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공약과 관련해 웃지 못할 해프닝이 하나 있다.
폴란드의 레흐 바웬사 라면 세계적으로 유명한 노동운동가 출신의 대통령이었다. 그는 95년출마하면서 다음과 같은 공약을 내걸었다.
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전 국영기업을 민영화 해서 그 돈으로 모든 국민에게 1인당 1억즐로티( 우리돈 7백80만원)를 주겠습니다"
그는 그런 파격적인 공약 덕이었는 아니었는지는 몰라도 당선이 됐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60세의 한 전기공이 '공약대로 돈을 주라' 는 내용으로 편지를 냈다. 여러차례 편지에도 답장이 없자 그는 바웬사 대통령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철저하고 신중한 공약 채택
법원의 판결은 의외로 엄격했다. 원고의 손을 들어줘 바웬사에게 32만원을 지급하라는 주문을 내렸다.
그 뒤 결과는 알 수 없지만 전 국민에게 그대로 집행됐다면 어떠했을까.
바웬사 개인이 파산을 맞거나 아니면 국가 경제가 파탄을 맞아 거덜났을 것임에 분명하다.
선거판에서 공약은 생리상 약방의 감초처럼 따라 다니게 돼 있다.
대통령 선거에서부터 지방자치단체, 작게는 학급의 반장 선거에 이르기까지 공약은 쏟아져 난무한다. 선거판에서 단순히 정견만으론 끝내는 후보는 아예 없다.
한표라도 더 얻으려는 절박한 처지에서 이것처럼 명약은 없기 때문이다.
때론 유권자들부터 먼저 요구받는다. "잇속 챙기는데는 이 때다" 싶어 후보자에 무리한 공약을 내놓도록하는게 우리의 왜곡된 선거 풍토다.
이해가 맞아떨어지는 후보 또한 쾌히 OK다.
자신들의 公約이 실천가능하든 아니든, 내일의 空約으로 끝나든 말든 괘념치 않는다.
공약은 그래서 비이성적이다.
타당치 않은 약속 과연 지켜야 하는가.
당선자들의 공약에 대한 이행 요구는 우리나라가 유별나다.
철저하니 정책과 공약으로 승부를 가르는 미국과 같은 나라에서도 게임이 끝나면 이를 크게 추궁치 않는다 한다. 지난해 2월 취임 한달이 된 부시 미 대통령은 선거공약 중 현실성이 없는 상속세 폐지, 노인의료보장제도인 메디케어 개혁 등을 과감히 폐기하겠다는 선언을 한 바 있다. 그런데도 그에 대한 반발은 없었고 오히려 꾸준히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 우리는 정작 투표 때는 공약이나 정책에 좌우하지 않으면서 당선된 뒤 이를 사정없이 챙긴다. 심지어는 공약 이행 감시 단체까지 등장하고 있다.
여건 안되면 무리하지 말아야
당선자들도 어쨌든 하늘에 떠있는 뜬구름 잡는 시늉이라도 해야 한다. 空約 이라는 비난을 면하고 다음을 생각치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쓸데는 많고 예산은 한정돼 있어 자치단체장들은 궁여지책으로 지방채까지 발행한다. 외상이라면 소도 잡아먹는 격이다. 뻔히 불요불급한 사업,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위한 사업이 아닌데도 공약에 발목잡혀 '삽질' 을 하고 만다. 혈세만 낭비한채...
너무 경직돼 있는 우리의 정치문화다.
그렇다고 혹세무민 식으로 공약을 남발하는 자들을 관용하자는 뜻은 아니다.
다만 실수를 덮으려다 더 큰 실수를 저지르는 악의 확대 재생산을 막아야 한다.
우리도 미국처럼 집권 후 공약 실천에 융통성을 가져야 한다.
강현욱 도정을 비롯한 자치단체마다 공약 이행을 위한 구체적인 사업을 착착 발표하고 있다. 약속은 지킨다는 정신에 박수를 보내는 바이나 행여 자충수를 두지 않을까 노파심에서 지적하고 싶다.
/임경탁(편집국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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