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재(우석고 교사)
어느 교회의 목사님은 예배 때 가끔 갓 난 아기를 안고 기도를 한다. 이 아이에게 용기와 지혜가 충만하기를, 그리하여 정의와 사랑을 실천하고, 나누며 베푸는 삶으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를, 그러기 위해 좋은 친구와 이웃을 만나고 훌륭한 선생님을 만나 심신이 건강하게 성장 하라고 축복해 준다. 이 기도를 통해 목사님은 우리의 희망이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그 희망을 누가 가꾸어야 하는지를 간접적으로 말하는 것이리라. 아이만 낳아 놓으면 하나님이 그 모든 것을 주신다고 설교를 하는 목사는 없을 테니까.
박완서의 소설 ‘그 남자네 집’에는 6·25전쟁 후의 베이비붐에 대한 내용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빨래를 하다가도 애를 낳고, 시장에서, 부엌에서, 연년생으로 마치 전쟁으로 축난 종족들을 채우기라도 하려는 듯 아기들은 왕성하게 태어났다. 굶주림만이 입을 벌리고 있는 폐허에서 한국의 여인들은 그 아기들을 희망삼아 버티고 살았다. 머리에 생선을 이고 눈길을 걷는 어머니의 등에 업혔던 젖먹이와 좌우에서 달랑거리던 그 어린 것들이 자라서 오늘의 풍요를 이루었음을 상기시키고 있다.
만약 지금 시간이 정지해서(사실은 그것이 곧 죽음의 세계이겠지만) 우리가 더 이상 늙지도 죽지도 않는다 해서 그것이 천국은 아닐 것이다. 자신의 과거에서 자유로운 인간은 아무도 없다. 따라서 과거를 씻을 수 있는 미래라는 희망이 없는 정지된 현재가 어찌 천국이 될 수 있겠는가. 회개한 새 생명과 구원의 기독교적 진리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는 분명 새로운 생명에게 미래의 희망을 걸며 살아왔다.
평생을 폭력과 범죄로 살다 간 마피아 ‘비토 꼴레오네’의 삶을 다룬 영화 ‘대부’의 마지막 장면은 늙은 대부가 손녀와 토마토 밭에서 술래잡기를 하다가 쓰러진다. 냉혹하고 비정했던 삶을 마감하는 순간 그의 눈빛은 손녀의 천진난만한 모습을 붙들고 놓지 못한다. 마치 그 손녀가 자신의 과거를 청산한 새 생명인 듯 바라보는 그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새 생명만이 우리의 과거를 회복시킬 희망이라고 믿어질 때가 많다.
또 한 해가 가고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아기 예수의 탄생이 인류의 구원이요 축복이라며 거리마다 크리스마스트리가 서고 캐럴송이 울리던 분위기도 예전 같지 않다. 굳이 종교적인 의미가 아니더라도 크리스마스는 후회스런 우리의 삶에 새 생명의 희망을 느끼게 하는 암시적 계기라는 걸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특히 하얀 눈으로 어두운 세상을 덮은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우리는 멋도 모르고 좋아했었다. 흰눈처럼 하얗게 씻김 받고픈 영혼의 갈망이었을 것이다.
험한 세상,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갓 난 아기의 새 생명이 자라기를 빈다. 아기들의 하얗고 뽀송한 피부처럼 우리의 희망이 피어나는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이는 겨울이기를.
/이세재(우석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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