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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메아리] 숨은 그림 찾기 - 윤승희

윤승희(전주문화방송 라디오제작부장)

중학교에 다니는 딸아이가 중간고사 성적표를 받아왔다. 중학교에 들어가니 과목별로 전체 석차가 나온다. 국어, 300명 중 몇 등, 수학, 298명 중 몇 등,,, 그런데 전체 학생 수가 한번은 300명, 또 몇번은 298명이다. 그 이유를 물으니 운동부 아이들이 시험을 안 본 경우도 있고 또 한 아이는 시험 기간 중에 집을 나가 어떤 과목은 시험을 치르고 어떤 과목은 시험을 치르지 못 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전체 학생수가 들쭉 날쭉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집을 나간 그 아이가 같은 반인데 1주일째 학교에도 집에도 연락이 없어 선생님이 염려하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나 정작 같은 반 아이들은 ‘가출’이라는 것이 이제는 간혹 있는 일이라면서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것이었다.

 

중학교에 다니는 열 너댓살의 아이들을 바라보면 한없이 어리고 약해 보인다. 키만 덜썩 자랐지, 아직 생각도 경험도 어린아이 적 모습을 벗지 못한다. 그런데 그 또래의 아이가 어째서 집을 나가 헤매고 있는 것인지, 밥은 어찌 먹고 있는지, 잠은 어디서 자는지, 걱정되기 시작했다. 아직은 부모나 어른의 절대적인 지지와 지원이 필요한 나이가 아닌가. 이제 자신의 진짜 모습을 찾아 헤매며 성장하는 때이기는 하지만 그것도 학교나 부모의 울타리 안에서의 방황이 성장에 도움이 되는 것이지 그 울타리를 벗어나게 되면 그것은 다분히 위험이 수반되기도 하며 모험을 무릅쓰게 될 것이리라.

 

 

전체 300명 중 156등, 300명 중 215등, 아이들에게 그 숫자는 단순히 등수가 아니고 마치 인생의 서열처럼 생각되게 한다. 학교에서, 그리고 가정에서 부모와 선생님의 태도는 가히 석차에 전적으로 매달리는 양상이다. 그 등수가 오르고 내림에 따라 아이들은 “좋은 학생”이 되기도 하고 “그렇지 못 한 학생”이 되기도 한다. 단순히 성적이 좋고 나쁜 게 아니라, 그 사람 자체가 쓸만한 사람인지 아닌지 까지 생각되게 만드는 것이다. 아이들이 앞으로 어떤 인물로 자라게 될지 우리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바라보고 지켜주고 일으켜 세우고 박수 쳐 줄 뿐이다. 그런데 아이들을 문제 풀이 몇 개로 등수를 매겨 순위를 세우고 있다. 이는 어른들이 저지르는 엄청난 폭력이다. 아이들이 어떤 인물로 자라나든 그 모습에 우리는 그저 넋을 잃고 감탄하며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자녀는 그 생명이 부모에게 온 그 자체로서 이미 대단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가치 있다고 인정받기를 갈망한다. 학교 선생님, 친구들, 그리고 부모로부터 어떤 형태로든 인정받지 못 하게 되면 자신을 소중히 여길 힘을 잃게 되고 성장기에 그 인격적 바탕을 다지는 일에도 소홀하게 된다. 현재 한국의 학교에서 시험으로 인해 자신의 존재 가치 자체가 훼손되는 경험을 우리 아이들은 숱하게 겪고있다. 시험 기간 중에 집을 나간 아이, 자신을 등수로 매기는 그 과정에서 일단은 쉽게 벗어날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한국의 현실에서 등수와 성적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이 가치를 찾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마치 숨은 그림찾기처럼 두 눈을 크게 뜨고 정성을 들여야 비로소 하나 둘 드러난다. 우리는 아직 잘 보이지 않는 자녀들의 가치를 애타게 찾고 있다. 때로는 아무리 찾고 또 찾아도 실망스러운 경우도 있다. 그러나 기다리자. 생명을 기르는 일에는 조급증이 독약이다. 좀 더 기다리자, 집을 나간 그 아이가 돌아오면 두 손 들어 껴안고 속삭여주자, 잘 돌아왔다고, 그리고 우리는 지금 숨은 그림 찾기 게임 중이라고, 숨은 그림 찾기에는 인내가 필요하다고,,,

 

/윤승희(전주문화방송 라디오제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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