에 인쇄소에서 일했고 야간에 수업을 받았다. 고등학교를 4년간 다닌 셈이다. 그림은 틈틈이 그렸고, 일을 하며 활판 인쇄술을 배웠다.군 제대 뒤 고졸 취업의 한계를 느낀데다 다시 미술을 하고 싶은 열망에 86학번으로 전북대 미술교육과에 입학했다. 동기보다 6년이 늦은 입학이었다. 하지만 당시 제도가 바뀌어 임용 고시를 통과해야 교사가 가능했다. 그는 미발령 교사 완전 추진 위원회(미발추)로 활동하다 결국 다시 인쇄소에 들어갔다. 그는 3년 뒤인 1996년 자신만의 사업체를 차린 뒤 발빠르게 컴퓨터 프로그램을 익히고 도입했다. 미술 전공을 살려 색을 보는 눈이 유용했고, 인맥도 작용했다.김 대표는 팸플랫이 별로면 전시장에 인쇄물을 전달하기 싫을 정도다면서도 작가들이 홍보물을 보고 만족을 표시할 때는 그들보다 더욱 뿌듯하다고 말했다.그는 앞으로 후원 전시에 좀더 내실을 기할 계획이다.김 대표는 다른 미술상처럼 직접 지원으로 좀더 보탬이 되도록 상금제도를 준비하고 있다며 지금까지 매년 4명씩 선별했는데 차후에는 숫자를 조정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 문화일반
  • 이세명
  • 2015.03.31 23:02

문화기획자 활동하는 행위예술가 김은미 씨 "주민 주인공 돼 마을 사업 이끌어야"

문화 매개 인력, 즉 기획자를 양성해 주민이 필요로 하는 자원을 파악연결하고 궁극적으로 참여자가 주도참여하는 문화사업이 돼야 합니다.행위예술가에서 문화기획자로 활동하는 김은미 씨(40)는 문화 매개 인력이 하고 싶은 사업이 아닌, 대상자가 원하는 사업을 찾아야 한다며 주민의 신뢰를 먼저 쌓고 이후 네트워킹 중심으로 사업비를 적게 들이고 큰 효과를 내도록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그는 본업인 행위예술뿐 아니라 레지던시 큐레이터와 프로그램 매니저, 마을단위 문화사업 대표 등으로 나서며 지역의 문화기획자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지난 2011~2012년 익산 익옥수리조합레지던시 큐레이터와 프로그램 매니저, 같은 기간 익산 국제퍼포먼스아트 페스티벌 총괄 디렉터, 2012년 문화이모작 슬슬놀이터-솜씨 맵씨 조각보열전사업 대표를 맡았다.이후에는 익산 창작스튜디오 레지던시 큐레이터 프로그램 매니저를 거쳐 지난 1월 (사)익산시생활문화예술동호회 문화기획자로 근무했다.