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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아침 대화 - 최아현

아무것도 믿을 수 없었다. 신호등의 빨간불도 무시하고 달렸다. 딸아이가 그런 짓을 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내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아무도, 그 아이가 그런 일을 했다고 말을 해서는 안 될 일이다. 당장 오늘 아침에도 알람을 잊는 실수를 하지 않았던가. 들이받듯 편의점 문을 열어젖혔다.

 

“사장님, 무슨 일 있으세요?”

 

아르바이트생인 다이가 인사를 건네는 소리를 들었지만 대꾸할 정신도 아니었다.

 

“별일 아냐.”

 

사실은 별일이었고, 아주 큰일이었다. 지진이 난 것처럼 땅이 흔들리고, 하늘은 노랗게 변하는 것 같았다.

 

곧 편의점 뒤로 가서 지난주 CCTV를 확인했다. 까득까득 손톱이 이에 갈리는 소리가 났다. 어릴 때, 엄마에게 혼쭐이 나며 고친 습관이었는데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튀어나왔다. 내가 편의점을 나서는 것이 화면에 잡힐 때쯤 다이가 들어왔다.

 

다이를 보며 딸의 일은 다이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말도 잘 듣고 모난 곳 없이 자라던 딸애가 비행 따위 저지를 리 없어. 아주 잠깐이지만, 평화가 찾아왔다. 일의 시작은 건빵 때문이었다. 아니, 그냥 건빵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자명종 소리가 집에 가득했다. 매일 듣는 익숙한 소리지만 가끔 싫을 때가 있다. 팔꿈치를 반쯤 펴서 핸드폰을 찾아 알람을 껐다. 그래도 이 소리에 깼으니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이다. 다시 일주일이 시작되었다. 이번 한 주도 바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이 찌뿌듯했다. 비가 오는 모양이었다. 눈을 비비며 커튼을 열었다. 하늘은 어제와 다르지 않았다. 비가 내린 흔적도 없었다. 한기 가득한 바람이 방을 휘돌았다. 이불을 개며 어제 몸 쓰는 일을 했었나, 생각했다. 딱히 다르지 않은 하루였다는 결론을 얻은 뒤 곧 방에서 나갔다. 더 있다가는 딸애의 아침을 챙기지 못할 것 같아서였다. 뜬금없이 어제와 다른 몸 상태에 서러웠다. 늙긴 늙었나.

 

딸애가 중학교에 다닐 때, 남편과 헤어졌다. 세상은 이혼 같은 건 흉이 아니라고 했지만, 신경을 쓰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승진되지 않는 회사를 그만두고, 골목 어귀에 편의점을 차렸다. 사계절을 지내고 새로운 계절이 시작되고 있었다.

 

나는 젊음의 매 순간을 자리를 잡는 데 써 왔는지도 모른다. 졸업과 취업, 아내와 엄마, 딸과 며느리…잡다한 추억 더듬기에 빠져 있는 나를 질책하듯 칼을 쥔 손이 미끄러졌다. 이런 날이 거의 없는데 결국 왼손 검지를 베고 말았다. 툭, 몽우리 진 피 한 방울이 도마로 떨어졌다. 봐도,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 검붉은 피는 금세 속을 메스껍게 했다. 딸애의 아침을 차려줄 만큼은 썰어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마침 식탁에 앉은 딸애 앞에 접시를 내려놓았다.

 

“드레싱은 뭐로 줄까?”

 

“그냥 엄마 먹던 거 먹을게요.”

 

냉장고 문을 열고 서성이다 참깨 드레싱을 꺼냈다. 접시 위로 흐르는 드레싱을 물끄러미 보던 딸애가 “엄마 다쳤어요?”라고 물었다. 드레싱을 달라던 목소리와 감정 변화 하나 없었다.

 

“양배추 썰다가.”

 

“조심해요.”

▲ 오가는 말이 있다는 건 여전히 가족애가 오가는 것이다. 오히려 딸애와 대화가 없어지는 것이 두려웠다. 모든 관계의 끝은 대체로 대화가 없을 때 끝이 난다. 라디오에서는 오늘 날씨에 대해서 떠들고 있었다. 아침 식탁에서 딸애와 나는 꼭 매일 해야 하는 숙제가 있는 사람들처럼 대화를 이어 갔다. /그림=권휘원

딸애의 말을 진심 어린 걱정으로 듣는다. 상투적인 톤으로 으레 예의처럼 건네는 말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가족의 끈끈한 사랑 같은 건 상투적인 톤이어도 좋다. 오가는 말이 있다는 건 여전히 가족애가 오가는 것이다. 오히려 딸애와 대화가 없어지는 것이 두려웠다. 모든 관계의 끝은 대체로 대화가 없을 때 끝이 난다. 라디오에서는 오늘 날씨에 대해서 떠들고 있었다.

 

아침 식탁에서 딸애와 나는 꼭 매일 해야 하는 숙제가 있는 사람들처럼 대화를 이어 갔다.

 

“학원 빼먹지 말고.”

 

“알아요.”

 

“딴짓하지 말고, 학원 차 놓치지 않게 미리 가서 기다리고, 이상한 아이들하고 놀지 말고. 엄마 말, 무슨 말인지 알지?”

 

“네. 근데 엄마, 이 이야기 한 달째 하는 거 아시죠?”

 

“괜히 복잡한 일에 휘말리지 말고. 요즘에 세상이 워낙 흉흉하니까 잘못이 없어도 운이 나쁘면 잘못한 게 되기도 하니까.”

 

“알겠어요. 학교 다녀올게요.”

 

손을 두어 번 흔들어 주는 것으로 딸애와의 아침이 끝났다. 입맛이 없었는지 샐러드를 반이나 남긴 아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을 나섰다. 그렇게 느리게 걸을 거면 한 번쯤 돌아볼 법도 했는데, 고등학교에 간 뒤로는 그런 날이 거의 없다. 가끔 딸애가 놓고 가는 것이 있는 날에나 돌아서 다시 챙겨 가곤 했다. 무언가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있어 보이는데 그게 무엇인지 물어볼 기회가 생기지 않았다.

 

우리 모녀가 이렇게 삭막한 사이는 아니었다. 딸애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던 해, 우리는 전주 팔달로에서 촛불을 들곤 했다. 세상은 한참 먹는 문제로 시끌벅적했다. 촛불을 든 사람들로 가득한 거리를 보며 딸애가 물었다.

 

“엄마, 왜 촛불을 들고 있어?”

 

나는 아이에게 불의는 참는 것이 아니라, 맞서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그 말을 후회한 건 딸애가 중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였다. 딸애는 나의 가르침을 발판 삼아 촛불을 들고 걸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적절한 시기라는 것이 있다. 딸애에게 불의에 맞서야 한다는 말은 참았어야 했다. 어른이 돼서 행동해도 늦지 않는다고 말했어야 했다. 내 말을 잘 듣고 자라던 딸애는 거리로 나갔다. 가만히 있으라는 피켓을 들고서 기어이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해에 사람들이 많이 아프고 다쳤다. 내 딸도 그들 중 한 명이었다. 나는 아이가 더는 다치지 않도록 해야 했다. 엄마의 일이었고, 책임이었다. 보호자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못한 자괴감마저 들었다. 아이가 다치면 그 책임은 오롯이 나의 것이 된다. 여전히 우리 엄마를 떠올리며 반지를 쓰다듬는 나는 결국 딸애의 엄마가 되어 버렸다. 반지를 쓰다듬으며 나는 늘 생각한다. 나는 여전히 우리 엄마 딸인데. 그러다 문득 식탁을 보며 다시 곱씹는다. 나는 우리 딸애의 엄마인데. 아무도 나에게 엄마가 되는 법에 대해서 가르쳐준 적 없었다. 동시에 누구나 나에게 엄마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나는 보호자로서 딸애를 더 다치게 놔둘 수 없었다. 나는 아이를 바쁘게 만들기로 했다. 딸의 학원을 두 배로 늘렸다. 학교와 학원을 오가는 길은 항상 동행했다. 그쯤부터 아침 식사에서 소란스럽던 아이의 재잘거림이 들리지 않았다. 딸아이가 남긴 샐러드를 씹으며 식탁을 정리했다. 혼자 남은 집에는 내가 움직이는 곳에서만 소리가 났다. 꾸역꾸역 샐러드가 씹혔고, 걸음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달그락달그락, 그릇들이 부딪쳤다. 매스꺼운 배를 쓰다듬으며 변기에 앉았다. 시선이 내 속옷에 닿았고, 나는 눈을 여러 번 깜빡였다.

 

가족이라곤 둘밖에 없는 집에 혼자 남으면 공기가 무겁게 느껴졌다. 세상에 덜렁 혼자 떨어진 기분. 혼자는 늘 낯설었다. 욕실에서 넘어졌을 때,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으면 어쩌지. 위험한 순간에 세상의 누구도 도와주지 못하는 곳은 혼자 남은 내 집뿐이었다. 내 딸에게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나는 오래도록 건강해야 한다. 내가 건강히 오래 살아야 할 이유는 그것이면 됐다.

 

엄마는 내가 스무 살 때 돌아가셨다. 새내기 대학생이던 나는 동아리며 학생운동 따위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늘 늦는 외동딸 탓에 엄마는 혼자였다. 엄마는 내가 늦는 것을 못마땅해 했고, 흙먼지를 달고 들어오는 내 손을 잡으며 내일은 학교가 끝나는 대로 돌아오라고 말했다. 엄마는 항상 내 어깨에 묻은 흙먼지만 털었다. 대신 내 몸에서 나는 술과 담배 냄새는 모른 척했다. 계속해서 늦지 말라는 당부만 반복할 뿐, 엄마는 꼭 후각을 잃은 사람처럼 행동했다. 마지막 한마디는 늘 같았다.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는 할 일이니 그만두라고. 그러나 무엇이 무서웠는지 말하지 않았다.

