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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 소금기둥 - 곽병찬

알베르 멤미 지음...돌아보면 돌이 되는 오래된 저주

약자와 강자 사이의 투쟁과 정복, 억압과 저항의 이야기들이 무성하던 시절이 있었다. 어느 경우에도 흔들림 없이 강고한 저항만이 존재의 이유를 증명하는 것이라고 믿던 시절, 일제강점기에는 친일파와 독립투사만이 살았던 것으로 짐짓 의도적으로 선을 그어 생각하던 그 시절, 알제리 식민지 출신의 의사 프란츠 파농의 책들은 모종의 교본 노릇을 했다.

 

파농의 ‘검은 피부 흰 가면’이나 ‘자기의 땅에서 유배당한 자들’은 백인 또는 식민 모국으로의 정서적 동화를 꿈꾸는 흑인 지식인들의 이중성과 내면적 분열을 통렬하게 고발했다. 그러나 이처럼 선명한 억압과 피지배, 그리고 그 사이에서 겪는 의식의 분열상은 어떤 의미에서 지나치게 명쾌하다. 이태리계 유대인과 사하라 유목민인 베르베르족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고 식민지 튜니지에서 불어로 교육받으며 자라난 알베르 멤미는 이중 삼중의 억압과 분열을 겪으며 진정한 인간적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를 끊임없이 되묻는다. 이른바 북아프리카 해방운동의 한 복판에서 자라난 그는 유아기의 만연한 빈곤과 종교적 강제, 그리고 나찌 부역정권이었던 비시정부와 자유프랑스운동 진영 양측으로부터 받은 정체성의 수난 등의 기억을 이 작품 속에 교묘히 일그러뜨려서 새겨 넣었다.

 

까뮈의 서문에서 보듯이 유대인일 수도 튜니지인일 수도 프랑스인일 수도 없었던 이 경계적 지식인의 선택은 결국 ‘작가’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작가야말로 ‘한 계층이나 인종 속에 익명으로 용해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무엇인가? 인간이 만든 모든 경계와 집단마다 필연적으로 생성되고야 마는 교묘한 차별과 억압의 근원은 무엇인가? 때로 종교의 이름으로 때로는 이데올로기의의 이름으로, 그리고 때로는 이른바 문명과 부에 대한 맹목적 헌신으로 개개인의 나약한 일상과 영혼을 서서히 옥죄어 오는 이 기운들을 진정 벗어날 수는 있는 것인가? 성장소설의 모습을 하고 있는 이 소설에서 주인공은 결국 남미로 가는 배에 오르게 된다.

 

다시는 조국으로 돌아오지 않을 듯이 떠나가던 광장의 ‘이명준’처럼-. 이명준이 선택한 영원한 안식 대신 어쩌면 주인공의 운명은 타락한 도시를 뒤돌아보다 소금기둥으로 변한 ‘롯’의 뒤를 따르게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인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억압과 피지배의 문제는 설사 정치적 식민주의자들이 몰락한다 해도, 억울하지만 영원하다. 예술가의 길이란 결국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이 화인(火印)을, 그저 놓치지 않고 눈 부릅떠서 응시하는 것 아닌가?

 

/곽병찬(전주세계소리축제 총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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