일반 시민, 예술가 등과 다양한 사업을 실행한 그는 지역과 주민을 열쇳말로 강조했다.그는 예술가가 자치단체의 예산을 지원받았다면 적어도 지역을 아는 과제는 필수다며 익산 문화예술의 거리 사업의 경우 예술가는 지역의 이야기를 나름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주민은 관람자가 아닌 참여자로 유도하는데 중점을 뒀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지원비에 기대면 사업구역 바로 옆동네의 주민은 소외감을 느낀다며 주민 노래자랑이나 지역의 특성을 살린 패션쇼 등과 같이 주민이 계획실행해 관의 간섭을 덜 받고 주인공이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마을단위 사업인 문화이모작 사업으로 그의 원칙은 더욱 강해졌다.그는 익산시 금마면 동고도리 황동마을에서 할머니들과 조각보를 만드는 동아리로 시작해 체험관까지 만들었다면서 애초 3개월짜리 사업이었는데 다른 사업비를 받아 지속하도록 하는 한편, 당시 이장님이 매개자로 주도한 결과 호평을 받았다고 들려주었다.아울러 그는 조각보를 만들기 위해 마을에 들어갔는데 실제 눈이 침침하거나 손에 감각이 없고 허리가 아파서 못하는 분들도 상당수였다며 외부인은 모든 주민의 참여율과 성과를 성공 척도로 여기지만 문화예술은 사람이 하는 만큼 비참여자와 참여자를 모두 배려하고 과정을 주시해야 한다고 보탰다.김 씨는 문화기획자 이전에 작가였다. 익산 출신으로 익산고와 한국교원대 미술교육과, 한성대 예술대학원 패션예술학과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2013년에는 전북도의 해외 전시 지원사업에 선정돼 독일에서 뒤셀도르프에 이브의 사과를 던지다.라는 개인전도 했다.그는 중학교 때 미술 교사를 존경하며 작가와 교육자의 꿈을 키웠다. 하지만 교원대 재학시절 수행한 교생실습에서 직업에 안주하는 미술 교사의 모습을 보고 실망했다. 현실적으로 교원 임용을 준비하는데 어려움도 있었다. 이후 그는 분장으로 진로를 바꿨다. 현재도 광주보건대 피부미용과의 겸임조교수를 하고 있다. 익산에서 벽화작업을 하며 문화기획자로 들어서게 됐다.김 씨는 문화기획자에 대한 인식 전환을 소망했다.그는 돈보다 사람이 시너지가 크다며 기획자의 아이디어나 노동력 등을 당연하게 여기는 인식이 바뀌길 바란다고 말했다.