 

엄마는 끝난 줄 알았던 달거리를 다시 시작한다며 진통제를 사서 일찍 들어오라고 일렀다. 엄마를 평생토록 괴롭힌 것은 생리통이었다. 으레 달거리를 시작하면 배를 감싸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날도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김없이 흙먼지를 뱉으며 들어왔을 때, 집은 꼭 나 하나 남은 것처럼 조용했다. 엄마가 달려 나와 손을 감싸 쥐든, 진통제를 찾든, 혹은 이제는 좀 그만하라며 윽박을 질렀어야 했다.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불안함에 집을 뒤졌다. 화장실 문을 열었을 때, 엄마는 피를 잔뜩 쏟고 쓰러져 있었다. 달거리가 멈췄다며 지긋지긋한 배앓이를 안 해서 좋다던 엄마는 이제 공장을 닫는다고 했다. 여자구실은 이제 끝이라고 했다. 쓰러진 엄마를 봤을 때 나는 여자구실을 끝내고, 공장을 닫는다는 건 삶도 끝나 버리는 것이라고 배워 버렸다. 엄마가 쏟아 내던 말들이 머릿속에 반복됐다. 다를 것 없는 하루였다. 곧이어 들어온 아빠가 엄마를 짊어지고 병원으로 내달렸고, 머지않아 엄마는 나와, 생리통과 이별했다.

 

그리고 나는 오늘 월경을 다시 시작했다.

 

여전히 몸은 피곤했고 오늘따라 하루가 조금씩 뒤틀린 기분이었다. 월요일이면 가는 마트에서 묵직한 장바구니를 들고 들어오는 길. 손가락에서 다시 피가 났다. 상처가 아문 줄 알았는데 손가락에 힘을 주면서 다시 찢어진 모양이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구급상자를 뒤적여 밴드를 붙였다. 해가 간당간당 빌딩 사이에 걸릴 때가 되어서야 집안일을 마쳤다. 손가락의 피도 멎었다. 나이를 먹어 가는 내내 혼자인 것조차 익숙해지지 못하고 다시 모든 게 느려지는 것 같았다.

 

이것저것 감상에 젖어 있다가 시간이 조금 늦어 버렸다. 평소 같았으면 분주해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만 이젠 괜찮았다. 이 주 전부터 아르바이트생을 한 명 더 구했기 때문이다. 배가 알싸하게 아파 왔다. 허리도 지끈거렸고 횡단보도에 선 나를 받치고 있는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아무래도 소화 기능까지 느려진 모양이었다. 아침 식사 이후에 먹은 것이라곤 달걀 한 알이었는데. 속이 더부룩했다. 횡단보도와 도로에는 차 한 대, 사람 한 명 지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근엄히 붉은빛을 내며 멈추라 말하는 신호등 때문에 나는 그 건너편에 서 있었다. 젊은 남자 하나가 좌우를 살피고 빨간불로 가득한 횡단보도를 건넜다. 남자가 막 횡단보도에 발을 들이자 거짓말처럼 우회전을 한 차 한 대가 나타났다. 남자는 걸음을 멈추고 차가 지나길 기다렸다. 그제야 파란불이 켜졌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칙대로 하면 될 것을.

 

아르바이트생은 대학생을 구할 생각이었다. 다이가 찾아와 사정을 말하니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평소 같았으면 단호히 거절하겠지만, 편의점에 와서 종종 폐지를 담아 가는 할머니의 손녀딸이라니 마음이 약해졌다. 어린 나이에 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오는 다이가 안쓰럽고, 기특하고, 또 비슷한 또래의 딸애가 생각났다.

 

편의점 문을 열자 진득한 술 냄새가 코를 찔렀다. 동네에서 노는 한량 중 하나였다. 한량은 자신의 딸보다 어릴 것 같은 다이 앞에 술 두 병을 놓고, 계산대를 두들기고 있었다.

 

“내가 여기 사장이랑 잘 안다고!”

 

“손님,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제가 사장님께 연락을 드려 볼게요.”

 

다이가 두려움에 손을 떠는 것 같았다. 나는 술 냄새를 찾아갔다.

 

“뭐 필요한 거 있으세요?”

 

“저게, 달랑 백 원 모자란다고 지랄이네.”

 

“알겠어요. 다음에 가져다주세요.”

 

한량이 나가고 진동하는 술 냄새 때문에 한참 동안 편의점을 환기해야 했다. 조금 진정이 됐는지 다이는 원망하는 말투로 나를 나무랐다.

 

“저런 손님, 앞으로 어떻게 해요?”

 

“내가 원칙대로 하라고 했다고 말해.”

 

“방금 저 아저씬 꼭 때릴 것처럼 굴었어요. 무서웠단 말이에요.”

 

“계속 소란 피우면 경찰을 불러.”

 

다이는 무서운 모양이었다. 재차 비슷한 질문을 반복했다. 나는 으레 사회에는 이런 일이 많다고, 다들 그렇게 산다며 다이를 다독이며 덧붙였다.

 

“네가 물렁하게 굴어서 그래.”

 

나는 다이 탓을 하고 있었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저런 사람들은 제 눈에 만만한 사람들만 골라 진상을 부린다.

 

“하지만 방금은 돈 안 받고 보냈잖아요.”

 

“괜찮아. 나는 그렇게 해도 돼.”

 

그날 다이는 실수를 여러 번 했다. 재고를 채워 넣다가 잘못 둬서 정리를 다시 했고, 교대 시간에 현금을 잘못 세는 바람에 세 번이나 내가 함께 세야 했다. 퇴근하는 다이에게 따뜻한 두유 한 병을 건넸다. 여전히 두려움으로 가득한 다이에게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아까 괜히 다이 탓을 했다고 생각했다. 별말을 덧붙이지 않고 싶었는데 마음처럼 되질 않았다.

 

“괜찮아. 앞으론 이런 일 없을 거야.”

 

차라리 다이의 눈을 가리면 위로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 더군다나 고등학생이라면 모르게 하는 편이 낫다. 이런 사람들을 수없이 많이 만난다는 사실을 숨기고 싶었다. 어른이 되어서 알아도 늦지 않을 테다. 나는 다이를 볼 때마다 딸애가 생각이 났다. 딸애가 아르바이트하겠다고 하면 말려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아무래도 나이를 속물로 먹었나 보다. 다이에게는 잘못이 없지만, 세상에 그런 모든 문제를 내가 해결해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따뜻한 두유 한 병을 퇴근길에 건네는 것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교대를 하고 짐을 챙겨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또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엄마가 달거리가 멈췄다며 기뻐하던 나이가 지금 내 나이쯤이었다. 이제는 배가 아프면 속옷을 버릴 걱정에 서둘러 화장실에 앉거나 날짜를 세어 가며 생리대를 챙겨 다닐 일이 없어졌다고 생각했다. 6개월 만에 하는 월경이 두렵고, 반가웠고, 반갑지 않았다. 엄마처럼 될까 봐 두려웠다. 그동안 나는 생리가 멈췄다는 이야기를 엄마 말고는 아무에게도 듣지 못했다. 생리가 멈췄을 다이의 할머니도 폐지를 가져가면서 그런 이야기를 해 주지 않았다. 그래도 다들 살아 있으니 나도 그렇게 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아빠도 없는 딸애가 혼자 남을 것이 무서웠다. 하지만 100세 시대에 벌써 죽을까 싶었고, 늙지 않았다는 신호 같기도 했다. 그렇다고 마냥 월경이 반가울 리도 없다. 손톱을 입에 가져가려다 멈췄다. 다시 엄마가 생각났다. 이번에는 눈물을 삼켜야 했다.

 

생리대를 꺼내려 연 선반에는 수건만 가득했다. 여자 둘이 사는 집에 생리대 한 장 없는 현실이 당황스러웠다. 당연히 있을 줄 알고 편의점에서 챙겨 오지 않은 것도 원망됐다. 내 월경이 멈추고 나니 채워 넣을 생각조차 하지 못한 탓이었다. 온 신경을 딸애에게 쏟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참 무신경한 엄마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한참을 변기에 앉아 있었다.

 

마침 딸애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화장실 문을 조금 열고서 딸애를 불렀다.

 

“생리대 없어?”

 

평소라면 잠들어 있을 시간에 화장실에서 내 목소리가 들리자 아이는 놀란 것 같았다.

 

“없어요.”

 

아이는 제 방으로 향하며 흐르듯 말했다. 생리대가 없어진 지 한참인데 이제야 행방을 묻는 엄마가 귀찮은 모양이었다.

 

“어떻게 집에 생리대가 없어. 너는 어떡하고.”

 

“엄마, 뉴스 안 봐요?”

 

“무슨 뉴스.”

 

“생리대에서 안 좋은 성분 나왔다잖아요. 나 이제 생리대 안 써요.”

 

“괜찮아. 가서 하나 사 와. 다녀오는 길에 내일 먹을 과자도 조금 사 오고,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해. 위험하니까.”

