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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메아리] 플래카드에 스치는 단상 - 노현정

노현정(전북여성연합 사무처장)

따르릉 따르릉 ~~ 전화벨이 울린다. 유난히 바쁜 월요일 아침 정신없이 회의를 끝내고 다른 일정을 준비할 때쯤, 전화로 전해진 황당한 이야기에 머리가 띵하고 기가 막혀 말문이 막힌다. 내용인 즉 ‘문 잠그고, 노출을 피합시다.’라는 내용이 선명하게 박혀있는 플랑 하나가 전주시 ooo 시장 안에 걸려있고, 그 곳을 우연히 지나가다 본 방송사 기자분이 의아해 하며 전화를 줬다는 것이다.

 

최근 도내 여성실종사건을 비롯한 생활안전의 위험과 불안감 등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이 플랑의 내용은 여성폭력의 문제가 여성피해자의 지나친 노출이나, 여성 스스로 행실을 바르게 하지 않아서 일어난 것으로 인식하며 쓰여진 내용이라는 것에 매우 심각함을 느낀다. 사실 오랫동안 사회는 여성이 겪어온 고통과 피해의 심각성을 인정하거나, 공감하지는 않으면서 여성을 피해자화 하는 데에는 익숙해 왔다. 또한 여성이 피해상황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폭력에 대한 동의나 선택으로 이해하였고, 이러한 논리에서 피해여성은 남성폭력의 원인이자 결과로 간주했었다. 결국 여성에게 가해져 왔던 폭력의 상황들이 선택되고, 동의 되었다는 전제를 깔면서 실제로 폭력을 행사한 남성의 책임을 숨겨버리곤 했기 때문이다. 겨우 이 플랑 하나가 그동안 여성에게 가해진 폭력에 대한 사회인식의 아주 조그만 일부를 잠시 보여준 것일 뿐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항의공문으로부터 시작하여 결국 민원까지 제기하면서‘우리가 걸지 않았다’,‘누가 달았는지 모르겠다’는 등 소모적인 논쟁만 한 끝에 플랑이 철거되긴 했지만 그 플랑이 걸려지기 까지 그 내용을 결정하고 걸었을 사람들에게 내재되어있는 성차별적 인식과 남성 중심적 사고에 대한 자성이 먼저 필요한 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들로 인해 이 플랑이 걸려 있던 그 곳을 알게 모르게 보고 지나갔을 사람들에게 마치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의 원인이 피해자의 행실과 노출의 문제로 바라보게 하고, 여성관련 범죄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 준 건 아닐까하는 끔찍한 생각마저 든다.

 

다가오는 11월 25일부터 12월 10일 까지는 세계여성폭력추방주간으로 45년 전 도미니카 공화국의 독재정권에 항거하다 살해당한 세 자매를 추모하기 위해 정해진 날로써, 매년 전국의 여성단체들은 여성에 대한 폭력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다양한 행사를 진행해오고 있다. 3년 전부터는 여성을 대상으로 일상적 성폭력의 책임을 피해자에게 전가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반대하고, 여성들의 몸에 대한 권리를 회복하고자 달빛시위를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사실 낮밤 가리지 않고 운신의 위험을 겪는 여성들은 매일 알게 모르게 햇빛,달빛시위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곧 있을 여성폭력추방주간, 너와 내가, 너와 우리가 동등한 권리의 주체로 바라보는 것이 진정한 평등의식의 시작이라는 사실과, 스스로가 먼저 일상에서 작은 배려와 변화를 시도하고 만들어 가지 않는 한 여성에 대한 폭력이 근절 될 수 없음이 조금이라도 이해되고 인식되는 기회가 되길 바래본다.

 

/노현정(전북여성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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