  • 문화일반
  • 이세명
  • 2015.03.24 23:02

군산 창작문화공간 여인숙 이상훈 대표 "군산의 역사성 살린 작품 기대하세요"

사람 중심의 레지던시(residency)가 돼야 합니다. 입주 작가와 함께 호흡하고,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수평적인 관계를 맺으려 합니다.군산에서 미술 레지던시를 기획진행하는 창작문화공간 여인숙의 이상훈 대표(45)는 문화예술가와 지역, 작가간 가교 역할을 자처한다. 올해도 전북도의 레지던시 프로그램 지원사업에서 최고액인 9500만 원을 지원받아 사업을 지속한다.이 대표는 예술가에게 최소한의 창작 기반으로 작업실과 거주공간을 마련하고 그들의 역량을 올리기 위해 각종 프로그램을 기획진행하는 게 레지던시다며 여인숙의 참여 작가는 10개월간 회의, 지역 연구, 전시 등을 버거워 하지만 큐레이터가 상주하며 적정한 선을 조절한다고 설명했다.그는 전국 60여곳에서 레지던시가 실시돼 예술가가 철새처럼 움직이며 상주하는 상황에서 각 지역성을 드러내는 식으로 차별화를 도모한다고 덧붙였다.창작문화공간 여인숙은 일제 잔재가 남아있는 옛 도심에서 일본식 절인 동국사 가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 지난 2007년까지 실제 여인숙으로 영업하던 장소를 2010년부터 미술 작가의 창작활동을 뒷받침하는 공간으로 바꿨다. 매년 10대1의 입주 경쟁률을 보이며 3명의 작가를 선정한다.이 대표가 수행한 레지던시 사업을 거쳐간 작가만 해도 100여명. 그가 예술가를 불러모으기 시작한 때는 2007년 개복동에서부터다. 상처가 많은 도시를 상징하는 그곳에서 문화예술로 희생자를 부각하고 예술가의 창작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개복동은 그가 태어난 행정구역기도 했다.그는 2002년 독일에 있을 때 개복동 화재가 뉴스로 나온 순간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며 현지 친구들이 미개한 사건이라고 평하는데 차마 고향이라고 말을 못했다고 회상했다.독일 드레스덴 미술대학에서 석사와 박사과정(뉴미디어)을 졸업하고 2006년 귀국한 그는 문화공동체 감을 만들어 개복동에 예술가가 정착하는 다리 역할을 했다.이 대표는 200m 거리에 예술가 30여명이 원활히 입주하도록 그들에게 좀더 싼 임대비의 건물을 소개하는 복덕방 역할을 했다며 초창기 모인 예술가는 지역 활성화보다는 작업공간의 확보가 우선이었다고 들려주었다.하지만 그는 개복동의 실험이 자신에게는 실패라고 결론지었다.이 대표는 주민과 예술가의 관심이 고조되고 개발 예산의 투입이 결정된 뒤 지역 활성화를 원하는 주민과의 갈등이 커졌고, 결국 소통의 단절이 주요인이었다며 당시에는 많이 움직이고 밀어붙였는데 문화는 긴 호흡이 아니면 소화 불량에 걸린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그는 이를 거울삼아 주민과의 교류사업에 힘쓴다. 2010년부터 레지던시 입주 작가, 지역작가, 주민과 함께 동국사 가는 길의 정비사업으로 간판을 바꾸는 등 공간 환경을 개선해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의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이 대표는 앞으로 입주 작가에게 군산의 특징을 살린 창작활동을 촉진할 계획이다.그는 일본 작가와의 교류를 통해 식민지 수탈의 최전선이었던 군산의 역사적 경험과 문제를 미술이라는 매개로 공유해소하고 싶다고 밝혔다.한편 전북도는 지난 9일 올 레지던시 프로그램 지원사업의 9건을 심의한 결과 4건을 선정했다. 군산 창작 레지던시 여인숙을 비롯해 익산문화재단 7000만 원, 부안 휘목미술관 5500만 원, 무주 무이미술관 4000만 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 문화일반
  • 이세명
  • 2015.03.17 23:02

