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응급실 당직을 서 보면, 응급실을 찾는 환자의 유형이 겨우 수년 전과 비교해도 큰 차이가 있음을 체감한다. 피를 토하는 환자나 위 천공으로 복막염이 생긴 환자는 예전에는 비교적 흔했지만, 지금은 만나기 어려울 정도다. 팔다리가 잘리거나 뼈가 심하게 부러진 환자도 확실히 줄었다.
그만큼 외상이나 급성기 질환이 줄어들었다는 이야기인데, 그 이유는 생각 외로 간단하다. 우선 신약개발 등 의학기술이 발전했고, 병원 문턱이 낮아지면서 조기에 진단 및 치료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큰 교통사고가 줄고, 다른 대형사고가 적어서 외상 환자도 줄어들고 있다. 경찰이 안전띠 단속만 열심히 해도 교통사고 환자가 줄어드는 것은 농담이 아니라 진실이다. 앞으로 운전중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하면 더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과거에 비해 환자가 늘어난 질병도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뇌졸중과 심근경색이다. 이것은 소위 '선진국형' 질병 패턴으로, 우리 나라가 발전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여전히 위암이 암 가운데 가장 많기는 하지만, 부동의 1위였던 과거와는 달리 폐암과 대장암의 발생빈도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우리는 세상이 변하면 질병도 변하고 그에 따라 의료도 변한다는 평범한 사실을 빨리 깨달아야 한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를 따라 잡지 못하면 의사들도 괴롭고 정부는 한심해지고 국민들은 헤매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첫째, 노인인구의 증가는 이 변화의 핵심이다. 이미 우리 나라도 작년 기준 65세 이상의 노인 인구가 전체 인구의 7%를 넘어섬으로서 고령화 사회로 공식적으로 진입했다. 20년 후에는 전체 인구의 20%를 차지할 전망인데, 이는 선진국에 비해서도 더 급속한 노령화다. 이것은 이미 여러 현상을 낳고 있는데, 65세 이상 노인 중 8.3%가 치매에 걸려 있으니 이 치료 및 간호 비용은 매우 만만치 않은 것이다.
한 사람이 죽기 전 3개월 동안 쓰는 의료비가 평생 쓰는 의료비의 1/3이라는 보고가 있다. 노인인구의 증가는 최근 쟁점이 된 보험재정 파탄의 실제적 제1요인이다. 일본이 실시하고 있는 개호(介護)보험과 같은 새로운 제도적 틀을 시급히 만들어야 한다.
둘째, 급성질환이 줄고 만성질환이 중심을 차지하게 되었다. 고혈압, 당뇨병 등 병원에서 치료받는다는 개념보다는 환자 스스로가 건강을 관리하고 질병의 진행을 막지 않으면 다스릴 수 없는 질병이 주가 된 것이다. 앞으로 의사는 치료의 보조자이고 환자 스스로가 치료자로 나서게 된다.
따라서 병원도 변해야 한다. 병원을 찾아오는 환자를 격리해서 치료하는 패턴이 아니라 거꾸로 병원 밖으로 나가 환자를 방문하고 교육하고 일상을 관리하는 패턴으로 바뀌어야 하기 때문이다. 병원의 외형적 틀이 변하는 만큼 의사들의 인식 변환도 필요하다.
패러다임의 변화는 단지 의료보험 재정파탄이나 의약분업과 같은 단기적인 제도적 변화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이 변하고 있고 질병이 바뀌고 사람이 사는 방식이 달라지는 만큼, 병원도 달라져야 하고 의사들의 생각도 변화해야 하고 환자들의 태도도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전환기에 놓여 있다.
/ 이왕준 (인천 사랑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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