 

딸애는 가끔 어떤 이야기들에 오랫동안 몰두하곤 했다. 이미 뉴스에서 안전하다고 말한 생리대도 탐탁지 않은 모양이었다. 도대체 생리대를 쓰지 않으면 뭘 어떻게 한다는 거지? TV에서 몇 가지 다른 용품을 소개했지만, 내키지 않았다. 모양도 이상했고 익숙지 않은 것들이었다. 이제 무언가 익숙해지기에는 전에 이용하던 것들이 너무 몸에 익어 버린 탓이었다. 게다가 이제는 월경도 하다 말다 하는 나이가 되어 버렸다. 남은 시간 동안 얼마나 더 할 줄 알고 무엇으로 바꾼단 말인가. 딸애라면 몰라도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다들 그렇게 사는 대로 살고 싶다. 딸애는 생리대를 화장실 앞에 두고는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매달 반복되던 일이었지만, 고작 6개월 만이라고 제법 불편했다. 끝나 버린 줄 알았던 것이 다시 시작하고 있었다. 언제 어떻게 시작하는지 몰랐던 초경처럼 그 끝도 알 수 없게 되어 버린 기분이었다. 정확히는 모른다는 말이 맞는다. 나는 긴 세월 나와 함께한 달거리가 어떻게 끝나는지 모르고 있다.

 

화장실 문틈으로 아이의 방문이 보였다. 방문 앞에 걸어둔 팻말에는 여전히 노란 리본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아이는 중학교 때 수학여행을 다녀오지 못했다. 누구를 원망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수학여행을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것 같았다. 얼마 전에는 수학여행지에 대한 설문조사가 가정통신문에 첨부되어 온 일이 있었다.

 

“너는 어디 가고 싶니?”

 

“당연히 제주도죠. 비행기 안 타봤잖아요.”

 

“위험할까 봐 그러지.”

 

내 말에 아이는 그 뒤로 무어라 몇 마디 덧붙였지만,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아이의 이야기에 집중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낮에 나간 마트에서 아이의 과자를 사 올 생각이었지만 그러질 못했다. 그날 아이는 가고 싶은 곳, 보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에 관해 한참을 떠들었다. 심지어 입고 갈 옷과 가지고 갈 과자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던 것 같은데, 무얼 이야기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아토피가 있는 딸애가 초콜릿은 피해야 했기에 고를 수 없었고, 너무 자극적인 맛의 과자는 사 주고 싶지 않았다. 결국, 나는 과자가 진열된 매대를 한참이나 돌다가 건빵을 한 봉지 사서 들어와야 했다. 아이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고 생각한 건 내가 나에게 하는 위로였다. 월경이 다시 찾아온 어느 날, 별안간 궁금한 것이 많아졌다. 아이에게 궁금한 걸 묻는 일은 내일로 미루기로 했다. 눈이 거의 감기기 직전이었다.

 

알람 소리를 듣고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일어났다. 날은 어제와 똑같았고 핸드폰 위치도 그대로였다. 허리와 엉덩이 사이 어딘가에서 느껴지는 축축한 기운에 벌떡 몸을 일으켰다. 이불 한쪽과 바지가 피로 얼룩져 버렸다. 이런 일은 학교에 다닐 때 빼곤 거의 없던 일이라 당황했다. 수건을 깔고 잠들지 않은 탓이었다. 예정에 없이 이불 빨래를 해야 할 생각에 아침부터 아득해졌다. 이마를 몇 번 훔쳐 내고 나서야 집이 지나치게 조용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시간이면 아이가 씻는 소리가 들려야 했다. 하지만 집 안에서 들리는 건 이마를 매만지는 내 손의 까끌까끌한 소리였다.

 

다급하게 일어나 아이의 방으로 달려갔다. 바지는 갈아입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 오늘은 아이가 수학여행을 가는 날이었다. 중학교 때 수학여행을 다녀오지 못한 아이가 얼마나 이날을 기다려 왔는지 알고 있었다. 당장 아이를 깨워 학교에 데려가야 했다. 방문을 열고 아이 이름을 불렀다.

 

내가 움직이는 소리만 가득한 집에 아이는 없었다. 무엇에 이렇게 놀라고 긴장했는지 알 수 없었다. 문고리를 쥔 손에는 힘이 바짝 들어갔고 다리는 힘이 풀려 주저앉을 뻔했다. 아이 방의 시계를 보니 이미 8시였다. 어제부터 상상해본 적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샤워하는 내내 열이 올라 찬물로 씻었다. 원래 몸에 열이 많기도 했지만 그래도 샤워만큼은 따뜻한 물로 했다. 그저 올겨울이 조금 따뜻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불과 일 년 전보다 수도꼭지의 방향이 찬물 쪽으로 한 마디나 돌아가 있었다. 문득 물이 너무 차갑다고 느꼈다. 하지만 온수로 다시 바꾸지는 않았다. 아침저녁으로 여전히 얼굴이 화끈거리는 탓이었다. 온종일 몽롱했고 기분이 이상했다. 라디오에 나오는 사연마다 기분이 요동치는 것 같았다.

 

겨우 이불 빨래를 하고서 다이에게 연락을 했다. 오늘부터는 혼자 하면 될 것 같다고. 다이는 답장이 없었다. 허무하게 앉아서 수건을 몇 장 개켰다. 이상한 하루의 시작은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꼭 이제 시작이라는 것처럼 핸드폰이 유난스럽게 울렸다. 딸애의 담임 선생님이었다.

 

아이는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순간부터 들떠 있었다. 아이가 중학교 3학년 때, 큰 사고가 나면서 전국의 학교들은 수학여행 일정을 취소했다. 딸애의 학교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쯤이면 한참 제주도에 도착해서 여행하고 있을 터였다. 나는 반쯤 접은 수건을 옆으로 치워 두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담임 선생님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믿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더욱이 내 딸이 한 일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어제부터 온통 상상할 수 없는 일들만 닥쳐오는 것 같았다. 이게 꿈이라고도 생각했다. 멈췄던 월경을 다시 하고, 늦잠을 자고, 이불을 버리고. 꿈에서 너무 깨고 싶어 허벅지를 힘껏 꼬집었다. 그저 변하는 건 늘어났다가 제자리로 힘없이 돌아가는 내 허벅지 살뿐이었다.

 

아이가 술을 가져와 친구들과 마셨다고 했다. 일정을 소화하던 와중에 자유 시간을 줬는데 그때 한쪽에서 아이들이 유난히 모여 있더란다. 이상하게 생각한 선생님이 가서 확인하니 아이들에게서 술 냄새가 진득하게 났다는 것이다. 게다가 아이들이 한 아이를 둘러싸고 앉아 억지로 술을 마시게 했는데 그 아이가 내 딸애였다고.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다음이었다. 아이들 모두 마신 술과 가방에서 나온 담배를 딸애가 가져왔다고 말했다. 엄마가 운영하는 편의점에서 가져왔고 자신들은 그저 놀고 있었을 뿐이었다고. 천장이 도는 것 같았다. 불과 며칠 전에 이상한 일에 엮이지 말라고 했을 때, 딸애는 알겠다고 했다. 나는 담임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딸애는 내 말이면 일단 알겠다고 하는 아이였다. 세상에 귀를 기울이는 대신 학원을 보냈고, 매년 소풍에 건빵만 가방에 넣어줘도 불만이 없는 아이였다. 며칠 내가 다친 것을 걱정하며 묻던 아이였다. 내가 보지 않은 것은 믿고 싶지 않았다. 내가 본 적 없는 딸애의 모습을 전하는 담임 선생님의 목소리가 잠시 윙윙거렸다. 아무리 이성적으로 생각하려고 해도 잘 되지 않았다. 내 눈에 딸애는 그런 짓을 할 아이가 아니었다.

 

“우리 애는 그럴 애가 아니에요.”

 

“학교로 돌아가면 징계가 있을 겁니다. 미리 연락을 드려야 할 것 같아서….”

 

“확실히 확인했나요? 증거가 있는 거예요?”

 

“어머니. 가정에서 지도 부탁드리겠습니다.”

 

담임은 그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개키던 수건을 던지고 일어섰다. 당장 편의점에 달려가 CCTV를 보지 않으면 가슴이 터져 버릴 것 같았다. 일그러진 일상은 순식간에 비틀어졌다. 모든 것이 이 순간을 위해 준비된 것 같았다. 조금씩 엇나간 믿음들이 동시에 무너졌다. 딸애의 비행을 전해 듣고 덜컥 확인해야겠다는 내 다짐이 무너짐의 시작을 알리는 것 같았다. 평소와 다르게 알람을 듣지 못했고, 피가 이불에 새는 실수를 하고 말았다. 아니, 어디서부터 꼬이기 시작한 것인지 가늠이 되질 않았다.

 

벌떡 일어나 갑자기 움직이는 내 다리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나는 내가 쌓아 둔 수건에 발이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집 한가운데서 벌러덩 넘어진 내가 너무 불쌍해서 그 자리에 엎드려 엉엉 울어 버렸다. 혼자서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아이는 모난 곳 없이 잘 키웠다고 생각했다. 조금 냉랭한 면이 있기는 했지만, 사춘기라고 생각했다. 말썽 한번 피운 적 없던 아이가 그랬을 리 없다고 나는 믿고 있었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내 눈에서는 자꾸만 눈물이 났다.