익산시교향악단 이경호 지휘자 "지역 오케스트라에 국가 지원 필요"

교향악단에서 유일하게 소리를 내지 않는 연주자. 관객과 단원 사이에서 소통의 다리를 놓는 지휘자다. (사)익산시교향악단, 익산청소년교향악단과 주니어오케스트라, 서동오페라단의 지휘를 맡고 있는 이경호 씨(60)는 지역에서 보다 많은 연주 단체가 생겨나야 한다고 강조한다.즐길거리의 중앙 집중화를 탈피하고 전공자가 설 수 있는 무대를 만들기 위해 도내 곳곳에서 교향악단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음악인이 물론 처음에는 좋아서 하지만 음악을 통해서 시민이나 사회에 문화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전주시립교향악단의 초창기 단원으로 활동하다 정읍, 익산지역에서 교향악단을 만들며 클래식 음악의 저변 확대에 힘써온 그는 문화예술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아닌 투자다며 도내에서도 전주, 군산 등은 시립예술단이 있지만 그 외에 지역은 이런 단체가 부족해 문화적 격차가 크다고 말했다.아울러 그는 현재 음악학과 학생이 졸업하면 지역에서 갈 곳이 없다며 결국 음악인구도 줄고, 예술인의 서울 중심적 사고와 함께 지역의 열악한 조건 등이 겹쳐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고 진단했다.그는 지난 1994년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뒤 전주에서 전북실내악단을 창단해 활동하다 1998년 정읍시교향악단을 만들었다. 2002년에 자신이 학창시절을 보낸 익산에서 전북교향악단을 거쳐 지역의 음악인을 모아 2010년 (사)익산시교향악단을 창단했다. 자신이 살던 집의 전세금으로 현재 교향악단의 연습실을 구하기도 했다.애초 그는 오보에 연주자였다. 정읍 출신으로 남성고에 진학하면서 악기를 본격적으로 연주했고 원광대 음대를 졸업했다. 전주시립교향악단에서 오보에를 연주했지만 악기보다는 지휘에 뜻을 품고 1988년도에 사표를 내고 33살에 유학을 감행했다. 프랑스 낭시 국립음악원에서 어학을 수학한 뒤 파리 에콜 노르말에서 오보에와 오케스트라 지휘를 공부했다.그는 음악인이라면 지휘를 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며 모든 악기뿐 아니라 음악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즐거움을 배가한다고 들려주었다.연주자의 길을 접고 후배 연주자의 길잡이로 전환한 그는 현재 다음달 23일 익산예술의전당 개관 연주를 준비하는데 한창이다. 전체적인 프로그램을 짜고, 협연자를 섭외하느라 분주했다.그는 음악회라면 적어도 일주일 정도는 관객에게 그 에너지가 남아 생활의 활력소가 돼야 한다며 한정된 공간에 관객을 모아놓고 무조건 감동을 받으라고 강요하면 관객이 오지 않는 만큼 함께 호흡하고 공감을 이뤄 다음에 또 오고 싶은 연주회를 만드는데 중점을 둔다고 강조했다.아울러 그는 악기를 다루는 사람이 먼저 즐겁고 감동을 받아야 관객에게 이를 전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그가 소망하는 교향악단은 활동의 안정성이 보장되는 문화단체다.그는 외국에서는 오케스트라를 기초 예술로 보고, 기초 과학처럼 국가에서 지원한다며 프랑스에는 파리, 마르세유, 리옹 등 각 지역에 교향악단이 있지만 국립으로 운영된다고 설명했다.이어 단원이 지역을 떠나지 않고 연주활동을 지속해 예술단체가 시민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한편 지역민과 예술인이 패배의식에서 벗어나 서로를 존중하는 인식이 자리잡길 바란다고 보탰다.

