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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메아리] "여러분, 반갑습니다" - 박찬숙

박찬숙(前 전북여성농민연합 회장)

올 들어 확실히 느껴지는 변화가 한 가지 있다. 들녘에 뱀이 늘어났다. 오늘도 논두렁에서 초록빛 꽃뱀 한 마리 만났다. 두어달 사이 벌써 열 번째도 넘는 만남이다.

 

내가 농사짓던 초기엔 들녘뿐 아닌 집 주변에서도 뱀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느끼지 못하는 사이 그들은 사라져갔다. 땅꾼들의 눈부신 활약 때문이었을까? 아니 그보다는 바지런한 농사꾼들이 논은 물론 산 아래 밭에 이르기까지 잡초 한포기, 벌레 한마리 용납지 않으리라, 무시로 뿌려대던 독한 농약 덕분에 뱀들도 따라서 수난을 당했다고 하는 편이 맞을게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산이며 들을 오가다가 뱀을 만나면 피하려다말고 “워메 반갑네이” 할 정도로 뱀구경은 귀했었다. 1년 가야 고작 두어번에 불과하였으니 말이다.

 

뱀이 늘어난 까닭은 쉽게 점쳐볼 수 있다. 땅꾼들이 땅을 뒤져대는 험한 노동자 대신 중국이나 동남아에서 싸디 싸게 수입해 들여오는, 조금은 세련된 무역업자로 변신한 덕도 물론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값싼 수입농산물로 인해 경쟁력을 잃고 더 이상 돈을 벌어주지 못하는 산 아래 밭일랑 묵혀버린 농민들 덕에, 또한 수매제도도 없어지고 팔기 힘들어진 쌀농사 대신 휴경보상금 받으면 그게 차라리 낫다 하고 다랭이거리 수렁논 까짓 묵혀버린 덕에, 그리고 무엇보다도 농사도 친환경이 아니면 명함도 못 내밀게 생겼으니 독한 농약사용 자제한 덕에, 이래저래 촌에서 살판 난건 뱀들이었을 게다. 뱀이나 농민이나 촌에 살긴 마찬가진데 개방농정과 세계화로 갈수록 죽을 판이 되어가는 농민들과는 그 신세가 사뭇 달라진 것이다.

 

오랜 장마와 홍수로 무너져내린 논두렁에 구멍이나 내고 다닐 사고뭉치인줄을 뻔히 알고 있건만 그가 어떻게 다시 들녘으로 돌아왔을지 아는 터이니 어찌 반갑지 않겠는가? 이렇게 돌아온 그를 반갑게 맞이하는 동안 무더운 여름날 비지땀으로 빚어낸 우리 쌀은 뉘라서 반겨줄 것인가? 도시의 소비자들이 넘쳐나는 값싼 수입농산물 틈에서, 농민들의 친환경농사의 정성과 땀이 가득 베어있는 우리의 농산물을 가격표 들여다볼 틈 없이 반갑게 맞아들여준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뱀을 피하기 위해 여름날 뜨거운 장화 속에 발을 쑤셔 넣고 다니더라도, 고추나무가지에 넌출넌출 제 몸을 걸쳐두고 낮잠 자는 기다란 그와 본의 아니게 악수하는 불상사가 생기더라도, “여러? 반갑습니다. 여러?처럼 우리도 살판나게 생겼습니다.” 하지 않겠는가?

 

봄비 내리는 날, 낮게 날아다니는 제비구경에 신바람내고, 가을들판 여문나락처럼 통통한 메뚜기들을 반가워하며, 이슬방울 매달린 거미줄들로 초록비단처럼 반짝이는 논들이 여기저기 늘어가고 있음을 눈여겨 바라볼 줄 알고, 아이들의 아토피를 사라지게 할 믿음직한 대안이 그곳에 있음을 알고 있는, 그리고 그것들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로 이땅 농민들의 땀이라는 사실을 늘 잊지 않고 기억해줄 생면부지의 도시사람들에게 반가운 만남의 인사를 드린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박찬숙(前 전북여성농민연합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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