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의 소비자들이 부안 변산의 유기농업 생산자들과 인연을 맺게 된 때는 10년 전 이른봄이었다. 그 당시 그들은 8년이 넘게 유기농업을 했는데 판로가 없어서 배추밭을 뒤엎었다고 했다. 그 말에 우리 소비자들은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바른 농사를 짓는 이들을 살리는 데 힘을 모으기로 마음을 먹었다. 여덟 가구가 함께 하는 이 농부들은 농약, 비료, 제초제를 전혀 쓰지 않고 안전한 먹을거리를 생산해내는 농사를 짓고 있었다. 남들보다 몇 배의 힘을 들이면서 농사를 짓는데, 생활은 아주 힘드는 형편이었다.
나는 솔직히 이 생산자들을 만나기 전까지는 돈 많고 이기적인 사람들이 몸에 좋은 유기농산물을 찾는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지금 이 세상에 모든 것이 오염되어 있는데 혼자만 청정한 것을 찾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이 문명사회가 그렇게 흘러가면 흘러가는 대로 따르는 것이 순리이지, 혼자만, 더군다나 값비싼 무공해음식을 먹으려고 하는 것 자체가 이기적인 태도가 아닌가 생각했다.
그러나 생산자들이 경제적인 어려움을 감수하면서까지도 유기농업을 하는 이유와 농약·비료오염으로 인한 피해사례를 접하면서, 우리 모두가 함께 건강하게 살고 후손들에게 건강한 땅을 물려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좀 불편하고 힘들더라도 그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 바람직한 삶의 태도가 아니겠는가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우선 몇 가지 농산물이라도 소비자·생산자가 직거래를 해보기로 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구역별로 공동나눔을 시작하였다. 5가구 이상이 모여 함께 주문하고 함께 먹을거리를 받아 나누었다. 그리고 어린이 자연학교, 봉사활동, 가족모임행사 등을 통해서 소비자와 생산자는 한가족이 되어갔다. 처음엔 십여 가정이었던 소비자 회원수가 점차 늘기 시작했고 생명농업을 하겠다는 생산자도 늘어났다.
생산자들의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되었고 살아있는 땅도 조금씩 늘어났다. 소비자들은 온힘을 다해 봉사하며 알뜰하게 공동체를 꾸린 결과 얼마간의 돈을 적립할 수 있었다. 그 돈에다 회원들의 매장마련을 위한 특별출자금을 모아서 마침내 소망이었던 직매장을 열게 되었다. 한울공동체가 창립된 지 9년만의 일이었다.
그로부터 1년 5개월 후인 지난 2월, 한울공동체는 생활협동조합으로 재탄생하였다. 생활협동조합은 말 그대로 생활에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하여 조합원들이 서로의 힘을 모아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자발적인 공동체이다. 조합원들 스스로 투자하고 이용하며 운영하는 이 공동체에서 지향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바른 농사를 짓는 생산자와 함께 참먹을거리 생산을 통해서 환경과 생태계 보호에 앞장서는 일이다. 둘째는 수입농산물의 홍수 속에서 우리의 농촌과 농민을 살리며, 셋째는 이웃과 협동하는 공동체문화를 형성하여 보다 인간다운, 더불어 사는 사회가 되도록 힘쓰는 일이다.
지금은 조그맣고 약해 보이지만 한사람 한사람의 작은 힘들이 모인다면 큰 물결이 되어 이 땅의 모든 생명을 지키고 가꿀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 이덕자 (전주 한울 생활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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