  • 문화일반
  • 이세명
  • 2015.03.10 23:02

연극 무대 세트 전문가 서령 씨 "또다른 주연 '무대' 생생함 전하고 싶어"

무대 세트는 주연 중의 주연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 자리에서 항상 연기를 합니다. 배우를 띄우고 가장 멋있는 장면을 만드는 게 바로 배경입니다.주인공에 버금가는 주연을 만드는 무대 세트 전문가 서령 씨(45)는 도내 연극계의 맥가이버다. 그의 손을 거쳐 전주의 창작소극장, 아하아트홀 등의 소극장이 만들어졌고, 도내 각 극단의 작품이 올려졌다.무대뿐 특수효과와 소품 등도 취급한다. 지난해 포스댄스컴퍼니의 댄스컬 판타스틱 정글과 전주시립극단의 102회 정기공연 석관 등에서 연기를 내거나 사람을 들어올리기도 했다. 지난해 8월 치른 충북도민체전과 지난 10월 열린 임실의 소충사선문화축제 등 지역 축제의 행사 무대도 제작했다.하지만 서 씨가 가장 애착을 담는 곳은 연극이다. 소극장일수록 제작이 까다롭지만 그만큼 성취감도 비례한다.그는 소극장은 대극장보다 세트가 더욱 정교해 품이 많이 들어간다며 소극장은 장면 전환이 거의 없고, 관객석과 가까워 얼룩이라도 지면 금방 티가 난다고 설명했다.그럼에도 연극이 끝난 뒤의 보람이 수입원과는 요원한 일을 지속하게 한다.배우들의 연기가 끝나고 박수를 받을 때 기분이 좋습니다. 고생해서 만든 작품을 보고 관객이 세트의 디테일을 호평했을 때 가장 힘이 납니다.그는 의뢰와 함께 무대의 디자인 또는 평면도를 받으면 극의 줄거리와 느낌을 듣고 머릿속에 무대를 짓는다. 이후 연출진과 의견을 교환하며 설계도를 수정한다. 머리에 그려지지 않을 경우 모형을 만들기도 한다. 보통 한 달 전 디자인을 받아보고 공연 5일 전에 설치한다. 철재, 목재 등 재료의 특성에 따라 재단, 설계하고 실제 세워 놓았을 때 조화가 관건이다.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지난 2010년 부산에서 열린 제28회 전국연극제에서 극단 무대지기의 눈 오는 봄날이다. 당시 이 작품은 대통령상과 희곡상, 연출상, 최우수연기상을 받았다.부산문화회관 중극장이 전주의 공연장보다 작아 세트를 새로 제작해야 했습니다. 기존 세트를 거의 활용하지 못하고 1톤 트럭 2대 분량을 싣고 우여곡절 끝에 부산까지 갔는데 놀라운 성적을 낸 기억이 생생합니다.현재 그의 본업은 따로 있다. 4년 전부터 계사(鷄舍) 시설 보수를 하며 틈틈이 시간을 내 연극에 손을 쓰고 있다.그는 전주 출신으로 고교 때 자동차 정비, 대학에서는 품질 관리를 전공했다. 전북도 기능올림픽 은메달리스트로 방송통신대에서는 농학과를 다닌 재주꾼이다. 용접 관련 일을 하다 외환위기 때 퇴직한 경력도 있다.지난 1990년대 초반 무대 조명을 보던 그의 친구가 용접이 필요하다는 말에 연극계에 발을 들였다. 한동안 무대와는 소원하다 1997년 창작소극장의 화재로 이를 복원하는데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세트 전문가가 됐다. 당시 화재 현장을 기웃거리며 벽돌을 쌓고 골조도 세우며 무대 자체를 다시 만들었다.당시 연극계는 무척 열악했는데 연습이 끝나면 단원들이 한솥밥을 먹는 풍경이 정겨웠습니다. 그래서 공연에 필요한 물건을 하나둘 제공하게 됐습니다.서 씨는 도내 연극계에 세트 제작 전문 인력과 일원화된 제작저장 공간이 없는 점이 늘 아쉽다.그는 도내 연극의 수준이 높고 역사도 길지만 세트 도안에서 설치까지 전과정을 하는 사람이 드물고, 인건비와 재료비를 아낄 수 있는 공동제작소가 없어 세트 제작에 저비용 저효율이 지속되고 있다며 각 극장마다 크기가 달라 똑같이 재활용할 수는 없지만 모두 모아 재배치를 할 경우 가능하다고 강조했다.연극 분야에서 그의 꿈은 소품박물관이다.연극은 대부분 시간대가 과거인데 배우가 무대 위 펌프에서 나오는 물로 손을 씻는 장면을 구현하는 방식으로 생생함을 전달하고 싶습니다. 저에게 오면 웬만한 물건은 구할 수 있다는 말이 돌 정도가 되기 위해 옛 물건을 수집하고 있습니다.

  • 문화일반
  • 이세명
  • 2015.02.24 23:02

연주 해설자로 활동 전주시립교향악단 조규철 단원 "클래식 듣는 재미 알려드릴게요"

