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연이어 보도되는 자살 행동들이 마음을 아프게한다.
경제적 어려움과 대학내 구조적.제도적 문제를 비관한 대학강사의 자살,군대내의 성폭행과 구타를 비관한 사병의 자살,성형수술 후유증으로 자살 사이트에서 만난 여성들끼리의 동반자살,카드빛 연체자의 자살,생활고를 못견딘 주부의 자녀와의 동반자살,명문대에 입학하고도 적응을 못한 대학생의 자살,폭력부모의 폭력을 피해 위탁보호된 아동이 부모에게 돌아가기가 두려워 선택한 자살등 모두 보는이의 마음을 안타깝게한다.
어느 사건이나 들어가보면 사정이 있고 안타깝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하루 평균 19명이 자살한다고한다.
OECD 30개 가입국중에서 자살률이 5위라고한다.
성인뿐만 아니라 청소년 아동의 자살률이 증가되는 것은 뭔가 대책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과연 자살이 최선의 선택이었을까? 혹자는 죽을 용기로 더 열심히 살았으면....하는 바램을 한다. 또 다른사람은 오죽했으면 죽었겠는가?라고 말하기도한다.
우리가 당사자가 아닌이상 그들의 절절한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자살행동을 학문적으로 연구한 프랑스의 사회학자인 '에밀 뒤루껭'에 의하면 아노미적 자살유형이 있다. 아노미란 실직,파산,사랑하는사람과의 이별등 생활규범이 갑자기 무너져 버리는 무규범 상태를 의미한다.자살을 선택한 사람들은 자기가 처해진 여러 상황이 도저히 못견딜 정도인 공황상태,무규범상태로 지각하여 어찌할 수 없어 혹은 도피,해결의 방법으로 자살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민생안정,사회갈등해소,사회구조개혁,사회안전망의 구축등 사회정책을 강화하면 자살률이 낮아질거라고 기대한다.참여연대 사회복지 위원회에서는 최근의 생활고 자살은 사회적 타살이라고 주장했다.그러나 정신의학자들은 자살의 주요원인은 사회적 문제가 아닌 정신적.개인적문제라고 지적한다.
요즘 성인이나 아이들은 그다지 친구가 없어도 살아간다고한다. 인터넷의 보급으로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있어도 심심하지않고 즐길 수 있다. 학교에 가서도 모든 친구들이 입시 경쟁자로 자리매김된다. 학교나 직장 가정에서 대인관계를 하고 사는 것이 아니고 대사물 관계를 하며 지낸다.이런 환경이 사람끼리 부대끼고 사는법 친근한 유대관계하는법을 앗아가는 계기를 만들어 사람속에서 사는법을 알지 못하도록한다.
사람은 교육에 의해 변화 될 수 있다.어릴때부터 생명의 소중함,더불어 같이 사는법,나누고 베풀며 사는법,취약하고 어려운 절대 약자들을 돋아주는 법을 교육받아야한다.
약육강식,적자생존의 원리는 동물세계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우리 사람은 서로 서로 나누고 지켜주고 살펴주고 돋아주며 살아야한다. 그래야 적어도 동물과 차별화되는 것이 아닌가?
심리학에 '자아강건성'의 개념이 있다.자살충동은 그저 죽겠다는 충동이 아니라 죽고 싶은 것과 동시에 살고 싶은 욕망사이의 과정에서 빚어지는 갈등을 의미한다고한다. 이 갈등을 이겨내는 힘을 자아강건성이라고한다. 자살한 사람도 다 살고 싶은 욕망을 가진자들이었다.
살다보면 누구나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 어려움에 직면해서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생명을 지키고 자신을 안전하게 보존할 수 있는 정신의 자주력이 함양되야할 것이다. 최근의 자살보도를 접하면서 사회적안전장치 구축도 보강되고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한 건강가정 육성법 제정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개개인의 정신력을 강화하는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제도권의 학교에서나 가정,사회교육에서도 교육에 의한 정신훈련으로 자신을 강하게 방어.무장해야한다는 생각이 든다.현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 정신의 자주력,자아강건성이 아닌가 싶다.
/문영소(전북일보 독자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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