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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 약자들의 연대를 꿈꾼다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

1996년 8월, 여름은 무척이나 뜨거웠다. 서울 신촌 연세대를 둘러싼 수천 명의 경찰 병력과 학교 안에서 고립된 학생들의 대치는 열흘이 다 돼가도록 끝날 줄을 몰랐다. 섭씨 30도가 넘는 더운 날씨에 두툼하게 껴입은 방석복, 헬멧, 거기에 방독면까지. 쉽게 사라지지 않는 최루탄 냄새는 ‘보너스’였다. 숨이 턱턱 막혀온다.

 

이제 겨우 스무 한 두 살, 전·의경 아이들은 제 또래 아이들을 그렇게 적으로 바로 보고 서있었다. 그 아이들 중에는 나도 포함돼 있었다. 초등학교 6년, 중·고등학교 6년 동안 국가주의에 기반한 질서교육과 반공교육을 받고 자라난 아이들에게 학교를 무단으로 점거하고 있는 또다른 아이들은 국가의 질서를 해치는 폭도들이었다.

 

그 해 겨울도 그랬다. 김영삼 정권이 날치기로 무리하게 밀어붙인 노동법에 노동계가 들고 일어났다. 종로 한 복판, 매서운 칼바람을 맞으며 노동자들과 대치하고 있던 우리들에게 그 순간만은, 그들 또한 적일뿐이었다. 사실 학교를 점거하고 있던 그들은 우리의 친구였고, 도로에 나와있는 그들은 우리들의 아버지, 삼촌 혹은 미래의 내 모습일 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12년 간 학교 교육을 통해 체화된 의식들은 군대에서 더욱 공고해져만 갔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한민국 남성들에게 군대는 그런 곳이었다.

 

군 생활을 마친 뒤 다시 돌아간 학교의 분위기는 싹 달라져 있었다. 사회 변혁과 이념 같은 것에 몰두하던 선배들의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었다. 모두가 토익점수와 학점, 각종 스펙에 목을 매고 있었다. 정치, 사회 같은 거시적인 문제들은 우리와 상관없는 일이 돼버렸다.

 

혼란스러웠던 나의 20대 중반, 홍세화의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를 만났다. 조용 조용, 조근 조근 말하지만 논리적이고 강단있는 그의 말투처럼, 이 책도 서정적이지만 날카롭게 한국 사회의 폐부를 들춰낸다.

 

‘꼬레를 제외한 모든 나라’에 갈 수 있는 택시 운전사, 홍세화. 그는 이 책을 통해 ‘똘레랑스’라는 생소한 말을 유행시켰다. 나와 다른 생각을 인정하고 용인하는 ‘똘레랑스’, 이를 바탕으로 한 사회적 약자들의 연대를 힘주어 말하는 그의 글은 커다란 울림으로 다가왔다. 학교, 직장, 심지어 교회에서도 공동체나 사회정의, 사회적 연대보다는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을 이야기하는 한국 사회에 그는 이 책을 통해 새로운 대안이 있음을 보여줬다.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가 출간된 지 10여 년이 지났다. 그토록 배타적이던 한국 사회도 홍세화를 받아들였고, 그는 돌아왔다. 그러나 많은 권위들이 해체됐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가 똘레랑스가 넘치고 사회적 연대를 쉽게 용인하는 사회가 됐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신자유주의가 확산되고 무한 경쟁 사회가 되어갈수록 이 책이 주장하는 사회정의와 사회적 연대 같은 말들은 역설적으로 더욱 빛난다. 한국사회와 중앙에 비해 상대적인 약자가 되어버린 지역사회에, 이 책의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다.

 

/이상현(전북대학병원 홍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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