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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창] 정치자금과 지하경제



중국 청조(淸朝)말에 사천(四川)대학 교수였던 이종오(李宗吾 1879-1944)라는 이가 ‘후흑열전’이라는 책을 썼다.

이 책의 내용은 부패한 관료주의와 봉건적인 유교사상을 풍자한 것이다. 여기서 후흑(厚黑)은 얼굴이 두껍다는 면후(面厚)와 마음이 검다는 심흑(心黑)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겉으로는 정의인덕(正義仁德)을 내세우면서도 뒤로는 온갖 부정과 사리사욕에 눈먼 정치가 기업가 등 지도층을 비꼬면서, 출세를 위해서는 유학이 아니라 후흑학을 공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고금을 통틀어 수많은 왕후장상, 영웅호걸, 성현들이 있었지만 후흑학을 통해 성공하지 않은 사람이 단 한명이라도 있었던가?”고 묻는다.

그는 후흑학을 3단계로 나누고, 그 가운데 낯가죽이 두껍지만 형체가 없고 속마음이 시커멓지만 색채가 없는 경지를 최고단계로 쳤다. 낯가죽이 두껍고 마음속이 시커멓야 출세하기는 우리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요즘 정치판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특히 정치자금과 관련, 후흑학을 익히지 않으면 살아남을 재간이 없을듯 하니 말이다. 단군이래 가장 선거가 많다는 올해는 후흑학 고수들의 경연장이 될성 싶다.

그것은 올해 뿌려질 정치자금을 생각하면 쉽게 짐작이 갈 것이다. 올 우리 국민이 떠안게 될 공식 정치비용은 대강만 잡아도 1조1천억원에 이른다. 1가구당(4인가족 기준) 10만원꼴이다. 중앙선관위가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 등 양대선거에 지출하는 예산만 2천8백99억원, 정당 국고보조금이 1천1백38억원이다.

또 국회예산이 2천2백35억원, 지방의회 예산이 3천4백41억원이다. 여기에 정당과 정치인이 일반국민들로 부터 모금하는 후원금이 지난해 9백99억원이었다. 후원금은 올해 선거가 치러지기 때문에 몇배 더 걷힐게 분명하다.

그러나 이러한 공식비용은 비공식 비용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97년 대선 당시 후보자들이 선관위에 신고한 선거비용은 모두 합쳐 6백23억원에 불과했다. 개인당 법정선거 비용 한도인 3백10억원을 지켰음은 물론이다. 이것을 그대로 믿을 순진한 사람이 있을 것인가. 정당 관계자들 마저 실제 사용액수는 신고액의 10배 이상이라고 말한다.

98년 지방선거의 경우 출마자 1만2백22명이 신고한 선거비용은 1천4백13억원이었다. 이 또한 실제 뿌려진 돈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았다.

올해는 4대 지방선거와 8월의 보궐선거, 대선 등에서 최고 10조원까지 풀릴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돈은 우리나라 올 국가예산 1백11조원의 10%에 육박한다.

문제는 정치자금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비공식적인 돈이다. 최근 거론되는 완전 선거공영제를 도입한다해도 차단할 수 없어 골치다. 이 돈들은 대개  지하경제, 소위 검은 돈과 뿌리가 맞닿아 있다.

세금을 탈루해 만들어지는 우리 나라 지하경제 규모는 50조-1백조원 가량. 지난 2월 한국개발연구원(KDI)은 95년의 지하경제 규모가 국내총생산(GDP)의14.3%인 52조원이라고 밝혔고, 지난해 LG경제연구원은 11.3%인 59조원이라고 추계한 바 있다. 이 액수는 최소치로, 연구자에 따라 GDP의 20%를 잡기도 한다.

떳떳하지 못한 정치자금을 받아 당선된 정치인들이 과연 제대로 정치를 할 것인가는 물어보나 마나다. 세상에 댓가없는 돈은 없다는 이치를 생각하면 간단하다.

결국 정치자금은 지하경제와 ‘악어와 악어새’처럼 공생하면서 부패구조를 심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아직 확정되진 않았지만 유종근 지사와 세풍간의 뒷거래 의혹도 비근한 예중 하나다. 이번 선거에도 후흑학의 후예들이 얼마나 설칠지 걱정이다.

/ 조상진 (본보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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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진 chos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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