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란 그 자체로 사물을 규정하는 힘이 있어 인간의 행동을 지배하는데, 속담은 오랜 기간동안 우리의 생활 속에서 터득된 지혜라 더욱 그러하다. 예부터 전해오는 가족에 관한 속담들이 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 거나 ‘남편 밥은 누워 먹고, 아들 밥은 앉아서 먹고, 딸년 밥은 서서 먹는다.’ 또는 ‘악처 하나가 열 아들 보다 낫다.’ 등이다. 이러한 통념이 지금의 현실과 얼마나 다른지 한 번 살펴보기로 하자.
전라북도 노인학대예방센터에 따르면 금년 1월부터 9월까지 노인학대를 경험하거나 목격하고 신고한 사례가 상담총인원 102명, 상담건수 793건에 이르고 있다. 1월 상담건수가 9명 39건 인데 비하여, 9월 신규 상담건수는 10명 127건에 이르러 노인학대예방센터의 활동에 힘입어 상담건수가 증가했다는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노인학대가 증가하고 있다. 이들 노인학대를 유형별로 살펴보면 언어 정서적 학대 33%, 방임적 학대 32%, 재정적 학대 19%, 신체적 학대 16%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언어 정서적 학대와 신체적 학대의 비율이 49%에 이르러 노인학대문제는 이미 인륜과 도덕의 문제를 넘어 법률의 문제가 되고 있다. 방임적 학대와 재정적 학대가 51%를 차지하여 우리 사회의 경제적 어려움이 노인학대로 이어진다고 보인다. 더욱 중요한 문제는 노인학대를 누가하느냐의 문제인데 학대행위자는 아들 63%, 며느리 20%, 딸 7%, 손자(녀) 4%, 배우자 2%, 타인 4%로서 96%가 직계 존비속 등 가족에 의한 학대이며, 타인에 의한 학대는 4%에 지나지 않는다. 가족문제가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꺼려하는 우리의 정서를 고려한다면, 가족에 의한 노인학대는 발표된 사례보다 훨씬 많을 뿐만 아니라 은폐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라 아닐 수 없다.
위의 결과는 아들과 며느리에 의한 학대 행위가 83%에 이르며, 학대 유형은 소극적 학대인 언어 정서적 학대와 방임적 학대가 65%에 이르는 것을 볼 때, 우리 사회가 노인 부양의 책임을 전통적으로 가족, 특히 아들이 떠맡는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이제 노령화의 문제는 단순히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로 가족들에게 맡겨둘 일만은 아니다. 정부도 노인들에 대한 재정지출을 확대해야 하며, 기업과 연계하여 노인들의 일자리 창출 등 소득보전방안을 강구하여야 한다. 전북은 교육과 직장을 찾아 떠나는 청장년들의 인구유출에 이어 급격한 노령화로 인구 감소가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피터 G. 퍼거슨은 『노인들의 사회 그 불안한 미래』에서 노령화 문제는 다음 세기에 인류가 맞닥뜨릴 가장 끔찍한 재난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선진국들의 노령화는 필연적으로 인구감소로 이어지며, 한정된 자원을 놓고 세대 간에 심각한 갈등이 빚어질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전북은 선진국에 다다르기도 전에 노령화 사회를 맞고 있다. 노인 문제를 가정에 맡겨만 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학대받는 노인들을 지키기 위하여 전라북도 노인학대예방센터에서는 ‘노인학대 지킴이단’을 구성하였다. 이미 노인문제는 가정의 울타리를 넘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이진일(한백종합건설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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