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유럽을 방문하다 보면 고색창연한 건물들이 인상깊게 맨 먼저 눈에 들어온다.
수백년 된 건물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역사의 거리를 중심으로 즐비하다. 겉보기엔 허름한 듯 보이지만 금간 곳 한군데 찾아볼 수 없이 튼튼하다. 내부를 보면 더욱 입이 벌어진다.
생활에 불편이 없게 현대식으로 다소 개조돼 있을 뿐 조상들의 때가 묻은 생활용품들이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다. 창문과 테이블 식기 등 하나 하나에서 오늘을 사는 후손들은 조상들과 시공간을 뛰어 넘는 대화를 나눈다.
이런 역사가 깊은 건축물들은 보통 주택에서도 많이 볼 수 있지만 관공서는 예외가 없다 할만큼 더욱 그렇다.
뼈대있는 나라 , 실속있는 국민들이라서 그럴까.
개발이란 미명 아래 파괴 정신에 익숙한 한국인들로서는 그저 입만 딱 벌어질 뿐이다.
반만년 역사를 자랑하면서도 불과 1백년된 건물 하나 찾아보기 힘든 우리나라가 아니던가.
관공서 청사 신축사업 봇물
지금 전북에는 신축 이전 바람이 불고 있다. 거론되는 기관이나 사업이 하도 많아서 그건 열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 도청과 경찰청이 이전 신축 중에 있는 것을 비롯, 체신청, 농협 전북본부, KBS, 농업기반공사, KT 전주지사, 중소기업청 등이 방침을 확정했거나 적극 검토 중에 있다.
이 뿐이 아니다. 도교육청, 교도소 , 법원 검찰, 보건소, 각급 학교 등 웬만한 기관이면 자의든 타의든 닥치는대로 검토하고 있다.
여기에다 35사단, 전라선 전주 진입철길, 터미널, 전주 공단 등 주요 시설 이전의 목소리도 때맞춰 거세게 일고 있다.
아마도 이 사업들이 완수되는 시점이면 전주의 지금 지도는 박물관에나 가 있어야 할게다.
그러나 이들 기관과 사업의 신축 이전이 그렇게도 절박한 처지인가.
전라관찰사의 복원과 맞물려 있는 도청이전, 전주 북부권 개발 차원의 35사단의 이전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전문가나 도민 모두가 공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기관과 사업들의 면면을 살펴보자. 현 위치에 자리잡은지 길게는 30년 짧게는 10년 안팎에 불과하다. 이중 상당수 기관들은 80년대 초 전주 6지구가 개발되면서 우후죽순처럼 들어섰지 않았던가 .
게다가 그곳에서조차 몇 번의 증축과 개축의 과정을 거쳤던걸 시민들은 눈여겨 기억한다. 건물들은 붕괴 위험도 없다. 냉난방, 전산시스템, 통신 시설에도 전혀 불편이 없다.
'지금 해야 하는가' 따져봐야
그런데도 지금 기관들이나 일부 이해관계인들이 안달이다. 청사 건축에는 자그만치 수백억원의 사업비가 소요된다. 구청사의 처리 문제도 뒤따른다.
중앙 부처의 지원이 뒤따른다 해도 예산은 한정돼 있어 그만큼 본연의 대민 사업이 뒷전으로 밀려야 한다는 결론이다. 본말이 전도된 행정의 낭비 행위라 아니할 수 없다.
기관들은 흔히 신축의 명분으로 방문하는 민원인의 편의를 들먹인다. 그러나 지극히 지엽적인 사항이다. 찾아가서 봉사하는 행정 시대와는 어울리지 않는 핑계다.
정말 불가피한가, 아니면 이익을 노리고 여론을 조장하는 일단의 세력에 의한 장난인가 , 면밀히 파악해야 한다. 실제 인근 지주나 업자들에 의한 농간의 소문도 들린다.
파괴 그리고 신축 이전이 능사인 개발시대는 지났다. 하드 보다 소프트 운영으로 대민 업무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
외형은 낡았어도 안에 들어서면 왠지 신뢰와 무게감을 주는 존경받는 기관의 모습이 그립다.
/임경탁(본사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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