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진 정치부장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는 설이 끝났다. 이번 설에도 전국적으로 3천만명이 넘는 인구가 대이동을 했다. 4천7백만 인구의 60% 이상이 움직인 셈이다. 역귀성도 없지 않으나 이 가운데 대다수는 고향을 찾았을 것이다.
고향하면 대개 시골, 그 중에서도 농촌을 떠올린다. 도회지 인구의 80% 이상이 농촌에 뿌리를 두고 있으니 그도 그럴 것이다.
이번 설에도 어김없이 고속도로 톨게이트 부근이나 읍면사무소 주변에는 '고향방문 환영'등 즐겁고 편안한 귀성을 기원하는 플래카드가 나 붙었다. 귀성객들은 오랫만에 고향의 정취를 듬뿍 느끼고 돌아갔을 터다.
국민 80%의 고향 '농촌'
하지만 우리 농촌은 더 이상 도시민들이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는 옛날 농촌이 아니다. 사람냄새와 자연이 어우러진 향수를 간직한 그런 곳이 아니라는 얘기다. 지금 농촌은 텅 비어 있고 마을마다 60-70대의 노인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1년 동안 단 1명의 어린이도 태어나지 않는 면(面)이 상당수에 이른다. 농촌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양로당이 되어가고 있다.
또 이제 얼마있지 않으면 들판엔 파릇한 새싹이 돋아나고 논밭에 무언가를 심을 것이다. 심을 작목이 없어 해마다 남아 도는 벼를 심고, 가을에는 군청이나 농협 마당에 볏가마를 쌓아야 하는 야적시위가 반복될 것이다. 이것이 해체되고 붕괴되는 농촌의 풍경이다.
이런 농촌에도 생명의 싹을 틔우는 재활의 봄은 올 것인가. 마지못해, 아니 죽지못해 남아있는 농촌이 아니라 사람살만한 가치있는 그런 곳으로 되돌릴 수 있을 것인가.
지금 농촌이 위기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그리고 무너져 내린 농촌을 살려야 한다는 데도 모두 동감한다.
이러한 농촌·농업의 문제는 크게 두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개방화와 농가부채 문제가 그것이다. 우리는 개방화에 대해 10년 넘게 '농업피해를 최소화 해야 한다'는 말만 늘어 놓았다. 대책없는 당위론만 무성한 것이다.
이제 농민들도 자동차나 휴대폰을 수출하기 위해선 그 나라의 농산물을 사줘야 한다는 것쯤은 인정한다. 개방화가 대세라는 것에 동의한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WTO 도하개발아젠다(DDA)에서 요구하는 농산물 개방이며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농촌이 또 얼마나 황폐화될 것인가를 몸으로 느끼고 있다. 문제는 그에 대한 해법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당장 3월로 닥친 DDA협상에서 참깨 등 관세율 5백%가 넘는 농산물이 46개, 2백% 이상까지 합하면 107개나 되는 현실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관세율 25%의 미국안이 아닌, 125%의 개도국안이 통과된다 해도 우리 농촌은 다시 한번 무장해제되고 말 판이다. 특히 주곡인 쌀문제는 '관세화'든 '관세화 유예'든 우리 농촌을 폭풍처럼 덮치고 말 것이다.
이에 대해 농림부는 직접지불제 등 보조금을 올리거나 쌀생산조정제 등을 내놓고 있으나 뾰족한 대안으로 자리잡지 못하고 있다.
농가부채 또한 심각하기는 매한가지다. 2001년 기준으로 가구당 2천37만원에 이르며 이는 농가소득 2천390만원의 85% 수준이다. 1년간 농사지어, 먹지 않고 갚으면 겨우 맞는 정도다. 그 대책으로 내놓는다는게 정책자금의 장기분할및 금리인하가 고작이다. 여기에 농민들은 콧등도 뀌지 않는다.
실질적인 정책 세워라
이제 농민들은 정부의 정책에 반신반의는 커녕 체념상태다. 여기에는 역대 대통령의 공약(空約)과 허언(虛言)이 크게 기여했다. 그 이전은 말할 것 없고 92년 우루과이라운드(UR) 당시 김영삼대통령은 '대통령직을 걸고 쌀개방을 막겠다'고 했다가 그것이 물건너 가자 1년만에 사과를 해야 했다.
97년 김대중대통령도 '부채탕감'을 약속 했으나 결국 지키지 못하고 임기말을 맞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당선자도 얼마전 "임기중 쌀문제를 꼭 해결하겠다”며 "농림부 전체 공무원이 사표를 쓴다는 각오로 일해 달라”고 질책했다.
이 약속이 5년후 지켜질 수 있을 것인가. 농가인구가 전국 평균의 2.5배에 이르는 전북의 농민들은 차기 정부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 볼 것이다.
/조상진(본사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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