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재 편집국장
"호남이라는 것이 천형(天刑)인 모양이지”
지난 2000년 12월 당정 개편때 뛰어난 정치력과 친화력, 협상력을 인정받아 막판까지 유력한 대표후보로 거론됐던 민주당 김원기고문이 대표에서 탈락한 뒤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호남 출신이라는 약점을 극복치 못해 분루를 삼킨 그는 역차별이라고 생각하지 않느냐는 기자 질문에 "호남이라는 것이 천형인 모양이지. 요즘 여론이 그러니 (대통령께서) 부담이 많으셨을 것”이라며 서운한 감정을 털어놓았다.
그는 당시 김대중(DJ) 대통령으로부터 "총재가 호남인데 당 대표도 호남일 경우 부담 때문에 그랬다”는 전화를 받았었다.
호남이라는 게 천형 ?
'호남이 천형'이라는 비유는 실은 DJ에게 어울리는 말이다. DJP연합으로 정권창출에 성공하긴 했지만 군부독재정권의 공작정치와 3공 이후 계속된 지역감정의 최대 희생자가 DJ였고 DJ에게 호남은 태생적 한계이자 천형이었던 것이다. 호남의 굴레에 묻혀 오랜 정치적 속앓이를 했던 DJ가 인사정책에서 호남 벽을 극복하지 못하고 '호남 천형'을 자기복제시키고 있는 건 아이러니다.
DJ의 '국민의 정부' 탄생은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호남소외와 차별의 역사를 개선시킬 동기의 하나를 제공했지만 실제적으로는 역차별에 시달리면서 균형을 맞출 저울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일부 시혜도 있었지만 30년 이상 누적된 불균형 사례들을 시정하기엔 역부족이었고 오히려 역풍에 시달렸던 황당한 경험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호남엔 엄청난 사업과 예산이 쏟아졌고 영남 기업은 다 죽는 판에 호남쪽은 공장이 풀가동되고 있다”는 등의 근거없는 음해에 시달린 게 불과 4년 전의 일이다.
제16대 대선을 치른지 두달 밖에 안지났지만 해를 넘긴 탓인지 아주 오래전에 치른 이벤트처럼 가물거린다. 오늘은 '국민의 정부'가 막을 내리고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가 출범하는 날이다. 새정부에서 앞으로 5년간 전북은 어떤 모습으로 자리매김할 것인지 여간 궁금하지 않다.
지역적 연고와 맞먹는 높은 지지율이 DJ의 경우 처럼 또다른 천형을 낳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지난 대선에서 그에 대한 전북의 지지율(91.6%)은 15대 대선때 DJ의 92.3%에 육박하는 놀라운 비율이다.
이런 상황은 뭔가 반대급부 같은 것을 노리는 심리가 또아리를 틀기 마련인데 '약무광주 시무노풍'(若無光州 是無盧風) 식의 요구가 그 증거다.
광주 국정토론회때 "만약 광주가 없었다면 '노풍'도 없었을 것”이라며 시혜성 민원이 나왔다. '나라의 군량은 모두 호남에 의존하니 호남이 없다면 나라도 없게 될 것'이라는 충무공의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를 빗댄 말이다.
벌써 견제 얘기 나오나
그러나 '약무광주 시무노풍' 식의 보상을 요구하는 건 구시대 유물이다. 다만 앞으로는 호남이, 전북이 역차별받지 않아야겠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DJ 식의 인식이나 김원기고문의 소회와 같은 '호남 천형'이 새 정부에서도 나타나지 말란 법이 없기 때문이다.
'참여정부' 역시 인사 예산 지역개발정책 등에서 역차별 논란이 일 소지는 얼마든지 있다. 벌써부터 전북쪽은 견제당하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최근의 인사를 보면 전북은 곁불이나 쬐어야 할 형편이다. 머리 숫자보다는 어느 자리인가가 중요하다.
이른바 전북의 실세라고 하는 사람들은 자기 앞가림만 할 게 아니라 정책의 메카니즘을 꿰뚫어 소외당하는 일이 없도록 관심을 가져야 한다. '참여정부'에서 만큼은 각 분야에서 '호남이 천형인 모양이지'라는 말이 나오지 않기를 기대한다.
/이경재(본사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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