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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 허벅지살 베 부모병 구했던 효자 열녀들

조선 후기에 만경의 유생들이 효자 열녀의 정려를 청하면서 관찰사에게 올린 상서(고00845) (desk@jjan.kr)

오늘은 조선시대의 효자와 열녀의 기괴한 행적이라고 할 수 있는 할고(割股) 행위를 고문서에서 살펴보자. 할고란 글자 그대로 허벅지의 살을 도려내는 것으로, 자신의 멀쩡한 생살을 도려내 병든 부모에게 드린 것을 가리킨다. 요즘에야 생각만해도 끔직한 일이겠지만, 유교사회였던 조선시대에서는 결코 보기 드문 일이 아니었다. 예컨대 그림에 보이는 고문서는 조선 말기로 추정되는 을해년에 전라도 만경의 유생들이 관찰사에게 올린 상서인데, 같은 고을의 임시원과 그의 아내 백씨의 효행과 열행을 칭송하면서 이들에게 정려의 표창을 내려줄 것을 청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기재된 이들 부부의 행적은 그야말로 눈시울이 뜨거워질 정도이다. 임시원은 어려서 아버지를 여위고서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어찌나 효성이 지극하였던지 하늘도 감응하여 어머니가 꿩고기를 먹고 싶다고 하면 옆집 개가 알아서 꿩을 물어오고 겨울날에 생고사리가 먹고 싶다고 하면 하늘에서 생고사리가 저절로 떨어질 정도였다. 아내인 백씨도 남편 못지 않았다. 그녀는 시어머님과 남편을 지극 정성으로 섬겼으며, 남편이 병들어 죽을 지경에 이르자 자기 살을 베어내어 남편을 살리고자 하였으며, 끝내는 자기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마시게 하여 이틀이나 남편의 목숨을 연명케 하였다.

 

할고와 단지(斷指)는 백씨에게서만 찾아볼 수 있는 행적은 아니다. 조선시대의 효자 열녀에게 정려를 내려 줄 것을 청하는 상서에는 약방의 감초처럼 어김없이 이 대목이 나온다. ‘조선왕조실록’에도 할고를 한 효자와 열녀들에게 정문을 세워 표창하였다는 기사들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여기에서 호사가의 심술궂은 호기심이 발동한다. 그 할고가 정말 효험이 있었던 것일까? 고문서의 기록들은 한결같이 할고로 인하여 환자가 이틀이나 사흘을 연명하였다고 적고 있지만, 정려를 청하는 기록인만큼 아무래도 곧이 곧대로 믿을만한 것은 못된다. 그보다는 의료시설이 변변하지 못한 당시에 비위생적인 방법으로 할고를 함으로써 심각한 부작용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런데 놀랍게도 의학적인 면에서 할고의 효능을 뒷받침해주는 의서가 일찌기 중국에서 발간된 적이 있다. 739년 당나라의 명의(名醫) 진장기(陳藏器)가 펴낸 ‘본초습유’는 인육(人肉)을 노망뿐만 아니라 폐병으로 인한 육체적 정신적 쇠약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중국에서 인육을 약으로 삼는 관습을 조장하는데 이 책이 한몫 거들었다고 주장하는 견해가 나온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불교에서 신체공양의 의미로 할고가 행해졌다는 반론도 있다. 그러나 설령 할고에 효험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허벅지를 베어낸 당사자는 상당한 후유증을 앓았을 것이 틀림없다. 이를 두고 자해행위로 매도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효자 열녀는 부모와 남편의 간병에 자신의 아픔조차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유호석 전북대박물관 전문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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