 

아이는 결국 징계를 받았다. 벌점을 한가득 받았고 매일 학교가 끝이 나면 사회봉사 활동을 했다. 덕분에 학원은 잠시 쉬어야 했다. 나는 CCTV를 확인하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딸애가 술을 훔쳐간 날은 다이가 겁에 질려 나에게 전화를 하려고 했던 날이었다. 여러 번 재고와 현금을 계산하는 과정에서 분명 실수가 있었던 게 틀림없다. 다이도, 나도 가끔 실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동안 아이는 결국 학교의 징계를 받게 됐다. 고작 그만큼을 인정하는 데 나는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꼭 편의점 CCTV 영상이 없더라도 현장을 들켜 버린 아이들이 빠져나갈 방법은 없었다. 나는 더 크게 번지길 원하지 않았고, 그날의 기록을 전부 지웠다. 지울 수만 있다면 내 삶에서도 지워 버리고 싶었던 일주일이었다.

 

수학여행에서 돌아온 딸애에게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이도 아무런 말이 없었고 우리는 꼭 그런 일이 없었던 사람들처럼 행동했다. 당분간 학원에 다니지 않아 일찍 돌아온 딸애가 인사도 없이 나를 지나쳤다. 울컥 나는 화가 났다. 왜 딸애가 저렇게 당당한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온 힘을 다해 참아 내고 있는데 딸애는 늘 무엇이 저렇게 불만이고 당당한 걸까. 발끝에서 울화가 치밀었다.

 

“예의 없이 굴지 말랬지.”

 

“다녀왔습니다.”

 

“엄마가 지금 인사받으려고 불러 세운 줄 알아?”

 

“그럼 뭔데요?”

 

“뭐?”

 

“엄마가 원하는 게 뭔데요?”

 

아이의 물음에 목구멍이 턱 막혔다.

 

“지금까지 내가 원하는 건 물어본 적 있어요?”

 

“지금 말대꾸하는 거니?”

 

“이렇게 하지 마라, 이건 하면 안 된다. 엄마는 내가 아무것도 안 하는 걸 원해요?”

 

나는 아이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원하는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선뜻 대답할 수도 없었다. 엄마가 무엇을 원해야 하나. 엄마는 원하는 게 있어야 했나. 나는 평온한 가정과 아이의 건강한 성장만을 바란다고 말하기도 헷갈렸다. 내가 원하던 것이 이것뿐이었나 싶다가, 이마저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는 생각까지 흘렀다. 아이가 현관에 들어서기 전까지 나는 아이가 징계받은 일조차 잊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네가 왜 화가 났는지 모르겠구나.”

 

“엄마가 하지 말라고 한 것들을 죄다 한 번에 했는데, 엄마는 왜 묻질 않아요? 그 전에 한 번이라도 내 말을 들어준 적 있어요?”

 

“아침에 항상 대화하잖니.”

 

“건빵 싫다고 말한 건 기억하세요? 매년 이야기하는데 엄마는 매년 건빵만 사 오잖아요. 다른 것들도 그래요. 저는 영어학원보다 수학학원이 더 필요하다는 말은 기억하세요? 바둑을 배워 보고 싶다는 이야기는요? 그 이야기에 딴짓할 생각 말라던 것도요. 엄마는 늘 물어봤다는 사실만 기억해요. 하고 싶은 일은 하고, 불의는 참지 말라면서요. 지금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하려면 엄마가 시킨 말을 다시 어겨야 해요.”

 

“다들 그렇게 살아.”

 

아이는 내 말에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아이는 쉬지 않고 말을 뱉어냈다. 근래 나눈 대화의 몇 배는 더 많은 이야기를 했다. 아이는 그동안 아침마다 내게 했던 질문을 되짚었다. 자신은 무엇을 좋아하는데 엄마는 무엇을 좋아하느냐는 식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수많은 식사를 함께 하면서 서로를 너무 모르고 있었다. 나와 아이는 그 질문에 서로 완벽하게 대답할 수 없었다. 다들 그렇게 산다는 말로 넘기기에는 아이와 나 모두 사람이었다. 방문을 소리 나게 닫고 들어가 버리는 딸애에게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바로 대답하지 못하는 내가 민망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결국, 새벽까지 잠을 설쳤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딸애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기억을 되짚느라 한참을 뒤척였다. 대답에 닿을 것 같다가도 그 대답에 닿기에는 세상이 그걸 가만둘 리 없었다. 나는 그저 딸애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걸 원했다. 모두의 행복이 다를 것이 분명해서 답을 내릴 수 없었다. 그 행복에 닿는 길이 모두가 가는 방식이 아니라면 더 꺼려졌다. 그런 건 위험한 것들 투성일 터였다. 나는 결국 그날도 늦잠을 자고 말았다. 다음 날 딸애는 아침을 먹지 않았다. 대신 식탁에 짧은 메모를 남겨 두었다.

 

‘저 아침 먹으면 속이 더부룩해요.’

 

마침내 어제 저녁부터 이미 내렸던 답을 확정 짓기로 했다.

 

얼굴이 붉어지며 열이 오르는 건 생각보다 꽤 신경을 긁는 일이었다. 나부터 변하기로 마음먹었다. 노트를 펼쳐 종이를 반으로 접었다. 한쪽에 내 이름 ‘한정희’를 적었다. 나머지 한 공간에는 딸애의 이름 ‘강다영’을 적었다. 양쪽 모두에 건강과 행복을 적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씩 채워 나갔다. 내가 해야 할 일도 채워 넣었다. 우선 딸의 사춘기와 나의 갱년기를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당장 산부인과에 들러 검진을 받고, 갱년기임이 틀림없는 이 증상들을 외면하지 않아야겠다. 가서 이 두려움에 맞서야겠다. 적어도 나는 딸애에게 그렇게 가르쳤다. 고작 노트의 반쪽을 채우는 데 한참이나 걸렸지만, 이제는 물었다는 사실만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 딸애가 돌아오면 이 노트를 건넬 생각이었다. 빳빳한 노란색 노트를 덮고 일어났다. 지금 산부인과를 다녀올 생각이었다.

 

나는 여전히 사람도 차도 없는 신호등을 지키고 서 있었다. 아무래도 나는 이런 것들을 지키고 규칙에 맞춰 사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았다. 하릴없이 신호등을 바라보는 일 말고 주변에 차가 오고 있는지 둘러봤다. 오늘도 우회전 차량이 도로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고 뒤쪽에서 바쁜 뜀박질 소리도 들려왔다. 나는 정신없이 길을 건너려던 여자를 불렀다.

 

“저기요! 차 와요!”

 

내 목소리에 여자는 발걸음을 멈췄다. 여자의 앞으로 차가 빠르게 스쳐 지나갔고, 신호는 다시 파란불로 바뀌었다. 여자는 그저 내게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서 다시 뜀박질을 시작했다.

 

병원을 다녀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렀다. 아무 과자나 건빵이 아니라면 좋았다. 잔뜩 늘어놓고 딸애가 좋아하는 걸 골라가게 할 셈이었다. 오늘도 조용히 들어선 편의점에는 그 한량이 와서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저번에 사장이 하는 말 들었잖아!”

 

“저는 사장님이 아니잖아요.”

 

두 마디만 들어도 상황을 파악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다이는 여전히 겁을 잔뜩 집어먹은 것 같았고 핸드폰을 꼭 쥔 손은 작게 떨리고 있었다.

▲ “계속 소란 피우시면 경찰 부를 거예요.” “사장 불러!” 한량은 의기양양하게 소리쳤다. 사실 저런 말이 위협이 될 것이라고, 다이의 두려움을 해소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한 말은 아니었다. 그저 상황을 모면하고 비껴가기에 그럴듯해 보여서 한 말이었다. 나는 여전히 다이를 보며 다영이를 떠올렸고 이제는 전과 같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림=권휘원

“계속 소란 피우시면 경찰 부를 거예요.”

 

“사장 불러!”

 

한량은 의기양양하게 소리쳤다. 사실 저런 말이 위협이 될 것이라고, 다이의 두려움을 해소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한 말은 아니었다. 그저 상황을 모면하고 비껴가기에 그럴듯해 보여서 한 말이었다. 나는 여전히 다이를 보며 다영이를 떠올렸고 이제는 전과 같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손님.”

 

“마침 사장님 오셨네. 저번처럼….”

 

“나가세요.”

 

“뭐요?”

 

“나가시라고요. 경찰 부르기 전에 나가세요.”

 

그 전에 밀린 돈은 받지 않을 테니 다시는 오지 말라는 말에 그는 씩씩대며 나가 버렸다. 다이는 되레 나에게 위로를 건넸다.

 

“사장님, 그래도 동네 사람인데.”

 

“저런 사람들은 고객으로 대하면 사람을 만만하게 봐.”

 

나는 정말로 다이에게 괜찮다고 말했다. 다음엔 그냥 저 사람이 오거든 CCTV 위치를 가리키며 경찰 부르라고 덧붙였다. 나는 여전히 한량과 같은 사람이 또 편의점에 찾아올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다이는 전보다 편안한 얼굴이었다. 같은 말이지만 분위기는 분명히 다르다. 내 말 한마디가 따뜻한 두유 따위보다 나을 거라고 감히 생각했다. 나는 다이에게 좋아하는 과자를 물었다.

 

“저는 나초 좋아해요.”

 

“다영이가 좋아할 과자가 짐작이 안 가서 물어봤어.”

 

“다영이가 따님이세요?”

 

다이의 말에 나는 또 얼굴이 붉어졌다. 갱년기 탓만은 아니었다. 문득 다영이의 이름을 불러본 적이 없는 것 같아서였다. 아이 혹은 딸애로 부르면서 정작 이름을 제대로 부르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종류별로 과자를 담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건빵도 잊지 않고 챙겼다. 나초 한 봉지는 다이에게 건네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돌아가면 가장 먼저 딸애의 이름을 불러야겠다. <끝>

아무것도 믿을 수 없었다. 신호등의 빨간불도 무시하고 달렸다. 딸아이가 그런 짓을 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내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아무도, 그 아이가 그런 일을 했다고 말을 해서는 안 될 일이다. 당장 오늘 아침에도 알람을 잊는 실수를 하지 않았던가. 들이받듯 편의점 문을 열어젖혔다.

