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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함께 사는 세상

선택의 갈림길이 더는 없었다. 흰눈이 펑펑 쏟아지던 새해 1월 4일. 나는 중국 연길을 떠나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엄∼마, 맘∼마” 이제 금방 말을 번지기 시작한 귀여운 아들과 연로한 부모님을 뒤에 남기고 떠나는 내 얼굴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고 마음은 칼로 에어내는 듯 쓰리고 아팠다.

 

중국에서 중학교 교원생활중 학생들과 정을 주고 받던 아름다왔던 추억들과 동반된 것은 국가재정 곤란으로 인한 노임체불이었다. 생활의 핍박으로 나는 단연히 10년 세월을 애착해오던 정든 교단을 떠날 결심을 내리고 한화 1천만원의 빚을 내가지고 떠났던 것이다.

 

일년을 일하여 빚갚고 이년을 더하여 아버지의 병치료를 해드리고 집사고… 그렇게 아름다운 꿈만 안고 들뜬 인간들 속에 끼어 나는 예약할 수 없는 정처없는 길을 떠났었다.

 

한국, 꿈에도 그려오던 한국, 김포공항에 내리는 순간, 내 마음속에는 말할 수 없는 짜릿한 감수가 스쳐지나갔다.

 

기실 이곳이 진짜 우리 고향인데… 역사가 만든 죄악으로 우리 한민족이 헤어져 있는 이유? 우리 조상들이 묻혀 있는 이 땅을 찾아와 제 힘으로 벌어 갖고 돌아가 잘 살아보겠다는 우리가 부당한 대우를 받아야 하는 이유?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만약 빚도 채 물지 못하고 붙잡힌다면 차라리 죽어버릴까. 그럼 우리 준걸이는 어쩌구… 오만가지 걱정으로 잠못 이루며 여관방에서 뒤척이던 사흘밤, 전북 임실군의 한 갈비집에 일자리가 있다는 소개를 받고 길을 떠났다.

 

올때는 중국어 가정교사쯤한 직업을 얻으려고 했었는데 시간이 급하고 비싼 여관방에 들 힘도 없다보니 나는 울며 겨자먹기로 난생처음 손에 필이 아닌 사발과 접시를 쥔 서비스업에 종사하게 되었다.

 

너무너무 힘들었다. 줄지어 들이닥치는 사람들, 들어못본 음식이름, 아름차게 많은 그릇들… 손과 발은 곱배나 되게 부어 올랐고 허리는 도무지 자기의 것 같지 않았다.

 

이렇게 수 없이 많은 나날들을 보내야 할 생각을 하니 기가 막혀 눈물이 흘러나왔다. 아침 8시부터 밤 12시까지 멈출줄 모르는 기계와 같은 삶, 인생살이가 이처럼 고달프다는 것을 뼈로 느끼었다. 허나 결코 돌아설 수 없는 빚 갚아야 한다는 단 하나의 이유에 밀려 되돌아 볼 수 없는 인생길이었다.

 

중국에서는 인정없고 약아빠진 한국인이라고 들었는데 좋은 분들이 더 많은 것 같다. 길옆에서 짐 가득 들고 서 있는 나를 보고 차를 태워주시던 아저씨, 중국에서 온 눈치를 채고는 팁을 건너 주면서 얼마나 힘들겠냐고 관심해주던 아줌마, 하냥 “힘들지, 애쓰셨어요”하시며 내가 즐기는 쑥차를 건너주며 밝게 웃어주시던 사모님, “언니 좀 쉬어요”하며 내 이마의 땀을 닦아주는 인정있는 옥화동생, “이화씨를 보면 그냥 시간이 빨리 흘렀으면 좋겠어요. 눈물도 한숨도 일단은 접어둔채 앞만 보고 달려보세요. 이화씨 힘내세요. 아직 젊고 희망이 있거든요…”하고 감동 편지를 써주셨던 이모님, 고마운 이들에게서 나는 홀로 서기가 아닌 함께 하는 세상임을 뜨거웁게 느꼈다.

 

그래야지 당연히, 우리는 한민족이니깐. 우리는 중국에서 힘들게 사는 북한 동포들을 돕는 활동을 잘 벌이고 있다. 우리는 한민족이니깐.

 

헌데 경제가 어려운 나라에서 왔기에 업신여기고 뼈빠지게 일하고도 노임을 못 받고 신고당할까 그대로 떠나야 하는 우리 교포들의 서글픈 신세. 20∼30년전엔 한국에서도 외국에 나가 힘들게 돈벌어 왔단다.

 

그런 역사를 돌이켜 보면 우리 교포들을 좀 더 따뜻이 대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사람들로 하여 한국인 전반의 이미지가 흐려지고 있는 것이다. 너무 너무 유감스럽고 가슴 아프다.

 

이제 입춘도 멀지 않으니 봄도 금방이다. 이제 봄바람 속에서 통통 여문 버들가지가 피어날 것이고 내 마음, 네 마음에 우리 모두의 마음에 사랑이 새롭게 싹트고 꽃피어 열매를 맺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확신한다.

 

/이화(중국교포, 임실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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