문화예술은 창작이다. 남과 다른 고유한 창의력의 표현이 관건이다. 문화예술계에는 이런 직접적인 창작활동은 아니지만 그 언저리와 무대 뒤를 지키는 이들이 있다. 문화예술가가 맘껏 자신의 에너지를 소진하도록 판을 마련하고 필요한 자원을 공급하는 필요충분한 사람들이다. 그들의 열정과 숨은 이야기를 소개한다.도내 클래식 연주단체의 공연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사람이 있다. 10여년간 클래식 연주회에서 대중친화적인 해설로 각광을 받는 전주시립교향악단 소속 조규철 단원(46)이다. 그의 본업은 교향악단의 악보 담당이다.하지만 연주회가 자주 이뤄지는 봄, 가을이면 시립교향악단의 공연 외에도 매월 5~6건의 다른 공연에 해설자로 나선다. 시립교향악단의 동료가 참여하는 앙상블단체나 클나무필하모닉오케스트라, 글로리아스트링오케스트라 등 도내 오케스트라의 무대에 주로 나온다.저는 음악감상의 도우미입니다. 클래식도 재미있다는 인식을 퍼뜨리고 싶습니다. 축구와 야구도 법칙을 알고 보면 흥미있듯 음악도 기본을 알면 마찬가지입니다.그는 클래식 연주회에서 진행과 함께 곡의 종류와 작곡가 등을 이야기하며 관객의 이해를 돕는다.조 단원은 모음곡, 서곡, 협주곡 등이 무엇인지, 작곡자와 곡에 얽힌 간단한 일화 등을 소개한다며 가급적이면 곡에 대한 선입견이 들지 않도록 이 음악은 별이 반짝이는 것을 표현했다는 식의 해설은 지양한다고 설명했다.그는 주관적인 감상을 강조했다.조 단원은 가요도 연인이란 사귈 때와 헤어졌 때 등 상태에 따라 달리 느끼는 만큼 클래식도 많은 지식의 주입보다 본인의 감정을 토대로 연상하면 된다고 말했다.그는 장수 출신으로 전북대 음악교육과를 졸업하고 지난 2001년 전주시립교향악단에 입사했다. 성악을 전공했지만 악보 담당으로 재직하고 있다. 이 보직은 교향악단마다 있다. 같은 곡이라도 통일성과 버전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악보에 추가적으로 표시를 한다. 현악의 경우 활을 위 또는 아래로 쓰도록 음표 위에 활표시를 한다.그는 단원들이 연주를 편안히 하도록 준비하는 역할이다고 말했다.그가 무대 체질이라는 다른 재능을 발견한 것은 입사 한 지 1년여가 지났을 무렵이다. 시립교향악단이 전주시내의 각 동이나 학교에서 순회연주회를 하는데 진행자로 나서면서부터다. 찾아가는 음악회를 했는데 행사의 한 부분으로 참여하면서 일반 사회자가 진행을 보고 클래식이 아닌 대중적인 곡을 연주했습니다. 하지만 농담 위주의 진행과 비용 등을 고려해 제가 그냥 하겠다고 건의했고 이후 지속하게 됐습니다.그는 그냥 음악을 들려주기보다 특히 학교에서는 기본적인 음악 형식, 작곡가 등을 알면 집중할 수 있겠다 싶어 시작했다며 연주 단원들은 대부분 악기가 아닌 마이크를 잡으면 머릿 속이 하애진다고 하는데 다행히 많은 사람들 앞에 있어도 떨림이 없어 편안하다고 들려주었다.이후 다른 단원들이 개인 활동 공연에 그를 부르면서 본격적으로 해설자가 됐다.그는 처음에는 단순한 정보 전달자로 다음 곡을 소개하는 정도였고 이후 해설을 넣었는데 아이들이 듣기에는 너무 어려웠다며 시간이 지나면서 관객이 원하는 게 뭘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언젠가부터는 객석을 보고 멘트를 조절한다고 말했다.그는 해설자 의뢰가 들어오면 프로그램 구성을 보고 인터넷과 함께 전북대 도서관에서 자료를 찾는다.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서다. 원고는 쓰지만 키워드를 중심으로 진행한다.그는 속칭 애드리브(ad lib)도 많이 하는 편이다.애들이 졸고 있으면 공사장같이 시끄러운 곳에서는 잠을 못자는데 연주가 아주 훌륭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고 너스레를 떱니다.그가 연주회에서 담당하는 시간은 보통 1곡당 1~2분이다. 일부 단체는 연주만큼의 시간을 배정해 진행자의 면모를 발휘하게도 한다.조 단원은 1시간20분간의 공연에서 40분 가까이 곡에 대한 설명을 했더니 연이어 음악 행사 섭외가 들어오기도 했다면서 이후 동창회에 사회를 봐달라는 요청이 왔지만 본의와 맞지 않아 거절했다고 말했다.그는 안정적이고 차분한 공연 해설자로 무대에 서지만 그때마다 남는 것은 아쉬움이다.그는 항상 공연이 끝나면 뭔가 더 해줄 수 있었는데라는 미안함이 앞서고 만족감이 들지 않는다면서도 가끔 얼굴을 알아보고 해설 참 잘들었다고 인사를 받을 때 가장 기분이 좋다고 밝혔다.

  • 문화일반
  • 이세명
  • 2015.02.10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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