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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메아리] 경관의 권리

2002년 12월 18일, 일본 도쿄도(東京都)내 기초자치단체 중의 하나인 쿠니타치(?立)시에서는 일본 전역은 물론 국내에서까지 화제를 불러일으킨 재판이 하나있었다.

 

『쿠니타치(國立)시의 대학로(大學通り)사건』으로 불리는 이 재판은 대학로에 면하여 지어진 높이 43m의 맨션에 대해 지역주민 50명이 제기한 소송으로, 도쿄고등재판부는 맨션이 경관을 저해한다는 주민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높이 20m이상의 부분에 대한 철거명령과 철거 때까지 1개월에 1만엔씩을 지불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당시 이 판결은 경관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에 대한 권리를 인정한 상징적인 의미와 경관관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심어준 획기적인 사건이 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일본 정부에서는 국가차원에서의 경관정책의 필요성을 인정했고, 지난해 6월 경관법을 제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금년 3월, 국내에서도 건설교통부가 경관법(가칭)을 제정하고 내년 하반기부터 시행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면서 경관에 대한 권리 보호는 현대 사회의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그러나, 경관법 제정을 두고 환경단체와 개발업자 사이에서는 벌써부터 ‘보존과 개발’이라는 대립구도가 형성되고 있으며, 또 다시 일본의 법제를 무작정 따라하는 것 아니냐는 비난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파괴되어가는 현대도시의 경관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이 내려지고 있는 현 상황에서는 경관정책에 있어서 일본이 국내보다 앞섰다는 점을 인정하고 배우지 않을 수 없다.

 

일본에서 경관관련법제가 제정된 것은 1968년부터이다. 시작은 전통환경을 보존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점점 역사경관의 보존에서 도시경관의 관리로 영역이 확대되면서 현재는 약 500여개의 지자체에서 도시경관관리를 위한 자치조례를 제정하고 경관정비와 보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지난해 제정된 일본의 경관법은 새로운 법제라기보다는 이러한 지자체의 경관정책을 정부차원에서 지원하기 위한 법적 장치를 마련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국내에는 안타깝게도 내세울만한 관련 법제나 정책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몇 몇 지자체에 관련조례가 있긴 하지만 자연경관이나 역사경관의 보존에 한정된 것들이어서 도시전체의 경관을 관리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이 때문에 같은 도시공간 속에서도 한 지역에서는 ‘역사경관을 보존해야 한다’, ‘자연경관을 보호해야 한다’며 경관보호를 주장하고 있는데 인근 지역에서는 거리낌없이 고층건물들이 올라가고 있는 아이러니한 광경들이 펼쳐지고 있다.

 

우리 도시 역시 예외는 아니다. 우리 도시에는 환경부로부터 국내 제일의 생태하천으로 인정받은 전주천이 흐르고 있고, 어느 도시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도시한옥의 아름다운 전통경관을 갖고 있으며,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야경을 갖췄다는 월드컵경기장도 있다. 뿐만 아니라, 수려한 자연경관을 갖춘 도시공원들이 시가지를 둘러싸고 있어 어느 도시에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경관도시로서의 충분한 자격과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우후죽순처럼 올라와 있는 나홀로아파트나 경쟁하듯 하루하루 높아가는 아파트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우리도시의 경관이 아름답다고 당당하게 말할 자신이 없다.

 

물론, 오늘날 우리가 갖게 된 이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전통경관 역시 저절로 얻어진 것이 아니다. 부단한 노력의 결실이었다. 하지만, 애써 일궈낸 결실들이 제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도시전반에 대한 균형적인 경관관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들 경관관리라 하면 ‘개발억제’나 ‘보존’, ‘저층화’ 와 같은 단어들을 떠올린다. 그러나, 경관관리는 지역의 성장을 촉진시키고 고층화하여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조율하는 정책이기도 하다. 이는 경관관리가 단순한 보존이나 개발억제의 차원을 넘어 도시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균형있게 성장시켜 매력적인 공간으로 만드는데 목적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의 경관법 제정은 전문가들에서도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어 머지않아 실현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경관법이 마련되고 관련정책이 전개된다 하더라도 시민들 스스로가 자신의 도시에 대한 자부심과 주인의식을 갖고, 쿠니타치의 시민들처럼 경관에 대한 권리를 스스로 찾으려 하지 않는다면 매력적인 도시경관 형성은 실현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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