 

“사장님, 무슨 일 있으세요?”

 

아르바이트생인 다이가 인사를 건네는 소리를 들었지만 대꾸할 정신도 아니었다.

 

“별일 아냐.”

 

사실은 별일이었고, 아주 큰일이었다. 지진이 난 것처럼 땅이 흔들리고, 하늘은 노랗게 변하는 것 같았다.

 

곧 편의점 뒤로 가서 지난주 CCTV를 확인했다. 까득까득 손톱이 이에 갈리는 소리가 났다. 어릴 때, 엄마에게 혼쭐이 나며 고친 습관이었는데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튀어나왔다. 내가 편의점을 나서는 것이 화면에 잡힐 때쯤 다이가 들어왔다.

 

다이를 보며 딸의 일은 다이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말도 잘 듣고 모난 곳 없이 자라던 딸애가 비행 따위 저지를 리 없어. 아주 잠깐이지만, 평화가 찾아왔다. 일의 시작은 건빵 때문이었다. 아니, 그냥 건빵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자명종 소리가 집에 가득했다. 매일 듣는 익숙한 소리지만 가끔 싫을 때가 있다. 팔꿈치를 반쯤 펴서 핸드폰을 찾아 알람을 껐다. 그래도 이 소리에 깼으니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이다. 다시 일주일이 시작되었다. 이번 한 주도 바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이 찌뿌듯했다. 비가 오는 모양이었다. 눈을 비비며 커튼을 열었다. 하늘은 어제와 다르지 않았다. 비가 내린 흔적도 없었다. 한기 가득한 바람이 방을 휘돌았다. 이불을 개며 어제 몸 쓰는 일을 했었나, 생각했다. 딱히 다르지 않은 하루였다는 결론을 얻은 뒤 곧 방에서 나갔다. 더 있다가는 딸애의 아침을 챙기지 못할 것 같아서였다. 뜬금없이 어제와 다른 몸 상태에 서러웠다. 늙긴 늙었나.

 

딸애가 중학교에 다닐 때, 남편과 헤어졌다. 세상은 이혼 같은 건 흉이 아니라고 했지만, 신경을 쓰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승진되지 않는 회사를 그만두고, 골목 어귀에 편의점을 차렸다. 사계절을 지내고 새로운 계절이 시작되고 있었다.

 

나는 젊음의 매 순간을 자리를 잡는 데 써 왔는지도 모른다. 졸업과 취업, 아내와 엄마, 딸과 며느리…잡다한 추억 더듬기에 빠져 있는 나를 질책하듯 칼을 쥔 손이 미끄러졌다. 이런 날이 거의 없는데 결국 왼손 검지를 베고 말았다. 툭, 몽우리 진 피 한 방울이 도마로 떨어졌다. 봐도,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 검붉은 피는 금세 속을 메스껍게 했다. 딸애의 아침을 차려줄 만큼은 썰어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마침 식탁에 앉은 딸애 앞에 접시를 내려놓았다.

 

“드레싱은 뭐로 줄까?”

 

“그냥 엄마 먹던 거 먹을게요.”

 

냉장고 문을 열고 서성이다 참깨 드레싱을 꺼냈다. 접시 위로 흐르는 드레싱을 물끄러미 보던 딸애가 “엄마 다쳤어요?”라고 물었다. 드레싱을 달라던 목소리와 감정 변화 하나 없었다.

 

“양배추 썰다가.”

 

“조심해요.”

▲ 오가는 말이 있다는 건 여전히 가족애가 오가는 것이다. 오히려 딸애와 대화가 없어지는 것이 두려웠다. 모든 관계의 끝은 대체로 대화가 없을 때 끝이 난다. 라디오에서는 오늘 날씨에 대해서 떠들고 있었다. 아침 식탁에서 딸애와 나는 꼭 매일 해야 하는 숙제가 있는 사람들처럼 대화를 이어 갔다. /그림=권휘원

딸애의 말을 진심 어린 걱정으로 듣는다. 상투적인 톤으로 으레 예의처럼 건네는 말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가족의 끈끈한 사랑 같은 건 상투적인 톤이어도 좋다. 오가는 말이 있다는 건 여전히 가족애가 오가는 것이다. 오히려 딸애와 대화가 없어지는 것이 두려웠다. 모든 관계의 끝은 대체로 대화가 없을 때 끝이 난다. 라디오에서는 오늘 날씨에 대해서 떠들고 있었다.

 

아침 식탁에서 딸애와 나는 꼭 매일 해야 하는 숙제가 있는 사람들처럼 대화를 이어 갔다.

 

“학원 빼먹지 말고.”

 

“알아요.”

 

“딴짓하지 말고, 학원 차 놓치지 않게 미리 가서 기다리고, 이상한 아이들하고 놀지 말고. 엄마 말, 무슨 말인지 알지?”

 

“네. 근데 엄마, 이 이야기 한 달째 하는 거 아시죠?”

 

“괜히 복잡한 일에 휘말리지 말고. 요즘에 세상이 워낙 흉흉하니까 잘못이 없어도 운이 나쁘면 잘못한 게 되기도 하니까.”

 

“알겠어요. 학교 다녀올게요.”

 

손을 두어 번 흔들어 주는 것으로 딸애와의 아침이 끝났다. 입맛이 없었는지 샐러드를 반이나 남긴 아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을 나섰다. 그렇게 느리게 걸을 거면 한 번쯤 돌아볼 법도 했는데, 고등학교에 간 뒤로는 그런 날이 거의 없다. 가끔 딸애가 놓고 가는 것이 있는 날에나 돌아서 다시 챙겨 가곤 했다. 무언가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있어 보이는데 그게 무엇인지 물어볼 기회가 생기지 않았다.

 

우리 모녀가 이렇게 삭막한 사이는 아니었다. 딸애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던 해, 우리는 전주 팔달로에서 촛불을 들곤 했다. 세상은 한참 먹는 문제로 시끌벅적했다. 촛불을 든 사람들로 가득한 거리를 보며 딸애가 물었다.

 

“엄마, 왜 촛불을 들고 있어?”

 

나는 아이에게 불의는 참는 것이 아니라, 맞서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그 말을 후회한 건 딸애가 중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였다. 딸애는 나의 가르침을 발판 삼아 촛불을 들고 걸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적절한 시기라는 것이 있다. 딸애에게 불의에 맞서야 한다는 말은 참았어야 했다. 어른이 돼서 행동해도 늦지 않는다고 말했어야 했다. 내 말을 잘 듣고 자라던 딸애는 거리로 나갔다. 가만히 있으라는 피켓을 들고서 기어이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해에 사람들이 많이 아프고 다쳤다. 내 딸도 그들 중 한 명이었다. 나는 아이가 더는 다치지 않도록 해야 했다. 엄마의 일이었고, 책임이었다. 보호자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못한 자괴감마저 들었다. 아이가 다치면 그 책임은 오롯이 나의 것이 된다. 여전히 우리 엄마를 떠올리며 반지를 쓰다듬는 나는 결국 딸애의 엄마가 되어 버렸다. 반지를 쓰다듬으며 나는 늘 생각한다. 나는 여전히 우리 엄마 딸인데. 그러다 문득 식탁을 보며 다시 곱씹는다. 나는 우리 딸애의 엄마인데. 아무도 나에게 엄마가 되는 법에 대해서 가르쳐준 적 없었다. 동시에 누구나 나에게 엄마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나는 보호자로서 딸애를 더 다치게 놔둘 수 없었다. 나는 아이를 바쁘게 만들기로 했다. 딸의 학원을 두 배로 늘렸다. 학교와 학원을 오가는 길은 항상 동행했다. 그쯤부터 아침 식사에서 소란스럽던 아이의 재잘거림이 들리지 않았다. 딸아이가 남긴 샐러드를 씹으며 식탁을 정리했다. 혼자 남은 집에는 내가 움직이는 곳에서만 소리가 났다. 꾸역꾸역 샐러드가 씹혔고, 걸음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달그락달그락, 그릇들이 부딪쳤다. 매스꺼운 배를 쓰다듬으며 변기에 앉았다. 시선이 내 속옷에 닿았고, 나는 눈을 여러 번 깜빡였다.

 

가족이라곤 둘밖에 없는 집에 혼자 남으면 공기가 무겁게 느껴졌다. 세상에 덜렁 혼자 떨어진 기분. 혼자는 늘 낯설었다. 욕실에서 넘어졌을 때,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으면 어쩌지. 위험한 순간에 세상의 누구도 도와주지 못하는 곳은 혼자 남은 내 집뿐이었다. 내 딸에게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나는 오래도록 건강해야 한다. 내가 건강히 오래 살아야 할 이유는 그것이면 됐다.

 

엄마는 내가 스무 살 때 돌아가셨다. 새내기 대학생이던 나는 동아리며 학생운동 따위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늘 늦는 외동딸 탓에 엄마는 혼자였다. 엄마는 내가 늦는 것을 못마땅해 했고, 흙먼지를 달고 들어오는 내 손을 잡으며 내일은 학교가 끝나는 대로 돌아오라고 말했다. 엄마는 항상 내 어깨에 묻은 흙먼지만 털었다. 대신 내 몸에서 나는 술과 담배 냄새는 모른 척했다. 계속해서 늦지 말라는 당부만 반복할 뿐, 엄마는 꼭 후각을 잃은 사람처럼 행동했다. 마지막 한마디는 늘 같았다.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는 할 일이니 그만두라고. 그러나 무엇이 무서웠는지 말하지 않았다.

