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가 진행됨에 따라 권위주의가 청산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면서 권위적, 권위주의적인 것은 모두 배격되어야 하는 것이 절대 진리인 양 되어 버렸다. 그에 따라 어떤 권위도 모두 구태의연한 것으로, 권위를 말하는 사람은 모두 구시대적인 사고를 갖고 있는 것으로 치부하면서 어떤 직역, 어떤 사람의 권위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권위란 사전적으로 '다른 사람이 신뢰할 만한 뛰어난 지식이나 기술'을 의미하는 것에 불과하며, 그 단어 자체에 부정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지는 않다.
위증때문에 오판, 권위 무너져
몇 달 전 전주지방법원 형사법정에서 판결 선고에 불만을 품은 사람이 재판장을 향해 폭언과 폭력을 행사하여 실형을 선고받은 사건이 있었다. 물론 그 사람은 평범한 시민이 아닌 조직폭력배였지만, 이미 법정이나 재판장의 권위는 예전과 달리 존중되고 있지는 않은 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재판장이 법정에 들어오면 법정이 개정되는데, 그 때 법정의 경위는 법정 내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리에서 일어서도록 하고 재판장이 자리에 앉으면 그 때서야 사람들에게 자리에 앉도록 한다. 그리고 변호사들은 대부분 법정에 들어오거나 나갈 때 재판장을 향하여 가벼운 목례를 한다.
권위주의가 청산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와 같은 행동부터 없어져야 한다고 할지도 모른다. 필자 또한 처음 변호사가 되어 법정에 드나들면서 재판장을 향해 목례를 하는 것이 너무 어색하여 간혹 이를 생략하거나, 얼렁뚱땅 하는 둥 마는 둥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변호사 생활을 시작한 지 4년째가 되어 가는 지금에는 오히려 처음에 비해 더욱 열심히 재판장을 향해 목례를 한다. 갈수록 법정이나 재판장의 권위가 인정되어야 하는 필요성을 느끼기 때문이다. 법정이나 재판장의 권위는 판결의 신뢰와 존중이라는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에 다른 직역의 권위보다 훨씬 중요하다.
그런데 법조계의 권위가 무너진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법조계에 있는 사람들이 비난받을 행동을 한 것도 하나의 원인이 될 수 있겠지만, 그보다도 검사의 결정이나 판사의 판결을 믿지 못하게 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 생각한다.
재판을 한 번이라도 해 본 사람이면 대부분 경험해본 일이겠지만, 위증을 하는 사람이 너무도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경찰서나 검찰청에 참고인으로 출석하여, 또는 법정에 증인으로 나와서 선서를 하고도 자신의 말이 사실과 다름을 알면서도 거짓을 말하는 것이다.
사건의 실체(진실)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당사자들의 말만을 듣고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검사나 판사들은 참고인이나 증인이 거짓을 말하는 것도 모르고 결국 잘못된 판단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런데도 일반인들은 검사나 판사가 상대방으로부터 청탁을 받았느니, 돈을 받았음에 틀림없느니 하며 검사나 판사를 원망한다.
혼란스러운 사회, 권위 바로서야
이처럼 위증으로 인한 오판이 법정의 권위를 무너뜨리고, 무너진 법정의 권위로 인하여 태연히 위증을 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요즘처럼 혼란스러운 사회일수록 가정 내에서 부모의 권위가, 학교에서 선생님의 권위가, 직장에서 상사의 권위가, 그리고 법정에서 재판장의 권위가 서야 사회가 바로잡힐 것이다. 물론 존중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존중받을 행동을 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황은경(변호사)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