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한희(전북대 교수)
길을 걷다가 맛있는 냄새가 솔솔 피어나면 나의 후각은 빠르게 반응하면서 어느 집에서 나오는 걸까하고 주위를 살피게 된다. 마침 배라도 고프면 당장이라도 들어가서 먹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동네 어귀를 들어서는데 어느 집에선가 아름다운 음악소리가 들리면 귀가 솔깃해지면서 그 소리의 주인공이 누굴까 하고 그 집의 대문과 담장너머로 눈길이 자꾸 간다. 맛있는 음식의 냄새와 아름다운 소리는 직접 보거나 손에 닿지 않아도 우리들의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한다.
예전의 전주는 맛있는 음식냄새를 피우는 잔칫집 같았다. 그 냄새가 나라 전체로 솔솔 퍼져서 사람들의 발길을 전주로 향하게 했다. 전주로 오가는 기차나 버스가 지금처럼 빈번하지도 빠르지도 않던 시대에도 전주를 찾는 사람들은 많았다. 특히 우리네 고유의 정취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의 고향이었다. 어느 청명한 가을날 멍석이 깔린 소리판에서 울려나오는 멋들어진 소리에 귀 명창들이 몰려들어 장단을 맞추고 그 구성진 음과 장단에 반한 전국의 판소리 애호가들이 전주를 기웃거렸다. 일부러 돈을 들여서 광고를 한 적도 없었지만, 소리 소문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널리 펴져나갔다.
예전에 전주를 다녀간 사람들은 전주의 아름다움에 반해서 모두들 스스로 홍보대사를 자처했다. 맛있고도 푸짐한 음식상들, 고즈넉한 품격을 갖춘 한옥들, 푸근한 고향냄새를 피우는 거리, 우연히 들린 찻집에서도 예사롭지 않은 그림과 글씨들을 발견하고는 놀라서 전주에서의 특별난 경험을 자랑거리로 삼았다.
우리 고장을 칭찬하는 내용을 가만히 들으면 결국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우리가 자칫 잊고 지내는 것은 기실 단순한 상식들이다. 아름답고 푸근한 도시라는 말은 사람들이 그렇다는 뜻이다. 사람이 아름답지 않으면 아름다움 작품이 나올 리 없다. 좋은 식재료를 고르고 정성껏 음식을 장만하는 일이야말로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구성진 가락을 지어내느라 혹독한 훈련을 마다하지 않는 명창들 역시 비범한 미의 창조자들이다.
우리 고장의 선조들이 진정으로 아름다운 사람들이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맛있는 음식냄새가 전국으로 피워 올랐기에 사람들이 전주로 찾아들었다. 우리의 미각을 발달시켰고, 푸짐한 반찬들이 가득 나오는 넉넉한 인심이 식문화를 발달시켰다. 명창들과 그들의 소리를 들을 줄 아는 선조들 덕분에 소리문화도 꽃을 피웠다. 전주는 이처럼 누구라도 저절로 오고 싶은 예술의 산지요, 마음의 고향이었다.
오늘 날 우리들은 선조들이 남겨놓은 형상만을 가지고 자랑한다. 더 중요한 것은 선조들이 가졌던 아름다운 내면의 마음가짐들이다. 그것이 가장 소중한 문화유산이고, 그 실체를 배워야 할 줄로 안다. 그래야 예전처럼 사람들의 발길이 저절로 전주로 향할 것이고, 누구라도 오고 싶고 머물고 싶은 도시로 다시 일어설 것이다.
/함한희(전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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