 

엄마는 끝난 줄 알았던 달거리를 다시 시작한다며 진통제를 사서 일찍 들어오라고 일렀다. 엄마를 평생토록 괴롭힌 것은 생리통이었다. 으레 달거리를 시작하면 배를 감싸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날도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김없이 흙먼지를 뱉으며 들어왔을 때, 집은 꼭 나 하나 남은 것처럼 조용했다. 엄마가 달려 나와 손을 감싸 쥐든, 진통제를 찾든, 혹은 이제는 좀 그만하라며 윽박을 질렀어야 했다.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불안함에 집을 뒤졌다. 화장실 문을 열었을 때, 엄마는 피를 잔뜩 쏟고 쓰러져 있었다. 달거리가 멈췄다며 지긋지긋한 배앓이를 안 해서 좋다던 엄마는 이제 공장을 닫는다고 했다. 여자구실은 이제 끝이라고 했다. 쓰러진 엄마를 봤을 때 나는 여자구실을 끝내고, 공장을 닫는다는 건 삶도 끝나 버리는 것이라고 배워 버렸다. 엄마가 쏟아 내던 말들이 머릿속에 반복됐다. 다를 것 없는 하루였다. 곧이어 들어온 아빠가 엄마를 짊어지고 병원으로 내달렸고, 머지않아 엄마는 나와, 생리통과 이별했다.

 

그리고 나는 오늘 월경을 다시 시작했다.

 

여전히 몸은 피곤했고 오늘따라 하루가 조금씩 뒤틀린 기분이었다. 월요일이면 가는 마트에서 묵직한 장바구니를 들고 들어오는 길. 손가락에서 다시 피가 났다. 상처가 아문 줄 알았는데 손가락에 힘을 주면서 다시 찢어진 모양이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구급상자를 뒤적여 밴드를 붙였다. 해가 간당간당 빌딩 사이에 걸릴 때가 되어서야 집안일을 마쳤다. 손가락의 피도 멎었다. 나이를 먹어 가는 내내 혼자인 것조차 익숙해지지 못하고 다시 모든 게 느려지는 것 같았다.

 

이것저것 감상에 젖어 있다가 시간이 조금 늦어 버렸다. 평소 같았으면 분주해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만 이젠 괜찮았다. 이 주 전부터 아르바이트생을 한 명 더 구했기 때문이다. 배가 알싸하게 아파 왔다. 허리도 지끈거렸고 횡단보도에 선 나를 받치고 있는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아무래도 소화 기능까지 느려진 모양이었다. 아침 식사 이후에 먹은 것이라곤 달걀 한 알이었는데. 속이 더부룩했다. 횡단보도와 도로에는 차 한 대, 사람 한 명 지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근엄히 붉은빛을 내며 멈추라 말하는 신호등 때문에 나는 그 건너편에 서 있었다. 젊은 남자 하나가 좌우를 살피고 빨간불로 가득한 횡단보도를 건넜다. 남자가 막 횡단보도에 발을 들이자 거짓말처럼 우회전을 한 차 한 대가 나타났다. 남자는 걸음을 멈추고 차가 지나길 기다렸다. 그제야 파란불이 켜졌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칙대로 하면 될 것을.

 

아르바이트생은 대학생을 구할 생각이었다. 다이가 찾아와 사정을 말하니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평소 같았으면 단호히 거절하겠지만, 편의점에 와서 종종 폐지를 담아 가는 할머니의 손녀딸이라니 마음이 약해졌다. 어린 나이에 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오는 다이가 안쓰럽고, 기특하고, 또 비슷한 또래의 딸애가 생각났다.

 

편의점 문을 열자 진득한 술 냄새가 코를 찔렀다. 동네에서 노는 한량 중 하나였다. 한량은 자신의 딸보다 어릴 것 같은 다이 앞에 술 두 병을 놓고, 계산대를 두들기고 있었다.

 

“내가 여기 사장이랑 잘 안다고!”

 

“손님,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제가 사장님께 연락을 드려 볼게요.”

 

다이가 두려움에 손을 떠는 것 같았다. 나는 술 냄새를 찾아갔다.

 

“뭐 필요한 거 있으세요?”

 

“저게, 달랑 백 원 모자란다고 지랄이네.”

 

“알겠어요. 다음에 가져다주세요.”

 

한량이 나가고 진동하는 술 냄새 때문에 한참 동안 편의점을 환기해야 했다. 조금 진정이 됐는지 다이는 원망하는 말투로 나를 나무랐다.

 

“저런 손님, 앞으로 어떻게 해요?”

 

“내가 원칙대로 하라고 했다고 말해.”

 

“방금 저 아저씬 꼭 때릴 것처럼 굴었어요. 무서웠단 말이에요.”

 

“계속 소란 피우면 경찰을 불러.”

 

다이는 무서운 모양이었다. 재차 비슷한 질문을 반복했다. 나는 으레 사회에는 이런 일이 많다고, 다들 그렇게 산다며 다이를 다독이며 덧붙였다.

 

“네가 물렁하게 굴어서 그래.”

 

나는 다이 탓을 하고 있었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저런 사람들은 제 눈에 만만한 사람들만 골라 진상을 부린다.

 

“하지만 방금은 돈 안 받고 보냈잖아요.”

 

“괜찮아. 나는 그렇게 해도 돼.”

 

그날 다이는 실수를 여러 번 했다. 재고를 채워 넣다가 잘못 둬서 정리를 다시 했고, 교대 시간에 현금을 잘못 세는 바람에 세 번이나 내가 함께 세야 했다. 퇴근하는 다이에게 따뜻한 두유 한 병을 건넸다. 여전히 두려움으로 가득한 다이에게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아까 괜히 다이 탓을 했다고 생각했다. 별말을 덧붙이지 않고 싶었는데 마음처럼 되질 않았다.

 

“괜찮아. 앞으론 이런 일 없을 거야.”

 

차라리 다이의 눈을 가리면 위로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 더군다나 고등학생이라면 모르게 하는 편이 낫다. 이런 사람들을 수없이 많이 만난다는 사실을 숨기고 싶었다. 어른이 되어서 알아도 늦지 않을 테다. 나는 다이를 볼 때마다 딸애가 생각이 났다. 딸애가 아르바이트하겠다고 하면 말려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아무래도 나이를 속물로 먹었나 보다. 다이에게는 잘못이 없지만, 세상에 그런 모든 문제를 내가 해결해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따뜻한 두유 한 병을 퇴근길에 건네는 것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교대를 하고 짐을 챙겨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또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엄마가 달거리가 멈췄다며 기뻐하던 나이가 지금 내 나이쯤이었다. 이제는 배가 아프면 속옷을 버릴 걱정에 서둘러 화장실에 앉거나 날짜를 세어 가며 생리대를 챙겨 다닐 일이 없어졌다고 생각했다. 6개월 만에 하는 월경이 두렵고, 반가웠고, 반갑지 않았다. 엄마처럼 될까 봐 두려웠다. 그동안 나는 생리가 멈췄다는 이야기를 엄마 말고는 아무에게도 듣지 못했다. 생리가 멈췄을 다이의 할머니도 폐지를 가져가면서 그런 이야기를 해 주지 않았다. 그래도 다들 살아 있으니 나도 그렇게 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아빠도 없는 딸애가 혼자 남을 것이 무서웠다. 하지만 100세 시대에 벌써 죽을까 싶었고, 늙지 않았다는 신호 같기도 했다. 그렇다고 마냥 월경이 반가울 리도 없다. 손톱을 입에 가져가려다 멈췄다. 다시 엄마가 생각났다. 이번에는 눈물을 삼켜야 했다.

 

생리대를 꺼내려 연 선반에는 수건만 가득했다. 여자 둘이 사는 집에 생리대 한 장 없는 현실이 당황스러웠다. 당연히 있을 줄 알고 편의점에서 챙겨 오지 않은 것도 원망됐다. 내 월경이 멈추고 나니 채워 넣을 생각조차 하지 못한 탓이었다. 온 신경을 딸애에게 쏟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참 무신경한 엄마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한참을 변기에 앉아 있었다.

 

마침 딸애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화장실 문을 조금 열고서 딸애를 불렀다.

 

“생리대 없어?”

 

평소라면 잠들어 있을 시간에 화장실에서 내 목소리가 들리자 아이는 놀란 것 같았다.

 

“없어요.”

 

아이는 제 방으로 향하며 흐르듯 말했다. 생리대가 없어진 지 한참인데 이제야 행방을 묻는 엄마가 귀찮은 모양이었다.

 

“어떻게 집에 생리대가 없어. 너는 어떡하고.”

 

“엄마, 뉴스 안 봐요?”

 

“무슨 뉴스.”

 

“생리대에서 안 좋은 성분 나왔다잖아요. 나 이제 생리대 안 써요.”

 

“괜찮아. 가서 하나 사 와. 다녀오는 길에 내일 먹을 과자도 조금 사 오고,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해. 위험하니까.”

 

딸애는 가끔 어떤 이야기들에 오랫동안 몰두하곤 했다. 이미 뉴스에서 안전하다고 말한 생리대도 탐탁지 않은 모양이었다. 도대체 생리대를 쓰지 않으면 뭘 어떻게 한다는 거지? TV에서 몇 가지 다른 용품을 소개했지만, 내키지 않았다. 모양도 이상했고 익숙지 않은 것들이었다. 이제 무언가 익숙해지기에는 전에 이용하던 것들이 너무 몸에 익어 버린 탓이었다. 게다가 이제는 월경도 하다 말다 하는 나이가 되어 버렸다. 남은 시간 동안 얼마나 더 할 줄 알고 무엇으로 바꾼단 말인가. 딸애라면 몰라도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다들 그렇게 사는 대로 살고 싶다. 딸애는 생리대를 화장실 앞에 두고는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매달 반복되던 일이었지만, 고작 6개월 만이라고 제법 불편했다. 끝나 버린 줄 알았던 것이 다시 시작하고 있었다. 언제 어떻게 시작하는지 몰랐던 초경처럼 그 끝도 알 수 없게 되어 버린 기분이었다. 정확히는 모른다는 말이 맞는다. 나는 긴 세월 나와 함께한 달거리가 어떻게 끝나는지 모르고 있다.

 

화장실 문틈으로 아이의 방문이 보였다. 방문 앞에 걸어둔 팻말에는 여전히 노란 리본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아이는 중학교 때 수학여행을 다녀오지 못했다. 누구를 원망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수학여행을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것 같았다. 얼마 전에는 수학여행지에 대한 설문조사가 가정통신문에 첨부되어 온 일이 있었다.

 

“너는 어디 가고 싶니?”

 

“당연히 제주도죠. 비행기 안 타봤잖아요.”

 

“위험할까 봐 그러지.”

 

내 말에 아이는 그 뒤로 무어라 몇 마디 덧붙였지만,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아이의 이야기에 집중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낮에 나간 마트에서 아이의 과자를 사 올 생각이었지만 그러질 못했다. 그날 아이는 가고 싶은 곳, 보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에 관해 한참을 떠들었다. 심지어 입고 갈 옷과 가지고 갈 과자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던 것 같은데, 무얼 이야기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아토피가 있는 딸애가 초콜릿은 피해야 했기에 고를 수 없었고, 너무 자극적인 맛의 과자는 사 주고 싶지 않았다. 결국, 나는 과자가 진열된 매대를 한참이나 돌다가 건빵을 한 봉지 사서 들어와야 했다. 아이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고 생각한 건 내가 나에게 하는 위로였다. 월경이 다시 찾아온 어느 날, 별안간 궁금한 것이 많아졌다. 아이에게 궁금한 걸 묻는 일은 내일로 미루기로 했다. 눈이 거의 감기기 직전이었다.

 

알람 소리를 듣고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일어났다. 날은 어제와 똑같았고 핸드폰 위치도 그대로였다. 허리와 엉덩이 사이 어딘가에서 느껴지는 축축한 기운에 벌떡 몸을 일으켰다. 이불 한쪽과 바지가 피로 얼룩져 버렸다. 이런 일은 학교에 다닐 때 빼곤 거의 없던 일이라 당황했다. 수건을 깔고 잠들지 않은 탓이었다. 예정에 없이 이불 빨래를 해야 할 생각에 아침부터 아득해졌다. 이마를 몇 번 훔쳐 내고 나서야 집이 지나치게 조용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시간이면 아이가 씻는 소리가 들려야 했다. 하지만 집 안에서 들리는 건 이마를 매만지는 내 손의 까끌까끌한 소리였다.

 

다급하게 일어나 아이의 방으로 달려갔다. 바지는 갈아입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 오늘은 아이가 수학여행을 가는 날이었다. 중학교 때 수학여행을 다녀오지 못한 아이가 얼마나 이날을 기다려 왔는지 알고 있었다. 당장 아이를 깨워 학교에 데려가야 했다. 방문을 열고 아이 이름을 불렀다.

 

내가 움직이는 소리만 가득한 집에 아이는 없었다. 무엇에 이렇게 놀라고 긴장했는지 알 수 없었다. 문고리를 쥔 손에는 힘이 바짝 들어갔고 다리는 힘이 풀려 주저앉을 뻔했다. 아이 방의 시계를 보니 이미 8시였다. 어제부터 상상해본 적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샤워하는 내내 열이 올라 찬물로 씻었다. 원래 몸에 열이 많기도 했지만 그래도 샤워만큼은 따뜻한 물로 했다. 그저 올겨울이 조금 따뜻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불과 일 년 전보다 수도꼭지의 방향이 찬물 쪽으로 한 마디나 돌아가 있었다. 문득 물이 너무 차갑다고 느꼈다. 하지만 온수로 다시 바꾸지는 않았다. 아침저녁으로 여전히 얼굴이 화끈거리는 탓이었다. 온종일 몽롱했고 기분이 이상했다. 라디오에 나오는 사연마다 기분이 요동치는 것 같았다.

 

겨우 이불 빨래를 하고서 다이에게 연락을 했다. 오늘부터는 혼자 하면 될 것 같다고. 다이는 답장이 없었다. 허무하게 앉아서 수건을 몇 장 개켰다. 이상한 하루의 시작은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꼭 이제 시작이라는 것처럼 핸드폰이 유난스럽게 울렸다. 딸애의 담임 선생님이었다.

 

아이는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순간부터 들떠 있었다. 아이가 중학교 3학년 때, 큰 사고가 나면서 전국의 학교들은 수학여행 일정을 취소했다. 딸애의 학교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쯤이면 한참 제주도에 도착해서 여행하고 있을 터였다. 나는 반쯤 접은 수건을 옆으로 치워 두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담임 선생님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믿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더욱이 내 딸이 한 일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어제부터 온통 상상할 수 없는 일들만 닥쳐오는 것 같았다. 이게 꿈이라고도 생각했다. 멈췄던 월경을 다시 하고, 늦잠을 자고, 이불을 버리고. 꿈에서 너무 깨고 싶어 허벅지를 힘껏 꼬집었다. 그저 변하는 건 늘어났다가 제자리로 힘없이 돌아가는 내 허벅지 살뿐이었다.

 

아이가 술을 가져와 친구들과 마셨다고 했다. 일정을 소화하던 와중에 자유 시간을 줬는데 그때 한쪽에서 아이들이 유난히 모여 있더란다. 이상하게 생각한 선생님이 가서 확인하니 아이들에게서 술 냄새가 진득하게 났다는 것이다. 게다가 아이들이 한 아이를 둘러싸고 앉아 억지로 술을 마시게 했는데 그 아이가 내 딸애였다고.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다음이었다. 아이들 모두 마신 술과 가방에서 나온 담배를 딸애가 가져왔다고 말했다. 엄마가 운영하는 편의점에서 가져왔고 자신들은 그저 놀고 있었을 뿐이었다고. 천장이 도는 것 같았다. 불과 며칠 전에 이상한 일에 엮이지 말라고 했을 때, 딸애는 알겠다고 했다. 나는 담임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딸애는 내 말이면 일단 알겠다고 하는 아이였다. 세상에 귀를 기울이는 대신 학원을 보냈고, 매년 소풍에 건빵만 가방에 넣어줘도 불만이 없는 아이였다. 며칠 내가 다친 것을 걱정하며 묻던 아이였다. 내가 보지 않은 것은 믿고 싶지 않았다. 내가 본 적 없는 딸애의 모습을 전하는 담임 선생님의 목소리가 잠시 윙윙거렸다. 아무리 이성적으로 생각하려고 해도 잘 되지 않았다. 내 눈에 딸애는 그런 짓을 할 아이가 아니었다.

 

“우리 애는 그럴 애가 아니에요.”

 

“학교로 돌아가면 징계가 있을 겁니다. 미리 연락을 드려야 할 것 같아서….”

 

“확실히 확인했나요? 증거가 있는 거예요?”

 

“어머니. 가정에서 지도 부탁드리겠습니다.”

 

담임은 그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개키던 수건을 던지고 일어섰다. 당장 편의점에 달려가 CCTV를 보지 않으면 가슴이 터져 버릴 것 같았다. 일그러진 일상은 순식간에 비틀어졌다. 모든 것이 이 순간을 위해 준비된 것 같았다. 조금씩 엇나간 믿음들이 동시에 무너졌다. 딸애의 비행을 전해 듣고 덜컥 확인해야겠다는 내 다짐이 무너짐의 시작을 알리는 것 같았다. 평소와 다르게 알람을 듣지 못했고, 피가 이불에 새는 실수를 하고 말았다. 아니, 어디서부터 꼬이기 시작한 것인지 가늠이 되질 않았다.

 

벌떡 일어나 갑자기 움직이는 내 다리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나는 내가 쌓아 둔 수건에 발이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집 한가운데서 벌러덩 넘어진 내가 너무 불쌍해서 그 자리에 엎드려 엉엉 울어 버렸다. 혼자서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아이는 모난 곳 없이 잘 키웠다고 생각했다. 조금 냉랭한 면이 있기는 했지만, 사춘기라고 생각했다. 말썽 한번 피운 적 없던 아이가 그랬을 리 없다고 나는 믿고 있었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내 눈에서는 자꾸만 눈물이 났다.

 

아이는 결국 징계를 받았다. 벌점을 한가득 받았고 매일 학교가 끝이 나면 사회봉사 활동을 했다. 덕분에 학원은 잠시 쉬어야 했다. 나는 CCTV를 확인하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딸애가 술을 훔쳐간 날은 다이가 겁에 질려 나에게 전화를 하려고 했던 날이었다. 여러 번 재고와 현금을 계산하는 과정에서 분명 실수가 있었던 게 틀림없다. 다이도, 나도 가끔 실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동안 아이는 결국 학교의 징계를 받게 됐다. 고작 그만큼을 인정하는 데 나는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꼭 편의점 CCTV 영상이 없더라도 현장을 들켜 버린 아이들이 빠져나갈 방법은 없었다. 나는 더 크게 번지길 원하지 않았고, 그날의 기록을 전부 지웠다. 지울 수만 있다면 내 삶에서도 지워 버리고 싶었던 일주일이었다.

 

수학여행에서 돌아온 딸애에게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이도 아무런 말이 없었고 우리는 꼭 그런 일이 없었던 사람들처럼 행동했다. 당분간 학원에 다니지 않아 일찍 돌아온 딸애가 인사도 없이 나를 지나쳤다. 울컥 나는 화가 났다. 왜 딸애가 저렇게 당당한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온 힘을 다해 참아 내고 있는데 딸애는 늘 무엇이 저렇게 불만이고 당당한 걸까. 발끝에서 울화가 치밀었다.

 

“예의 없이 굴지 말랬지.”

 

“다녀왔습니다.”

 

“엄마가 지금 인사받으려고 불러 세운 줄 알아?”

 

“그럼 뭔데요?”

 

“뭐?”

 

“엄마가 원하는 게 뭔데요?”

 

아이의 물음에 목구멍이 턱 막혔다.

 

“지금까지 내가 원하는 건 물어본 적 있어요?”

 

“지금 말대꾸하는 거니?”

 

“이렇게 하지 마라, 이건 하면 안 된다. 엄마는 내가 아무것도 안 하는 걸 원해요?”

 

나는 아이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원하는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선뜻 대답할 수도 없었다. 엄마가 무엇을 원해야 하나. 엄마는 원하는 게 있어야 했나. 나는 평온한 가정과 아이의 건강한 성장만을 바란다고 말하기도 헷갈렸다. 내가 원하던 것이 이것뿐이었나 싶다가, 이마저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는 생각까지 흘렀다. 아이가 현관에 들어서기 전까지 나는 아이가 징계받은 일조차 잊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네가 왜 화가 났는지 모르겠구나.”

 

“엄마가 하지 말라고 한 것들을 죄다 한 번에 했는데, 엄마는 왜 묻질 않아요? 그 전에 한 번이라도 내 말을 들어준 적 있어요?”

 

“아침에 항상 대화하잖니.”

 

“건빵 싫다고 말한 건 기억하세요? 매년 이야기하는데 엄마는 매년 건빵만 사 오잖아요. 다른 것들도 그래요. 저는 영어학원보다 수학학원이 더 필요하다는 말은 기억하세요? 바둑을 배워 보고 싶다는 이야기는요? 그 이야기에 딴짓할 생각 말라던 것도요. 엄마는 늘 물어봤다는 사실만 기억해요. 하고 싶은 일은 하고, 불의는 참지 말라면서요. 지금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하려면 엄마가 시킨 말을 다시 어겨야 해요.”

 

“다들 그렇게 살아.”

 

아이는 내 말에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아이는 쉬지 않고 말을 뱉어냈다. 근래 나눈 대화의 몇 배는 더 많은 이야기를 했다. 아이는 그동안 아침마다 내게 했던 질문을 되짚었다. 자신은 무엇을 좋아하는데 엄마는 무엇을 좋아하느냐는 식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수많은 식사를 함께 하면서 서로를 너무 모르고 있었다. 나와 아이는 그 질문에 서로 완벽하게 대답할 수 없었다. 다들 그렇게 산다는 말로 넘기기에는 아이와 나 모두 사람이었다. 방문을 소리 나게 닫고 들어가 버리는 딸애에게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바로 대답하지 못하는 내가 민망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결국, 새벽까지 잠을 설쳤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딸애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기억을 되짚느라 한참을 뒤척였다. 대답에 닿을 것 같다가도 그 대답에 닿기에는 세상이 그걸 가만둘 리 없었다. 나는 그저 딸애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걸 원했다. 모두의 행복이 다를 것이 분명해서 답을 내릴 수 없었다. 그 행복에 닿는 길이 모두가 가는 방식이 아니라면 더 꺼려졌다. 그런 건 위험한 것들 투성일 터였다. 나는 결국 그날도 늦잠을 자고 말았다. 다음 날 딸애는 아침을 먹지 않았다. 대신 식탁에 짧은 메모를 남겨 두었다.

 

‘저 아침 먹으면 속이 더부룩해요.’

 

마침내 어제 저녁부터 이미 내렸던 답을 확정 짓기로 했다.

 

얼굴이 붉어지며 열이 오르는 건 생각보다 꽤 신경을 긁는 일이었다. 나부터 변하기로 마음먹었다. 노트를 펼쳐 종이를 반으로 접었다. 한쪽에 내 이름 ‘한정희’를 적었다. 나머지 한 공간에는 딸애의 이름 ‘강다영’을 적었다. 양쪽 모두에 건강과 행복을 적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씩 채워 나갔다. 내가 해야 할 일도 채워 넣었다. 우선 딸의 사춘기와 나의 갱년기를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당장 산부인과에 들러 검진을 받고, 갱년기임이 틀림없는 이 증상들을 외면하지 않아야겠다. 가서 이 두려움에 맞서야겠다. 적어도 나는 딸애에게 그렇게 가르쳤다. 고작 노트의 반쪽을 채우는 데 한참이나 걸렸지만, 이제는 물었다는 사실만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 딸애가 돌아오면 이 노트를 건넬 생각이었다. 빳빳한 노란색 노트를 덮고 일어났다. 지금 산부인과를 다녀올 생각이었다.

 

나는 여전히 사람도 차도 없는 신호등을 지키고 서 있었다. 아무래도 나는 이런 것들을 지키고 규칙에 맞춰 사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았다. 하릴없이 신호등을 바라보는 일 말고 주변에 차가 오고 있는지 둘러봤다. 오늘도 우회전 차량이 도로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고 뒤쪽에서 바쁜 뜀박질 소리도 들려왔다. 나는 정신없이 길을 건너려던 여자를 불렀다.

 

“저기요! 차 와요!”

 

내 목소리에 여자는 발걸음을 멈췄다. 여자의 앞으로 차가 빠르게 스쳐 지나갔고, 신호는 다시 파란불로 바뀌었다. 여자는 그저 내게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서 다시 뜀박질을 시작했다.

 

병원을 다녀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렀다. 아무 과자나 건빵이 아니라면 좋았다. 잔뜩 늘어놓고 딸애가 좋아하는 걸 골라가게 할 셈이었다. 오늘도 조용히 들어선 편의점에는 그 한량이 와서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저번에 사장이 하는 말 들었잖아!”

 

“저는 사장님이 아니잖아요.”

 

두 마디만 들어도 상황을 파악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다이는 여전히 겁을 잔뜩 집어먹은 것 같았고 핸드폰을 꼭 쥔 손은 작게 떨리고 있었다.

▲ “계속 소란 피우시면 경찰 부를 거예요.” “사장 불러!” 한량은 의기양양하게 소리쳤다. 사실 저런 말이 위협이 될 것이라고, 다이의 두려움을 해소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한 말은 아니었다. 그저 상황을 모면하고 비껴가기에 그럴듯해 보여서 한 말이었다. 나는 여전히 다이를 보며 다영이를 떠올렸고 이제는 전과 같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림=권휘원

“계속 소란 피우시면 경찰 부를 거예요.”

 

“사장 불러!”

 

한량은 의기양양하게 소리쳤다. 사실 저런 말이 위협이 될 것이라고, 다이의 두려움을 해소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한 말은 아니었다. 그저 상황을 모면하고 비껴가기에 그럴듯해 보여서 한 말이었다. 나는 여전히 다이를 보며 다영이를 떠올렸고 이제는 전과 같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손님.”

 

“마침 사장님 오셨네. 저번처럼….”

 

“나가세요.”

 

“뭐요?”

 

“나가시라고요. 경찰 부르기 전에 나가세요.”

 

그 전에 밀린 돈은 받지 않을 테니 다시는 오지 말라는 말에 그는 씩씩대며 나가 버렸다. 다이는 되레 나에게 위로를 건넸다.

 

“사장님, 그래도 동네 사람인데.”

 

“저런 사람들은 고객으로 대하면 사람을 만만하게 봐.”

 

나는 정말로 다이에게 괜찮다고 말했다. 다음엔 그냥 저 사람이 오거든 CCTV 위치를 가리키며 경찰 부르라고 덧붙였다. 나는 여전히 한량과 같은 사람이 또 편의점에 찾아올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다이는 전보다 편안한 얼굴이었다. 같은 말이지만 분위기는 분명히 다르다. 내 말 한마디가 따뜻한 두유 따위보다 나을 거라고 감히 생각했다. 나는 다이에게 좋아하는 과자를 물었다.

 

“저는 나초 좋아해요.”

 

“다영이가 좋아할 과자가 짐작이 안 가서 물어봤어.”

 

“다영이가 따님이세요?”

 

다이의 말에 나는 또 얼굴이 붉어졌다. 갱년기 탓만은 아니었다. 문득 다영이의 이름을 불러본 적이 없는 것 같아서였다. 아이 혹은 딸애로 부르면서 정작 이름을 제대로 부르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종류별로 과자를 담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건빵도 잊지 않고 챙겼다. 나초 한 봉지는 다이에게 건네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돌아가면 가장 먼저 딸애의 이름을 불러야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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